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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선 씨와 딸 이네스 조의 모전여전
photo01 혹여 취재 현장에서 이네스 조를 만나게 된다면 그곳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간지 기자(그는 현재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의 문화부 데스크로 있다)가 뚜껑 없는 BMW 스포츠카에서 내려, 고혹적인 메이크업에 짧은 미니 스커트를 차려입고 등장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일본어를 하는 것도 본 적 있다). 솔직히 좀 기죽는다. 미국 TV 시리즈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의 ‘캐리’를 그의 모습 위로 슬쩍 중첩시켜본다. 그런데, 어울린다, 어울려.
이러한 시선을 받는 것에 대해 이네스 조는, 아니 이네스 조의 현실은 다소 억울하다. 왜냐하면 솔직히 드라마 속 기획실장, 건축가, 기자 등처럼 일하다간 당장 회사에서 사직을 권고받을 게 분명하다. 그가 캐리에 버금가는 패션 마니아이긴 해도, 캐리처럼 칼럼리스트라는 타이틀로 다른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패션 관련 기사를 기고하기는 해도, 정작 야심한 밤에 방송한다는 <섹스앤더시티>는 시청 불가능한 새벽 2시나 돼서야 귀가를 한다. 퇴근 후 거의 매일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므로, 이 시간을 감안한다 해도 평균 퇴근 시간이 거의 자정이다. 이 멋쟁이 기자 아가씨는 이 시간까지 높은 힐이 부서져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취재 현장을 누비고, 멋지게 올라간 속눈썹이 빠져라 컴퓨터 모니터를 쏘아보며 기사를 써야 한다. 헤럴드 트리뷴은 일간지이기에 매일같이 이 마감 북새통을 치른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이네스 조는 뉴요커 캐리하고는 차원이, 아니 사정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는 종횡무진 현장을 발빠르게 누비며 취재에 몰두하는 터프한 직장인이다.
 



 
이쯤에서 그의 어머니 김선 씨를 먼저 살피고 지나가야 한다. 사실 김선 씨의 딸, 이네스 조의 아찔한 속눈썹만 보고 본인의 동의 없이 생겨나는 그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모친의 증언이 필요하다. 그런데, 잠깐. 딸에 대한 질문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한다. 아무리 딸 이야기라 해도 어머니 김선 씨 얘기보다는 뒤여야지 싶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bag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선 그 백부터, 그 백을 만든 사람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가 건넨 명함에 쓰여진 그의 타이틀은 디자이너. 디자이너 앞에 아무런 단서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닌 재능은 그를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릇 디자이너, 유리공예가 등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발휘된다. 그런데 그가 만든 앤티크 백bag을 보게 된다면 단박에 그를 백 디자이너라 결정짓게 된다. 영화 <마이페어 레이디>에서 오드리 헵번이 들고 나왔음직한 우아하면서도 로맨틱한 백을, 이 클래식한 백을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껏 만든 1백 개에 육박하는 백은, 비즈니스가 아닌 그저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가 디자인한 백은 모두가 그가 최고의 적임자라 만장일치를 모을 만큼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이쯤에서 짐작했겠지만, 귀부인에게나 어울리지 싶은 이러한 백을 만들고, 정작 그 백을 자신에 의해서 빛나게 만드는 김선 씨 역시 바깥에 나서면 주목깨나 받을 인사이지 싶다. 어디를 나서도, 누구와 있어도 이목을 끌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집안 내력인가 보다. 김선 씨는 딸에게 이네스라는 예쁜 이름 이외에도 ‘시선 집중’ 유전자를 물려준 것이 틀림없다.
 



