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구운 그림’ 시리즈 중 ‘Flowers of Freedom’, 600×200cm, glazed ceramic, 2010
그는 조물주의 첫 번째 재산, 흙으로 말 한 마리를 빚었다. 조물주가흙으로 사람을 빚었듯이. 흙을 판처럼 만들어 잘라 형상을 만들고 민화의 색과 문양을 옷처럼 입힌 말. 대여섯 번 구워 만든 ‘도자’ 말. 그 다리는 건물의 골조처럼 생겼다. 반듯한 직선으로 몸통을 지탱하는, 건축미가 느껴지는 다리다. 그리고 쾌감과 희열을 주는 원색. 이색은 물감이 내는 색이 아니다. 흙 안료로 색을 입힌 뒤 1250℃ 이상 온도에서 구워야 나오는, 흙과 불이 몸을 섞어 만든 색이다. “빛에서 태어난 색과 불에서 태어난 색은 달라요. 물감이 표현하지 못하는 색도 불에 구우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불에 구우면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우러나오면서 색이 익어요. 그래서 나는 이 색을 ‘우러나온 색’ 이라 말하죠. 그 색은 물감 색과는 격이 달라요. 마치 고려청자의 색처럼. 그 질감이 차가우면서도 깊이가 있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료, 흙으로 그가 빚은 원색의 생명이 11월호 <행복>의 표지 위를 내달린다. 원시의 바람을 가르며 숲을 가로지르듯 내달린다. 이 말은 분명 전사 또는 모험가의 말일 것이다.
‘한국 도자 예술의 리더’로 묘사되는 신상호 작가. 문화인 되기를, 지식인 되기를 꿈꾸는 이라면 그의 이름 석 자 정도는 익혀두어야 할 인물이다. 1970~80년대엔 청자와 분청 등 ‘도자기의 귀재’라는 소리를 듣던 정통 한국 도예가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레이건 미국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고 간 선물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 나비의 결혼식 때 우리나라에서 보낸 선물도, 이후 내한한 찰스 왕세자가 수소문해서 구입한 것도 그의 도자기였다.
이미 성층권을 노니는 예술가인데도 그는 어느날 넓고 평탄한 터전을 박차고 나섰다. 도자는 왜 조각품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 첫 도발이었다. 돈과 명예를 안겨다준 전통 도자기 작업을 미뤄놓고 ‘도조 陶彫’라고 하는 조각적 형태를 탐했다. 사람과 동물의 두상을 빚은 ‘Head’ 시리즈, 아프리카의 혼을 거대한 동물의 두상과 장승 같은 몸통으로 빚어낸 ‘Dream of Africa’ 시리즈까지 그는 조각의 영역을 ‘침범’했다(몇 달 전 <행복>과 인터뷰를 한 런던사치 갤러리의 CEO는 인터뷰 장소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놓인 ‘Head’ 시리즈를 보고 그 조각의 힘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Head’ 시리즈와 ‘Dream of Africa’ 시리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곳곳에 설치돼 있으니 직접 감상해보시길). 색에 대한 도발도 함께였다.전통 도자에서 쓰던 제한된 유약에서 벗어나 한 번도 칠해본 적 없는 원색들로 ‘아프리카의 꿈과 혼’을 마음껏 채색했다. 동물의 몸과 건축물의 골조처럼 생긴 다리를 연결한 ‘Structure & Force’ 시리즈에서는 설치미술로의 월담도 감행했다. 작품을 전시 공간 속의 거대한 금속, 아크릴 같은 구조물과 함께 설치했다(이번 <행복> 표지 작품은 ‘Structure & Force’ 시리즈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꿈을 꾸려 할 때마다 세상은 그를 이단아 취급했다. ‘자기 세계 없이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란 오해만, ‘나이스하게 도자기 잘 만드는 작가로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걸도자기라고 만들더라’라는 핀잔만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는 빈 들에 홀로 깨어 있는 그 밤을 개의치 않았다. 지인들에 따르면 ‘극단적으로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남자, 그래서 늘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것을 쏟아붓는 남자’여서, 그에 따르면 ‘새것을 추구하지 않는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니라는 삶의 신념’ 때문에.
