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라이프&스타일] 흙과 색의 제국 '신상호의 세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공방. 도예가 신상호 씨의 작업실에는 웅장함과 강건한 기운이 가득하다.집과 작업 공간에서는 화려하지만 명료한 색감, 오래된 것들의 기품, 그리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를 버무려내는 기발함이 느껴진다. 부부가 손수 지은 전원 속의 집, 마치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 완성한 그 속에는 30년의 끈끈한 가족애와 예술혼이 오롯이 담겨 있다.

참으로 조용하고, 넓은 땅이다. 주소대로 찾아간 도예가 신상호 씨의 집. 여름이었다면 나뭇가지로 터널을 이뤘을 법한 한적한 숲길을 지나 대문을 들어서면 끝없는 정원과 몇 채의 건물이 펼쳐진다. 마당 곳곳 보이는 동물 조각품, 그리고 또 멀리 보이는 집 한 채…. 무얼 먼저 보고 무얼 먼저 취재해야 하나,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이 단순한 기우였음을 알기까지는 채 삼십 분이 지나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술술 풀리는 느낌이었다. 커다란 집은 규모와 다르게 손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위화감이나 위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원을 둘러보고 건물 면면을 구경할수록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 건 화려한 자재와 값비싼 가구로 과시하는 형태의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예가 신상호·한윤숙 부부가 손수 지은 전원 속의 집, 마치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이 그 속에는 30년의 가족애와 예술혼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왼쪽) 지난 9월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신작 전시에서 '구운 그림 Fired Painting' 시리즈로 큰 호응을 얻은 도예가 신상호 씨.

집 이름은 ‘부곡도방’.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도방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속뜻은 깊다. “부곡리는 순 우리말로 가마골이라는 뜻이에요. 조선 시대부터 도자기를 구웠다고 하지요.” 가마를 굽는 그가 그곳을 찾아간 것은 숙명이었다. 30년 전 무명이었기에 가진 게 없었다는 숙명, 불 때는 직업이었기에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숙명, 이곳이 북쪽과 가깝다는 숙명(당시는 반공 사상이 강한 때라 이 근방 땅값이 무척 쌌다). 부곡공방은 그 순박하고 담백한 이름과는 달리 웅장하고, 이국적인 면모를 자랑한다. 우선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신상호 교수가 작품 활동을 하는 탁 트인 작업실이 있다. 드넓은 정원과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세 채의 벽돌 건물은 게스트 하우스와 안채 그리고 뮤지엄이다. “30년 전에는 우사뿐이었어요. 우사를 고쳐 작업실로 사용했지요. 그 후 작은 집을 지었는데, 하얀색으로 칠하고 빨간 기와를 올려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불렸지요. 동명의 노래 알아요? 그 집은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게 하는 원동력이었어요.” 두 딸이 태어난 언덕 위의 하얀 집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그 뒤에 살았던 초록 지붕 집은 지금의 게스트 하우스가 되었다. 현재 살고 있는 안채는 1987년 아내 한윤숙 씨가 손수 지은 집. 그는 홍익대 도예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생활자기를 만들던 재원이다. 건축을 배운 적도 없는 아내가 모눈종이 위에 평수를 계산해 직사각형, 정사각형을 그려가며 설계한 집은 눈이 가는 곳마다 호강이다. 이러한 심미적인 취향과 감각을 가진 것 또한 이 집의 숙명이리라.

(오른쪽) 민화의 색과 문양을 옷처럼 입힌 도자 말, ‘Minwha Horse’.

클레이 아트, 지루한 예술이 아닌 재미난 일상 한국 도자 예술의 전설, 홍익대 미대 학장을 지내다 정년을 채우지 않고 홀연 은퇴,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 전통의 흐름을 역류하는 이단아. 그에게는 화려하면서도 괴팍한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흙을 사랑하고 원초적인 자연으로 회귀를 꿈꾸는 자신의 작품에 푹 빠져 산다는 것. 정년을 채우지 못한 아쉬움?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바로 학교를 퇴직한 거란다. “정년 5년을 남겨두고 아주 치밀하게 계산했어요. 내 작업을 한다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최소한 자기 준비를 위해 그 정도의 시간은 가져야 하지요. 지금은 5년이 아닌 10년이라도 더 빨리 했다면 좋았겠다 싶어요.” 자기 자신을 초월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다시 배고플까 봐 몸을 사리면 ‘예술혼’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뜻이다. 다행히 예술을 향한 그의 충실한 감정은 매 시기마다 작품에 변화를 가져왔다. 작가의 상황, 내면에 따라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변해왔다. 그의 설치 작품은 1994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레노베이션 때 호텔 입구와 로비 등에 전시되어 화제를 모았으며, 2000년에는 JW 메리어트 호텔과 고속버스터미널을 연결한 센트럴 시티 2층에 ‘밀레니엄 타일’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3m, 길이 160m의 작품을 선보였고, 클레이 아트 뮤지엄 초대 관장을 지내며 건축 도자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이 ‘건축 도자’다. 우선 흙으로 납작한 판을 만든 뒤 고온에 구워 철처럼 단단한 자재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이미 판(타일)부터 손으로 빚고 굽는 것이기 때문에 그 위에 색을 입히면 느낌이 아주 강렬
해진다. 그렇게 만든 건축 도자 ‘구운 그림 Fired Painting’은 간단히 조립해 건물 외벽에 걸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그림은 집 안에 거는 것이다. 타일에 그림을 그리고 그 자체가 액자가 되어 집 밖에 걸린다니 어리둥절하다.

