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첫 번째 집단 가출, 백두대간 종주 내가 허영만 화백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이다. 그는 당시 내가 일하던 신문에 연재를 하던 작가였다. 등산, 캠핑 등 야외 활동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는 작가와 담당 기자 이상의 친분을 맺게 되었고, 내가 기자 생활을 접은 지금까지도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즐기는 여가는 취미 생활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넘칠 정도로 열렬한것이어서 방랑 혹은 가출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 허 화백과 함께 10년 가까이 해온 방랑 행각에 ‘집단 가출 集團家出’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가출은 멋모르는 청소년이나 하는 거라고? 옛말에 ‘어른은 나이 든 어린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 부양의 책임감과 사회적 위치에 따른 부담감에 억눌려 있을 뿐, 어린 아이의 순수한 열망이 어른에게도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등산을 좋아하며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이 허 화백을 구심점으로 하나둘씩 규합되어 형성된 집단 가출 멤버는 연령과 직업이 매우 다양하다. 환갑을 넘긴 만화가 허영만, 정상욱(54세, 아웃도어 의류 회사 상무), 이정식(54세, 사진작가), 김상덕(52세, 고무공장 사장), 송영복(49세, 치과의사), 송철웅(46세, 목수, 스키 강사,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김은광(44세, 스노보드 선수), 정성안(43세, 요트 선수), 김성선(42세, 오지 탐험 전문가), 임대식(38세, 고층 빌딩 유리창닦이, 폭발물 전문가), 이진원(38세, 요리사, 건설기사), 김기철(32세, 다큐멘터리 PD), 홍선표(29세, 선박 수리 전문가). 60대부터 20대까지, 만화가부터 고층 빌딩 유리창닦이까지 너무도 이질적인 면면들이지만 모험심이 강하고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점에서 비슷한 사람들이다.
(왼쪽) 적당한 곳에 짐을 풀고 텐트를 친 다음, 삼겹살에 와인 한잔! 비박 야영을 절대 ‘끊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들의 첫 번째 집단 가출은 2003년 겨울 백두대간 종주 등반으로 막을 올렸다.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지리산부터 설악산을 지나 군사분계선이 있는 향로봉까지 총 671.5km에 달한다. 밤낮없이 하루 24시간 걷는다 해도 28일을 쉼 없이 걸어야 주파할 수 있는 코스로 등산 애호가에게 백두대간 종주는 꿈이자 로망이다. 각자 생업이 있는 우리는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이룰 현실적 방법을 모색했다. 한 달에 한 번 2박 3일 동안 가출을 감행해 백두대간의 마룻금을 밟기로 한 것이다. 이달에 A~B 구간을 주파하면 다음달에는 B지점에서 출발해 C지점까지 가는 식이다. 종주를 하는 동안 식사도 직접 만들어 먹고 잠은 비박(vivouak: 침낭, 매트리스 등 최소한의 막영 장비만을 사용하는 비상 노숙)으로 해결했다. 가능한 한 우리의 가출이 모험적이고 탐험적이기를 원한 때문이다. 그렇게 지리산을 출발해 무려 2년 6개월이 걸려 향로봉에 도착했을 때 허 화백을 비롯한 모든 대원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산에서 바다로 이어진 두 번째 집단 가출, 요트 항해 2006년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비박 산행만으로 가출에 대한 갈증을 달래던 집단가출 패거리는 2009년 대형 사고를 친다. 한반도 영해 외곽선을 잇는 요트 항해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장거리 항해 준비는 백두대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복잡하고 지난했다. 버려지다시피 한 싸구려 중고 요트를 사서 ‘집단 가출호’로 명명하고 이것저것을 수리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런 다음 대원 모두가 요트 조종 면허 시험에 도전했다. 항해의 꿈을 가진 집단 가출자들은 모두 단번에 시험에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허 화백을 선장으로 한 집단 가출호는 14명의 선원을 태우고 2009년 6월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을 떠나 서해의 끝 격렬비열도, 남해의 끝 제주도를 돌아 이듬해인 2010년 5월 독도에 도착했다. 백두대간 종주 때와 똑같이 한 달에 한 번 구간 종주 방식으로 진행한 항해는 총 항해 거리 3057km, 총항해 일수 54일에 걸쳐 그 대장정을 마쳤다.
(오른쪽) 한반도 영해 외곽선 일주 항해에 나선 집단 가출 멤버들.
여행이란 무릇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즐거운 법이다. 집단 가출 멤버들이 함께 있으면 어린아이가 되는 것처럼.
아웃도어 전문가라곤 하지만 육상에서 활동해온 사람들에게 바다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사전 지식이 없던 탓에 항해를 하면서 기상학, 해양학, 항해술, 항법술 등을 마치 수능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했지만 바다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온갖 생고생을 하며 한반도 영해 외곽선을 잇는 항로를 오로지 바람의 힘에 의지해 달렸다.
