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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갤러리]제주 박여숙 화랑의 <허달재 병풍>전 현대 공간 속 리빙 아트로 부활하다
예부터 병풍은 서예나 그림 또는 자수로 장식해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쉽게 접고 펼 수 있게 만들었고, 방 안에 둘러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 오늘날 우리 집 공간에서도 멋진 리빙 오브제로 그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모던 공간에 펼친 병풍의 멋.

원래 병풍은 방 안이나 마루에 둘러쳐서 바람을 막거나 시선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던 가리개다. 서양에서 사용하는 커튼이나 파티션의 쓰임새와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 병풍은 단순히 기능적인 실용성에 머물지 않고 관상을 목적으로 한 예술 생활 가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사각형 나무틀에 종이를 여러 겹 바른 후 그림이나 서예, 자수 등을 붙여 장식했는데, 방의 용도에 따라 놓는 병풍의 그림이 달랐다. 사랑방에 놓는 병풍은 유명한 한시나 금강산 일만 이천봉, 관동팔경 등의 산수화 그림이 많았다. 또 연로한 부모의 방에는 백수백복 白壽白福, 화조도 花鳥圖, 십장생 등의 그림이 있는 병풍을 주로 사용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종묘제례 등 궁중 의례 때 사용하던 모란화 병풍부터 규방의 아낙네가 옷을 갈아입을 때 사용하던 가리개까지, 병풍은 우리 삶 속에서 일상생활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물론 공간을 꾸며주는 데커레이션 효과 또한 다채로웠다. 오늘날 생활 속 리빙 아트의 한 모습으로 다시 부활한 병풍은 현대적 해석을 통한 전통 미를 새롭게 빛내며 그 명맥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덧 큰 잔치나 제사 등의 의례에서나 보던 병풍이 현대의 우리 집과 어떻게 어우러져 남다른 기품을 발휘하는지 함께 둘러보자.


병풍, 가리개가 되다
병풍은 두 폭부터, 여섯 폭, 여덟 폭, 열 폭, 열두 폭 등 짝수로 구성된다. 이 중 두 폭짜리는 보통 가리개 또는 곡병 曲屛이라 해서 머릿병풍으로 불렀다. 집 안의 자잘한 세간을 가리거나 물건을 수납하는 장 앞쪽에 놓아 가리개로 활용했는데, 단순히 파티션의 기능을 넘어 멋스럽고 슬기로운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병풍은 쉽게 이동이 가능하고 펼침과 접힘의 각도 또한 자유로워 공간의 크기에 제약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 널찍한 방이나 거실은 물론 코너 공간처럼 협소한 곳에서도 다양한 용도로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생활 가구로써의 미덕으로 여겨진다. 스탠드형 옷걸이를 가리거나 자칫 지저분해지기일쑤인 신발장 등 현관의 전실 공간, 혹은 정리가 잘 되지 않는 서재의 서가 앞에 가리개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발휘해도 좋다.


1 매화 네폭 일지 병풍을 거실 벽면에 달아 공간의 아트 오브제 역할을 한다.
2 복도 벽면을 따라 세워 둔 병풍이 현관과 거실 공간을 잇는 생활 가구가 된다.


병풍, 아트월이 되다
거실의 벽 전면을 장식한 매화 네폭 일지 병풍은 모던한 공간 속에서 수묵화의 은은한 향기가 가득한 듯 하다. 동양화에서 매화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모든 생물이 북풍한설에 움츠릴 때, 저 스스로 간난신고 艱難辛苦를 이겨내고 고운 자태를 피워내 불의에 굽히지 않는 고매한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회화의 고졸한 멋과 함께 선인들의 고고한 정신과 철학을 함께 선사하는 아트월로 활용하면 병풍의 현대적 멋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병풍을 회화 작품처럼 걸어두고 싶다면 뒷면에 고리를 부착해 거는 방법이나 천장에 레일을 달아 병풍을 걸어 갤러리처럼 연출해도 좋다. 단, 병풍의 접히는 부분인 배접이 오염되거나 틀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것. 병풍의 그림에 따라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데, 예부터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도나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꽃과 새 그림, 물고기가 나오는 어해도 魚蟹圖 등의 병풍은 안방이나 침실에 두면 좋다. 풍성하고 탐스러운 연꽃, 석류 등은 다산을 상징하므로 신혼부부의 방에 걸면 미적인 예술성과 함께 방에 좋은 기운을 불러들일 수 있다.

병풍, 파티션이 되다
복도에 병풍을 두어 공간과 공간을 잇는 리빙 오브제로 활용하면 멋스러운 공간이 연출된다. 또한 거실과 부엌 공간의 경계가 없을 경우 파티션으로 활용해도 좋다. 이렇듯 병풍을 공간과 공간을 분할하는 파티션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면 병풍의 폭뿐 아니라 높이까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대개 병풍의 키가 60~180cm 정도로 다양해 높이에 따라 용도를 달리 선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아이 방의 베란다 공간을 확장해 수납공간을 만들고 가벽을 세우는 대신 병풍을 놓을 경우에는 높이가 낮은 머릿병풍이 잘 어울린다. 침병 枕屛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병풍은 예부터 머리맡에 치던 병풍으로, 높이가 낮아 공간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꾸미는 데 도움이 된다. 어른 키 높이 정도의 병풍은 거실과 부엌 공간을 나눠주는 등 필요에 따라 병풍을 폈다 접었다 하며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

병풍, 영화 보듯 자주 즐겨라
작가는 무릇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시대의 변화가 당연히 제 화폭에 담기는 것이지요. 제 작품에서 현대 감각의 선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사물을 단순화하고, 자연스레 선이 주는 느낌이 현대적으로 흐르게 되더군요. 이는 인간이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고 음악도 뱉는 소리와 삼키는 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지듯, 작품이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굵은 선과 얇은 선이 조화를 이루고 옛것과 오래된 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온전한 작품의 가치를 지니게 되죠. 옛것만 고집하는 것도, 서양의 첨단 유행과 문화만 좇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술 교육을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시작하지 묵과 벼루로 시작하지 않는 것은 개탄할 일이지요. 30~4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수묵화 한 점씩은 있었지만 네모반듯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우리네 전통 그림도 집 안에서 종적을 감췄어요. 극장에 자주 가듯이 갤러리에 자주 가서 보고 눈을 틔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 것의 가치는 단순함만을 강조하는 일본과, 대륙의 기질을 담은 중국의 그것과는 달라, 소박하면서도 은근한 멋이 있어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통한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작업하는 병풍 속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병풍에 대해 잘 몰라 처음엔 낯설지만 자꾸 찾아다니며 여러 작품을 보다 보면 절로 안목이 생기고 자연히 친해지게 됩니다.

허달재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에게 사사한 제자이자, 추사 김정희로부터 시작한 남종 문인화의 명맥을 잇는 작가이다. 자신만의 현대적 재해석을 덧입혀 표현하는 작품들로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현대 병풍의 다양한 멋을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허달재 병풍> 전은 10월 31일까지 제주 박여숙 화랑에서 예약제로 진행한다. 문의 02-549-7575

이지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