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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개그'가 사라진 시대에 '개그맨'으로 사는 남자 최양락이라는 아이러니
사람들을 웃게 하는 데 수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중에도 최고의 경지는 존재할 것이다. 개그맨 최양락 씨의 말을 빌리자면 ‘궁극의 개그’는 “아무도 망가지지 않는데 웃긴” 것이다. 당하는 사람까지 웃게 만드는 개그, 뒤끝 없이 깔끔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는 개그. 현존하는 개그맨 가운데 이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최양락이 유일하다. 그런 그가 주류에 섞이지 못하고 외로운 섬처럼 방송가를 부유한다는 사실은 분명 아이러니다.


요즘 가장 즐겨 보는 오락 프로그램은 ‘최양락의 알까기’다. 대결 구도가 성립되는 두 대국자가 나와 손바닥만 한 바둑판 위에서 무규칙으로 ‘알을 까는’ 행위만으로 개그가 성립한다. 이 게임을 생각해낸 건 ‘개그 황제’로 불리는 최양락 씨다. 시대가 변하고 개그의 토양이 바뀌었지만 그가 고안해낸 ‘웃음의 비밀 병기’만은 살아남았다.더욱 흥미로운 건, 예나 지금이나 이 게임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건 ‘해설가 최양락’이라는 점이다. 알까기 무대에 오른 대국자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절대 말을 할 수 없고 순한 양처럼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스타의 입은 막아놓고 깐죽 본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스타라도 최양락을 ‘받쳐주는’ 형국이니, 최양락식으로 말하자면 “이건 뭐 내 독무대지~”.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네로 25시’만 해도 열댓 명의 출연자가 등장했지만 모두 네로 황제를 떠받드는 역할이었고, 독백극에 가까웠던 ‘고독한 사냥꾼’도, 충청도 사투리로 ‘뒤끝 개그’의 정수를 보여준 ‘괜찮아유’도 모두 최양락의 독무대였다. 주목받아야 ‘사는’ 남자 최양락은 그렇게 한 시대를 구가하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찬란한 한때를 누렸다.

천재 개그맨, 그러나 비운의 사나이 개그 인생 30년. 강산이 세 번쯤 변했고 갓난쟁이 딸 하나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그사이 개그맨 최양락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전성기와 공백기, 승리와 좌절을 두루 맛본 개그 황제는 한때 아이돌 사이에 고명처럼 얹힌 ‘왕년의 스타’ 역할로 재기에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을 ‘받쳐주는’ 역할을 맡은 그는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급변하는 방송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후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동료 개그맨 이경규 씨와는 달리, 그는 청평 호숫가에 조용한 카페를 짓고 주류를 관망하며 ‘외로운 섬’ 처럼 살기를 자처했다. 사실 두 사람은 1981년 ‘개그맨 콘테스트 1기’로 데뷔한 동기간이다. 그 때문에 종종 ‘용과 호랑이’라는 비유로 대결 구도에 놓였지만, 정통 코미디와 콩트가 주류를 이루던 1980~90년대만 해도두말할 것 없이 그가 대세였다. 당시 개그맨 콘테스트에서도 최양락 씨는 대상을, 이경규 씨는 인기상을 수상했고, 잘나가던 PD들은 모두 최양락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자타 공인 대한민국에서 제일 웃기는 개그맨, 그러나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희극인. “친구들이 강호동, 유재석은 아는데 아빠는 모른다”는 딸의 발언에 오기가 생겨 재기를 결심했지만 ‘찧고 까부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는 일은 불편할 뿐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는커녕 치고 들어가기 바쁜 토크형식은 소심한 성격의 최양락씨에겐 영 맞질 않았고, 스튜디오에서도 충분히 웃길 수 있는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물에 빠지고 산을 타는예능은 개그맨이 아니라 ‘예체능인’이 된 것 같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개그’가 사라진시대에 ‘개그맨’으로 존립하는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 같았다. 그렇게 또다시 포기할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뜻밖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MBC에서 정통 코미디와 예능의 접합점이라 할수 있는 ‘웃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신설해보자는 제안을 해온 것.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애매한 콘셉트였지만 후배들과 함께 설 수 있는 무대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는 <꿀단지>라는 프로그램에서 후반 25분 동안 ‘알까기’ 코너를 맡았다. 추억의 코너가 부활하자 그에 걸맞은 화려한 게스트도 순조롭게 섭외됐다. 이외수 vs. 김태원, 김구라 vs. 탁재훈, 엄태웅 vs. 고현정…. 누가 봐도 흥미로운 라인업에 최양락의 입담이 더해져 ‘알까기’는 삽시간에 그 옛날의 명성을 되찾았다. 그런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알까기’ 단독 코너의 시청률은 10%를 웃돌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후배들이 이끄는 콩트 코너는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다(<꿀단지>는 평균 시청률 저조로 10월말, 종영을 앞두고 있다). “결국은 제작비 문제지, 뭐. 일요일 오전에 하던 걸 수요일 새벽으로 옮기더니 방송 시간도 50분으로 줄이고…. 제작비는 뭐, 6.25사변도 아니고 1천9백50만 원이 뭐야. 그걸로는 ‘알까기’ 게스트 섭외도 빠듯해요. 그렇다고 그것만 살릴 수도 없는 문제고. 안 그래요? 남들이 그럴 거 아니야. MBC 쟤네들은 뭐 ‘알까기’ 없으면 죽나? 억울해도 어쩔 수 없지, 포기하는 수밖에. 오죽하면 내가 PD한테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요. 아니, 누구는 프로그램을 대여섯 번말아먹어도 잘만 하고 있고, 나는 시청률이 나와도 도매금으로 밀려나고. 젠장, 이거 나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
