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배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선배가 있다. 대기업 차장인 이 양반은 당연히 월급은 전액 부인에게 상납하지만, 보너스 등의 가욋돈은 철저히 비밀리에 독점 관리한다. 곳간 열쇠를 여성이 장악한 이 무시무시한 시대에 ‘거짓말’ ‘외도’와 더불어 남성의 3대 패륜 짓 중 하나라는 ‘딴 주머니 차기’를 겁 없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몇 개의 생명보험을 추가로 가입함으로써 형수에 의한 절명 絶命 이후의 미래를 대비하라고 진지하게 조언했으나, 선배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웃기시네. 지난번에 제수씨가 그러더라. 너 월급 외에 원고료, 인세, 방송 출연료는 아예 집에 가져다주지도 않는다고.”
‘아유, 요런 입 가벼운 마누라쟁이. 그걸 또 선배에게 날름 말해버리다니!’ 어차피 아웃팅당한 것, 이쯤에서 순순히 자수한다면 선배의 말은 진실이다. 나도 딴 주머니 찬 지 오래됐다. 그러나 세상의 여인들이여, 나에게 돌을 던지려거든 잠시 항변부터 들으시라.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딴 주머니를 찬 남자도 할 말은 있다.
5백 원을 걸고 맹세하건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없었다. 결혼하면서 여사께서는 나에게 분명 경고했다. 월급에서 ‘삥땅치면’ 1원에 한 대씩이라고. 나는 매 맞는 남편이 되고 싶지 않아서-당시에는 매력적인 현찰로 월급을 받는 시대였음에도-경리가 주는 봉투 그대로 여사님께 봉헌했다. 출근길에 용돈의 명목으로 몇천 원씩을 받을 때도, 이게 다 나 혼자 살려고 그러는 것이겠냐며 내 궁둥이를 톡톡 치는 임의 권위에 기죽어 반항조차 제대로 못한 세월이었다.
그런데 우리 여사, 정말 이상하시다. 예를 들어 가족끼리 갈빗집 외식을 하게 되면 당연히 식사비는 월급 전체를 압류해간 당신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자꾸 나에게 눈총을 주며, 지네 발을 닮은 긴 부츠를 오래도록 신으면서 자꾸 나를 계산대에 세워댔다. 처갓집이라도 가면 임께서는 당연히 사위가 장인 장모 용돈을 챙겨왔을 거라 기대하는데, 내가 빈 지갑을 탈탈 먼지 떨면 갑자기 고양이처럼 사나워졌다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남편과 사는 자신의 팔자를 서러워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사께서는 월급 일체 상납은 모든 수컷의 기본이요, 유능한 남편은 옵션으로 도깨비방망이가 하나씩 있어서 특별한 순간에 뚝딱거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속이 터질 일이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우리 집 실태를 정의의 이름으로 고발하고자 주변 친구들에게 낱낱이 폭로해버렸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우리 마눌도 그래.” “여자들은 다 그렇지 않냐?” “너 아직도 (딴 주머니) 안 찼냐?”
오호라, 그런 것이었구나! 남의 집도 그렇다는 말을 들은 후 여사의 심리를 들여다보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경제력을 여자가 쥐고 있다고 해도 모처럼 기분 좋게 외식하러 나와서까지 먹고 싶은 음식의 가격에 연연하고, 그것을 다 먹은 후에도 자기 지갑을 열어야 하는 그 숨 가쁜 감정 노동을 아내들은 질려할 수 있을 것이다. 처녀 때처럼 섹시한 입만 살짝 벌려 음식만 오물오물 드셔주시면 남자가 다 돈을 내주는 공주 시대를 가끔은 그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딴 주머니 찬 자기 신랑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빤스 속까지 샅샅이 몸수색을 하면서도, 가끔 남편의 책갈피 속에서 발견되는 만 원짜리 몇 장에 로또 당첨자처럼 환호를 지르는 그 귀여운 감성을 이 땅의 여자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나는 내 선배가 그러하듯, 딴 주머니를 차면서 월급 외의 수입을 일절 말하지 않고 슬쩍슬쩍 유도 심문을 거는 여사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 쌈짓돈을 꼼꼼하게 모아서 어버이날이면 처갓집에 선물을 보내주고, 여사가 냉장고 타령을 하면 기분 좋게 냉장고를 바꿔주고, 오늘 반찬을 고민하고 있으면 처자식을 끌고 나가 당당히 맛집 순례를 한 것이다(물론, 가끔 딴짓도 했다. 대개는 술집에 낸 위풍당당 기부금 같은 것).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월급을 송금하면 “땡큐”라는 문자 하나 달랑 보내는 여자가, 딴 주머니를 열었을 때는 납작 엎드려 감읍의 눈물로 요단 강을 만드니 이 신비스러운 주머니의 마력을 내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마태복음 6장 3절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명구가 있는 바 이를 결혼복음으로 전환한다면,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모른 척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은 비록 합의하에 경제권을 여자에게 넘겼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인 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부권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며, 여자 스스로에게 예측하지 않은 남편의 깜짝 선물에 감동할 기회를 안겨주는 것이다. 뭐가? 딴 주머니가.