 
일본에서 일본 전통 꽃꽂이 이케바나를 정통으로 훈련받고 뉴욕 파슨스에서 도예, 유리공예, 수채화 등을 수학, 도대체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싶은 그가 그중에서도 백에 이처럼 단단히 매료되어 손바닥만 한 백에 매일같이 매달려, 비즈를 달고 루비를 박고 타조 가죽을 꿰매고 니트를 엮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선 씨는 그때를 25년 전이라 기억한다. 여행길 뉴욕 앤티크 시장에서 당시 금액 3백50달러를 주고 덜컥 와니백(천연 가죽백)을 구입했다. 그 시절 동양인으로는 드물게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에 단골 관람객이었던 그는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앤티크 마니아였다. 한국 앤티크를 이미 섭렵하고 스티클리 가구와 스테인드 글라스 램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던 그 시절, 자신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앤티크 시장의 와니백에 새로운 계획을 담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남자들은 모른다, 아니 여자라면 안다. 내 손에 정말 예쁜 백 하나가 쥐어졌을 때의 그 짜릿한 기쁨을. 여자가 어떤 백을 들었느냐에 따라서 그날 패션의 급이 달라져 보인다는 것을. 앤티크 시장에서 와니백을 손에 쥐었을 때 그 기쁨, 앤티크 백이기에 느낄 수 있는 남다른 매력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그때부터 여행길마다 들르는 앤티크 시장에서 백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백이 아니면 백의 프레임만이라도 모으는 데 전력을 다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앤티크 백을 컬렉션하기 시작한 것이 백번 잘했다 싶다. 아무리 좋은 티파티 램프도, 스티클리 가구도 집안에만 고이 모셔둘 뿐 들고 나갈 수가 없지 않은가. 김 선 씨가 들고 다니는 백은 백이면 백 모두 자신의 작품이다. 낡고 낡은 백을 정성스레 수리하여 재탄생시킨 백도 있고, 앤티크 백 프레임에 줄과 주머니를 달아 만든 것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원래 귀한 앤티크 백 프레임에는 루비, 사파이어 등과 같은 보석이 박혀 있게 마련인데 대부분 보석이 빠진 채로 앤티크 시장에 나와 있다고. 원래 귀부인들의 백은 남자들이 애정 공세로 가장 즐겨 하던 선물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 비싼 보석을 박은 백으로 물량공세를 했던 것. 그러나 백만 받고 백에 담긴 남자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냉정한 여자들이 보석만 쏙 빼다 팔았고 그래서 이 빠진 앤티크 백 프레임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라나.

1 세 딸 모두가 엄마의 안목이라면 무조건 인정할 만큼 김선 씨는 멋쟁이로 소문나 있다. 실내 슬리퍼로 굽 있는 펌프스를 신을 정도로 집에서도 멋을 잃지 않는다. 2 낡디낡은 손바닥만 한 구슬백이 다시 잇고 꿰매는 정교한 작업을 거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3,4 스테인드 글라스 역시 김선 씨의 컬렉션 중 하나. 전통 한옥 문을 좋아하는 어머니 김선 씨, 최신 유행 잡지 <월페이퍼>를 즐겨 읽는 딸 이네스 조, 이렇게 세대는 달라도 두 사람 모두 한결같은 스테인드 글라스 마니아다. 5 김선 씨가 직접 디자인한 타조 백. 앤티크 프레임에 타조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었다. 로맨틱한 디자인, 과감한 컬러 매치가 돋보인다.
 