PD에게 편집점을 일러주고, 작가를 불러다 앉혀놓고 대본을 받아 적게 하던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푸대접은 자존심이 아니라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뻔히알고 있으니 가슴을 칠 밖에 별다른 방도가 없다. “얼마 전에 <웃찾사>도 폐지됐죠. 이제뭐, 코미디 프로그램이라고 할수 있는 건 <개그 콘서트> 하나 남았지. <개콘>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PD, 작가, 연기자가 머리맞대고 극을 짜내서 같이 연습하고 토론하기 때문이에요. 누가 우위에 서고 그런 거 없어요. 옛날에 유성이 형이랑 한창 활동할 때 우린 그랬어요. 형이 별로 안 웃기면 PD가 그 자리에서 재미없다고 바로 얘기해요. 그럼 보완점을 찾았죠. 내가 그래도 마찬가지고, 대통령이 그래도 마찬가지였어요. 근데 지금은 뭐, 그런 분위기는 사라졌다고 봐야 하니까…. 또 다른 이유도 있죠. 기자님은 개그 프로그램이 왜 자꾸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진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몇몇좋은 대학 나온 PD나 작가들이 머리 싸매고 앉아서 개그를 짜요. 근데 그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만들어놔도 반응이 그저 그래. 그러니까 코미디를하면 PD들 역량이 작아지는 거지. 자기들 영향력은 작아지고 최양락만 돋보이니까 하기 싫지 않겠어요? 한마디로 개그맨한테 끌려가는 게 싫은거지. 이제는 연기자보다 PD가 더 부각되는 세상이에요. <무한도전>도 뜨지만 김태호라는PD가 더 주목을 받잖아요. 근데 그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요?”

30년 개그 인생의 멘토, 전유성
그가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최양락 씨가 최고의 스승으로 꼽는 개그맨은 전유성 씨다. 그를 처음으로 대면한 건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아마 그때 전유성 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최양락 씨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개그 인생을 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당시 전유성 씨는 영화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약속을 하고 찾아갔더니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더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양락이라고 합니다. 이번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유성 씨는 만화책으로 눈을 돌리며 귀찮다는 투로 대꾸했다. “어떻게 왔냐?” “그냥, 놀러 왔습니다.” “그럼 놀아라.” 그래도 명색이 대상을 탄 후배인데 조금은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기대했건만 전유성 씨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전유성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대상 먹은 얘긴 들었다. 근데그런 아이디어는 말이야, 난 하루에 1만 개 아니, 2만 개도 만들 수 있어.”
“….” “너 달걀의 용도를 한번 이야기해봐.” “달, 달걀요? 음…, 프라이도해 먹을 수 있고, 날로 먹을 수도 있고, 삶아 먹을 수도 있고….” 전유성 씨는 그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난 달걀을 가지고 2천3백67가지 일을 할수 있어. 마사지도 할 수 있고, 옆집에 선물로 보낼 수도 있고, 퇴계로 위에서 달걀 던지기 시위를 할 수도 있어.” 순간, 누군가 머리를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개그맨이라면 일반인과 관점이 달라야 한다는 걸 전유성 선배가가르쳐준 셈이다. 그날 이후 그는 전유성 씨의 사무실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그를 진정한 스승으로 모셨다.
‘개그계의 신사’로 불린 주병진 씨 또한 그에게 가르침을 준 동료다. 어찌보면 최양락 씨가 추구하는 개그 스타일과 가장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주병진 씨다. 그는 늘 깔끔한 정장을 입고 나와서 개그를 했다. 몸으로 웃기기보다는 말로 웃겼고, 안 웃길 것처럼 점잔을 빼고 있다가 화려한 언변으로 정돈된 웃음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개그맨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심하게 망가지는 개그를 하던 시절에도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깔끔한 개그를 고집했다. 주병진 씨는 무엇보다 완벽주의자다. 어떤 개그를 던졌을 때 사람들이 웃을 경우와 웃지 않을 경우를 모두 대비해서 개그를 짰다. 또 관객이 웃지 않으면 그 이유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했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깨알 같은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이가 바로 주병진 씨다.
