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작가는 1960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났고 세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91년 관훈미술관에서 연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9회의 개인전과 수십 차례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고향인 가평 가둘기 마을에 소박한 미술관을 짓는 꿈을 품고 열심히 작업 중이다. 홈페이지 www.gadulgi.com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일이 아니라 어제가 아닐까. ‘개발 공화국’ 국민으로 살다 보니 미래가 최고선이라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는 사라져간 낡은 개념이 아니다. 닦아내기 힘든, 흔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어제라는 흔적 덕분에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김성근 작가의 그림엔 과거의 정서가 물씬하다. 그 옛날 가난하고 조촐한 마을 뒷동산을 지키던 나무 한 그루, 밥 짓는 연기가 안개처럼 마을을 뒤덮던 풍경, 박수근 화백의 납작지붕 그림처럼 야트막한 산에 안긴 납작한 집, 밀짚모자, 푸른 하늘, 뭉게구름…. 디지털 시대의 기적과는 무관해 보이는 이 구식 그림! 그 그림은 우릴 향해 따뜻한 손을 흔들고 있다. 어서 과거로 돌아오라고.
“제가 가평 가둘기 마을 출신의 촌놈이에요. 요즘엔 이렇게 짙푸른 하늘이 없지만 어린 시절 내 고향 하늘은 늘 파랬어요.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산 가둘기 마을의 추억이 나이 오십의 날 온통 쥐고 있는 것 같아요. 제 그림 속 하늘을 인생의 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렸어요. 제각각 다르게 피어오르는 구름은 사람들이 제각각 살아가는 모양새, 뒤편으로 아른거리는 집과 나무는 과거의 추억을 뜻하죠. 의자를 거의 빼놓지 않고 그리는 건 그 의자에 좀 앉아서 인생을 관조하라는 의미예요. 의자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고요.”
그는 그림 속에 원경과 근경이 한데 노닐게 하는데, 과거를 은유하는 나무와 집 등은 원경으로, 무채색으로 그린다. 현재의 나를 뜻하는 밀짚모자, 뭉게구름 등은 근경으로, 원색으로 그린다. 이렇게 원경과 근경을, 무채색과 원색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는 세상을 산책가처럼 바라본다. 감상자는 그의 그림을 바라보며 그 옛날, 숲을 지나면 있는 할머니 집 앞에 할머니가 마중 나온 것 같은 정서를 느낀다. 그건 바로 그리움이요, 정이다.
‘세상 밖으로’,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53×40.9cm, 2010
“예전 작업실이 아파트여서 그랬는지 과거의 내 작품들은 좀 어두웠어요. 황토빛이 캔버스를 가득 채웠죠. 그게 바로 고향의 색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파트 벽에 걸린 그 작품이 오히려 보는 이의 상상력을 막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또 구상 작가들이 많이 느끼는 한계, 즉 시대와 따로 간다는 인상을 어떻게 지울까 많이 고민했어요. 요즘 시대에 맞는 조명과 화면에 맞추려고 애쓰다 보니 채도가 높아지고 색감이 화려해졌어요. 그러니 군내 나는 구식 그림으로만 보시면 안돼죠. 껄껄.” 그의 그림을 ‘오늘날의 미술’로 보이게 만든 일등 공신은 아크릴 물감을 다루는 세련된 기교, 마이크로적인 묘사 능력이다. 요즘 그는 자신의 회화를 PDP TV의 프레임처럼 보이는 틀 속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또한 현대의 환경에 어울리는 그림으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이다.
할머니의 모시 적삼 실올처럼 총총히 얽힌 정을 느끼게 하는 그의 그림, 이 청신한 그림에서 이상하게도 공허와 쓸쓸함이 함께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제 그림의 제목이 ‘세상 밖으로’잖아요. 세상 밖으로, 도시 밖으로, 경쟁 사회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잠시 트임의 시간이 주어지는 게 우리 삶이니 쓸쓸할 밖에요. 그래도 그 ‘세상 밖’엔 날 보듬어주던 옛집과 가족, 추억, 오염되지 않은 자연, 순수가 있으니 다행스럽지 않나요?”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에 ‘오래된 미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것이다. 오늘과 내일을 살 수 있게 하는 어제의 힘을 그 그림에서 읽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