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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인테리어 디자이너 심정주 씨 내 인생의 '즐거운 뜨락'에서
여관, 밥집, 술집. 하나만 하기도 벅찬 일이다. 차츰 하던 일을 줄이고 안온한 것을 생각해야 할 나이에 떡하니 이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벌인 이가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정주 씨. “친구들은 늙어서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핀잔이지만 ‘여관집 아줌마’는 저의 아주 오랜 꿈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가느다란 목소리에서 단단한 울림이 느껴진다.

추위가 막 가시기 시작한 지난봄의 일이다. “아주 tiny tiny한 건물을 짓고 있어. 옥상에는 꼬꼬닭을 키울 거야. 왜 우리가 옛날에 고급 여관 하자고 했던 말 기억나?” 오랜 친구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우연찮게 전달받고는 ‘매일 아침 그 닭이 낳는 알을 먹고야 말겠다’는 격한 표현을 보고 웃음 지은 기억이 난다. 여름에 완공 예정이라는 건물 옥상에 작은 텃밭을 일구고, 시골 가서 춘향이 선발하듯 아주 예쁜 닭만 골라 세 마리를 데려오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도시민에게는 너무 소박하기에 더 재미난 이벤트가 아닌가. 마포구 서교동 윈 Win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옥상에는 지난 주말 선발되어 서울로 이사 온 정선의 토종닭 세 마리가 벌써 둥지를 틀고 있었다.
소규모 디자인 회사와 넘쳐나는 젊은이로 북적이는 마포구 서교동. 서울 서쪽이라고는 김포공항만 알던 십수 년 전, 먼 훗날의 노후를 위해 이 자그마한 단독주택을 사두었다는 심정주 씨는 지난해 드디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난 10월 중순 오픈한 윈 게스트하우스&카페. 마당 딸린 이층집을 헐고 5층 건물을 짓는 데 1년이 걸렸고, 가구와 패브릭 세팅, 메뉴 준비 등으로 또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콘셉트와 크기가 모두 다른 여섯 개의 방은 모두 그가 디자인한 것.

1 다다미 장인, 보이차 전문가 등 숨어 있는 진짜배기를 찾는 일이 즐겁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정주 씨.


2 옥상에는 작은 텃밭을 마련해 토종닭을 키운다.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도시 풍경과 자못 상반된 이미지다.


3 모던한 분위기의 401호. 세탁기 등 빌트인 가전제품을 슬라이딩 도어로 가리고, 난간에 철제 봉을 설치하는 등 투숙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공간 구성은 물론 마감재, 가구와 욕실수전 하나까지 모두 직접 골랐다. 문득 필립 스탁이 리뉴얼한 영국의 샌더슨 호텔,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이탈리아 베로니의 비블로스 아트 호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그리스 아테네의 세미라미스 호텔이 스쳐 지나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감각적인 부티크 호텔 콘셉트냐는 질문에 “부티크 호텔은 좀 거창하고 그냥 아침이 나오는 게스트하우스, B&B라고 하자”라는 멋쩍은 대답이 돌아왔다. B&B는 ‘bed and breakfast’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영국에서 시작한 숙박 종류로, 우리나라에는 약간 변형된 형태인 ‘펜션’이 있다. 열 개 이내의 방을 갖춘 크지 않은 규모의 숙소는 마치 친척 집을 방문하듯 마음 편안한 서 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숙박업에 뛰어든 것은 외국을 많이 다닌 경험 덕에 누구보다 여행객의 마음을 꿰뚫어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간단히 그의 이력을 소개하자면 그는 좀 남다른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가정학을 전공했지만 결혼 후 미국을 비롯 캐나다, 영국,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터득한 이국적인 문화 체험을 밑거름 삼아 지난 1987년 심 인테리어(현 윈 인테리어)를 열고,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다지난 2004년에는 직접 고친 30평 한옥 기사가 <행복>의 지면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공간’을 디자인할 때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누구나 편안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이 들어야 한다”는 것과 “각 공간에는 스토리가 담겨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다. “뉴욕 소호의 ‘톰슨 60’이나 디자이너 아제딘 알리이아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파리의 3rooms등 외국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감성적인 부티크 호텔이 많아요. 5성급 B&B도 있고요. ‘디자인 도시’를 추구하는 서울은 어떨까 생각해보니 북촌 게스트하우스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더라고요. 보통 어느 장소에서 잠을 자느냐가 여행의 품질을 결정하는데 말이죠. 우리나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편안하고 콘셉트분명한 ‘고급 여관’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1 프랑스의 고풍스러운 호텔 객실을 연상케 하는 302호. 프랑스에서 주문한 앤티크 가구와 실크패브릭으로 만든 방석 커버, 침구, 커튼 등이 우아한 분위기를 완성해준다.
2 그는 정성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한다. 공단을 사용해 재단부터 바느질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블랭킷과 천연 리넨 원단으로 만든 포푸리 등이 그것이다.



