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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위니> 시리즈 그림 작가 코키 폴 인생이라는 마법의 성에서 잠시…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꼬맹이 팬을 열광시킨 <마녀 위니> 시리즈의 작가, 코키 폴. 어른들 마음속의 ‘어린이 마음’까지 불러내는 그가 새 책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를 들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인생이라는 마법의 성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비법을 그는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여전히 말랑말랑한 동심을 지닌 코키 폴이 창덕궁 돌담 앞에서 그림자 놀이 중이다. 왼쪽의 로켓 그림은 그의 새 책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에, 위니 그림은 <마녀 위니>에 수록돼 있다. 그림 이미지 제공 비룡소

살다가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이게 아닌데…” 되뇌게 된다면, ‘올해도 그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가’ 싶어 서글퍼진다면 동화책 한권 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인생이란 게 원래 얼마나 많은 향을 내도록 되어 있었는지, 그걸 그동안 얼마나 무감하게 잊고 살았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화책은 ‘세상엔 아름다움만 가득하다’고 말하는 책은 아닙니다. 함정과 한계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부드러운 회초리처럼 혼내고 핥고 보듬는 책이지요. 그래서 어쩌면 동화책은 어린아이보다 어른을 더 철들게 하는 책인지도 모릅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 같은 동화책 한 권 들고 한국에 온 코키 폴 Korky Paul을 만났습니다. <마녀 위니> 시리즈, <샌지와 빵집 주인> 등을 통해 꼬맹이 독자들을 강력한 자장으로 끌어들인 그림 작가. <마녀 위니> 시리즈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300만 부 이상, 한국에서만 35만 부가 팔려 나간 영광의 작가. 어른들 마음속의 ‘어린이 마음’까지 불러내는 작가.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라는 새 책을 들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의 강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 아들놈 책장에서든 조카 녀석 방한 귀퉁이에서든 <마녀 위니> 시리즈를 찾아내 들여다보세요. 별로 예쁘지 않은 노처녀이자 마녀인 위니와 새까만 고양이 윌버의 좌충우돌 라이프가 세밀한 펜촉으로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위니가 사는 집의 문고리 하나까지 정밀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에서 아이들은 쉽게 눈을 떼지못합니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놓친 게 있는 정밀한 그림, 숨은그림찾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촘촘히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엉뚱하고 유쾌한 세계에 빠져들어 어느새 벙싯거리게 됩니다.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프랑스·그리스 등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코키 폴. 그렇게 많은 세상을 경험한 그의 그림 속에는 다채로운 삶의 무늬가 담겨 있다.

인생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마녀 위니는 다른 마녀들처럼 완벽하지도 않고, 늘 적절한 행동만 하지도 않아요. 실수로 마법의 지팡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리는가 하면, 요술 지팡이로 하늘을 날다가 빌딩 벽에 부딪히는 등 실수 연발이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든 시도하려고 하죠. 그리고 실수를 통해 배워나갑니다. 마녀 위니처럼 나도, 여러분도 탄탄대로만 걸으며 살 수는 없겠지요. 마녀 위니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쯤에서 탄탄대로 대신 일곱 굽이쯤 돌아온 그의 인생 이야기를 잠시, 숨가쁘게 들려드려야겠군요. 신의 손길이 남아 있는 땅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일곱 아이 중 하나로 태어난 해미시 바인 크리스티 폴 Hamish Vigne Christie Paul(코키 폴의 진짜 이름). 맨발로 관목 숲 사이를 달리고 강을 헤엄치며 평화를 만끽하던 소년, 형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 백인에게 받은 인종차별 (반은 아프리카인이고 반은 영국인인 그는 같은 백인으로부터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때마다 짐바브웨의 관목 숲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꾸던 소년,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화가가 되고 싶은 그와의 갈등, 입대 후 앙골라 전쟁에 투입되어 직면한 ‘피와 땀, 증오와 광신이 뒤 범벅된 혼돈’,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나’란 물음에 괴로워하던 날들, 제대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앙골라와 전쟁을 벌이면서 예비군을 소집하자 도망치듯 떠나온 아프리카,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폴란드 등을 떠돌다 정착한 그리스, 아프리카에선 미술대학 나오고 광고 회사에서 일한 엘리트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그리스 땅에선 올리브나 포도 따는 일로 밥을 벌 수밖에 없던 시절, 이후 런던·로스앤젤레스 등을 거치면서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지만 썩 잘나가지 않은 작가로 살던 날들…. 이것이 많은 곡절을 주름치마처럼 접어온 그의 인생 전반전입니다. 인생은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라는 걸 그는 좀 일찍 깨달은 것이지요.