최양락 씨가 가장 본받고 싶은 개그맨은 ‘2등의 미학’을 아는 임하룡 씨.그는 최고이던 순간을 잊고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안목과 여유를 가졌다. 매번 최고의 멘트를 날리겠다는 각오 대신 힘을 빼고 여유 있게 방송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임하룡 씨는 ‘경조사의 달인’이다. 연예계에 기쁜일이 생기거나 슬픈 일이 생길 때면 제일 먼저 달려간다. 그래서인지 그에겐 적이 없다. 주변에서 그를 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관심을 갖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도 개그맨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라는 걸 알게 해준 선배다. 넘치는 에너지로 ‘버라이어티 정신’을 만들어낸 강호동 씨, 특유의 편안함과 따뜻함으로 게스트를 배려하는 유재석 씨, 타고난 재능이 훌륭함에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노력하는 남희석 씨, 상대방을 끌어내리지 않고 스스로 망가지면서 웃음을 주는 정형돈 씨. 그들 또한 배울 점이 많은 후배들이다.

죽을 때까지 개그하는 사람으로 살겠다
“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나는 콩트도 했고, 사회도 봤고, 시키면 예능도 다 할 수 있어요. 근데 예능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에요. 딸아이도 그렇고 애 엄마도 그렇고, 왜 자꾸 숨어서 지내느냐고야단해서 다시 나오긴 했지만 아닌 건 아니더라고요. 내가 이제 와서 강호동이처럼 체력을 길러서 예능계를 평정하겠다, 그런 마음도 없어요. 나는 콩트를 하는 사람이고, 지금은 그런 무대가 많이 없으니까 조용히 살 뿐이죠.” 그는 젊은 시절에도 그랬다. 섭외가 안 들어오면 방송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일 없으니까 방송사 얼쩡거린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다. 방송 관계자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법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후배와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법도 없다. 그래서 방송가에선 모든 사람에게 그를 ‘독불장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사람을 웃기는 일뿐인걸. 그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개그에 미쳐 개그만 연구했고, 방송이 끝나면 회식 자리에서 밤이 새도록 후배들을웃겼다. 그냥 숨 쉬듯이 개그를 한 것이다. 동료와 사담을 나눌 때도,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는 늘 상대를 웃길 궁리만 한다. 그건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개그맨은 집에서는 말도 없고 무뚝뚝하다지만 최양락 씨는 정반대다. 아내 팽현숙 씨와의 부부 생활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콩트다. 팽현숙 씨는 개그우먼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를 가장 잘 ‘받쳐주던’ 동료였다. 실제로 아내와 함께 출연하고 있는 케이블 프로그램 <부엉이>는 시청률이 2%나 나온다(케이블 방송에선 시청률 1%만 넘어도 회식을 한다).
최양락 씨의 ‘깐죽 본능’ 일화는 개그맨 후배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회자될정도로 유명하다. 언젠가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야자 타임을 하는데 주병진 선배가 이제 그만하라고 경고 사인을 날렸음에도 “그만하긴 뭘 그만해이 자식아!”라며 일갈했다가 족발로 머리통을 제대로 얻어맞았다. 또 한번은 이홍렬 씨가 “양락아, 너랑 경규랑 동기지? 근데 경규그 자식은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불 좀빌려달라고 하면 될 걸 내가 피우던 담배를 말도 없이 쏙 빼가서 불을 붙이더라?” 그러기에 웃기고 싶은 본능을 참지 못하고 “아유, 경규 그 자식은 왜 그랬대요?” 하고는 이홍렬 씨가 물고 있던 담배를 빼앗아 불을 붙였다. 최양락 씨의 행동에 더 화가 난 이홍렬 씨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구두를 벗어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고.
가족을 웃기고, 동료를 웃기고, 대중을 웃기는 ‘뼛속까지 개그맨’인 최양락 씨. 그렇게 개그 인생 30년을 살면서 그만의 개그 철학이 생겼다. “개그에는 몇 단계가 있어요. 자학해서 웃기는 개그는 1단계고, 남을 망가뜨려서 웃기는 개그는 2단계예요. 그렇다면 가장 좋은 개그는 뭘까요? 정답은 ‘아무도 망가지지 않는데 웃긴 개그’죠. 당하는 사람까지 웃을 수 있는 개그, 그게 바로 제 철학입니다.” 인간이 1백 년을 산다고 치면 그는 딱 절반을 산 셈이다. 세 살 때부터 개그를 했으니 죽을 때까지 개그를 한다고 치면 1백 년 동안 개그맨으로 살다 죽는 셈이다. 1백 년 동안 ‘웃기기만 하다갈’ 남자…. 이것이 바로 ‘최양락’이라는 아이러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인생은 유머러스!>(대림북스)그가 최근 출간한 <두말할 필요 없이, 인생은 유머러스!>는 30년간 개그맨으로 살면서 겪은 경험들과 그러면서 깨달은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그동안 함께 활동한 동료 개그맨들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 칭찬과 배려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글 정세영 기자 사진 하성욱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