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사장’ ‘선생님’ 대신 ‘아저씨’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친근한 데다, 지혜롭게 도움과 조언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는 것 같아서다. 나이가 더 들면 그냥 ‘고도원 할아버지’로 불리고 싶다.
엊저녁 무렵, 해가 노루 꽁지만 해지더니 기어이 눈이 내리고 말았다. 바람까지 부니 눈발이 칼날처럼 뺨을 치고, 마당의 빨래는 버썩버썩 뼈를 곧추세웠다. 이렇게 설야 雪夜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기어이 아침은 또다시 오고, 따습게 데운 숭늉 냄새를 풍기며 햇살이 내려오신다. 그 햇살은 연한 향기를 풍기며 고도원 아저씨의 서재 안으로 스며든다. 매일 아침 이메일로 217만 명의 가슴을 깨우는 ‘고도원의 아침 편지’가 태어나는 방이다. 고단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다친 우리 마음을 위로하기도, 가끔 정수리에 벼락이 내리꽂히듯 생각을 깨치기도,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무릎 펴고 일어날 기운을 북돋우기도 하는 아침 편지. 이 방에서 그는 매일 성실한 농사꾼처럼 책을 읽고, 마음을 닦고 그걸 200자 원고지 두 장이 채 안 되는 글에 담아 217만 명에게 ‘아침 편지’라는 이름으로 배달한다.
아버지의 밑줄에서 시작한 아침 편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_루쉰의 <고향> 중.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2001년 8월 1일 이메일로 전송된 첫 번째 ‘고도원의 아침 편지’다. 그 시작은 아버지가 물려준 책 속의 밑줄이었다. 가난하지만 우리나라 목사 중 손꼽히는 장서가이던 아버지는 매일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책 귀퉁이에 단상을 적었다. 그리고 칠 남매에게도 매일 똑같은 숙제를 냈다. 회초리를 들면서까지 쉬운 책, 어려운 책 밑줄 그어가며 열심히 읽고 독서 카드를 쓰게 했다. 어른이 되고 세상살이의 헛헛함이 몸에 배어가던 어느 날, 루쉰의 책 속에서 아버지가 밑줄 그은 대목을 읽는 순간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이 글을 읽으며 어떤 마음이었기에 밑줄을 그으셨을까요. 밑줄 친 그 대목을 두 번 세 번 읽으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내 삶이 아득해질 때마다 펼쳐 밑줄 그어가며 수십 번을 읽었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유산’ 속 밑줄이 아침 편지의 시작입니다.” 저 남자의 사연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하는 그 눈빛으로 그는 밑줄에서 만난 아버지 이야기를 전했다. 역시 목사의 딸로 자란 나는 그 이야기에 책 냄새 가득한 내 아버지의 방을 떠올렸고, 무언가가 가슴에 차올라 큰 숨을 내쉬었다.
충주의 깊은 산속에 들어선 명상 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그의 집필실이 있다. 이곳의 다른 건물들처럼 친환경 건축을 표방한 이 집은 볏짚으로 만든 스트로베일 하우스다. ‘건강한’ 아침 편지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애당초 그는 글쟁이였다.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려고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한 후, 대학 학보인 <연세춘추> 기자와 편집국장을 거쳤다. 하지만 유신 시절 필화 사건으로 제적당하고 수배, 강제 징집을 거치면서 목회자의 길도, 글쟁이의 길도 막혔다. 백수 생활 하다 마음 오지게 먹고 포장마차, 동네 문방구, 웨딩드레스 숍도 차려봤지만 결국 실패했다. 추운 곡절 끝에 그는 다시 글쟁이로 돌아와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 기자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1998년부터 5년 동안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살았다.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데다 대단한 문필가, 엄청난 다독가인 김대중 대통령을 위한 연설문 초안을 5년이나 쓰다 보니 긴장과 스트레스로 어깨와 손이 마비되고 고개가 안 돌아갈 정도였어요. 뇌가 터지지 말라고 바늘구멍 하나 낸 게 아침 편지예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밑줄 숙제’처럼 책에서 얻은 감흥을 짧게 쓰면서 전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걸 친구와 지인에게 보냈더니 그들이 자신의 지인에게 그 글을 보내고, 또 그 지인이 다른 이에게 글을 추천하면서 퍼져나갔지요. 아침 편지를 읽은 이들이 저처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걸 보고 아침 편지는 ‘글’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깨달았어요.” 중풍 맞은 친구가 젓가락을 들며 “도원아, 젓가락 드는 게 얼마나 위대한 건지 이제 알았다”고 말한 날 그 친구를 생각하며 쓴 아침 편지를 읽고 자살을 포기했다는 20대 여성의 이야기, 학업에 뜻이 없던 대학생이 인터넷 검색창에서 ‘고도리’를 찾으려다 ‘고도원’을 잘못 찾아 아침 편지를 읽었고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아침 편지는 누군가에게 새 인생까지 선물하는 생명의 글이 됐다. 나도 삶의 압각에 괴로워하던 때 아침 편지를 읽으며 누군가 나를 뜨거운 눈물로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 읽고 또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왼쪽) 아버지가 물려준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역사의 연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밑줄’이라는 유산.
