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동, ‘사랑가’, 캔버스에 유채, 40.9×53cm, 2010
평균 수명이 늘고 이혼이 증가하면서 재혼도 크게 늘었다. 재혼남과 초혼녀의 결합보다 재혼녀와 초혼남의 결혼이 많아진 현실이 사회의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재혼 가족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가족이나 결손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세상이 변하면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고 해서 정상 가족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사망하거나 이혼할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니 재혼을 할 가능성도 그만큼 증가하는 셈이다. 재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나나 내 자식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행복한 재혼 생활을 위해 유의해야 할 것엔 어떤 것이 있을까?
1 준비하고 협의하라
이혼이나 사별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부정적인 과거의 기억을 빨리 지워버리는 것이 좋다. 상대방을 용서하고 나 자신을 용서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그리고 고통과 혼란도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시간적인 여유를 갖는 것이 좋다.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행복한 재혼 생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로 재혼하지 않겠다고 아예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사귀다가 재혼까지 결심한 사이라면 자녀 양육이나 재정 관리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상의하고 협의해 나가야 한다. 갈등이 생길 만한 문제를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여 불화를 키우기도 하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미리 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에게 엄마나 아빠의 이성 친구를 소개하고 적응시켜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재혼을 결심했다면 자녀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반응을 보아가면서 아이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아이도 사실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왼쪽) 이수동, ‘꽃배 타고 내려오다’, 캔버스에 유채, 33.4×24.2cm, 2009
2 재혼식은 융통성 있게 치러라 예물과 혼수, 예단은 어떻게 하고 결혼식 장소는 어디로 하며 초청할 하객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등, 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두 사람이 상의해서 합의한 것이라면 그것이 해답이다. 다만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면 예물과 혼수는 생략하거나 간소하게 하고, 직계가족 중심으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릴 것을 권하고 싶다. 양가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폐백을 올리거나 축의금은 사양하는
3 결혼식 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하자. 초혼과의 차이점을 잊지 마라 초혼과 재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재혼 가족은 가족 관계가 대단히 복잡하며, 가족의 경계와 역할이 모호하다는 특징이 있다. 재혼은 서로 다른 경험과 역사를 가진 두 집안 간의 결합으로 아이의 입장에서는 두 명의 아빠나 엄마, 네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둘 수도 있다. 또한 부부보다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와의 관계가 더 오래되고 친밀감이 높다. 게다가 전혼과 자꾸 비교하게 되며, 재혼 가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이 여전히 조금은 부정적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4 먼저 부부 관계를 정립하라 어떤 문제 앞에서든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한 팀을 이루면 헤쳐나가지 못할 문제는 없다. 그러나 사소한 문제나 갈등 앞에서도 “당신 자식이 아니니까 그러는 거냐”며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로 배우자를 대한다면 파국을 부를 수 있다. 특히 새로 들어온 며느리보다 결혼에서 얻은 손자 손녀를 우선시하는 가족이 많아 친족 관계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때일수록 부부 관계가 우선임을 명심하자. 그 누구나 그 무엇이 두 사람을 힘들게 하더라도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부부임을 명심하고 두 사람의 사랑과 신뢰에 매일매일 물 주고 거름 주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5 전 배우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라 이혼 후에도 절친한 친구처럼 지내는 서양의 커플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원수처럼 헐뜯거나 담을 쌓고 살지는 않아야 한다. 아무리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엄마나 아빠로서 만나야 할 일이 생기며,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별한 경우에는 전 배우자의 제사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때문에 부부가 심각하게 싸우는 경우라면 전 배우자와의 기억이나 흔적을 지우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6 자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라 자녀의 나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부모의 재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친부모를 새 부모와 공유해야 하는 미묘한 상황에서 부모가 또 이혼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사나 전학이라도 하면 그 부담감이 더 커지고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이혼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상실감과 불안, 분노와 우울감이 더해져 부적응이나 반항, 가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자녀의 심정을 충분히 읽어주고 공감해준다면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는 인내와 더 큰 사랑, 한결같은 관심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7 새 부모 역할의 한계를 인정하라 내가 잘하기만 하면 아이가 금세 친부모처럼 따르고, 친부모는 잊어버릴 거라는 기대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새 부모는 결코 친부모가 될 수 없으며 친부모나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지나치게 애쓸 필요도 없다. 아이는 새 부모를 따르고 친해지는 것이 친부모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충성심 갈등’ 때문에 괴로워한다. 엄마나 아빠라는 호칭도 조급하게 요구하지 말고 언제든지 마음이 열릴 때 엄마, 아빠라고 불러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아이의 버릇을 처음부터 고쳐 놓겠다는 의욕이 지나쳐 자녀와 대결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우호적인 관계부터 만들어나가자. 하지만 일관되고 확고한 규칙은 세워 놓아야 한다. 친자식에게는 통한 훈육 방식이 새 자녀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일차적인 훈육은 친부모에게 위임하는 것이 좋다.
8 친부모 역할을 지혜롭게 수행하라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새 배우자가 내 아이를 저렇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먼저 버리자. 친자식이라도 당연히 야단칠 일을, 매사 그런 시각으로 보면 오해와 갈등만 커지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어야 하므로 친부모가 새 부모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친부모가 없을 때에는 새 부모가 그 역할을 해야 하며 끊임없이 두 사람의 노선을 일치시켜나가는 일관된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 간의 파워 게임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부모가 세운 원칙을 강요하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같이 살지 않는 친부모의 험담은 삼가야 하며 아이가 따로 사는 친부모를 만나고 싶어하면 허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 부모가 지나치게 물질적인 공세를 펴거나 개입하여 아이의 적응을 방해하는 경우라면 따로 전 배우자를 만나 정중하게 부탁을 하거나 조율할 필요가 있다. 간혹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부모도 있는데 서로 어떤 얘기라도 나눌 수 있는 부모 자식 관계를 만들면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9 새 아이의 출산은 신중하게 결정하라 재혼 후의 자녀 출산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부부 간의 유대가 강화되고 새로운 자녀의 탄생으로 진짜 가족이 된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힘들 때마다 새 아이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양쪽 다 자녀가 없이 재혼한 경우가 아니라면 새 아이의 출산이 문제나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음을 명심하자.
10 재혼의 장점을 키워나가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가 생겼다는 기쁨 외에도 재혼이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부모 역할을 공유할 수 있고 재정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짐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더욱 넓어진 친족망이 든든한 후원군이 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재혼 생활의 어려움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른쪽) 이수동, ‘선유’ 중, 캔버스에 유채, 2009
* 더 많은 정보는 <행복이 가득한 집> 1월호 119p를 참조하세요.
디자인 조경미 기자 작품 이미지 제공 이수동(화가) 캘리그래피 강병인
- 두 번째 행복 출발 행복한 재혼 생활을 위한 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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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은 ‘분별력 상실’ 때문이고 재혼은 ‘기억력 상실’ 때문이라고요?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세상도 복잡다단해지면서 재혼은 이제 내 인생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재혼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 재혼 가족의 문제를 예습, 복습하게 도와주는 멘토가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재혼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선배’ 스텝 패밀리, 부부 치료 전문가가 그 예습, 복습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