“<마녀 위니>도 ‘썩 잘나가지 않던 시기’에 제의받은 일이었어요.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진행하던 작은 프로그램의 일부였는데, A4 한 장 정도에 쓰인 스토리를 편집장이 던져주다시피 건네더군요. 그마저도 세 명의 경쟁자가 있었고요. 나는 출판사에서 원래 요구한, 스토리를 보조하는 작은 삽화를 그리는 대신 이 이야기로 큰 그림책을 그려서 가져갔어요. 보통 삽화는 이야기에 맞춰 그림을 적절히 조합하는 정도의 비중인데, 나는 그림이 이야기를 배치하는 역할까지 하도록 했죠. 편집장은 처음에 당황했지만 결국 내 생각이 옳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원래 영국의 전통 방식에 따르면 마녀의 집과 옷 등은 모두 검은색인데, 나는 위니에게 노란색 줄무늬 스타킹을 신겼어요(그는 늘 위니처럼 줄무늬 양말을 신고 다닌다). 같은 검은색이어도 빨간색, 파란색 등 여러 색깔을 조합해 만든 검은색으로 그렸고요. 어릴 때 어머니가 늘 하시던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독립적으로 살라’는 말씀 덕분인지, 난 나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했거든요. 그게 그림으로까지 이어진 겁니다.”

(오른쪽) <마녀 위니> 시리즈의 열한 번째 이야기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 역시 코믹하고 엉뚱한 그림이다.

<마녀 위니>는 이듬해 영국 어린이 도서상을 수상했고(어린이 책 관련상 중 유일하게 어린이들로만 구성된 심사위원이 심사한다. 그래서 그는 이 상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연이어 터지는 축포처럼 각종 도서상을 수상하면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마녀 위니의 세상’은 20년 넘게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그 시리즈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마녀 위니, 다시 날다>라는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마녀 위니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다 헬리콥터, 행글라이더와 차례로 부딪히는 사고를 치죠.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로 결심했지만 이번에는 연못에 빠지고, 다시 스케이트보드로 바꿨더니 아이스크림 수레와 정면충돌해요. 말을 타다가는 낮은 가지에 걸려버립니다. 좀 느리긴 해도 걸어 다녀야겠다고 결심한 위니는 이번엔 구멍에 빠지고 말지요. 지친 위니는 차나 마시며 잠시 쉬려고 가게에 들어가는데, 맙소사! 알고 보니 그곳은 찻집이 아니라 안경점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나요. 그동안 자신이 일으킨 실수는 모두 위니가 시력이 나쁘기 때문이란 걸 그곳에서 알게 되죠. 안경을 쓰게 된 위니는 이제 빗자루를 타고 어디든 신나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위니의 하루처럼 우리의 날들엔 흐린 날도 있고 또 이렇게 햇빛 떨어지는 날도 있는 법이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실수는 ‘교훈’이란 친구를 데리고 다니며 결국엔 좋은 일을 불러온다, 실수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지요.”그의 이 이야기에 감탄하셨다면 ‘어른을 철들게 하는 책’이라는 제 말도 이제 이해가 가실 겁니다. 조금 설명하지만, 그래서 더 많이 설명하는 게 바로 동화책이니까요. 다만 그 안에 담긴 착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려면 마음에도 적당히 뜸이 들어야 한다는 것, 잊지 마세요.


