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네 잘못이 아니란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다시 시작하면 돼.” 순식간에 타버린 집 앞에서 어머니와 열 살가량의 아들이 주고받은 대화다.1993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우리들만의 집 A Home Our Own> 중 한 장면이다. 프란시스(캐시 베이츠 분)는 처자식 팽개치고 혼자 잘 살겠다며 집을 나간 남편에게 복수라도 하듯 6남매를 홀로 부양하면서 악착같이 산다. 프란시스가 홀로 되자 직장 동료들은 그녀를 성적 농담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그녀는 이 부당함에 항의하다가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당한다. 6남매를 이끌고 무작정 정든 LA를 떠나 새 둥지를 찾아나선다. 마침내 시골 마을 행스톤에서 반쯤 짓다 만 집 한 채를 발견한 프란시스는 단번에 그곳이 ‘자신들만의 집’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곤 아이들과 힘을 합쳐 집 짓는 걸 완성한다. 집이 완성되자 둘째 아들 머레이는 집 외부에 서 있던 남루한 화장실을 태우려고 마음먹는다.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른 순간, 불어닥친 세찬 바람에 간신히 마련한 집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만다. 직장에서 집으로 달려온 어머니 프란시스는 둘째 아들 머레이가 자기 잘못을 자책하자 “네 잘못이 아니야” 라며 위로한다.
(왼쪽) 신철, ‘기억풀이_그리움 1’, 65.2×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10
동성애자인 아들과 부모의 관계를 가족 문제의 일부로 다룬 TV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이 드라마는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사회적으로 용납받지 못하는 동성애자임을 알았을 때 부모·자녀 간의 대화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평범하지 않은 자녀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자녀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위로하는 부모, 무슨 수를 써서든 자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돌려놓으려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부모가 대비된다. 자녀의 고상해 보이지 않는 취미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우 관계, 학업 성적, 안거나 서는 태도 등을 못 참고 고칠 때까지 화내고, 폭언하고, 지적하며 괴롭히는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려움에 처한 자녀를 향한 부모의 폭언은 사회적 질시와 부모에게 버림받는 느낌을 동시에 감당하게 하는 가혹한 행동일 뿐이다. 드라마 속 경수처럼 부모의 폭언이 두려워 무작정 부모 의견을 받아들인다 해도 자녀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어 더욱 불행해질 뿐이다.
(오른쪽) 신철, ‘기억풀이_향수 1’, 181.8×259cm, 캔버스에 아크릴, 2010
화가 신철 씨는 1953년 전남 청산도에서 태어나 원광대 미술과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맑고 순수한 마음을 담은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20회의 개인전과 450여 회의 기획전 및 초대전에 참가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양평의 작업실 ‘수류산방’에서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www.shincheol.wo.to
사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의 몇 가지 방식만 바꿔도 자녀와 ‘편안한 대화’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나는 자녀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찾아와 위로받고 싶어 하는 부모인가?”를 자문해보라. 아이가 자기 잘못으로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았거나 친구에게 맞아 억울하다고 하면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일단 무조건 자녀 편을 들어 흥분을 가라앉힌다. 가르침은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머릿속에 ‘우리 부모님은 내가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할 때 구원해주시는 분이다’라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둘째, 의견 조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말을 건네라.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관점은 무엇인지를 내 멋대로 해석해서 밀어붙이지 않는다. 반드시 의견을 물어서 아이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한 후 ‘의견 조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말을 건네라. 자녀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질책하면 자녀는 당연히 부모와의 대화를 회피하고 싶어질 뿐이다.
