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일상의 여기저기에서 시를 만난다.
매일 아침 현관문 앞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펼치면 사설 칼럼 옆자리에 떡 하니 시가 있고, 삶의 낙처럼 챙겨 보는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시를 읽는다. 얼마 전 찾아간 고은 시인의 시 낭독회에서는 자리가 없어 되돌아가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뒷모습도 보았다. 우리는 결코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어느날 우연히 찾아간 동네 문화원에서 시 강좌 수업을 듣고 시인의 눈을 갖게 된 중년 여성의 만년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미자(윤정희 분)는 보통 사람, <시>는 보통 사람의 시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보통의 존재’가 시에 열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시가 삶으로부터 빚어진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 씨는 “시는 하찮은 것이지만 다른 대단한 것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이 앓고 있는 증상을 언어라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을 통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시는 가장 하찮고, 가장 진실하게 사소한 그 무엇이다”라고 정의한다. 그의 말처럼 시가 하찮은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상에 있다. 일상의 여기저기에 시가 존재하는 것이다. 고향의 흙과 바위, 오래된 벽에 낀 그을음으로 시인의 근원을 찾아내는 어느 디자이너는 시인의 고향에서 채집한 색과 이미지로 시집을 디자인한다. 시인이 나고 자란 집과 마을을 찾으면 시집을 읽을 땐 생각지도 못한 ‘알맹이’ 같은 걸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의 시 읽기는 바로 그런 것이다. 뽀얗게 쌓인 먼지처럼 하찮은 일상 속에서 삶을 길어 올리는 것. 그것으로 아주 잠깐 기쁜 것.
시인의 고향에 가면 시가 보인다
손택수 시인의 생가 터엔 이미 다른 집이 지어졌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였던 뒤란은 그대로 있다. 흰 칠이 돼 있던 벽엔 오랜 시간 흘러내린 빗물을 따라 길게 칠이 벗겨져 있다. 디자이너 안상수 씨는 이 풍경을 카메라로 포착해 손택수 시인의 시집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표지와 내지에 응용하였다.
<중앙일보> 오피니언 칼럼 ‘시가 있는 아침’.
시가 있는 신문, 시가 있는 아침
“각박한 일상에 숨통을 터줄 ‘시가 있는 아침’과 함께 넉넉한 하루를 여시기 바랍니다.” 1998년 1월 1일 <중앙일보> 1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설 옆에 시를 소개하고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신문이다. 1998년 당시 외국의 시인들은 자비 출판이 아니면 시집을 낼 수도 없었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신문 지면에서 시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가 있는 아침’(이하 시아침)의 첫 주자는 시인 고은이었다. 그는 1998년 1월 2일부터 꼬박 2년간 이 지면을 담당했는데,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1999년에도 ‘시아침’ 연재만은 쉬지 않았다. 고은의 뒤를 이어 이근배 시인이 1년을 담당했고, 그 후론 시인마다 두 달에서 넉 달 동안 이 지면을 담당했다. 지금까지 ‘시아침’과 인연을 맺은 시인은 40~50명, 소개된 시만 4000편이 넘는다. 마종기, 정진규, 천양희, 유안진, 문정희, 곽재구, 이시영, 이성복, 최승호, 정호승, 김기택, 이문재, 나희덕, 문태준 등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의 주옥 같은 시가 매일 아침 독자를 찾아갔다. 그러는 사이 세상을 떠난 시인과 필자가 생겨나기도 했으며, 매일 아침 ‘시아침’을 스크랩하는 이른바 ‘시아침 중독자’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덕분에 이 칼럼의 담당인 <중앙일보>의 손민호 기자는 매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시아침’에 시를 내고 싶다”는 독자의 문의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시아침’ 독자들의 시 사랑은 각별해서 10여 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지면을 스크랩한 독자가 있는가 하면, 연재 글에 반해 어느 시인의 열혈 팬이 된 독자도 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최현태 씨(56세, 여)는 “나만의 아침은 아이들 학교 보내고 오전 9시 30분부터 ‘시아침’과 함께 시작한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시아침’을 감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다 보니 좋아하는 시를 소리 내서 읽는 버릇이 생겼다”고 전했다.