여기까지가 집을 장식하는 예술품이라면, 아예 건물 외벽을 감싸는 방법도 있다. 건축 자재는 값싸면서 실용적인 것을 쓰고, 그 위에 옷을 입힌다는 웨어링의 개념. 귀한 손님이 올 때 옷을 갈아입듯이 그림을 바꿔 달아 환영할 수 있고, 집 자체가 조형물이 된다. 건축 도자는 외관뿐 아니라 문고리에도 쓸 수 있다. 원료가 흙이라 손에 닿는 감촉이 다르다. “사실 건축 도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해온 방식입니다. 토담, 벽돌, 기와 등이 모두 결국 흙집의 재료 아닙니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무공해예요. 세상은 살면서 자꾸 바뀌죠. 건축
에는 유행이 있지만 예술에는 유행이 없어요. 취향만 있을 뿐이죠. 기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집이 옷을 갈아입는 이 건축 도자가 주거 환경, 건물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불러올 수 있지 않겠어요?”

장흥 부곡리에 위치한 신상호 씨의 작업실. 대형 벽면 작업이 필요한 건축 도자 ‘구운 그림 Fired Painting’을 비롯해 샤머니즘에 심취했을 때의 작품 ‘토템’ 시리즈, 사람과 동물의 두상을 빚은 ‘ Head’ 시리즈,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은 ‘Dream of Africa’ 등 웅장한 도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컬렉션, 내 영감의 원천 그의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갤러리는 마치 오래된 서가처럼, 그 냄새부터 내공이 남다르다. 2층에는 그의 작품만큼 빛이 나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각종 수집품이 수백여 점 전시되어 있다. 10년도 넘게 심취해 있는 것은 아프리카 소품들. “아프리카는 영감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1995년과 1996년 영국에 초빙 교수로 가 있을 때 우연히 런던에서 열린 대규모 아프리카 미술전을 보고 그 작품의 원초적 생명력에 푹 빠져 전시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그는 그 후 수시로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실제 그의 집 곳곳에는 아프리카에서 수집한 각종 공예품 수백 점이 거실을 채우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 거실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져왔다는 토속적 느낌의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아프리카의 원초적 생명력은 지난 9월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 전시되어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Head’ 시리즈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 제대로 된 아프리카 공예품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팔기 위해 만든 것이지, 진짜 아프리카의 문화와 생활의 때가 묻어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팔기 위해 만드는 것과 쓰기 위해 만드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어요. 진짜 물건에는 모든 예술가를 감동시키는 힘이 담겨 있죠. 제가 아내가 빚은 그릇이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무얼 담는지, 양이 어떤지 다 고려해서 만든, 작품이 아닌 ‘생활 자기’로 접근했기 때문이지요.”


갤러리 공간 역시 집 밖으로 확장한 개념. 살다 보니 집에 자꾸 습기가 차서 축축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바깥쪽 땅을 파내고 천장을 유리로 마감했다.

부인 한윤숙 씨는 6년 전까지 생활 자기를 구웠다. 그 또한 수집가의 피가 흐르는데, 그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게스트 하우스 지하에 쌓여 있는 방대한 양의 그릇이다. 집을 주제로 한 작품부터 도자기와 유리를 합체한 듯한 와인 잔, 크리스마스 머그잔 등 모두 그가 만들거나 유럽을 다니며 모은 것들. 집에서 100명, 200명씩 사람을 불러 파티를 하는 일이 잦았으니 그것만 충당하려 해도 어느 정도의 양인지 가늠할 수 있다. “짐을 너무 많이 남기는 게 아닌가 싶어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애들은 엄마가 쓰던 거니 버릴 수 없죠. 그렇다고 놔두면 짐이 될 테고요. 필요한 사람들이 나눴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이 그릇들을 판매할 생각이에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죠.” 10년 전에 만들었다는 커피잔은 아메리카노 커피를 담기 적당하도록 찻잔과 머그잔의 중간 사이즈로 디자인했다. 모두 용도에 맞게 양을 계산한 것. 유리 소재의 그릇들은 영국 골동품 시장에서 컬렉팅했다. 이 게스트 하우스는 부부가 두 번째로 지은 집인데, 집을 짓게 된 에피소드 또한 재밌다. “당시 큰아이가 아기 때니까 자주 울었는데, 우는 소리에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독립하겠다고 홧김에 저 집을 지었지요.” 작업실과 주거 공간을 분리하는 일조차 그의 끓는 피가 한몫한 것. 게스트 하우스는 동서양의 조화가 멋스러운 공간이다. 거실에는 아프리카 가구와 대형 중국 벽화가 걸려 있고, 정면 선반에는 형형색색의 유리 오브제를 장식했다. 한식으로 꾸민 침실 옆 작은방은 아내가 그림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수줍은 듯 공간에 배치된 방석은 손재주 많은 그의 아내가 손바느질로 만든 것. 게스트 하우스에는 10여 년 전 ‘구운 그림’의 초기 작품도 걸려 있는데, 그 작품을 볼 때면 ‘초심’이 다져진단다.

