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서아시아의 항구 도시다. 아랍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페르시아인, 터키인 등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있는 곳. 이름만 들어도 이국적인 색채가 풍기는 베이루트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도시다. 회교 사원과 아르메니아 교회, 아라비안나이트 시대를 재현한 듯한 시장이 늘어서 있는가 하면, 두바이에 버금가는 최첨단 빌딩과 호화스러운 쇼핑가도 자리 잡고 있다. 동시 상영하는 영화처럼 아랍어와 프랑스어, 영어가 동시 다발로 들리는 거리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이 도시의 끝자락에는 이곳이 아랍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청명한 바다가 빛나고 있다. 요르단, 이집트의 부자들은 다른 아랍 국가와는 달리 반바지와 민소매를 마음껏 입을 수 있는 베이루트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너른 바다를 만끽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해안가에 별장을 지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를 기다리는 곳은 동양과 서양, 기독교
와 이슬람교가 조화와 충돌을 거듭해온 ‘영광과 상처의 도시’ 베이루트가 아니다. 베이루트 안에서도 특별한 곳, 아무에게나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보석 같은 장소다.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고요히 베이루트속에 자리 잡은 쉬르속 Sursock 궁전이 우리의 방문지다.
1 중앙 홀. <아라비안나이트> 속 세계를 연상케 하는 아랍식 구조지만 자세히 보면 유러피언 터치가 가미돼 있다. 레이스를 오린 듯한 천장 장식과 벽 장식은 그 자체로 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2 정원에서 바라본 쉬르속 궁전은 아랍식과 유럽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베이루트에서 보기 드물게 풍요로운 정원과 그 사이에 자리 잡은 달걀빛 궁전은 지나간 베이루트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하다.
3 층과 층을 잇는 거대한 계단이 메자닌 형태로 중첩되어 있어 그 자체로 장관을 이룬다. 계단의 요소요소에 가족이 남긴 다양한 오브제와 미술 컬렉션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하다.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소음으로 가득한 베이루트는 아주 먼 세상이 된다. 유칼립투스, 파피루스, 사이프러스 그리고 바다처럼 푸른빛의 신비한 꽃을 피우는 자카란다, 여자의 입술처럼 붉은 꽃이 달린 아카시아, 부겐빌레아, 가르데니아…. 그 이름을 하나씩 읊조릴 때마다 지중해의 냄새가 코끝에 맴돈다. 정원 한쪽에는 비잔틴 시대에 조성된 무덤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 페니키아, 비잔틴 그리고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세월이 이 정원에 남긴 그림자 때문일까? 이 정원에서는 절로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울창한 나무들 너머로 궁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엷은 달걀빛 궁전은해를 머금고 있는 것만 같다. 서정적인 지중해식 로지아 loggia가 정원과 궁전을 이어준다. 긴 그림자를 밟으며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맥이 탁 풀린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회랑식 홀에는 대리석 기둥들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고 있다. 백만 개의 레이스를 엮은 듯한 섬세한 천장 장식,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푸른빛 유리창, 사방에서 방문자를 맞이하는 초상화가 이 궁전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기원을 따지자면 비잔틴 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그 역사가 오랜 쉬르속 가문은 대대로 터키와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집트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소유한, 대지주 가문이었다. 쉬르속 궁전을 지은 사람은 수에즈 운하 건설에 재정 지원을 할 만큼 정력적인 활동가이던 무사 쉬르속 Moussa Sursock으로 현재 쉬르속 궁전의 주인인 레이디 코크라인 Yvonne Sursock Lady Cochrane의 할아버지다. 이집트에 거주하던 무사 쉬르속이 베이루트로 거주지를 옮긴 이유가 흥미롭다. 그는 여섯 명의 딸을 두었는데 열정적인 애국자여서 딸들을 모국인 레바논에서 결혼시키고 싶어 했다. 게다가 19세기 중 반의 베이루트는 동서양이 혼합된 세련된 문화의 도시였다. 유럽과 서아시아를 잇는 베이루트의 활기찬 분위기, 온화한 기온과 풍부한 광량, 아름다운 자연은 그가 베이루트로 거주지를 옮긴 또 다른 이유였으리라.
무사가 쉬르속 궁전의 초석을 놓은 것은 1850년의 일이다. 당시 베이루트의 저택은 네모진 저택의 한가운데 중정을 둔 정통 아랍식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무사는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열린 궁전을 꿈꾸었다. 정원을 향해 활짝 열린 집, 여름이면 꽃향기로 가득한 그 집의 거실에서는 지중해의 푸른빛이 마음을 달래주었으리라. 그리하여 쉬르속 궁전은 당시에 지은 저택으로는 보기 드문 유럽식 구조에 아랍식 건축 양식을 더한 특이한 외양을 지니게 되었다. 전통 속에서만 안주하여 고집스럽게 살아가던 동시대의 베이루트 상류층에 비해 그는 본 것도, 들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궁전의 지붕을 떠받치는 대들보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나 다름없는 금속 대들보로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한다. 무사는 쉬르속 궁전의 작은 것 하나에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만국박람 회에서 여러 번 대상을 타기도 한 유명 가구 업체인 파리의 크리에게 Krieger의 가구를 주문했고, 카펫으로 유명한 터키의 스밈 Smyme 지역에 직접 카펫을 주문했다. 터키, 페르시아 등지에서 무사가 주문한 카펫들은 지금은 그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컬렉션이 되었다.