서해에서는 살인적인 모기에 뜯겼고, 제 시간에 항구에 도착하지 못해 갑판에서 생라면을 씹기도 했으며, 전남 신안군 우이도에서는 배가 좌초했고, 여수 소리도에서는 풍랑을 만나 배를 구하는 과정에서 대원 중 한 명의 이가 부러지는 사고도 겪었다. 경북 강구항을 떠나 동해를 북상하다 강풍을 만나 돛이 찢어진 가운데 경북 축산항으로 죽음의 피항을 하기도 했고, 그토록 갈망하던 최종 목적지 독도 해역에 도착했을 때는 파도가 너무 거세 독도를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그 좌충우돌 체험기를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세번째 집단 가출, 자전거 여행을 통해 깨달은 행복 요트 항해가 끝난 지금 우리는 다시 뭉쳤다. 이번엔 전국 일주 자전거 여행을 위해서다. 자전거 여행 얘기는 요트 항해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왔다. 가출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가출을 모의한 것이다. 지난해 9월 강화도에서 출발한 자전거 집단 가출은 인천, 화성, 평택, 당진, 서산을 거쳐 2011년 2월 현재 태안반도를 통과해 보령까지 진출해 있다. 해안선을 따라 서해, 남해, 동해안을 차례로 훑고 강원도 고성까지 북상한 뒤 휴전선 남쪽을 따라 다시 출발 지점인 강화도로 돌아온다는 계획으로 총 3년을 잡고 있다.
자전거 집단 가출 코스를 해안선으로 잡은 것은 요트 항해를 하며 우리나라의 해안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가랑잎 같은 돛단배 위에서 풍파와 대결할 때 멀리 보이는 육지의 해안선은 반드시 도착해야 할 낙원이자 구원의 장소였다. 그런 심리적 간절함에 실제적 아름다움이 더해져 다음엔 해안선을 자전거로 달리자는 얘기가 나왔고, 지금 그걸 실행에 옮기고 있다. 고백하자면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우리들의 행복한 집단 가출은 사실 생고생이 본질인 것이다. 백두대간에서는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산길을 걸었고, 바다에서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행복과 고생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왼쪽) 거친 파도 위의 항해나 백두대간 종주에 비해 해안선을 따라가는 자전거 일주는 운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날씨가 서늘한 가을에만 그렇다.
백두대간을 주파했고, 영해 외곽선 항해까지 해낸 우리들인지라 도로를 살랑살랑 달리는 자전거 여행은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9월부터 11월까지는 아주 순조로웠다. 우리나라의 가을이 항상 그렇지만 날씨는 쾌청했고 기온도 적당해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에 접어들면서 역시 집단 가출 생 고생이 시작됐다. 백두대간 때도, 요트 항해때도 집단가출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지키는 대원칙이 있다. 일단 가출이 예정된 날에는 눈이 오건 비가오건, 춥건 덥건 반드시 떠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빼먹거나 미루기 시작하면 그 머나먼 길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또 다시 생고생으로 내몬 것은 극심한 추위였다. 이번 겨울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한파가 맹위를 떨쳤고 해안 지역에 눈도 많이 내렸지만 우리는 집단가출의 원칙을 지켜 자전거를 멈추지 않았다. 당진~태안 구간에서 겪은 맹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기온은 내륙이 더 낮지만 사방이 탁 트인 바닷가는 바람이 강해 실제 몸으로 느끼는 체감 온도가 내륙보다 훨씬 낮다. 손발이 떨어져나가는 듯 시린 것은 그렇다손 쳐도 자전거 변속기와 브레이크가 얼어붙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눈이 쌓여 미끄러운 길에서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자동차 때문에 위험하고 소음이 심한 아스팔트 도로를 피해 산길, 들길, 밭길, 논길, 마을 뒷길을 찾아 코스를 연결하는 것에 중점을 둔 자연주의 라이딩 스타일을 고수하느라 눈이 얼어붙어 빙판이 된 오프로드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비박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침낭 위로 수북이 쌓인 눈부터 털어내야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꿈을 유예하지 않는 자들의 ‘행복한 가출 모의’ 여행의 즐거움은 상당 부분 함께하는 사람으로부터 연유한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환상적인 경험이다. 허영만과 집단 가출자들이 10년 가까이 야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였기 때문이다. 산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지금은 자전거 위에서 온갖 고난의 순간을 함께하면서도 집단가출 멤버들은 단 한번도 얼굴을 붉히거나 고성을 낸 적이 없다.
(왼쪽) 단팥 아이스바로 목을 축이는 허영만 화백.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결코 완전히 해방될 수 없는 각박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우리는 함께 멀고도 먼 길을 가고 있다. 백두대간 671.5km, 한반도 일주 항해 3057km, 그리고 자전거 일주 4500km. 자전거로 달리는 동안 길 위에 꽃이 피고,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찬연하게 단풍이 물들고, 그리고 또다시 혹독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또다시 행복한 다음 가출을 모의할 것이다.
글 송철웅(목수,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사진 이정식(스포츠 전문 사진가)
- [행복하냐고 묻거든]아웃도어 전문가들의 방랑 모임 허영만과 집단 가출자들
-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40대 중년 남자들과 <식객>의 허영만 화백이 작당해 집단 가출을 일삼고 있다. 그들이 집 나가서 하는 ‘방랑 행각’은 백두대간 종주나 한반도 영해 외곽선 항해 일주, 3년에 걸친 자전거 전국 일주 같은 고난이도의 취미 생활이다.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라는 제목의 책을 낼 정도로 그들이 집단 가출에 맛을 들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