김선우 시인의 작품을 특히 좋아한 최현태 씨는 ‘시아침’을 스크랩하는 것을 넘어 시인의 시 낭독회는 물론 오프라인 행사까지 빠뜨리지 않고 쫓아다니다 김선우 씨와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김선우 시인의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최현태 씨가 김선우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젊은 사람답게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상처를 입더라도 유연하게 극복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라는 시의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라는 구절을 특히 좋아하는데, 10년 전 사별한 남편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천양희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 진솔하고 가식 없는 표현으로 많은 독자에게 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대표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비).
시인이 읽어주는 시
시인이 시를 추천하고, 그 시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주면 독자는 보다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다. 소설가 김연수 씨가 13개월간 읽은 시와 그 감상을 엮은 <우리가 보낸 순간>(마음산책)도 바로 그런 재미로 읽는 책이다. 시인 최영미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일기장에 적은 여러 권의 노트를 가지고 있는데, 그가 검은 잉크로 정성스레 눌러 쓴 세계의 명시가 <내가 사랑하는 시>(해냄)라는 이름으로 묶여 또다시 독자들에게 읽힌다. 투르게네프의 ‘사랑에의 길’, 셰익스피어의 ‘내가 죽거든’, 파블로 네루다의 ‘젊음’, 신동엽의 ‘그 사람에게’, 기형도의 ‘빈집’ 등 50여 편의 시와 최영미 시인의 해설이 곁들여져 있다.
기형도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해설 사랑을 잃고 부서진 가슴이 뛰어난 연애시를 만들었다. 모든 행이 감탄조의 어미와 조사들로 마무리되어 언뜻 탄식하는 기류가 과도하게 감지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도로 숙련된 정신노동의 흔적이 역력하다. 운율을 맞추려 ‘~던 ~들아’가 줄을 바꾸며 다섯 번이나 되풀이된다. 짧았던 밤들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모르던 촛불들아,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대신하던 눈물들아. 그리고 이 ‘용언+복수명사’의 결합을 에워싸는 첫 번째 행과 마지막 두 행은 모두 같은 어미 ‘~네’로 끝난다. 쓰네-잠그네- 갇혔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위에 그는 아주 정교한 마음의 조각들을 새겨 모자이크를 완성시켰다. 병적으로 예민했던 시인에게 사랑은 고통이었지만, 언어의 문을 잠그기 전에 그가 완성한 ‘빈집’에 머물며 독자들은 위안을 얻으리라.
_시인 최영미
아이패드로 시 읽는 세상
잡지나 만화책을 전자 책으로 보는 건 타당해 보이지만 그것으로 시를 읽는다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읽고 싶은 쪽을 열어 마음이 머무는 시간 동안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시집을 읽는 맛 아니던가. 하지만 각종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서점에서 시 관련 섹션을 활성화하는 걸 보면 ‘아이패드로 시 읽는 세상’은 곧 오고야 말 것 같다. 그런 시대가 본격적으로 다가오면 시를 읽는 부류도 더 다양해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이자 시인인 고두현 씨가 쓴 <시 읽는 CEO>는 굴지 기업의 CEO가 바쁜 시간을 쪼개 시를 읽는 이유와 시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대표적인 사례인 미국 애플사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사업을 이끌곤 했다. 애플의 아이폰 발명을 블레이크의 시와 연관지어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블레이크의 열렬한 팬이다. 고두현 씨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두고 “시가 냉혹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공감의 꽃을 피워 올리며 독창적인 사고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스티브 잡스도 말하지 않았나.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우리의 기업 철학이 언제나 인문학과 디자인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시에 삽화를 그려 넣어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했던 작가다. 그는 단순한 시어를 통해 민중을 불행하게 만드는 영국 사회를 비판하며, 신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을 널리 전파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블레이크 시선>(지만지)은 1793년까지 그가 발표한 짧은 시 전체와 장시 세 편을 싣고 있다.