3 우리는 흔히 대도시, 그것도 유명한 곳 위주로 여행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 둘러싸인 곳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란 어렵다. 그런 만큼 마치 친척 집을 방문한 것 같은 편안한 숙소가 필요하다. 한실 룸은 바로 그런 공간이다.


4 동심에 빠져들 수 있는 수딩 룸은 윈게스트하우스만의 독특한 볼거리다.

공간에 대한 열정, ‘여섯 개의 방’에 담다
그는 우선 외국인 전용으로 운영할 생각이라고 했다. 여섯 개의 방 가운데 굳이 하나의방을 한국식 온돌방으로 꾸민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방학 때 찾은 할머니 집 온돌방의 푸근함,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는 여정의 묘미가 아닐까. 그런 연유로 객실에 유명 디자이너의 소품이나 값비싼 앤티크 가구를 채우기보다 외국인이 매력을 느낄 만한 우리네 전통 소품을 배치했다. 프렌치 스타일 콘솔 위에 닥종이 인형을, 하얀 리넨 침구 위에는 조각보 블랭킷을 데커레이션한점이 무척 감각적이다. 4층 룸은 모던한 디자인에 복층으로 꾸몄다. 1층은 거실과 주방, 덱까지 갖추고 있어 오랜 기간 머물거나 가족 여행객이 찾으면 좋은데, 특히 401호는 동남아의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넓은 덱이 시선을 끈다. 402호는 2층 침실에 또 하나의 다락방이 딸린 복복층 구조다. 수딩 룸 soothing room이라 이름 지은 다락방은 핸드메이드 인형과 장난감으로 꾸며놓아 세 살배기 그의 손녀 ‘윤’이가 벌써부터 숨어 놀기 좋아하는공간이다. “사실 이곳은 어른을 위한 공간이에요. 잠시나마 다락방에서 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어른을 위한 안식의 공간이죠.” 3층에 있는 네 개의 방도 구조가 무척 흥미롭다.우선 가장 작은 방인 301호는 맞춤 가구로 짜임새 있게 꾸몄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침대ㆍ책상ㆍ옷장 등을 짜 넣어 무척 콤팩트한 느낌인데,심정주 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하는 공간이다.

5 좁은 공간에 필요한 생활 가구가 적재적소 배치된 301호는 심정주 씨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방이다.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해 캐주얼하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완성했다.

 
6 302호, 303호, 304호는 공동 거실을 사용할 수 있다. 유럽 가구와 한복을 입은 전통 인형을 매치한 것이 바로 심정주식 스타일링이다.

“만약 젊은 여행자라면 ‘진짜 내 방’이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편안하고 내추럴한 느낌이죠. 사실 가장 평범한 것을 원할 수 있으니까요.” 302호, 303호, 304호는 거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 개의 방으로 나뉘는 구조다. 304호한실은 단을 높여 장판지를 깔고, 302호와 303 호는 카펫을 깐 다음 프렌치 스타일 가구로 꾸몄다. 이 가구 중일부는 그가 직접 사용하던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아침은 전통적인 영국식으로 준비한다. 빵과 버터, 잼, 달걀, 주스, 커피 등을 보기에도 아까운 아주 예쁜 접시에 담아 서브한다. 카페 겸 식당 We & Tea에서 사용하는 모든 그릇은 심정주 대표가 외국을 오가며 직접 하나씩컬렉션한 것들이다. 점심과 저녁에는 일반인도 간단한 브런치와 차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특별한 것은 바로 ‘차’다. 심정주 씨는 커 피보다는 몸에 좋은 차를 권하고 싶은 마음에 보이차를 예쁜 크리스털 잔에 2g씩 나눠 담아 별미 찐빵과 함께 낼 예정이다. 이 밖에 다양한 한차와 유자 에이드 등 건강 음료도 제안한다. 지하는 특별히 마련한 이벤트 스페이스다. “저희는 생각이 젊잖아요. 바와 클럽 등의 문화가 무척 에너제틱한 효과를 줄 수 있어요. 이벤트 스페이스는말 그대로 파티를 원하는 이에게 대여하는 형식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아들 무창 씨의 말이다. 버클리 음대에서 수학한 무창 씨는 어머니를 도와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다. 유학하는 동안 요리 만들기를 즐겨 한 그는 이태원 ‘레스토랑 서승호’의 오너 셰프에게 사사한 레시피로 간단한 브런치와 음료 메뉴를 개발 중이다. 모자에게 ‘왜 하필 게스트하우스냐’라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누구라도 이곳을 찾았을 때 모든 게 흡족해 ‘집 떠나와도 또 집’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 카페에서 사용하는 접시, 커트러리 등 앤티크 숍에서 하나둘씩 사 모은 컬렉션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3 카페 겸 식당. 가구는 물론 그릇, 테이블클로스, 유리잔, 찻잔 할 것 없이 모두 그녀의 안목으로 고른 것이다.