정원이 바라다보이는 위층 살롱은 다양한 가족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섬세한 장식이 돋보이는 아랍식 창틀과 유럽 가구, 오브제 아트 컬렉션, 수공예 카펫 등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1 겨울 살롱으로 들어가는 공간에는 거대한 스밈 카펫이 깔려 있다. 그림은 모두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으로 베니스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가족의 역사를 엿보게 해준다. 함께 걸린 태피스트리는 17세기 작품. 거대한 문은 알프레드 쉬르속이 나폴리에서 가져온 17세기 작품이다.
2 손녀의 방은 이 궁전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가족의 보금자리임을 보여준다. 손녀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하나까지도 대대로 물려 내려온 것일 만큼 이 가족의 역사는 궁전 어디에서나 숨 쉬고 있다.
무사에게 쉬르속 궁전을 물려받은 이는 무사의 아들이자 레이디 코크라인의 아버지인 알프레드 쉬르속Alfred Sursock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엘리트로 파리의 오토만 대사관에서 25년이나 근무하기도 한알프레드는 사교계에서도 이름 높은 댄디였다. 턱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파나마모자를 쓴 초상 사진 속 알프레드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한 젊음 그대로다. 직접 그림을 그릴 정도로 미술과 예술을 사랑한 그는 다양한 화가의 작품으로 쉬르속 궁전을 장식했다. 동서양이 혼합된 문화적 배경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재산, 게다가 예술을 사랑하는 댄디 보이였으니 여성 편력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시리아에 주둔하던 터키 군부대의 연대장이자 괄괄한 성격과 군인다운 단호함으로 유명하던 디제말 파샤 Djemal Pacha의 부인을 비밀 연인으로 둘 만큼 화려한 댄디 보이였던 알프레드가 결혼을 결심한 것은 50대가 되어서였다.
그의 부인은 나폴리 여행에서 만난 돈나 마리아 세라 Donna Maria Serra로, 나폴리의 귀족인 세라 디 카사노 Serra di Cassano 공작의 딸이다. 나폴리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고명딸인 만큼 돈나 마리아의 예술적 심미안 역시 알프레드 못지않았다. 오늘날 나폴리의 몬테디 디오 거리에 위치한 철학 인스티튜트가 바로 돈나 마리아가 자란저택이다. 이곳은 요즘도 대리석으로 지은 이탈리아풍 계단과 건축물 그리고 치아킨토 디아노 Ciacinto Diano의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명승지이기도 하다. 쉬르속 궁전의 안주인이 되면서 돈나 마리아는 고향인 나폴리에서 여러 예술품을 가져와 궁전을 장식했다. 18세기 나폴리에서 제작한 가구와 17세기 나폴리 거장들의 그림,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마이센 자기 컬렉션 등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작품이 마리아 세라의 손을 거쳐 쉬르속 궁전에 제자리를 찾았다.
이탈리아의 문화적 취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부인과 파리지앵다운문화적 감수성으로 유명한 남편이었으니 이 커플의 우아한 취향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1757년 런던에서 출판한 로버트 우드 Robert Wood의 <폐허의 발백(Ruins of Balbek)>, 1836년 튀랭에서 발간한 로베르티 다젤리오 Roberti d’Azeglio의 <중동여행서>, 1802년에 발간한 볼테르의 철학 책 등 귀한 고서가 가득한서재와 카라바조 화풍의 그림이 걸려 있는 살롱, 18세기 프랑스 조각가 클로디옹 Claudion의 조각품이 놓인 작은 살롱, 16세기 플랑드르에서 제작한 태피스트리로 장식한 식당…. 이 커플의 취향은 쉬르속 궁전의 컬렉션 속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3 겨울 살롱의 전경. 클로디옹의 사튀리스와 님프, 19세기의 마할 카펫, 17세기의 다양한 초상 작품이 어우러진 겨울 살롱은 예술 작품만큼이나 섬세한 벽 장식이 돋보인다.