꿈 너머 꿈 청춘이라는 건 인생을 계속 연애 방식으로 살겠다는 말 아닐까. 그는 여전히 붉은 꿈과 연애하는 청춘이다. 217만 명이 아침 편지를 받아보는데도 이메일 주소를 가진 대한민국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배달하는 꿈을 꾸고, ‘영어 아침 편지’를 만들어 전 세계 사람에게 보내는 꿈을 꾼다. 이메일을 열면 실제 향기까지 전달되는 ‘향기 나는 아침 편지’도 꿈꾸고(컴퓨터 공학도인 아들이 언젠가 이 꿈을 이뤄주리라 기대한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꿈도 꾼다. ‘책 읽고 밑줄 긋기 대회’라는 꿈은 이루어져 벌써 7회를 치렀고, 광대한 초원에서 말 달리며 마음의 영토를 넓히는 ‘몽골에서 말 타기 여행’의 꿈엔 이미 1천5백여 명이 함께했다. “제대로 된 문화재단 하나 만들어 사람들의 일상에 향기를 더해줬으면” 하는 꿈은 아침 편지 문화재단으로 이뤘다.
“내가 이런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비웃었어요. 간혹 정신 나간 사람, 황당한 사람이라고 조롱했고요. 그런데도 그 꿈을 계속 꾸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기록했어요. 그 꿈은 아침 편지를 타고 번져나갔고 하나하나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전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저처럼 꿈을 말하고 기록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꿈을 말하고 쓰다 보면 꿈을 이루겠다는 열망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요. 젊은 사람을 만나면 전 꿈에 대해 자꾸 묻습니다. 꿈이 없더라도 자꾸 물으면 꿈에 대해 생각할 테니까요.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 아내는 내가 황당한 꿈을 꿀 때마다 한 번도 조롱하지 않았어요. 아침편지 문화재단이라는 꿈을 꿀 때 아내는 가족회의를 열어, 평생에 걸쳐 장만한 집한 채를 기증하는 걸로 날 응원했지요. 지금도 충주에서 20여 평짜리 월세 집에 사는 삶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죠. 오히려 청소할 게 별로 없어서 좋다나요. 그렇게 아내는 날 격려하고 포옹하며 늘 내가 꿈을 향해 가는 길 가장 가까이에 있어주었습니다.” 아내 이야기에서 잇새가 수줍게 벌어지는 고도원 아저씨.
그의 꿈이 특별한 이유는 혼자 잘살겠다는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꿈’이 아닌 ‘징검다리’를 꿈으로 알고 머물러요. ‘부자가 되고 싶어요’ ‘의대에 들어가고 싶어요’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른 후 어떤 삶을 살 것이냐가 더 중요한데 말이죠.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 생각하면 자연스레 그 꿈은 자기중심에서 다른 사람의 방향으로 향해가요. 똑같은 의대 진학의 꿈이라도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된 다음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싶어요’란 꿈으로 옮겨가면 그 결과가 달라지죠. 저는 이런 이타적인 꿈을 ‘꿈 너머 꿈’이라 부릅니다.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레 위대해질 수 있어요.” 그의 ‘꿈 너머 꿈’은 아침 편지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들불처럼 번져나가 하나하나 현실이 된 것이다.
십계명에 철저하리라 다짐하는 삶 같아 보이기만 했는데, 그 안에서 난 작은 숨통을 발견했다. 바로 그가 꾸는 황당한 꿈 두 가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소설 쓰기’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무인도를 돌며 알몸 일광욕하기’다. “글쟁이는 가슴 안에 뜨거운 욕망이 살아 있는 사람,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열정이 가득 찬 사람이에요. 아침 편지를 쓰다 보니 사람들이 날 천사표로만 보는데 내겐 그 글쟁이의 끼가 있다고요. 진짜로 야한데 격조 있게 야한, 그런 소설 한 편 쓰고 싶어요. 가끔 글이 퐁퐁 솟아날 때도 있는걸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실행하시라, 기다리고 동참하겠노라, 사후에라도 낼 테니 꼭 쓰라’는 이들도 많아요. 무인도에서 알몸 일광욕하는 꿈은 하루키가 하는 걸 보니 부럽더라고요. 그 자유로움, 그 에너지 충만함이 부러웠어요.” 갑자기 그가 순정한 악동의 눈매로 웃었다. 그 표정에서 난 설핏 그가 요즘 밀고 있는 별명 ‘길박사(길용우와 박상원 사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이 별명이 이해가 간다. 젊을 때 ‘못생긴 얼굴’ 때문에 별명이 ‘이조사’, 바로 이주일과 조영남 사이였다는 그가 꿈꾸며 살아서 얼굴도 잘생겨진 것일까)’를 떠올렸다.
