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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가족]신정한ㆍ박재경 씨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평균대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고 조심스럽던 나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날부터 천국으로 바뀌었다. 세상의 편견, 사람들의 시선,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느냐는 거다. 5년 전 우연히 만나 동성애 가족이 된 지 3년째에 접어든 신정한 씨와 박재경 씨의 얼굴엔 ‘난 행복해’라고 쓰여 있다.

촬영 내내 정한 씨(왼쪽)는 묵묵했고, 재경 씨(오른쪽)는 애교를 떨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사랑법이다.

금요일 밤의 열기 가득한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보통 남자들 같으면 마주 보고 있겠지만 두 사람은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얼핏 보아도 예사로운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신정한(43세) 씨와 박재경 (40세) 씨는 5년 전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되었고, 지금은 살림을 합쳐 한집에 살고 있는 동성 가족이다. 종합병원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박재경 씨는 얼마 전 병원 식구들에게도 성 정체성을 밝혀 가족은 물론 직장에서까지 떳떳한(!) 삶을 살게 되었다(하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 병원 내에서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한다). 그가 평균대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고 조심스럽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살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재경 씨는 지금도 아버지 환갑날만 생각하면 기분이 아찔해진다고 고백한다.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올라온 고모님을 모시러 가는 길이었는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물으시는 거예요. “넌 왜 장가갈 생각을 안 하냐? TV에서 보니까 남자가 남자 좋아하는 뭐 그런 게 있다던데, 혹시 너 그런 거냐?”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갔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이때다. 지금이 아니면 이 사실을 가족에게 평생 숨기고 살아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터트려버리자. 자수해서 광명 찾자!’ 전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담담하게 얘기했어요. “네, 저 동성애자 맞습니다.”

순간 차 안에선 정적이 감돌았고 아버지는 얼굴이 붉어졌다. 동성애자들 사이에선 부모님 생신이나 명절엔 절대 커밍아웃해서는 안 된다는 룰이 있는데, 재경 씨는 아버지 덕분에 이 금기 사항을 깨고 말았다. 그런데 33년 동안 가슴에 꼭꼭 숨겨둔 비밀을 폭로했건만 부모님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아니, 어딘지 모르게 ‘그럴 줄 알았다’는 눈치셨다.

초등학교 시절 마을 공동묘지에 세워진 남근상을 보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을 때부터 고등학교 3년 내내 남자 선생님을 짝사랑한 시절까지, 재경 씨는 살면서 행복한 순간보다 절망스러운 순간이 더 많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질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답답함, 분노, 원망, 억울함 같은 것이 명치끝에서 내려가질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족에게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버지가 절 배려하신 거 같아요. 제가 말 못할 걸 아니까 가족들 다 있는 자리에서 일부러 물어봐주신 거죠. 참 감사해요. 절대 입밖에 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말을 내뱉고 나니까 세상을 다 얻은것처럼 행복해지더라고요. 비밀을 품고 산 지난 세월 동안 전 어쩌면 가족과 온전히 소통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비밀은 한 사람에게 얘기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거라는데, 왜 그걸 모르고 지금껏 살았을까요.”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고 난 후부터 재경 씨는 연애하는 데에도 더 용감해졌다. 그즈음 만난 파트너 신정한 씨와 단순한 연애가 아닌 가족을 꾸리게 된 것이 그 증거다. 결혼할 사람은 첫눈에 알아본다는 말처럼 재경 씨는 정한 씨를 만났을 때 이미 가족이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우리 결혼했어요 재경 씨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의 파트너 신정한 씨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만난 그들은 벌써 6년째 연애 중이다. 두 사람 모두 과거 동성애 경험이 있지만 가족을 이루고 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법적으로 부부임을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요란하게 결혼식을 올린 것도 아니지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묘한 안정감이 드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가족’이 있음을 실감한다.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단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가도 형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형이 있는 집으로 가서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또다시 출근할 생각을 하면 감사하고 행복해요.”
재경 씨의 말에 말없이 미소만 짓던 정한 씨가 입을 열었다. “기회 봐서 어머니께 재경이 소개하려고요. 여든이 넘으셨는데 아마 게이란 말 모르실 거예요(웃음).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당신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재경 씨 역시 정한 씨 어머니를 꼭 뵙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라도 들으면 떳떳하게 병원에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더 그렇다. “대다수의 동성 가족이 가장 절망을 느끼는 순간은 파트너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예요. 제가 아는 어떤 여성 동성 커플은 파트너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서 3년 넘게 병간호를 했는데 정작 장례식엔 참석하지 못했어요. 간호할때는 아무 말 않던 가족들이 장례식장에 온 사람을 재수 없다고 쫓아낸 거죠.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하겠어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죠.” 동성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건 결국 그들의 ‘진짜 가족’이었다.

누가 남편이고, 누가 아내냐고요? 사람들이 동성 가족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는 ‘누가 남자 역할이고, 누가 여자 역할이냐’는 거다. 하지만 이 질문만큼 답답하게 들리는 말도 없다. 이 커플의 경우 ‘경제 활동’을 하는 재경 씨가 남자 역할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에만 전념하고 있는 정한 씨가 여자 역할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지켜본 입장에선 수다스럽고 잘 웃는 재경 씨가 아내처럼, 과묵하고 계획성 있는 정한 씨가 남편처럼 느껴졌다. 동성 가족내에서 사실상 성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가족 안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역할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도 생각을 해봤어요. 내 역할이 뭘까? 형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더라고요. 아, 섹스할땐 구별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역할을 했을 때 더 즐거우냐에 따라 나뉘죠. 그렇게 따지면 형은 남자, 저는 여자 역할인 셈이죠.”

그들도 우리처럼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아서, 남들과 달라서 서로가 더 애틋한 동성 가족의 사랑은 모든 걸 다 가져서 아쉬울 게 없는 보편적인 우리들의 사랑보다 견고하고 빛난다. 세상이 아무리 아니라고 손 흔들어봤자 그들도 우리처럼 다투고, 사랑하며, 아름답게 소멸해 갈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왜냐고 묻지 말자. 사람마다 생긴 얼굴이 조금씩 다르듯, 조금 다를 뿐이라고 이해하고 품어주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들을 이해하는 일뿐이다.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