‘Fired Painting’, glazed ceramic, 300×250cm
그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구운 그림(Fired Painting)’ 시리즈로 회화의 영역까지 침범했다. 흙 판에 다양한 색의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뒤 다시 고온에서 5~6번 구운 다음 그 도판을 이어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들도 숙명처럼 ‘우러나온 색’과 ‘차갑고도 깊이 있는 질감’을 지니고 있다. 한 제자의 이야기처럼 ‘도예 하는 사람에게 그릴수 있는 자유, 색깔의 자유, 즉 언어를 얻게 한’ 도발이다(그의 ‘구운그림’은 서초동 삼성전자빌딩 로비, 건국대의 50층짜리 실버타운 빌딩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지금 건축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구운 그림’을 간단히 조립해(접착할 때 시멘트를 쓰는 대신 알루미늄으로 만든 격자형 틀에 끼워) 건물 외벽을 감싸는 ‘건축 도자’가 그것이다. 건물에 아무런 손상도 주지 않고 옷을 갈아입듯 그림으로, 사람의 손이 그린 예술로 건물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가끔 술 먹으면 하는 소리라 어떨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혁명적인 IT 산업 이상일 수 있어요. 왜? 고갈되지 않는 흙이라는 자원과 고갈되지 않는 아이디어라는 자원을 쓰면 되는 것이거든. 게다가 교체하기도 쉽고, 환경친화적이고, 천 년이 지나도 색이 그대로이고. ‘구운 그림’으로 옷을 지어입은 집, 그 집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는 마을,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아요?”
명성의 찌꺼기 속에서 맴도는 대신 꿈을 내다보며 용맹 정진해온그. 그래서 그는 늘 외로웠을 것이다.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도 늘함께였으니. 그가 쓴 글이 그 답이다.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은 좀 제대로 진짜를 찾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난 내 세계와 만나기 위해 정말이지 투철하게 싸워왔다. 내 뒤에는 늘 나를 비판하는 자들투성이다. 늘 비판 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중략)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만 하고 사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 하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 남자에게 드라마가 없는 시대, 그의 이 힘찬 이야기가 자꾸 마음을 끈다.
고갱의 말처럼 하느님은 인간에게 약간의 진흙을 주셨다. 그는 신이 주신 그 약간의 진흙으로 도예와 조각,회화, 설치미술, 건축을 넘나들며 ‘평생 겁 없이, 맘대로’ 빚어왔다. 그건 결국 여러 가지 모습과 빛깔로 빚은 ‘꿈’이라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지루함을 경멸하는’ 그는 요즘 고대의 중국 청화백자를 수집 중이다. 또 무언가 ‘맘대로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 같다. 아프리카 미술품 수집이 ‘드림 오브 아프리카’로, 중국의 가형명기 家形明器 수집이 ‘구운 그림’의 상상력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번 수집 뒤엔 고구마 줄기처럼 또 무언가가 달려나올 것이다. 예술가이기 전에 모험가 또는 전사 또는 노매드로 살아온 그의 다음 도발, 궁금하다.
(오른쪽) 그가 실험 중인 건축 도자의 한 모습.
신상호 씨는 1947년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의 전통 도자로 시작된 그의 작품은 전통 도자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점차 조각적 형태로 변신을 꾀했다. 최근에는 ‘건축 도자’의 가능성을 깨닫고 도예와 건축이 만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980년부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홍익대 미술대 학장과 산업미술대학원장을 거쳤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지냈으며 <세계 건축 도자전> 등 흥미로운 전시를 여러 차례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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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 기사가 끝이 아닙니다. 모험과 도전, 열기로 가득 찬 신상호 작가의 삶과 일상 이야기가 2010년 12월호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통해 소개됩니다. 동물 조각과 수목이 함께하는 그의 정원, 평생 노매드로 살아온 그가 여행의 흔적으로 챙긴 컬렉션들, 눈이 번쩍 뜨이는 감각의 살림집까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조금만 기다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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