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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 만한 전시] 디자인 다시 보기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디자인이란 단지 보기 좋은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바로 ‘그 일’에 관한 진지한 고찰이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보아도 그곳만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역사와 문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향기가 도시 전체에 낮고 깊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는 민주・인권・평화의 도시이자 비엔날레의 도시다.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일반 디자인 전시회나 페어와 달리 디자인 본연의 미적・실용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문화적 관계를 적극 반영한 차별화한 기획과 전시로 구성된다. 그로 인해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사회 문화 현상과 디자인 흐름을 읽어내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특정 장르를 구분하기보다는 디자인 전 분야를 융합과 통섭으로 아우르면서 입체적이고 실험적인 시각 문화를 소개하는 것,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그 고유의 특성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문화 축제다.

9월 1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첫날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 씨와 중국의 설치미술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가 공동 감독을 맡았다. 승효상 감독이 이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어로 잡은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첫 구절을 응용한 것이다.

“디자인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산물로서 대량생산을 전 세계에 유포하고자 만든 전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와 비교해볼 때 지금은 디지털 환경의 발달로 디자인의 환경이 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나 디자인할 수 있게 되었고, 특별한 장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디자인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새로운 디자인의 정의가 필요합니다. 디자인을 다 같이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이번 전시의 테마를 ‘디자인’으로 잡았습니다.” 승효상 감독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 주제를 위해서는 두 가지 단어가 필요하다. ‘이름과 장소’. 디자인과 이름의 관계, 디자인과 장소의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디자인의 개념을 정립해보는 것이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이름이 있는 디자인 ‘유명전’, 이름이 없는 디자인 ‘무명전’, 광주의 구체적인 장소에 지은 시설물 ‘광주폴리’, 전시장이라는 가상의 공간 ‘비엔날레시티’를 찬찬히 둘러보며 <행복>이 주목한 11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1 중국의 아이 웨이웨이 ‘필드’
승효상 씨와 함께 디자인 총감독을 맡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이다. 사이즈부터 제작 방식까지 어마어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진 왜 놀라운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이 거대한 설치물은 놀랍게도 도기로 제작한 것이다. 명나라 초기의 도자에서 볼 수 있는 푸른색과 흰색의 꽃무늬가 그려진 도기. 이 전통 문양의 도기는 산업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파이프를 형상화한 것. 현대 생산 기술의 규칙성과 전통적 도자 기법의 만남. 작가는 “어떤 강제에서 벗어나 공간을 체계적으로 나누는 행위가 전통과 모던을 잇는다”고 말한다. 그가 처한 사회적 상황을 특징짓는 의식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 한국의 안지용&이상화 ‘바이크 행어’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바이크 행어’는 자전거 환경을 만들기 위해 꼭 필 요한 시설이다. 자전거를 20~36대까지 보관할 수 있는 바이크 행어는 보통 전기로 작동하는 자전거 거치대에 비해 유지 비용이 적게들고 환경친화적이다. 기어가 달린 고정식 자전거를 아래에 설치해 오직 사용자의 페달 작동으로 모든 설비가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무공해, 무전기로 작동하는 바이크 행어는 혁신적이고 기능에 충실한 고밀도 자전거 보관 시설이며, 최소 공간만 사용하므로 도시의 예술적 랜드마크로도 손색이 없다.

(오른쪽) <어번 차이나 매거진>이 중국 시골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를 재구성한 것. 구멍 난 농구공이 대단히 효율적이고 거의 새지 않는 통으로 바뀌었다.


3 덴마크의 키비시 ‘도시 가로등과 쓰레기통’
‘도시 가로등과 쓰레기통’은 도시 재생을 위해 기능성을 높인 거리 가구다. 현재 어지럽게 널려 있는 도시의 거리 기구들을 말끔히 정리해 새로운 하이브리드 종으로 만든 것이다. 이 기능적 가구는 도시 곳곳에 각기 다른 요구를 반영하여 유연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사람들은 나무 모양으로 디자인한 가구에 앉을 수도 있고, 그네를 탈 수도 있다. 또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작가는 “디자인은 형식이 아니다, 기능도 아니다, 아이디어다”라는 대명제 아래 이 작품을 만들었다.


4 영국의 아키텍처&에스피안스& 모멘텀 엔지 니어링 ‘위키하우스’

위키하우스는 오픈 커뮤니티 건설 프로젝트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여력과 필요에 맞는 건물을 무료로 다운로드받아 지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다. 위키하우스에는 하나의 디자인만 존재하지 않으며, 한 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집을 선보이지 않는다. 여기 소개한 집들과 재료들은 디자이너들과 사용자들이 웹을 통해 자유롭게 올려놓은 것으로 누구나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비엔날레 기간 동안 워크숍을 열어 광주에 실험적인 집을 건설할 예정이다. 21세기에 거대한 협업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초인 셈이다.