마음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행복
그림을 그리는 그의 이름은 늘 글쓴이의 이름 앞에 나옵니다(보통의 경우와 달리). 그의 그림은 단순히 글을 보조하는 삽화가 아니라 이야기를 배치하는 역할까지 하는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줄거리를 읽어주는 사람은 부모나 선생님이겠지만 정작 그 책을 눈으로 보는 사람은 아이지요. 어린이는 그림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들에게 큰 줄거리만 쓸 것을 요청해요. 똑같은 상상력도 그림으로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글에서는 단순하게 ‘호박콥터’라고 표현하는 단어가 그림책에서는 호박콥터의 동체 구조, 사다리의 위치, 몸체를 감은 사슬의 생김새까지 두 쪽에 걸쳐 묘사할 수 있어요.” 코키 폴의 그림책은 그림을 ‘읽고’ 글을 ‘보는’ 방법을 알게 합니다. 그 바탕에는 바로 그림책을 손에 든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픈 쉰아홉 살 아저씨의 ‘어린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방한 중에도 그는 짧은 일정이지만 부천과 서울의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20~30명씩 모아놓고 그림 그리기 강연을 열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을 곱절이나 넘기며 아이들의 그림을 살펴주고 칭찬했습니다. 도리어 그 수고스러움을 칭찬하자 “아이들이 시간 내서 날 보러 와줬으니 당연히 그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며 웃었습니다. 이건 자기 안에 향기를 품은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신이 힘 안 들이고 기쁨을 파는 ‘선물의 집’ 주인이 된 것 같아 마냥 흐뭇하답니다. 영국 옥스퍼드 시에 자리한 그의 집, 네댓 평 정도 되는 반지하 작업실에는 그가 그동안 모아온 어린이 팬의 편지와 위니 인형이 빼곡하다는군요. 매번 책을 발간할 때마다 책의 맨 앞과 뒤 속표지에 어린이들이 그린 마녀 위니 그림을 싣고, 책 제일 첫 장에는 어린이들에게 감사의 글도 남깁니다. 그는 정말 산타클로스와 한 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왼쪽) 자신의 삶이 “행복하고, 행복하고, 운 좋고, 행복하고…”라던 그는 이 사진을 찍으면서도 행복해했다.

어른이라기엔 너무 순수하고, 아이라기엔 너무 심오한 쉰아홉 살의 아저씨가 덧붙인 또 하나의 이야기.“나는 참 운 좋은 사람입니다. 군에 입대해 앙골라 전쟁에 참전했는데도 이렇게 살아 돌아왔고요. 정치적 이유로 타국을 떠돌다 그리스에 정착했을 때 그리스어를 한마디 못하는데도 광고 에이전시에서 운 좋게 일을 구할 수 있었어요. 젊은 시절 한때 올리브 따는 일꾼으로 산 적도 있는데, 지금은 내 그림으로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운 좋은 거고요. 내 취미가 내 일이 된 것도 행복하고, 그림 그리는 게 내겐 노는 건데도 돈까지 받으니 행복하고, 아내가 암 투병을 했지만 지금은 건강해졌으니 행복하고, 그걸 통해 건강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았으니 또 운이 좋고, 아들과 딸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놓아둘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니 그것도 행복하고….”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 소년 같은 표정으로 그가 말합니다. 인생의 쓰고 매운맛이라도 오래 되새김질해 단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이 남자. 어쩌면 이 이야기야말로 마법 같은 스토리가 아닐까요? ‘아브라카다브라!’를 외치면 불운도 행복으로 변하는 마법, 마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 그러고 보면 인생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내는 마법의 성이 아닐까요? 그 인생에서 찾은 마법 같은 행복.

이제 호두 껍질처럼 닫혀 있던 마음에 ‘동심’이라는 작은 구멍이 다시 열리셨나요? 꿰맨 자국으로 가득한 천 조각 같은 인생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셨나요? 마녀 위니가, 코키 폴 아저씨가준 2010년의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그는 다시 어린이들을 만나러 황급히 떠나갑니다. 착한 눈 그늘을 만들며 그가 웃어 보입니다. 그 미소가 공기를 미세하게 흩뜨려놓습니다. 나도 덩달아 웃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건 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글 최혜경 기자 사진 하성욱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