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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전시]사치 갤러리 대표 나이젤 허스트가 전하는 사치 Saatchi 가라사대, 한국 미술에 영광 있으라
지난해 런던에서 3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한국 현대미술 전시 <코리안 아이>가 7월 초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연다. 현대미술의 메카인 사치 갤러리에 한국 미술이 그 영광의 깃발을 다시 한 번 휘날리는 것이다. 전시를 앞두고 내한한 사치 갤러리의 대표 나이젤 허스트가 한국 미술의 매력과 저력에 대해 들려준다.

한눈을 팔 때마다 수많은 ‘작가 양반’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쓸려나가는 미술계에서 적자생존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눈 밝게 그 ‘적자’를 알아보고 ‘적기’에 투자까지 하는 슈퍼 컬렉터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엘튼 존이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구입했다느니,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재단이 김아타의 작품을 컬렉션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옆집의 밥그릇 소리처럼 친숙해진 요즈음, 이런 궁금증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세계 미술 시장에서 아시아 미술이 각광받으면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이제 우리의 현대미술은 변방에서 덧없이 울리는 북소리가 아닌 것이다.
작년 6월 런던,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사치 갤러리 The Saatchi Gallery에서 열린 <코리안 아이: 문 제너레이션 Korean Eye: Moon Generation>전으로 저잣거리가 시끄러웠다. 한국 신진 작가 31명의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에 2주 동안 4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거듭된 요청으로 전시를 몇 차례 연장해 30만여 명이 관람했다. 관람객이 밀려들자 과묵하고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찰스 사치(사치 갤러리의 오너)가 “좋다, 기한을 연장해라!”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부인 셰리 블레어, 러시아의 억만장자이자 ‘머큐리 그룹’의 대표인 프리 드란드, 미셸 오바마의 친구이자 미국 미술 문화 정책 자문인 패멀라 조이너도 전시장에 다녀갔다. 작품도 성황리에 팔려나갔다. 이 예상치 못한 성공에 한국 언론들은 ‘한국 미술의 런던 습격 사건’이라며 흥분했다.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한다는 건 현대미술의 중심인 런던 미술과, 즉 세계 미술과 소통한다는 의미다. 사치 컬렉션이 된다는 것만으로 컬렉터나 화랑으로부터 집중 관심을 받는 작가, 적자생존하는 작가가 되므로 흥분할 법도 하다.

(왼쪽) <코리안 아이> 전시를 알리기 위해 5월 말 한국을 방문한 사치 갤러리 대표 나이젤 허스트.

올여름, 7월 3일부터 18일까지 사치 갤러리에서 두 번째 프로젝트인 <코리안 아이: 환상적인 일상 Korean Eye: Fantastic Ordinary>전이 열린다. 지난해 장소만 임대해준 사치 갤러리가 이번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주최자로 나섰다. 한국 현대미술가 열 명의 작품이 내걸린다. 작년 전시에선 강형구, 이형구, 전준호, 황인기, 이용백처럼 한국 현대 미술의 기둥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린데 반해 이번에는 그 나잇대가 더 낮아졌다. 권오상, 김동유, 배준성, 신미경, 지용호처럼 이미 국제 무대에서 유명세를 탄 지 오래인 작가도 있고 김현수, 박은영, 배찬효, 홍인영처럼 루키도 포진해 있다. 샴페인 브랜드 페리에 주에 Perrier Jouet의 특별 초청으로 참여하는 이림 작가, 영국 로열 컬리지 오브 아츠와 중앙미술대전의 교류 차원에서 특별 참가하는 전채강 작가도 함께한다.
이번 전시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을 찾은 사치 갤러리의 대표 나이젤 허스트 Nigel Hurst(오너인 찰스 사치는 대중과 접촉하는 걸 극도로 꺼려 대표 나이젤 허스트가 대외 활동을 전담한다)를 <행복>이 만났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6인의 큐레이터 중 한 사람인 이지윤 씨의 도움으로 성사된 인터뷰였다. 도나텔로의 조각상처럼 감정을 가득 채워 빚은 듯한 얼굴의 나이젤 허스트는 미소로 우릴 맞았다. 그러고는 자분자분 설명을 이어나갔다.

