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을 대문을 지나면 5칸 짜리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의 부드러운 지붕선이 뒷산의 배경과 하나가 되어 어우러져 있다.
폭염으로 후텁지근한 공기가 숨통을 옥죄던 여름. 걸개문과 장지문을 활짝 연 대청마루에 서 있으니 바람길로 흘러 들어온 한 올 실바람이 순간, 백두대간의 청량감을 일깨운다.
태백산 자락인 망미산 줄기가 휘감아 도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만산 고택은 조선 말기 문신인 만산 晩山 강용 姜鎔이 고종 15년(1878년)에 지었다. 솟을대문을 지나 널찍한 마당에 발을 들이자 팔작지붕의 5칸짜리 사랑채에서 고택을 지키는 종손 강백기(63세) 씨가 반갑게 객을 맞는다. 만산의 4대손으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귀향한 그는 지역 사회에서는 향토사학자로 여러 가문의 족보를 연구하는 보학 譜學의 대가로 명성이 높다. 고택 체험과 한옥 스테이는 4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고 집을 더 살뜰히 살피기 위해서다.고택에 대한 그의 지극한 애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전체 네 채에 손님이 끊이지 않지만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다. 다녀간 이들이 온라인에 남긴 글과 입소문만으로 손님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 홈페이지가 없다고 하니 명문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아들에게 몇 번 부탁 했는데도 부모가 자칫 민박집 주인 대우를 받을까 저어하는지 한사코 ‘못 만든다’며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했다. 종손 강 씨는 집에 대해 설명하려면 하루로는 모자란다며 먼저 사랑채 처마 밑의 현판을 소개한다.
1 솟을대문을 지나 바로 보이는 사랑채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2, 3 종부 류옥영 씨가 빚은 그릇과 화분 도기들.
“사랑채 현판의 만산 글씨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썼고, 서실의 현판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것입니다. 진품은 연세대에 기탁하고, 대신 여기에 탁본을 걸어놨죠.”현판 뿐만 아니라 집 안의 중요한 서찰이나 고서 등은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다. 이윽고 행랑채에서 마당으로 눈길을 돌리니 마당의 삼면을 둘러싼 야생화 화분들이 먼 데서 온 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오른편 돌담이 쳐진 쪽문을 지나면 별당인 칠류헌 七柳軒이 자리하고 있다. 만산고택이 자리 잡은 춘양면 일대는 국내산 소나무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춘양목의 산지로 유명하다. 속이 붉고 심지가 단단해 예부터 궁궐이나 사찰 등 주요 건물을 짓는 데 주로 사용했다. 칠류헌의 기둥과 대들보 역시 춘양목으로 세운 것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목재의 붉은빛이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종손 강백기 씨에게 고택을 찾은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하룻밤 자고 난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정신없이 잘 잤다고 합니다. 나무, 돌, 흙으로 지은 우리 집이 요샛말로 몸에 좋은 친환경 주택 아닌가요. 우리 사는 그대로 문도 다 열어 놓고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갓집에서 푹 자고 일어난 듯한 기분이라고들 해요.” 해가 나는 날은 햇볕 드는 대로, 비 오는 날은 빗물 떨어지는 그 운치를 즐기는 것이 이곳의 멋이다. 작고한 김점선 화가는 처마의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다며 비 오는 날엔 대청마루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단다. 칠류헌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투호, 제기차기, 윷놀이 등의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어 부모 손에 끌려온 아이들이 떠날 때는 더 섭섭해 한다. 만산고택의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과 부엌이 있고, 건너편 남쪽으로 가정용 창고인 고방이 자리한다. 안채 마루 한 귀퉁이에는 성주신을 모시는 성주 단지가 놓여 있다. 매년 음력 5월 초파일 낮 12시면 성주 차사를 지낸다. 성주 차사는 집의 생일을 기념해 성주신에게 가족과 후손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만산고택에 사는 사람과 그 공간을 지켜주는 가신 家神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공존하는 셈이다.