5 한국의 최가철물점&쇳대박물관 ‘대장간 展’
쇠, 불, 화덕의 흙, 땔감 나무, 담금질하던 물. 이 오행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자 서민들의 사랑방이던 대장간을 통해 지금은 사라져가는 뜨거운 쇠의 독특한 미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두드리고, 자르고, 긁고, 물을 막던 온갖 철제 도구를 제작하던 대장간은 한 마을에 하나씩은 있었지만, 그 결과물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관심밖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일상적이고 흔한 도구에서 뜨거운 쇠의 해학적이면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다. 녹슨 쇠, 생활의 흔적이 느껴지는 가래, 종가래, 들쇠 등 한갓 쇠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모여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풀무의 거친 바람 속에서 달구어져 연마되고 버려진 쇠붙이의 강함, 뜨거움과 함께 그 생김생김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6 광주폴리
폴리folly란 원래 정원 디자인에 포함되는, 프로그램이 없는 특이한 형태의 작은 집을 의미하는 단어다. 베르나르 추미가 디자인한 파리 라빌레트 공원 계획에서 일련의 붉은색 시설물을 폴리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광주폴리는 광주의 옛 읍성 터의 자취를 따라 세계적 건축가들이 공공 시설물을 지은 프로젝트다. 광주 시내 곳곳에 폴리가 등장함으로써 그것을 기점으로 도시가 서서히 변화하기를, 또 민간과 공공의 후속 프로젝트가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추진한 일이다. 말하자면 광주폴리는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를 꿈꾸는 광주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 같은 것이다.

7 꼼데가르송의 여정
지난 40년간 아방가르드 패션을 추구하며 전 세계에 36개 플래그 십 스토어를 늘려간 꼼데가르송. 레이 가와쿠보는 그 오랜 역사의 발자취를 사진으로 프린팅한 작품을 거대 설치물 외벽에 붙여 선보인다. 관람객은 설치물 안으로 들어가 꼼데가르송이 걸어온 40년 여정을 돌아볼 수 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정민 씨의 ‘음식, 그 기억 저장소(사이)’.

8 음식 커뮤니티
음식과 식문화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도 더욱 발전했고, 음식의 생산과 가공에 대한 다양한 실험도 거듭 이어졌다. 음식을 둘러싼 사회와 공동체는 같이 모여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며, 음식물을 어떻게 기르고 생산하고 소비하는가와 연관된 총체적 문화이자 디자인 이슈다. 음식 커뮤니티에 소개된 대표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아라베스키 디 라테의 ‘소셜 키친(다양한 요리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형태에 유쾌한 만찬과 사교적 분위기를 더했다)’, 일본의 아즈사 무라카미와 영국의 알렉산더 그로브의 ‘슬로 패스트푸드 식당(“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는 밀란 쿤데라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경험의 속도를 일부러 늦추려고 만든 패스트푸드 식당)’, 오스트리아의 허니 앤 버니가 찍은 사진 작품 ‘테이블 매너(우리는 왜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을 먹을까, 우리는 왜 앉아서 식사를 할까하는 질문에서 비롯된 새로운 개념의 식사법)’, 한국의 더 스타일링 그룹 김정민의 ‘음식, 그 기억 저장소(사이)’(음식에 시각적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작가는 음식이 생명을 다한 후, 즉 음식을 다 먹고 난 후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했다) 등이 그것이다.


9 한국의 일구구공 도시건축사무소 ‘광주 어린이 커뮤니티-아이의 노래’
2010년부터 서울과 런던에 팀을 두고 건축, 레노베이션, 전시, 강연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는 일구구공 도시건축사무소가 선보인 작품이다. 아이들끼리 뛰노는 골목길 풍경을 상상하며 만든 이 작품은 아이의 언어로 말하고, 놀이를 만들고, 함께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 안에서 현실을 보고, 꿈을 만나고,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 이것이 디자인으로 이어지고 커뮤니티로 형성된다. 이 팀은 이것을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 교육”이라 부른다.


a 자동차 부품을 활용해 만든 인큐베이터 ‘네오너처’. 폐기된 자동차 부품을 재활용해 열과 공기 순환 같은 인큐베이터 시스템을 재현한 장치다.
b 인체 공학적으로 디자인한 친환경 자전거.



10 중국의 왕펑 ‘중국 고금 예술’
중국 문인들이 예부터 즐기던 4대 기예(고금, 바둑, 서예, 그림) 중 고금(옛 거문고)은 최고의 예술 행위로 여겨진다. 고금예술과 디자인은 3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승되고 유지되어왔다. 중국 고금 예술은 제4갤러리에 ‘문인의 방’으로 전시한다. 이 방은 문인이자 고금 제작자며 공예가, 연주가인 작가 왕펑이 고금 문화를 소개하는 방이자 명상 공간이다. 왕펑은 “고금은 너무나 정결한 악기다. 그 정결함을 좀 더 소박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전시장 벽에 당나라 때부터 내려오는 고금 악보를 써 붙였다. 오선보는 현존하는 악보 중 가장 오래되고 생생한 정보를 전달한다. 고금을 연주하는 운대는 ‘구름 속의 거문고 좌대’라는 뜻으로 마치 구름 속을 연상시키는 테이블 위에서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11 스페인의 안드레스 자크 아키텍츠 ‘즐거운 나의 의회’

일반적으로 집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일상의 여러 단면을 살펴보면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나누는 공간으로 집을 활용한다. 이때 공동주택은 우리의 삶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상대하는 의회가 된다. ‘즐거운 나의 의회’는 정치적으로 활성화된 집을 건설하려는 시도다. 안드레스 자크 아키텍츠가 정치의 장으로서 가정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한 5년여의 결과물은 소박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 토론이 일상화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글 정세영 기자 사진 하성욱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