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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성공적인 기러기 가족이 되려면? 가족의 행복을 희생하지 말라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부모가 짝지어준 대로 결혼해서 평생을 사는 부부도 있다. 고향을 떠나본 적도 없이 평생을 그 마을에서 농사를 짓다 생을 마감한 농경 사회의 얘기다. 남편이 중동 건설 현장이나 월남전에 나가 가족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던 시절,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라는 노래가 유행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자식의 교육 문제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외국에 나가 살고, 남편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기러기 가족’이 크게 늘었다. 가족학을 전공하고 한때 영국과 핀란드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로 나에게도 적잖은 사람들이 해외 유학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상담을 청한다. 그러면 기러기 가족을 선택하기 전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

첫째, 부모의 욕심이나 강권이 아니라 자녀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어야 한다. 물론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자녀가 외국으로 보내달란다고 무조건 요구대로 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무엇보다 자녀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공부를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해서 도피처로 외국 유학을 택한다면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부부간의 불화나 고부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기러기 가족으로 포장하는 경우는 더더욱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둘째, 학비나 두 집 살림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형편이 되어야 한다. 수시로 변하는 환율이나 갑작스러운 가계 수입의 감소를 감내할 만한 여유가 없는데도 무리를 해서 떠나거나, 남들이 보내니까 우리도 보낸다는 식의 기러기 가족은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영국에 보낼 만한 여건이 안 되니까 요즘은 필리핀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보내는 가족도 꽤 있는데, 단지 돈이 적게 든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라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아주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셋째, 현지 적응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조금만 지나면 금세 영어를 잘한다더라” “피부색이 달라도 아이들은 금방 친해진다더라”는 말만 믿고 보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어른에 비하면 아이가 친화력이 뛰어나고 외국어 습득이 상대적으로 빠르다는 얘기일 뿐, 전혀 모르는 내용을 남의 나라 말로 배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지나면 저절로 영어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영어 하나는 제대로 배우고 오겠지’ 하는 기대로 영어권으로 유학을 보내지만, 영어 하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귀국하는 경우도 많다. 또는 영어는 곧잘 하는데 귀국해서 우리말이 서툴러 우리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현지답사와 준비를 철저히 해야 실패를 예방할 수 있다. 더러는 유학 수속을 위해 알선 업체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장점만 과장해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아내와 아이를 외국에 떠나보내고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가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본가나 처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가 아니라, 혼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경우엔 식사가 무엇보다 큰 문제다. 남자 혼자 살기에도 편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불규칙한 식사와 인스턴트식품, 사 먹는 음식만으로는 건강을 잃기 쉽다. 가족을 위해 내가 만들어줄 수 있는 음식을 몇 가지 정도 제대로 배운다고 생각하고 음식 만들기에 도전해보자. 음식을 만드는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이 결혼한 후 지혜롭게 가사를 분담한다면 미래의 부부 갈등을 줄이는 비결도 될뿐더러 노년에 홀로 되었을 땐 강력한 생존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자 일이라고만 생각한 음식 만들기가 이렇게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남성도 있다.

둘째, 술을 자제해야 한다. 아내가 없다는 자유로움에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즐거움도 몇 개월이지,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는 외로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외로움과 허전함을 술로 달래다 보면 몸도 망가지고, 지출도 늘어나고, 알코올중독으로 빠지기 쉽다. 우리는 심각한 알코올중독만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거의 매일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못 이룬다면 이미 알코올 남용이나 알코올 의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술자리가 많다 보면 향락적인 밤 문화에 젖어 외도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설사 외도를 안 했다손 쳐도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고 추궁하는 아내와의 갈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일주일에 몇 번 이상 술 안 마시기, 늦어도 몇 시까지는 반드시 귀가하기, 술을 집 안에 절대로 안 두기 등을 실천 과제로 정해보자. 생각만 나면 언제든 손이 가는 술만 집에 두지 않아도 충동적인 음주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떨어져 있는 아내와 아이와의 소통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한집에 살면서도 거의 대화를 안 하는 가족보다 오히려 떨어져 있는 기회를 활용해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과 가족애를 키워가는 기러기 가족도 많다.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정보 통신기기의 도움으로 화상 전화, 이메일, 문자 등을 잘만 활용하면 가족 간의 대화가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자칫 아빠의 부재로 이어지지 않도록 부부가 공동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아빠를 경제적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만 인식하지 않도록, 엄마를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 않도록 부모가 서로서로 엄마 아빠의 권위를 세워주고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한 남아도는 시간을 소비적인 취미나 무의미한 생활로 낭비하지 말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성취하는 기회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부라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떨어져 있던 가족이 한국으로 귀국 했을 때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는 몸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또한 크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아내 역시 오랜 외국 생활을 통해 소원해지거나 자기주장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부부가 서로서로 자신이 가족을 위해 더 희생했다는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러기 가족의 사례를 참고해 문제를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다. 대입 위주의 빡빡한 학교 수업이나 체벌을 못 이겨 다시 외국으로 아이를 내보내거나, 시댁과의 갈등이나 압박감 때문에 아내가 다시 외국으로 나가는 사례 등을 보면서 우리 가족만은 예외일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외국에서 아이와 생활하는 엄마 역시, 아이의 현지 적응뿐만 아니라 본인의 적응을 위해서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아주 많거나 그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엄마가 아니라면 본인의 스트레스와 외로움 때문에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영어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자식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고 지나치게 자식 중심, 자녀 교육 중심으로 살지 않도록 삶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인지, 그리고 자식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부모로서 지금 무엇을 챙겨주고 무엇을 또 잃지 말아야 하는지를 부부가 끊임없이 상의하고 공부해야 한다. 당장의 자식 공부를 위해 먼 훗날의 가족 과업을 생각하지 않고 에너지를 다 소비해버리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다. 유학을 보낸다고 자식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며, 영어권으로 유학을 보냈다고 해서 영어를 다 잘하는 것도 아니다. 영어가 대단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음을 잊지 말자.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고 이겨내는 인내도 필요하지만, 현재 우리 가족의 행복을 희생하지 않을 수 있는 가족 전략을 수립하자. 그렇다고 기러기 가족의 문제점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불안을 키울 필요는 없다. 이미 기러기 가족을 선택한 경우라면 장점을 최대한 키우고, 문제를 예방하는 지혜를 발휘하면 된다.

강학중(한국사이버대학교 부총장, 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