 
photo01 이제 이네스 조에 대한 오해를 풀 차례다. 보석 박힌 백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같은 값이면 명품 백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백이 훨씬 더 만족스럽다는 이 천하의 멋쟁이 김선 씨를 어머니로 둔 딸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공주놀이를 즐겨 했을 듯싶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곱게 자라겠지 싶다. 그런데, 잘못 짚었다. 김선 씨는 자신의 딸을 우아한 공주로 키우기보다는 솜씨 좋은 조수로 훈련시켰다. 취미가 요리였고 특기가 손님 초대였던 어머니를 도우며 그는 남의 집 딸들도 학교 다녀오면 나물 다듬고, 손님 오시는 날이면 온갖 재료 채 썰어 얌전히 신선로에 앉히고 시간 맞춰 숯에 불 지피는 줄 알면서 사춘기를 보냈다고.
직접 먹어본 경험에 의하면 이네스 조의 신선로는 정말 맛있다. BMW 스포츠카 오너 드라이버에 미니스커트 마니아인 그가 다른 것도 아닌 ‘신선로’를 만들어내다니. 그런데, 그는 이 스스로가 만들어낸 기막힌 맛을 정작 최근에야 경험할 수 있었다. 그의 집 신선로는 웬만한 신선로보다 훨씬 작다. 1인용 사이즈로 손님을 치르는 날이면 손님 머리수대로 신선로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어릴 적부터 숙련된 조교일지라도 신선로 하나 만드는 데 꼬박 1시간. 따라서 여유 있게 하나 더 만든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에너지 소비였다. 그런데 얼마 전 드디어(?) 약속했던 손님 하나가 갑자기 오질 못했고, 덕분에 그 사람 몫이었던 신선로를 맛보게 되었던 것. 자신의 신선로를 처음 맛본 이네스 조의 감상. 자신의 신선로가 서울시내 유명 궁중 음식점과 비교해서 절대 뒤처지지 않는 맛이었기에 그동안 켜켜이 쌓았던 수많은 신선로들이 기억 속에서 주마등처럼 흐르며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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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01 결혼하면 살림 실컷 한다고 엄마가 나서서 집안일 돕는 것을 막는 집도 있다고 들었지만 김선 씨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예술은, 특히 미술은 많이 접한 사람이 많이 알 수밖에 없어요. 좋은 것을 십수 년간 익힌 눈을 따라갈 재간이 없거든요. 살림도, 특히 요리가 그래요. 어느 날 갑자기 멋을 알고 맛을 낼 수 없거든요.”‘엄마 덕에 요리 하나만큼은 제대로 배운 거 인정하지만 나도 가끔은 나물 다듬지 않고 인형 머리 빗겨주고 싶었다’는 이네스 조의 푸념이 베란다에서 들려온다. 간장 항아리에 담긴 지고추를 스스럼없이 맨손으로 한 움큼 쥐어 접시에 담아내는 폼을 보아하니 그간의 주방 보조 생활의 애환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사실 촬영하는 동안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국 김선 씨의 나이를 알아내지 못했다. 분명 그 연배에 비해 훨씬 더 젊음과 멋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서 기사에 단 한 줄이라도 ‘나이 대비 몇 년은 훨씬 젊어 보인다’라는 코멘트를 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나이를 알려주지 않는다.‘내가 나이를 말하면 우리 딸 이네스의 나이도 자연스레 짐작이 될까 봐’라는 말로 여전히 숫자를 비밀에 부친다. 이네스 조 역시 실패다.‘내 나이를 말하면 엄마 나이도 계산이 되지 않느냐’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모전여전이라 했던가. 몸무게는 밝힐 수 있어도 나이는 밝히기 꺼려하는 어머니와 딸, 두 여자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몇 살인지 알 순 없어도 이 둘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이렇게 남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것 같다. 이들 모녀를 조금 더 알게 된다면, 이들의 집에 한번쯤 방문해본 적 있다면 마음을 담은 눈인사를 보낼 것이다. 모녀가 베란다에 웅크리고 앉아 신선로에 숯을 붙이고 있는 그 모습을 보았다면, 웬만큼 마음이 딱딱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을 향해 마냥 건조한 눈으로 무심히 바라볼 순 없을 게다.

1기자들 사이에서도 멋쟁이로 소문나 있는 이네스 조 패션의 화룡점정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김선 씨가 만든 앤티크 백. 세 딸 중 가장 숙련된 주방 보조인 그는 이제 하산을 해도 될 만큼 기막힌 요리 솜씨의 소유자다. 2 이네스 조의 손님 상차림 필수 메뉴 신선로. 재료 하나하나를 켜켜이 쌓아올리는 이 정성스런 작업을 사춘기부터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 여겼다고. 3 김선 씨가 선보인 전복 샐러드. 싱싱한 전복이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엄명을 받은 이네스 조가 수산시장을 뒤져 구해왔다. 요리는 재료가 생명이라 굳게 믿는 그는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보통이 아닌’ 아가씨로 통한다. 4 중국풍의 접시만 해도 36명분 세트가 있을 정도로 이들의 집은 손님 치르는 데 이력이 나 있다.
 
 
심의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