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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집 안팎에서 다중 인격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밖에서는 개그맨, 안에서는 돌부처!

“어머~ 이렇게 재미있는 남편과 사시니 만날 웃으시겠어요!” 20년도 넘은 군대 모임에서 20년 만에 처음 나온 한 친구의 아내가 박 병장의 아내에게 던진 인사치레다. 모임의 사회를 도맡아 하고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으면 수십 가지개인기를 발휘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박 병장을 처음 보았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박 병장 아내는 그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은 탓인지 무덤덤한 반응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그 자리의 많은 친구는 그녀의 속내를 다 알고 있다. 올 초 그 부부의 집들이에서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녀가 공개적으로 불만을 털어놨기 때문이다.“밖에서는 개그맨이라고 하는데, 집에만 오면 입다문 돌부처예요. 신혼 때는 그렇게 웃겨주더니, 요즘은 집에서 말 한마디 안 하는 날도 있어요.” 그 자리에서는 다들 박 병장을 야단치고, 부인 편을 들어줬지만 사실 그곳에 앉은 남자 중 마음 안 찔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안과 밖에서가 다른 다중 인격의 모습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 많은 남자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우로 부부 싸움에서 많이 등장하는 여자의 레퍼토리 중 하나는 “당신은 밖에 나가서는 그렇게 친절하고 매너가 좋으면서 식구에게는 왜 그렇게 막 대해?”라는 것이다. 누가 초상이라도 당했다 하면 제주도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이 친정 한번 가자고 하면 뒤꽁무니를 뺄 때 저런말이 나온다. 부하 직원이 회사에 불만이 있다고 하면 밤새워 달래주는 사람이 어쩌다 아이 문제로 상의 좀 하려고 하면 피곤하다며 누워버릴 때도 저런 항의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는 사람이 사소한집안 문제에는 불같이 화를 내고 밴댕이처럼 삐칠 때 아내는 남편의 위선적 모습에 넌더리를 친다. 그럴 때마다 묵묵히 잔소리를 받던 남편이 한마디한다. “야, 집에서는 좀 쉬자. 밖에서도 힘들어 죽겠다.” 돈 벌어다주는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데, 더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와도 대부분은 참는다. 남편 말대로 ‘저 사람이 밖에서 얼마나 감정 노동을 해댔으면 집에서는 저럴까?’ 싶기도 해서 매번 본전도 못 챙기고 싸움을 접는다.
안에서는 줄줄 새다가 밖에서는 반짝반짝 견고한 바가지가 되는 남자들의 변신술을 이해하려면 그 심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다중 인격’이라는 말을 썼는데, 천성적으로 표리가 부동한 사람이 아니라면 현대인에게 이 의미는 그다지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 심리학자 퍼트리샤 린빌은 “다중성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적 반응이며, 자신의 다중성을 인식하는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의 영향을 더 적게 받는다”라고 했다. 또한 리타 카터 는 그의 책 <다중 인격의 심리학>에서 “산업화와 함께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하나의 진정한 자아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남자의 행동은 성품이 아닌, 경쟁 사회가 빚어낸 우울한 초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거기에 동물적 본능이 결합한다.
같은 남자로서 말하건대 남자들은 ‘뻥’이 세다. 군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다들 최전방 특전사 출신쯤으로 생뱀을 1백 마리씩은 잡아 먹었고, 왕년에 왕방귀 한번 안 뀐 남자가 없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다들 사업이 너무 잘되고,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대박이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그래 놓고서는 한 달 후쯤 돈 좀 빌려달라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남자가 이렇게 허세가 센 것은 남에게 강한 남자로 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모든 동물의 수컷은 강하게 보여야 먹이를 얻고 암컷을 차지한다. 잘 웃기고, 매너 있고, 대소사 잘 챙기고, 선후배 관리 잘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능력맨으로 대우받고 싶은 남자의 동물적 생존 본능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페르소나 persona의 가면을 쓰고, 사회라는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다. 여기에 남자 변신술의 핵심이 있다. 모든 배우는 관중의 호응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반응이 뜨거우면 신이 나고, 차가우면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어진다. 사회라는 무대에서 가면을 쓴 너와 나는 암묵적합의로써 무대 위 배우에게 ‘오버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그래야 자기에게도 그런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못 불러도 동료는 박수를 쳐주고, 군대 이야기를 할 때도 같은 남자들은 다 뻥인 줄 알면서도 경청해준다. 그다지 웃기지 않아도 웃어주고, 조그만 매너에도 감동의 리액션을 보이며, 동료를 잘 챙기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잔치를 벌여준다.
그런데 집에서는 어떠할까? 모르긴 몰라도 박 병장의 부인 역시 신혼 때는남편의 개그에 박장대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 어디 연애와 같은가?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시도 때도 없이 엉덩이춤을 추는 남편을 보며 철딱서니 없다고 힐난도 했을 것이고, 이제 지겨우니 그만하라고 지청구도 했을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밖에서 하듯이 아내에게 좋은 매너를 보여줬으나, 돌아오는 것은 무반응에 무감동이었을 수도 있다. 밖에서는 칭찬받던 일이 안에서는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돌아올 때 배우는 흥이 날 리가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심지어 입고 있는 팬티 속까지 꿰고 있는 상대에게 허세와 허풍이 들어갈 틈새도 없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쨍 하고 해 뜰 것이며, 자기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를 과시해도 이제 반응은 하품뿐이다.그러다 보니 신나는 건 회사 앞 ‘안개꽃’의 마담 언니뿐이다. ‘뻥질’을 못해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의 사내들이 밤이면 밤마다 모여 앉아 귀 넓은 마담 언니를 둘러싸고 허풍 공연을 펼쳐댄다.
그러므로 한 번쯤 점검할 것은 객석에 앉은 관객의 반응이다. 좀 더 적극적이고 좀 더 호들갑스럽게 남자의 유머와 매너에 화답하면 당신의 그이는 싸이가 노래한 바로 그 가사를 실천할 수도 있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줄게요. 언제나 처음 같은 마음으로. 난 그대의 연예인!”


윤용인(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트위터 @ddubuk) 

담당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