4 옛집의 창고인 고방 문 위에 소반이나 큰 그릇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명가는 종부를 낳고, 종부는 고택의 오늘을 짓는다
성주 차사 의식은 이른 새벽 아무도 긷지 않은 우물의 첫 물을 뜨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서 가장 큰 솥에 밥을 한 가득 짓고 삼색 나물을 비롯해 5월에 나는 앵두와 삼색 과일을 준비한다. 특이한 것은 호두와 밤, 수박을 껍질째 올린다. 성주 차사를 지낸 뒤에는 각종 나물을 섞은 젯밥을 이웃과 나눠 먹으며 복을 구한다. 젯밥을 비비는 종부의 손에서 집안의 화평과 이웃 간의 넉넉한 나눔이 시작된다. “아침 6시쯤 눈뜨자마자 하는 일은 대문을 활짝 여는 것이지요.” 대문을 일찍 열어야 복이 들어온다고 말하는 종부 류옥영(59세) 씨는 시집온 지 올해로 34년째다. 예전에야 일꾼이 문을 열었지만 그 후엔 시어머니가, 지금은 자신이 이어받았다. 여기에도 규범이 있어 바깥대문은 남성이, 안대문은 여성이 연다. 대문을 활짝 연 뒤에는 이 집의 명물인 야생화에 물부터 준다. 위엄만 품고 있어 “사람 사는 집 맞냐?” 는 이웃의 말이 야생화를 기르게 된 계기인데, 고택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싶어서였다고.부지런히 아침을 지어 먹고 손님이 떠난 곳곳을 쉬지 않고 청소하는 데만도 4시간 이상이 걸린다. 오후에 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하다 보면 하루해가 다 진다. 류 씨는 “최근엔 도예 빚기에 취미를 붙여 공방에 나가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종부로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여쭙자 쉬 대답을 피하다 어렵사리 살림살이 이야기를 꺼낸다. 집안에 세월의 더께가 쌓인 살림살이는 모두 안동 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고 한다. 연유를 물으니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왕왕 손 타는 일이 있었단다. 큰 집 살림에 문도 활짝 열어놓고 살다 보니 도저히 관리가 힘들어 ‘언젠간 다시 찾아올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이곳저곳에 살림살이를 맡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스물다섯에 시집와 내 청춘이 다 담긴 물건들인데, 트럭에 부엌세간을 한 차 실어 보내놓고서 대문 앞에 주저앉아 마냥 울었습니다.” 여자에게 손때 묻은 살림살이는 자식과도 같다. 당시를 회상하는 종부 류옥영 씨의 목소리가 잠시 파르르 떨린다. 명문가의 종가 음식은 어떨까? “그 계절에 나는 나물이나 채소를 때 맞춰 해 먹으면 한 철이 모자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봄에는 산으로 산갓나물이며 산뽕잎을 따러 다니지요. 여름엔 호박, 고추, 가지로 찬을 해 먹습니다. 가을에는 열무 맛이 좋지요. 또 한 장씩 잎을 떼어 밀가루만 개어 부치는 배추전은 드셔 봤나요? 그 맛이 기막힙니다.겨울이면 당귀잎을 종종 썰어 나물로 무쳐 먹으면 쓴내도 안 납니다.” 종가의 제례 음식은 어떨까. 달마다 올리는 음식은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데 꽃잎, 약재잎이 들어가 눈에 띈다. 2월엔 대추전, 3월엔 진달래 화전, 4월엔 당귀잎전, 7월에는 조선국화잎을 송송 썬 전이 향이 좋다고 한다. 10월엔 국화꽃잎전을 하는데 달마다 그 맛과 향이 모두 다르다.
5 성주 차사를 지낼때 음식을 올리는 안반과 성주 단지.
산과 들에서 캐고 뜯은 온갖 나물을 양념에 재우고 담가 장아찌나 김치를 만든다. 모두 이듬해 겨울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이 지역, 그 철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하룻밤 묶는 도시 손님들 상에 내면 평소 접하기 힘든 맛이라며 눈깜짝할 사이에 동이 난다.
1 산뽕잎장아찌 문수산에서 딴 산뽕잎에 다시마 물과 매실청으로 맛을 냈다.
2 생강나뭇잎장아찌 생강나무의 여린 잎을 따다 깻잎장아찌 담그듯 만든다.
3 곰취장아찌 조선간장과 참기름으로만 양념해 만든다. 삼겹살 같은 고기에 싸먹으면 더욱 별미다.
4 더덕고추장장아찌 더덕을 고추장에 박아두었다가 장아찌로 먹는다. 달콤한 맛과 알싸한 맛, 특유의 향까지 일품이다.
5 무말랭이 이 지역에선 ‘곤지김치’라 부르기도 한다. 겨울 무를 썰어 잘 말린 뒤 양념에 재어 만드는 데 이듬해 가을까지 두고 먹는다.
6 두릅장아찌 간장과 물을 섞어 팔팔 끓인 후 식초 등을 넣어 만드는데 달짝지근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