‘깊은 산속 옹달샘’ 공간 중 ‘허순영의 하얀 하늘집’. 아침 편지 독자인 허순영 씨가 기부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쉬나요? 기록이 기도가 된다고 믿는 그는 2003년 9월 4일 아침 편지에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글을 썼다. “제가 꾸는 꿈의 종합 편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대한민국 어느 깊은 산속에 세계적인 명상 센터를 만드는 것. (중략) 사람들은 편한 옷차림으로 휴식하며 명상하고 꽃과 나무를 심습니다. 그다음 일정한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휴식+운동+명상+마음 수련의 코스를 밟고 새 공기를 마시게 됩니다. (중략) 내면을 깊이 채우는 명상을 할 수 있고 며칠 머물고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치유가 가능한 그런 맑은 공간을 세우는 것…. 이것이 제 또 하나의 꿈입니다.” 이 황당무계한 꿈도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충북 충주의 원시림 60만 평에 명상 센터를 짓고 있다(이미 1만 평은 완성돼 ‘걷기 명상’ ‘비채 명상’ ‘중년 부부학교’ ‘어머니 학교’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꿈의 바탕에는 아내가 뿌린 ‘이타적인 씨앗’이 있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던 시절, 아내가 아침고요수목원에 들렀다가 재정난 소식을 듣고 꿈을 이루라며 선뜻 10만 원을 주고 왔다. 10년 후 그 수목원에서 ‘연애편지’라며 전한 편지 봉투에는 100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꿈이 담긴 그 돈에 그가 100만 원을, 아들과 딸이 각각 50만 원을 보태 ‘깊은 산속 옹달샘’ 통장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원자들이 1300만 원을 모았고, 이 미담을 아침 편지에 썼더니 한 달 만에 13억 원이 모였다. 다시 5만 명이 마음을 보태 60억 원이 만들어졌다. “아내가 뿌린 씨앗이 꿈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아하자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은행 돈 1원도, 국가 예산 1원도 지원받지 않고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꿈을 이뤄내고 있는 거죠.” 아,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는 것 같다.
(왼쪽) 역시 아침 편지 독자인 최재홍 씨가 기부해 ‘최재홍의 네잎 클로버 집’이라 이름 붙인 집 앞에서.
“자동차도 기름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고장 나기 전에 멈춰 서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잠깐 멈춰야 하죠. 그래야 더 큰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잠깐 멈출줄 아는 사람입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의 ‘걷기 명상’ 중에도 징 소리와 함께 멈춤의 시간을 갖습니다.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섭니다. 그렇게 멈춰 서면 고요해집니다. 고요해지면 소리가 들립니다. 그 전까지 들리지 않던 새소리,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더 고요해지면 마음의 소리, 영혼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나온 그의 책 <잠깐 멈춤>의 머리글이다. 잠시 멈춰 서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오만도, 오해도 내려놓고, 조용하고 나직한 것에 귀 기울이고 마음 기울이는 곳, 바로 ‘깊은 산속 옹달샘’의 꿈이다.
“이 꿈이 완성되기 전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어려움때문에 중도에 멈춰 서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않아요. 내가 아니면 후대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계속 이어갈 테니까요. 어려우면 잠깐 멈춰 서 있다가, 뒤돌아서거나 물러나지 않고 잠깐 멈춰 서 있다가 여건이 되면 또 나아가면 돼요. 그런 걸 생각하면서 2025년을 완공으로 정했어요. 이곳은, 이 꿈은 공공의 재산으로 대물림될 겁니다. 이건 결국 내 꿈이 아니라 아침 편지로 함께 모인 사람들의 꿈이니까요.”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내일자 아침 편지를 위해 황황히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꾸무럭해진 공기 속에 남았다. 아마 곧 설야의 시간이 올것 같다. 하지만 기어이 아침은 또다시 오고, 햇살이 숭늉 냄새를 풍기며 꿈쟁이 아저씨의 서재 안으로 스며들 것이다.
취재 협조 깊은 산속 옹달샘(www.godowoncenter.com)
- [귀 기울여 들어보니] 아침편지 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 꿈쟁이 아저씨, 꿈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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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쟁이 아저씨, 꿈이 뭐예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