2, 4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를 맡은 아들 무창 씨는 요리 담당이다. 그가 직접 만든 오리엔탈 치킨 샐러드.
5 서교동에 위치한 윈 게스트 하우스(02-792-8627).


집은 세상의 중심이자 비즈니스의 중심이다 “오늘은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서 삼청동을 한 바퀴 걷고 왔어요. 삼청동 돌담 길에이끼가 푸릇하게 끼었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도심 속에서 이끼 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른 아침, 촬영을 위해 집을 찾은 기자에게 고즈넉한 북촌 예찬을 시작한다. 무엇이든 예쁜 것만 보면 무조건 감동하고 마는 그이기에, 그저 인테리어가 좋아서 혼자 경험으로 터득하고자연스럽게 업 業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운명인 셈이다. 그런 그가 <행복>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결과다(지난 1988년 5월호, 2004년 4월호에 그의 집 기사가 실렸다). 창경궁 돌담 길과 벽을 마주하는 원서동 한옥. 이 한옥은 7년 전 주춧돌만 그대로 두고 모두 헐어낸 뒤 2필지를 한 채의 집으로 레노베이션한 것이다. 2필지라고 하지만건평은 겨우 30평 남짓. 넓지 않은 평수지만, 방과 화장실이 모두 네개씩이고 부엌과 거실, ㄱ자로 꺾이는 복도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도 좁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한옥 특유의 높은 천장, 외부와 소통하는 남다른 공간 구성 때문일 것이다. 거실과 작은 침실 사이에 중정이, 대청마루와 부엌 사이에 마당이 자리 잡은 구조. 방 너머의 통유리창을 통해 중정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여느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평면 배치다. 7년 전과 바뀐 것이라고는 작은 침실에 딸린 다락방이다. 천장이 높다 보니, 그 남는 공간을 활용했을 뿐이다.


1 원서동은 도심 속에 있는데도 마치 시골 마을 같다. 대문을 나설 때 느껴지는 정겨움 때문에 동네를 산책하는 시간이 즐겁다.
2 작은 침실 너머 통유리창으로 거실이 보인다. 중정은 공간과 공간을 소통케 하는 유기적 요소다.