(왼쪽) 갤러리 1층에 있는 서가에는 그간 탐독한 디자인 서적이 가득하다. 
(오른쪽) 판재도 직접 구워 만들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 그 터치가 그대로 살아 있다. 오톨도톨하게 생기는 표면에 그림을 그려야 제맛이다.


집, 아티스트의 취향과 욕심이 한껏 묻어나는 공간 게스트
하우스 뒤쪽 마당을 가로지르면 안채가 나온다. 지난 1987년에 지은 집이다. 안채에 들어서니 새 자재로 매끈하게 개조를 마친 집에선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기품이 느껴진다. 훌륭한 인테리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고가의 가구들과 골동품 등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부엌. 웬만한 집만큼 넓은 데다 베란다 너머로 햇볕이 가득 들어와 ‘훤칠하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부엌에서 뒷마당으로 통하는 베란다는 익스텐션 extension 공간. 식구가 늘어나거나 집에 싫증이 났을 때, 언제든 확장할 수 있도록 마감했다. 확장한 후 통유리로 감싸 온실 테라스처럼 연출. 집에 사용한 가구는 모두 20~30년 전에 직접 디자인하고 맞춤 제작한 것들이다.
그중 주방 한쪽을 차지한 그릇장이 눈에 띈다. 진한 오크 컬러가 멋스러운데 그 비결은 바로 무광 래커다. 햇볕에 빛바래서 더욱 멋스러워졌다는 그릇장. 오동나무로 만들었느냐고 묻자 원목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MDF에 필름지를 붙인 거라고 말한다. 이렇게 무거운 그릇을 넣는 장은 휘기 때문에 원목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며, 돈도 적게 들었다고 귀띔한다. 그릇장에는 그릇이 가득 차 있다. “내가 그릇을 전공한 사람이니까 직접 다 만들어 써요. 그릇만 만드는 게 아니고 뭐든 만들어 써요. 원시 시대라니까.” 꼭 당신 손으로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내 한윤숙 씨. 주방 곳곳에는 그가 만든 커튼, 테이블 매트 등이 빛과 소금처럼 자리한다. 주방 옆 베란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햇볕 아래의 테이블에는 요즘 읽는 책과 메모 노트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외국에 가거나 TV를 보다 새로운 요리가 나오면 메모를 해두는 노트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해본 요리는 다 적어두었다고 하니, 지금 시대로 따지면 ‘파워 블로거’인 셈이다. “<규장총서>라고 알아요? 조선 시대 어떤 양반집 부인이 모든 생활의 지혜를 다 기록한 책이에요. 그 번역서가 있는데 내용을 내 식으로 각색해서 된장, 간장을 담가봤어요. 그 전에는 시어른을 따라 담갔는데, 그렇게 레시피를 만드니 더 맛있더라고요. 우리는 된장을 5년 묵혀서 먹어요. 15년 묵은 간장도 있는데 아주 달고 맛있어요.” 이 요리 비책은 다시 정리해서 딸들에게 물려준단다. 스무 명은 앉을 수 있는 거실의 대형 테이블과 의자도 한윤숙 씨가 디자인한 것으로 모두 나이가 스무 살이 넘는 가구들이다. 거실 옆에도 유리로 마감한 테라스 공간이 있다. 신상호 씨가 설명을 덧붙인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2년 동안 교환 교수로 영국에 근무했을 때 이렇게 유리로 익스텐션한 집들을 많이 봤어요. 정말 필요한 공간이라 생각했지요. 햇볕이 사람에게 주는 긍정적인 역할이 얼마나 커요? 스트레스 받거나 우울할 때, 이 공간이 해소책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 예술은 도전이야’라고 외치며 갤러리 지붕 위로 올라간 신상호 씨.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닭’ 시리즈와 함께 멋진 컷을 연출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양과 말, 돼지, 닭 등 동물의 형상으로 눈앞에 서 있다. 형형색색의 컬러, 다듬지 않은 듯 러프하고 원초적인 모습이다.