셋째,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라. ‘우리 때는 이렇게 했다’를 내세우면 자녀는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부모는 국민소득 5백 달러 시대를 살았지만 자녀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사는데, 무조건 같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통신 시설이 낙후된 시대를 살아 이웃 동네 소식도 신기해하던 시대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전 세계 뉴스를 보는 시대의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은 쉬지 않고 진화하는데 부모가 이미 지나간 시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녀의 발전을 돕는 것이 아니라 퇴보시키는 셈이 된다. 현명한 부모라면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고 아이의 낯선 행동까지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대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자녀에게도 손님처럼 예의를 갖춰 말하라. 자녀라고 해서 부모 마음대로 인격을 손상시키거나 모욕감을 느낄 만한 말을 함부로 내뱉어선 안 된다. 자녀는 부모에게 들은 모욕적인 말을 평생 잊지 못한다. 때로는 자신감 결여와 왜곡된 성격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어릴 때 부모에게 들은 “너는 안 돼.” “바보 같으니라고” “네까짓 게 감히?” 등의 말은 자녀를 위축시키고 매사 주저하게 만든다. 한 번뿐인 아이의 인생, 평생 주눅 들어 살게 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다섯째, 실수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끝없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동안 내공이 쌓여 성공한 후에도 그 내공을 유지한다. 부모의 끊임없는 감시와 간섭 속에서 자라면 안전하게 살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성취할 만한 일도 없이 그저 그런 일생을 보내다가는 인생의 끝자락에 크게 후회하기 십상이다. 자녀의 인생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지 않게 하려면 실수하고 깨닫고,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도록 사소한 일쯤은 보고도 못 본 척 언급을 피하며 눈감아줄 줄 알아야 한다.
여섯째,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 사람은 여섯 살만 넘으면 자아가 확고해져 매사에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한다. 그 상대가 부모일지라도 “00 해” “000 하지 마” 라고 부모가 미리 결정해서 지시하면 자신의 정당한 결정권을 부모가 멋대로 빼앗는다고 여겨 반발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녀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0000 해주겠니?” “0000 하면 어떨까?” 등의 간접적인 지시를 통해 아이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말해야 한다. 같은 지시도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아이가 일방적 지시를 받는다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일로 느껴 부모의 지시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일곱째, 간단하게 말하라. 잔소리는 대개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할까 봐 노심초사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부모가 같은 말을 반복하면 듣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말의 내용을 마음속에 제대로 입력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부모의 잔소리가 반복되고 아이는 단지 잔소리로 치부해서 부모 말을 새겨듣지 않게 돼 끝없는 말싸움이 이어질 뿐이다.
(왼쪽) 신철, ‘기억풀이_소녀’, 24×24cm, 캔버스에 아크릴, 2010
여덟째, 몰두하는 일을 방해하지 말고 말하라. 부모는 아이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지 않고 자기 기분에 따라 불쑥불쑥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열정과 창의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 싹트는 법이다. 그런데 부모가 자기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스케줄대로 움직이게 하려고 아이의 몰입 시간을 깨트리며 이 말 저 말 하는 것은 최악의 부모가 보이는 태도다.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켜야 하거나 공부하라고 말해야 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한 후 다른 일에 몰두해 있으면 기다렸다가 지시를 내려야 한다.
아홉째,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된다고 말하라. ‘민주적인 부모’의 뜻을 잘못 오해해 아이에게 휘둘리는 부모가 많아졌다. 어떤 면에서 보면 어린아이는 아직 동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생존 경쟁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부모와도 끊임없이 헤게모니 싸움을 한다. 부모에게 원하는 바를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부모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때 부모가 허약하게 휘둘리면 아이는 자기 멋대로 휘두르려 하고, 부모가 카리스마를 보이면 복종 모드로 변한다. 아이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등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태도를 배워야 할 때는 아이의 요구에 휘둘리지 말고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열째, 부모의 말을 줄이고 주로 자녀가 말하게 하라. 많은 부모가 자기 할 말을 너무 많이 해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이에게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구체적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말할 수 있다.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윽박지르면 아이는 대화를 회피한다. 아이의 말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면 아이는 점차 자기 문제를 부모와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런 믿음이 있는 아이는 부모에게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다 말한다. 그러면 당연히 자녀와의 대화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세상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 죄를 지은 자녀라도 부모만은 용서하고 위로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안하고 서러울 때 부모를 떠올리게 하려면 무엇보다 자녀가 마음으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위 열 가지의 대화법만 고쳐도 아이는 충분히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와의 대화에서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쓴 이정숙 대표는 20년 동안 KBS 아나운서로 근무했고, 미시간 주립대학교 국제전문가 과정 중 국제 관계 및 스피치 이론 3년 과정을 수료했다.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수많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을 진행해왔다. 주요 저서로 <리더로 키우려면 말부터 가르쳐라> <한국형 대화의 기술> <나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어라> 등이 있다.
