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는 게 편이라는 것이 본 칼럼의 성격이지만 오늘은 남자, 그것도 내 친구 두 명의 흉을 보려 한다. 한 명은 올해 마흔네 살, 현직 의사이고 또 한 명은 마흔두 살, 선박 회사에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남성이다.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놀고 죽겠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가끔 여행도 함께 하는데, 함께 있어 즐거운 99가지 이유가 있는데도 슬쩍 이들과의 여행을 망설이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이들이 징하게도 씻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원도 정선을 여행할 때였다. 숙소로 들어간 시간은 새벽이었다. 먼저 씻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이들은 온돌방 이불 속에 누워서 텔레비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발로 몸을 툭툭 차며 어서 씻으라고 말해도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첫날이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양치질도 하지 않았고 2박 3일 내내 그들은 내게 씻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 몸이 근질거릴 지경이어서 마지막 날은 이들을 대중탕으로 끌고 갔다.
탕에 먼저 들어가 이들을 기다리는데,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 내 친구들은 샤워기를 틀더니 정확히 15초 만에 모든 목욕을 완료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몇 번의 여행 속에서 계속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여러 친구가 있는 술자리에서 이 두 친구의 더러운 만행을 폭로했다. 여자들은 ‘우욱’ 하며 토하는 흉내를 내거나, 살짝 그들과 거리를 떨어져 앉으며 눈을 흘겼지만 남자들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마치 봤던 영화를 또 본다는 듯이, 매일 먹는 김치를 또 먹는 듯이 그렇게 덤덤한 반응으로 나의 고발을 들었고, 한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당신이 너무 자주 씻는 거야! 하루 이틀 안 씻어도 사람 안 죽어. 야, 술 마시자.”
그래도 나는 이들과 같은 이불을 덮고 사는 관계가 아니니, 여행 중에만 좀 참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부부간에 이런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는 경우를 나는 주변에서 종종 본다. 대학 때부터 캠퍼스 커플로 10년을 사귀다 결혼 5년 차가 된 여자 후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 나는 저 사람이 저 지경인 줄은 정말 몰랐어. 연애할 때도 좀 꾀죄죄하다 생각했지만, 어떻게 여름에 퇴근하고 와서는 선풍기로 땀 한번 말리고 그냥 자요?”
여자는 남자를 쫓아다니며 ‘손 씻어라’ ‘발 씻어라’ ‘머리 감아라’ ‘양치해라’ 노래를 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향해 성격이 유난스럽다며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이 악순환을 들으며, 나는 도대체 사연 속 남자들은 무슨 연유로 그리들 씻는 것을 싫어하는지 생각했다. 첫 번째 의심은 관심받기의 심리적 표출이다. 내 친구들을 보건대, 제발 좀 씻으라는 내 잔소리를 은근히 즐기는 듯도 했고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두 사람은 마치 피를 나눈 동지처럼 공범의 우정을 강화하는 낌새도 보였다. 또 하나는 일탈이 주는 쾌감일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혹은 주말에 머리도 안 감고 면도도 안 하고 부스스하게 있다 보면 마치 히피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묘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가장 결정적 혐의는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씻는 것을 싫어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씻는 것을 일종의 변화로서 의미 전환을 한다면 생물학적 관점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일견 수긍할 만도 하다.
확실히 내 경험상 남자는 여자보다 변화를 싫어하고 현재의 상태가 그대로 보존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에 대한 가장 큰 미스터리는 어느 날 퇴근해보니 집 안의 가구가 전부 위치 이동을 해버린 광경이다. 도대체 저 무거운 것을 어떻게 아내 혼자 했느냐는 경이로움과 함께, 왜 이것을 기를 쓰고 옮겨야 했는지를 의아해한다.
여자는 그렇게 해야 기분 전환이 된다지만, 남자는 그렇게 해서 생기는 일시적 혼란과 불편이 싫다. 씻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의 정신세계에도 이런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하루 종일 몸에 붙은 먼지, 적당히 땀과 엉겨 따뜻해진 속옷, 양치를 안 해 텁텁해진 입안까지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다 씻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쾌함보다 지금의 일체감 혹은 안락감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이다.
글 윤용인(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트위터 @ddubuk) 캘리그래피 강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