이곳이야말로 건너편 빌라에 사는 손녀딸 윤이를 위한 공간이다. 섰을 때제 키가 딱 맞아서 이곳에 오르는 걸 무척 좋아하는 윤이는 낮잠도,책 읽기도, 간식 먹기도 죄 다락방에서 한다. 가구의 생김새도 많이 달라졌다. 유럽 앤티크 가구는 일부를 게스트하우스로 보내고, 거실가구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으로 바꿨다. 아침마다 신문을 보는 거실 한편에는 아르네 야콥센 체어와 1950년대 데니시 디자인의 사이드테이블, 박수근 화백의 스케치가 잘 어우러지도록 배치했다. “이 모시 벽지는 시간이 지나니 더 멋스러워지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한지 혹은 모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프랑스에서 수입한 ‘아바카(동남아에서 자라는 아마과의 섬유)’ 섬유 벽지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삼베 벽지가 출시된 적이 있는데 색감이 이렇게 다양하지가 않았어요. 흰 바탕에 갈포 염색한 것은 금방 누렇게 변하는 단점도 있고요. 그 때문에 주로 일본이나 유럽 제품을 사용합니다.” 그는 우리것이 세계 최고라 이야기하기 전에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어느 책에서 보니 900년대 일본 궁에 있던 여인들은 옷을 12겹까지 겹쳐 입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기모노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 당의를 따른 것인데, 이를 자국의 문화로 내재화하면서 레이어드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죠. 12가지의 컬러 미학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거라 생각해요.” 얼마 전에는 그가 작업한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 한실 스위트룸이 크게 기사화되기도 했다. 한옥에 살기 때문일까? 너무 한국적인 이미지로 굳어진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한국 스타일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답한다. “단지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진면목, 우리네전통문화를 너무 모르니까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진짜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게 무얼까 생각했죠. 사실 프랑스에도 한지 벽지가 있거든요. 문살과 온돌 역시 중국 문화고요. 그러다 ‘장판방’을 생각했죠.” 상업 공간이라 단을 여난방 배관을 깔고 장판지를 바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대신 창가에 벤치를 만든 다음 장판지를 씌웠다. 지난 인터뷰에서도 얘기한 “한옥에 산다고 해서 굳이 한복 입고 생활하지 않듯이, 전통 공간이되 지금이 시대의 감각과 시각에 맞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1 한옥의 높은 천장은 다락방, 수납장을 짜 넣어 200% 활용한다.
2 거실 천장의 목구조나 기둥 등 이곳의 목재색상은 여느 한옥과 다르다. 하얗게 회칠해 전통 가옥 특유의 무게감을 줄인 대신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냈다. 고가구와 데니시 디자인 가구 매치가 멋스럽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한옥은 천장이 높은 탓에 자연 웃풍이 들어 추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서까래를 막으면 멋이 없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꼭 계절 때문은 아니지만 원서동 한옥에서는 봄가을 좋은 호시절만 보낸다는 심정주 씨. 여름에는 남편이 근무하는 워싱턴 DC에서, 겨울에는 하와이에서 지낸다. 미국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3개월 내지 6개월에 한 번씩 오가야 하기 때문에 그나마 중간점을 찾은것이 하와이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영화 같은 삶 아닌가. “하와이 집은 지난봄 공사를 마쳤어요. 편찮으신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노후를 지내시기 좋을 것 같아 마련한방 두 칸짜리 작은 집이에요.” 남편이 살고 있는 워싱턴 DC의 아파트는 1900년대 초에 지은 것인데, 건축상까지 받은 건물이다. 물론 두집 모두 그가 손수 인테리어했다. “미국 집을 꾸미면서 더 어려웠던 건내가 잘 모르는 외국 가구를 매치하는 것이었어요. 그네들에게는 앤티크나 골동품 모두 몸으로 터득한 전통일 테지만, 제게는 단순히 이국적인 오브제일 뿐이잖아요. 여백을 많이 두려고 프렌치 가구와 서울에서 가져간 고가구를 적절히 매치해 동양적 요소를 접목했어요.” 그래도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다다미방. 뉴욕 17번가에 다다미를 까는 일본 장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찾아나선 그는 워싱턴 DC로 와서 공사를 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외국이라 온돌방을 들일 수 없어 차선책으로 마련한 것이 다다미방이다. 폭신한 쿠션감이 있어 방에서 스트레칭과 요가를 할 수 있고, 가족 단위 손님이 오면 온돌방처럼 한방에서 한이불을 깔고 잘 수 있다. 큰 쿠션 하나만 있으면 앉아서 TV를 보기에도 좋은 패밀리 룸이다. “남편 때문에 손님 초대가 잦은 편이에요. 보통 요리사를 부르는 게 일반적인데, 저는 드링크 서버만 부르고 메이드와 함께 직접 요리를 하죠. 사실 테이블 세팅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요리까지하려면 어휴!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어요.” 돌아오는 추수감사절에도 남편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모두 초대할 계획이다.
스스로를 일컬어 ‘그저 생활을 정리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 말하는 심정주 씨. 게스트하우스는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방이 여섯 개 더 생겼으니 얼마든지 하고 싶은 작업을 다 할 수 있다고 웃음짓는그의 모습을 보며 “변화에 적응하려면 두려워 말고 마음속 부품까지도 계속 갈아 끼워야 한다”는 말의 의미가 비로소 가슴으로 와 닿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가슴이 텅 비고 쓸쓸하다면, 그 헛헛하고 쓸쓸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무언가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열렬히 꿈과 마음을 표현한다면 실행 역시 가능할 테니. “우리가 과연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어요. 여행을 많이 다녀보니 세상 사람이 한국을 너무 모르고,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별로 없더라고요. 우리 것이 더 없어지기 전에 그저 알리고 싶었어요”라는 그의 말이 현답이다..

3 침실은 쉼의 공간이기에 조도를 낮춰 아늑하게 꾸몄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