(왼쪽) 신철, ‘기억풀이_그리움 1’, 65.2×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10
동성애자인 아들과 부모의 관계를 가족 문제의 일부로 다룬 TV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이 드라마는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사회적으로 용납받지 못하는 동성애자임을 알았을 때 부모·자녀 간의 대화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평범하지 않은 자녀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자녀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위로하는 부모, 무슨 수를 써서든 자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돌려놓으려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부모가 대비된다. 자녀의 고상해 보이지 않는 취미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우 관계, 학업 성적, 안거나 서는 태도 등을 못 참고 고칠 때까지 화내고, 폭언하고, 지적하며 괴롭히는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려움에 처한 자녀를 향한 부모의 폭언은 사회적 질시와 부모에게 버림받는 느낌을 동시에 감당하게 하는 가혹한 행동일 뿐이다. 드라마 속 경수처럼 부모의 폭언이 두려워 무작정 부모 의견을 받아들인다 해도 자녀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어 더욱 불행해질 뿐이다.
(오른쪽) 신철, ‘기억풀이_향수 1’, 181.8×259cm, 캔버스에 아크릴, 2010
화가 신철 씨는 1953년 전남 청산도에서 태어나 원광대 미술과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맑고 순수한 마음을 담은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20회의 개인전과 450여 회의 기획전 및 초대전에 참가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양평의 작업실 ‘수류산방’에서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www.shincheol.wo.to
사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의 몇 가지 방식만 바꿔도 자녀와 ‘편안한 대화’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나는 자녀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찾아와 위로받고 싶어 하는 부모인가?”를 자문해보라. 아이가 자기 잘못으로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았거나 친구에게 맞아 억울하다고 하면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일단 무조건 자녀 편을 들어 흥분을 가라앉힌다. 가르침은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머릿속에 ‘우리 부모님은 내가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할 때 구원해주시는 분이다’라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둘째, 의견 조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말을 건네라.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관점은 무엇인지를 내 멋대로 해석해서 밀어붙이지 않는다. 반드시 의견을 물어서 아이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한 후 ‘의견 조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말을 건네라. 자녀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질책하면 자녀는 당연히 부모와의 대화를 회피하고 싶어질 뿐이다.
셋째,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라. ‘우리 때는 이렇게 했다’를 내세우면 자녀는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부모는 국민소득 5백 달러 시대를 살았지만 자녀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사는데, 무조건 같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통신 시설이 낙후된 시대를 살아 이웃 동네 소식도 신기해하던 시대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전 세계 뉴스를 보는 시대의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은 쉬지 않고 진화하는데 부모가 이미 지나간 시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녀의 발전을 돕는 것이 아니라 퇴보시키는 셈이 된다. 현명한 부모라면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고 아이의 낯선 행동까지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대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자녀에게도 손님처럼 예의를 갖춰 말하라. 자녀라고 해서 부모 마음대로 인격을 손상시키거나 모욕감을 느낄 만한 말을 함부로 내뱉어선 안 된다. 자녀는 부모에게 들은 모욕적인 말을 평생 잊지 못한다. 때로는 자신감 결여와 왜곡된 성격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어릴 때 부모에게 들은 “너는 안 돼.” “바보 같으니라고” “네까짓 게 감히?” 등의 말은 자녀를 위축시키고 매사 주저하게 만든다. 한 번뿐인 아이의 인생, 평생 주눅 들어 살게 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다섯째, 실수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끝없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동안 내공이 쌓여 성공한 후에도 그 내공을 유지한다. 부모의 끊임없는 감시와 간섭 속에서 자라면 안전하게 살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성취할 만한 일도 없이 그저 그런 일생을 보내다가는 인생의 끝자락에 크게 후회하기 십상이다. 자녀의 인생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지 않게 하려면 실수하고 깨닫고,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도록 사소한 일쯤은 보고도 못 본 척 언급을 피하며 눈감아줄 줄 알아야 한다.