4 진귀한 고서를 보관한 서재는 작은 도서관을 연상시킨다. 나무로 마감한 벽과 가족 초상화가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알프레드가 그냥 단순한 귀족이거나 사교계의 총아이기만 했다면 베이루트 시민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베이루트로 돌아온 알프레드는 위태로운 전쟁의 틈바구니에서도 경마장과 카지노를건설했다. 다른 거부들이 베이루트를 등지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무렵에도 베이루트를지키며 무려 4백 명이 넘는 인부를 동원해 공사를 독려했다. 용의주도한 사업가이자 정치적 식견이 남보다 앞선 그는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돌아올 베이루트의 번영을 확신한 것이다. 터키의 위협에 맞서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까지 사람을 보내 말과 나귀, 낙타 등 모든 운송 수단을 동원해 밀을 실어 나른 이야기는 아직까지 전설로 전해질 정도다.
이 쉬르속 궁전을 물려받은 이가 그들의 외동딸인 이본 쉬르속으로,후에 아일랜드 귀족인 코크라인 경과 결혼한 뒤 레이디 코크라인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주인이다. 문화적인 부모와 대대로 이름 높은 가문, 게다가 영국 귀족의 부인이라니 언뜻 들어도 환상적인 조합이다.그러나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는가 보다. 베이루트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그녀가 현재의 쉬르속 성을 지키기까지는 많은 용기가필요했다.
1 레이디 코크라인 전용의 작은 거실에는 아들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작품은 돔 로베르 Dom Robert의 태피스트리 작품이다.
2 어디에 눈길을 주든 가족이 대대로 소장해온 가구와 오브제 아트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이 궁전은 어느 한구석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3 16세기 플라망드의 태피스트리 작품이 걸린 식당의 테이블 위에는 보헤미안 크리스털 식기가 가득하다.
1975년 내전으로 시작된 레바논 전쟁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개입을 거쳐 본격적인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지리하게 이어졌다. 전쟁을 틈타 강도가 횡행했고, 대낮에도 거리를 활보할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한 정세가 계속되었다. 19세기에 지은 수많은 저택과 관공서는 폭탄을 맞아 주저앉았으며 베이루트를 등진 시민들의 피란 행렬이 줄을이었다. 생사가 단 몇 초의 차이로 교차되는 현장에서도 그녀는 쉬르속 궁전을 떠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이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 바로 쉬르속 궁전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궁전의 외곽에 남아 있는 총알과 포탄 자국이 당시의 상황을 역력히 보여준다. 문을 닫아 걸고 궁전에 숨어 두문불출 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쉬르속 궁전은 베이루트 시내에 남아있는 가장 큰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쟁 후 그녀는 레바논과 베이루트의 옛 유적과 문화재를 보호하는 운동을 펼치기 위해 사회단체를 만들었다. 전쟁은 지나갔지만 총성 없는 전쟁이 베이루트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상처 입은 유적들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거대한 마천루를 세우고자하는 부동산 업자들과 오로지 경제 발전만 생각하며 건축 인허가를 남발하는 정치인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절 우리의 이야기가 지금 이곳 베이루트에서 일어나고 있다. 쉬르속 궁전을 둘러싼 여타의 저택들은 대부분 이 업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레이디 코크라인과 코크라인 경, 그리고 세 아들이 함께한 가족사진.
이들은 수많은 기억이 얽히고설킨 건물을 부수고 그 자리에 어디에서나 볼 수있는 무미건조한 빌딩을 지을 것이다. 누군가는 남아 있는 것들, 다시는 되살릴 수 없는 기억들을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베이루트에서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레이디 코크라인이다. 올해 87세가되는 그녀는 영어와 아랍어,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쉬르속 궁전의 살롱을 활발한 사회 활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떠나간 저녁 시간, 오늘도 레이디 코크라인은 쉬르속 궁전의 살롱에서 뉘엿뉘엿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어디에선가 슈만의 심포니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1957년 피아니스트인 빌헬름 켐프 Wilhelm Kempf가 이 궁전을 방문해 리사이틀을 열었을 때 온궁전의 정원이 울리도록 들려오던 그 아름다운 소리다. 이 궁전 속에는 지난 역사의 시간과 사람들의 모습이 켜켜이 쌓여 층을 이루고 있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를 역사라 한다. 그 역사의 소리가 오래도록 보존되기를, 그리하여 몇백 년 후에도 이 아름다운 세계가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 그대로 남기를 기도한다.
- [세기의 컬렉터]레바논 베이루트의 레이디 코크라인과 쉬르속 궁전 레바논 베이루트의 레이디 코크라인과 쉬르속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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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중해를 품은 ‘중동의 파리’ 레바논. 기나긴 내전을 겪으면서 상처투성이 도시로 변한 이곳에 지금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어느덧 마음은 가고 몸만 남은 옛사랑 같은 이 도시는 옛 흔적을 갈아엎고 그 위에 마천루를 올리려는 이들로 소란해졌다. 그 소란함 속에서 150년 이상 된 저택을 보존하며 시간의 역사를 조용히 갈무리하는 레이디 코크라인의 이야기에 절로 마음이 간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