<블레이크 시선>
1770년 템스 강 반대편 지역인 램버스 Lambeth로 이사하면서 쓰기 시작한 ‘램버스 예언 시’를 비롯해 1800년 남부 해안의 시골 마을 펠펌 Felpham의 조그만 오두막에서 쓴 창작 시 일부, 그리고 1827년 8월 12일 62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쓴 만년의 시가 수록돼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지만지.
현빈은 시집을 좋아해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과 <시크릿 가든>의 남자 주인공은 시를 사랑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특정 시를 유행시킨 두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현빈이다.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에 관심이 많던 드라마 PD 정지오(현빈 분)는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를 사랑했지만 길라임(하지원 분)을 사랑한 재벌 2세 김주원(현빈 분)은 ‘문학과 지성사’를 사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너는 잘못 날아왔다.’ 드라마 작가 김은숙 씨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다른 계급’의 여자 길라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주원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이어지는 이 문장은 다름 아닌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집의 제목들이다. 김주원의 서재에 나란히 꽂혀 있던 이 시집들 덕분에 때아닌 호황을 누린 건 출판사. 방송이 나간 후 진동규 시인의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은 한 인터넷 서점에서만 700권이 넘게 팔려나갔다. 지난 5년간 고작 7권 팔린 시집이었다. 그 밖에도 이 드라마에 노출된 시집은 대부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문지 시인선 이근혜 편집부장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통해 문지 시인선 4권이 소개됐는데 방송 다음 날부터 주문이 폭주한 것이 사실입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그리고 종영 이후까지 새로 찍어 판매한 시집 부수만 8000부가 넘었으니까요”라고 전했다.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
“슬프다”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작가들이 사랑하는 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 씨는 그의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주인공 정지오(현빈 분)의 독백으로 이 시를 인용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 보내는 장면에서 이 시를 떠올렸지만 정작 이 작품은 굴곡 많은 세월을 거쳐온 지식인의 삶에 대한 회환과 자기부정을 시적으로 승화한 것이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 지성사)에 실려 있다.
시집, 출판사마다 달라요
문학과 지성 시인선
문지 시인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선 중 하나로 1977년부터 지금까지 약 400권의 시집이 출간됐으며, 국내 유수의 문학상을 섭렵한 시집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시인 오규원 선생과 ‘그림 그리는 시인’ 김영태 선생, 소설가이자 회화 작가인 이제하 선생이 1970년대 중반 뜻을 모아 지금의 판형과 표지 일러스트 형식을 고안해냈다.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표지에 실린 작가의 캐리커처는 김영태 선생과 이제하 선생의 작품. 마치 액자처럼 테두리가 있고, 그 안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듯한 표지 디자인은 시인선 넘버 100번대 단위로 그 테두리 색이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황토색, 하늘색, 녹색, 진한 밤색 순서로 변화해 왔다). 문지 시인선 중 독자에게 가장 많이 사랑 받은 시집으로는 황지우, 이성복, 황동규, 마종기, 정현종, 김혜순, 기형도, 오규원, 최하림, 황인숙, 허수경 시인의 작품집을 꼽을 수 있다.
창비시선
1975년 3월, 신경림 시인의 <농무>로 시작해 36년간 30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했다. 창비시선의 출발은 현실과의 소통에서 점점 멀어지던 한국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쉽고 절제된 시어로 절실하게 시화한 시집들이 주류를 이룬다. 1980년대에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출간했다는 이유로 당시 편집장이던 이시영 시인이 안기부(현 국정원)에 연행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 베스트셀러를 속속 탄생시키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박노해의 <참된 시작>, 정호승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10만 부가 넘게,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50만 부 이상 팔렸다.
민음의 시
문지 시인선, 창비시선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시인선이다. 1986년 고은 시집 <전원시편>을 시작으로 최근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김성대 시인의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까지 170권의 시집을 펴냈다. 출판 시장이 불황이던 1990년대 후반에는 절판된 시인들의 활판본을 더 이상 출간하지 않기도 했지만 2007년, 과거 활판 인쇄와 식자 조판이던 시집 본문을 다시 입력하고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등의 대대적인 개정 작업을 거쳐 26권의 시집을 재출간했다. 소설가가 되기 전 김훈의 해설이 붙은 하재봉의 <안개와 불> 그리고 영화감독이 되기 전 유하의 <세상의 모든 저녁>이 당시 복간한 대표적 시집이다.