여섯째,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 사람은 여섯 살만 넘으면 자아가 확고해져 매사에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한다. 그 상대가 부모일지라도 “00 해” “000 하지 마” 라고 부모가 미리 결정해서 지시하면 자신의 정당한 결정권을 부모가 멋대로 빼앗는다고 여겨 반발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녀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0000 해주겠니?” “0000 하면 어떨까?” 등의 간접적인 지시를 통해 아이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말해야 한다. 같은 지시도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아이가 일방적 지시를 받는다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일로 느껴 부모의 지시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일곱째, 간단하게 말하라. 잔소리는 대개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할까 봐 노심초사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부모가 같은 말을 반복하면 듣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말의 내용을 마음속에 제대로 입력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부모의 잔소리가 반복되고 아이는 단지 잔소리로 치부해서 부모 말을 새겨듣지 않게 돼 끝없는 말싸움이 이어질 뿐이다.
(왼쪽) 신철, ‘기억풀이_소녀’, 24×24cm, 캔버스에 아크릴, 2010
여덟째, 몰두하는 일을 방해하지 말고 말하라. 부모는 아이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지 않고 자기 기분에 따라 불쑥불쑥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열정과 창의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 싹트는 법이다. 그런데 부모가 자기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스케줄대로 움직이게 하려고 아이의 몰입 시간을 깨트리며 이 말 저 말 하는 것은 최악의 부모가 보이는 태도다.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켜야 하거나 공부하라고 말해야 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한 후 다른 일에 몰두해 있으면 기다렸다가 지시를 내려야 한다.
아홉째,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된다고 말하라. ‘민주적인 부모’의 뜻을 잘못 오해해 아이에게 휘둘리는 부모가 많아졌다. 어떤 면에서 보면 어린아이는 아직 동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생존 경쟁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부모와도 끊임없이 헤게모니 싸움을 한다. 부모에게 원하는 바를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부모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때 부모가 허약하게 휘둘리면 아이는 자기 멋대로 휘두르려 하고, 부모가 카리스마를 보이면 복종 모드로 변한다. 아이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등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태도를 배워야 할 때는 아이의 요구에 휘둘리지 말고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열째, 부모의 말을 줄이고 주로 자녀가 말하게 하라. 많은 부모가 자기 할 말을 너무 많이 해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이에게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구체적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말할 수 있다.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윽박지르면 아이는 대화를 회피한다. 아이의 말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면 아이는 점차 자기 문제를 부모와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런 믿음이 있는 아이는 부모에게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다 말한다. 그러면 당연히 자녀와의 대화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세상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 죄를 지은 자녀라도 부모만은 용서하고 위로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안하고 서러울 때 부모를 떠올리게 하려면 무엇보다 자녀가 마음으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위 열 가지의 대화법만 고쳐도 아이는 충분히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와의 대화에서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
글을 쓴 이정숙 대표는 20년 동안 KBS 아나운서로 근무했고, 미시간 주립대학교 국제전문가 과정 중 국제 관계 및 스피치 이론 3년 과정을 수료했다.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수많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을 진행해왔다. 주요 저서로 <리더로 키우려면 말부터 가르쳐라> <한국형 대화의 기술> <나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어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