이미 만든 것은 다시 만들지 않는다는 신상호 씨. 그런 생각은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구를 잘 갖추어놓고 산다 해도 그것이 결코 훌륭한 인테리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는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편이 더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창문을 초록색으로 해달라는 말에 공사하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왜 그런 색깔을 쓰냐고요.”
이 집은 특히 색감이 예쁘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나 스트레스가 많아요. 우리가 젊을 때 살던 시대는 모든 게 풍족하지 않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상당히 풍족하잖아요. 우리 때는 조금만 재능이 있으면 혼자 힘으로 성공할 수 있었어요. 나 같은 사람이 교수가 된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웃음) 요즘은 교수 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러다 보니 명랑하고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에 봄이 오는 색감을 찾게 되지요. 컬러를 보면 사람이 즐거워지고 액티브해져요. 집안에 색감을 더하는 것도, 색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환경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도예를 시작한 시절에는 자기가 원하는 색을 도자기에 표현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무언가를 그려 넣는 것은 더욱 어려웠고요. 그런데 4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니 그 모든 게 가능하잖아요? 요즘에는 달 항아리에도 그림을 그리잖아요.”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것을 시도하는 용기. 그것이 도예가 신상호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왼쪽) 부부가 두 번째로 지은 집, 게스트 하우스. 외벽에 구운 그림이 작품처럼 걸려 있다. 
(오른쪽) 30년 전 소나무를 심으며 “이 나무가 다 자라면 환갑잔치해야지” 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벌써 환갑이 지났다. 세월과 함께 집도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있다.


가족, 예술가와 생활인 사이 “아내는 항상 이야기합니다. 한집에서 예술가가 둘 나오는 거 아니라고요.” 하지만 첫째 딸은 판화를 전공하고 둘째딸은 예술학을 공부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부러 가르친 적이 없는데 부모를 닮아서 둘 다 특별한 심미안을 가진 것.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첫째 딸은 집 인테리어를 손수 했다. 얼마 전에 가보니 제법 잘 꾸며놓아 물었더니 “내가 보고 자란 게 있는데” 하더란다. “머릿속에 무언가를 꽉 채워 다니면 다른 것이 안 담기잖아요. 지혜는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우리가 배운 지식은 버리는 연습도 해야 해요. 제가 외국 여행길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보석같은 아이템을 잘 발견하는 이유가 바로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이에요. 여행을 할 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관습을 따라야 하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얕은 지식이 고정관념이 되어 예의가 없어지죠. 그건 평등이 아니거든요. 사람에게는 그레이드 grade가 없지만, 문화에는 분명 그레이드가 있어요.” 문화에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을 덧붙이는 한윤숙 씨. “예전 공장 직원들에게 꽃꽂이를 하라고, 꼭 멋진 화병이 필요치 않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앞마당에 가서 들꽃을 꺾어 찌그러진 주전자에 꽂으면 그게 바로 자연과 하나 되는 예술적인 마음이라고요. 깨진 장독대 뚜껑이 있으면 거기에 물 담아서 꽃꽂이를 하면 안된다고 가르쳤죠. 아이들한테도 같은 가르침을 줘요.” 그의 타고난 예술적 감각을 높이 사자, 자신은 예술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삶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활 예술을 사랑하고 디자인적 감각이 발달한 것과 아티스트는 다른 것이라고 강조한다.“이제 아티스트는 제작자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트렌드가 생기듯, 명칭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거지요. 서양화가, 동양화가, 판화가…. 서로 구분이 없는 시대잖아요.” “맞아, 컬래버레이션하지 않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단 말이지. 옷 갈아입는 건물도 마찬가지예요. 건축과 도자의 만남….” 부부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가족이 모이면 작품에 대해 신랄하게 토론하는 영락없는 ‘아티스트’ 가족. 몇 시간 후, ‘이렇게 넓은 집이 있구나’가 ‘이렇게 이야기가 많이 담긴 집도 있구나’라는 감탄사로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다.


1 이 집의 백미는 주방이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도예를 배운 한윤숙 씨는 삶을 사랑하는 생활 예술가다.
2 거실 바깥쪽으로 마련한 테라스 공간. 햇볕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끽하는 공간이다.
3 정면에 보이는 벽난로와 빅 테이블은 모두 한윤숙 씨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
4 여행 때마다 하나 둘씩 모은 유리그릇과 직접 만든 생활 자기.
5 게스트 하우스 한쪽에 그림 작업실을 마련했다. 부부가 이렇게 하릴없이 마주앉아 본 것이 얼마 만인가.
6 한윤숙 씨가 만든 꽃잎 모양 볼. 이토록 깊은 붉은 색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