실천시선
실천문학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실천시선은 유행을 좇지 않고, 민중 서정시 특유의 고유성을 잃지 않는 담백한 시집을 펴내고 있다. 디자이너 안상수 씨가 디자인 총괄 디렉터를 맡아 화제가 됐는데, 옛 활자본 시집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시인의 고향에서 채집한 색과 이미지를 표지와 속지에 반영하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실천문학사 주간인 시인 손택수 씨는 “시의 근본적인 지점과 닿아 있는 대지적 디자인이다. 시인과 시와 시집이 하나의 육체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예중앙 시선
문예중앙 시선집이라는 이름으로 44권의 시집을 출간한 바 있지만 2008년 <문예중앙> 휴간과 함께 시집 출간도 중단됐다. 황병승, 김경주, 안현미 등 미래파 시인들(시인이자 평론가인 권혁웅 씨가 <문예중앙> 2005년 봄호에 파격적인 시풍을 선보이는 젊은 시인들을 ‘미래파’라 명명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이후 미래파는 ‘소통 불가능한 자폐적인 글쓰기를 하는 집단’이라는 다소 혐오 섞인 비판에 시달리도 했으며, 김이듬의 시 중 ‘지금은 자위 중이라 통화할 수 없습니다’라는 시구가 어느 포르노 사이트에 등재되는 등의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의 첫 시집이 문예중앙에서 나왔다. 2010년 12월부터 중앙북스가 문예중앙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 첫 번째 시집으로 조연호의 <농경시>가 출간됐다. 한국 현대 시단에서 ‘미적 전위의 최전선’이라는 평을 얻고 있는 조연호 시인의 이번 작품은 형식과 내용 모두 파격적이다. 그의 시를 읽고 어느 신문 기자는 “조연호의 시는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을 때 어느 순간 매직 아이처럼 눈에 들어오는 시다”라고 평했다.
문학동네 시인선
문학동네가 새롭게 선보이는 문학동네 시인선은 관행처럼 굳어진 시집 판형을 두 배로 키우고, 이를 가로로 눕혀 위로 넘겨 읽는 형태의 가로 시집이다. 과거와 달리 시의 행이 길어졌고, 행과 연의 구분이 없는 산문시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를 반영한 파격적인 변화다. 최승호의 <아메바>, 허수경의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송재학의 <내간체를 얻다> 세 권이 1월 출간됐고, 올해 안에 20~30권의 가로 판형 시집을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시집 디자인, 시를 말하다
시인 허수경은 “평소 주절거리는 내 화법과 가로 판형 시집은 잘 맞아떨어진다”라고 말한다.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위로 넘겨 읽는 시집은 시인의 개성을 잘 드러낸다. 문학동네가 새롭게 선보인 가로 판형 시인선은 ‘수류산방’이 디자인했다.
김지하 시인의 최근 몇 년 시작 중 305편을 모은 시집 <시 삼백>(자음과모음).
이 작품은 중국 최고의 시집으로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나 실은 작자 미상인 <시경>을 오마주 한 것이다. 교훈, 풍자, 이야기, 노래, 초월의 시 200편과 갈래를 구분 짓기 힘든 100여 편의 시를 담았다. 김지하 시인의 부탁으로 디자이너 안상수 씨가 디자인을 맡아, 시집 역사상 전례 없이 주황, 노랑, 연두 세 가지 색을 띤 3권의 시집 형태로 출간되었다.
도움말 문학과 지성사, 실천문학사, 문학동네 참고 자료 중앙일보, 한겨레
- [생활 속에서의 시 읽기] 일상의 여기저기에 우연처럼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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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 한 권. 양심처럼 가방에 넣고 다닌다. 닿을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흘러가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을 꺼내 보기 위함이다. 삶의 여기저기에 우연처럼 시가 있다. 나무에도, 꽃에도 그리고 길 위에도…. 이 찬란한 봄. 그 따스한 자리를 찾아가 잠시 눈을 감아도 좋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