그러므로 혹시 남편이 그런 낌새가 있다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것도 현명한 아내의 자세이리라. 명절날 허리 운동해서 받은 세뱃돈을 엄마가 홀랑 가져가면 애들도 도끼눈을 하고 부모를 노려보는데, 남편이라고 다르겠는가? 이상 허파 옆에 딴 주머니 찬 남편의 항변이었다. 이제 돌 던질 사람? 따악, 아얏!
‘아유, 요런 입 가벼운 마누라쟁이. 그걸 또 선배에게 날름 말해버리다니!’ 어차피 아웃팅당한 것, 이쯤에서 순순히 자수한다면 선배의 말은 진실이다. 나도 딴 주머니 찬 지 오래됐다. 그러나 세상의 여인들이여, 나에게 돌을 던지려거든 잠시 항변부터 들으시라.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딴 주머니를 찬 남자도 할 말은 있다.
5백 원을 걸고 맹세하건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없었다. 결혼하면서 여사께서는 나에게 분명 경고했다. 월급에서 ‘삥땅치면’ 1원에 한 대씩이라고. 나는 매 맞는 남편이 되고 싶지 않아서-당시에는 매력적인 현찰로 월급을 받는 시대였음에도-경리가 주는 봉투 그대로 여사님께 봉헌했다. 출근길에 용돈의 명목으로 몇천 원씩을 받을 때도, 이게 다 나 혼자 살려고 그러는 것이겠냐며 내 궁둥이를 톡톡 치는 임의 권위에 기죽어 반항조차 제대로 못한 세월이었다.
그런데 우리 여사, 정말 이상하시다. 예를 들어 가족끼리 갈빗집 외식을 하게 되면 당연히 식사비는 월급 전체를 압류해간 당신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자꾸 나에게 눈총을 주며, 지네 발을 닮은 긴 부츠를 오래도록 신으면서 자꾸 나를 계산대에 세워댔다. 처갓집이라도 가면 임께서는 당연히 사위가 장인 장모 용돈을 챙겨왔을 거라 기대하는데, 내가 빈 지갑을 탈탈 먼지 떨면 갑자기 고양이처럼 사나워졌다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남편과 사는 자신의 팔자를 서러워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사께서는 월급 일체 상납은 모든 수컷의 기본이요, 유능한 남편은 옵션으로 도깨비방망이가 하나씩 있어서 특별한 순간에 뚝딱거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속이 터질 일이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우리 집 실태를 정의의 이름으로 고발하고자 주변 친구들에게 낱낱이 폭로해버렸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우리 마눌도 그래.” “여자들은 다 그렇지 않냐?” “너 아직도 (딴 주머니) 안 찼냐?”
오호라, 그런 것이었구나! 남의 집도 그렇다는 말을 들은 후 여사의 심리를 들여다보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경제력을 여자가 쥐고 있다고 해도 모처럼 기분 좋게 외식하러 나와서까지 먹고 싶은 음식의 가격에 연연하고, 그것을 다 먹은 후에도 자기 지갑을 열어야 하는 그 숨 가쁜 감정 노동을 아내들은 질려할 수 있을 것이다. 처녀 때처럼 섹시한 입만 살짝 벌려 음식만 오물오물 드셔주시면 남자가 다 돈을 내주는 공주 시대를 가끔은 그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딴 주머니 찬 자기 신랑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빤스 속까지 샅샅이 몸수색을 하면서도, 가끔 남편의 책갈피 속에서 발견되는 만 원짜리 몇 장에 로또 당첨자처럼 환호를 지르는 그 귀여운 감성을 이 땅의 여자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나는 내 선배가 그러하듯, 딴 주머니를 차면서 월급 외의 수입을 일절 말하지 않고 슬쩍슬쩍 유도 심문을 거는 여사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 쌈짓돈을 꼼꼼하게 모아서 어버이날이면 처갓집에 선물을 보내주고, 여사가 냉장고 타령을 하면 기분 좋게 냉장고를 바꿔주고, 오늘 반찬을 고민하고 있으면 처자식을 끌고 나가 당당히 맛집 순례를 한 것이다(물론, 가끔 딴짓도 했다. 대개는 술집에 낸 위풍당당 기부금 같은 것).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월급을 송금하면 “땡큐”라는 문자 하나 달랑 보내는 여자가, 딴 주머니를 열었을 때는 납작 엎드려 감읍의 눈물로 요단 강을 만드니 이 신비스러운 주머니의 마력을 내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마태복음 6장 3절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명구가 있는 바 이를 결혼복음으로 전환한다면,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모른 척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은 비록 합의하에 경제권을 여자에게 넘겼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인 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부권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며, 여자 스스로에게 예측하지 않은 남편의 깜짝 선물에 감동할 기회를 안겨주는 것이다. 뭐가? 딴 주머니가.
그러므로 혹시 남편이 그런 낌새가 있다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것도 현명한 아내의 자세이리라. 명절날 허리 운동해서 받은 세뱃돈을 엄마가 홀랑 가져가면 애들도 도끼눈을 하고 부모를 노려보는데, 남편이라고 다르겠는가? 이상 허파 옆에 딴 주머니 찬 남편의 항변이었다. 이제 돌 던질 사람? 따악, 아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