1 런던 첼시의 킹스로드에 위치한 사치 갤러리. 사진 제공 H zone 이대형 대표.


 2 <코리안 아이: 환상적인 일상> 전에 페리에 주에의 초청으로 특별 참가하는 이림 작가의 작품. ‘The mess of emotion no.11’, oil on canvas, 250×150cm, 2009.

사치 갤러리가 한국 미술에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지난해 사치 갤러리를 찾은 1백만 명 중 30만 명이 <코리안 아이>의 관람객이란 사실이 이걸 말해준다. 나 또한 2009년 <코리안 아이>를 보고 다이내믹한 작품들에 너무 놀랐다. 영국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설고 새로운’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치 갤러리는 ‘오늘날의 미술(Art of Today)’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는 갤러리다. 미술관에 박제된 과거의 명화,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 날것처럼 생생한 ‘이 시대의 작가들’에 집중하는데, 한국 현대미술이야말로 ‘젊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이 시대의 미술’인 것이다.
‘환상적인 일상’, 의미심장하다. 일상이 환상적일 수 있다니. 전시 주제는 어떻게 정했나. 작년 전시는 어떤 주제를 가진 전시라기보다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쇼케이스 같았다. 다양한 나이와 경력의 작가들이 참여한 그룹 쇼. 이번 전시는 6명의 큐레이터 이사회에서 주제를 정하고, 작가도 선정했다(편집자 주: 6인의 면면은 이렇다. 세계 3대 경매 회사 중 하나인 필립스 드 퓨리 Phillips de Pury Company의 디렉터 로드먼 프리맥 Rodman Primack, 영국 왕실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s)의 명예 펠로인 세레넬라 시클리티라 Serenella Ciclitira, 한아트 갤러리 Hanart Gallery 디렉터인 송중창 Tsong-zung Chang, 미술 컨설턴트인 아멜리에 폰 베델 Amelie von Wedel, 큐레이터이자 미술 사학자인 이지윤과 지난해 <코리안 아이> 큐레이터인 이대형). 이들이 수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깨달은 건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일상과 리얼리티에 집중한다는 것, 그 일상은 환상적이거나 상상의 세계를 넘나든다는 것이었다. 또 그 일상이 한국적, 아시아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람들은 늘 ‘결론 짓는 한 단어’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중국 미술은 ‘냉소적 리얼리즘’, 인도 미술은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라고들 정의한다. 당신이 만난 한국 미술을 정의하라면? 한국 미술을 더 깊이 연구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아직 한 단어로 정의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난 <코리안 아이>를 보고 느낀 건 상상적이면서도 강렬하고 주제 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새롭고 실험적인 재료를 많이 사용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강국답게 디지털 작업들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들여다봐야 그 뜻을 알아챌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치 갤러리에서 컬렉션하면 그 작품은 십중팔구 ‘뜬다’. 사치만의 작품 컬렉션 기준이 있나? 단순하다. 바로 첫 느낌이다. 작품의 소장 가치나 투자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처음 봤을 때 ‘이거다’ 하는 느낌이 오는 작품을 구입한다.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채는 작품, 작품 자체가 말하는 작품에 집중한다. 이 작품을 누가 만들었고 문화・사회적 배경은 어떻고 등의 설명은 필요 없다. 오히려 그런 것까지도 말해주는 작품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시 도록을 만들 때 이미지 자체가 이야기하도록 설명을 최대한 자제한다. ‘첫 느낌’이라는 게 굉장히 주관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동안의 실적이 우리의 생각이 옳았음을 입증해준다.

1 지용호, ‘Shark 10’, used tire·synthetic resin, 140×300×130cm, 2010.

그럼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한국 작가 중 특별히 ‘감 오는’ 작가가 있나? 답하지 않겠다. 이유는 어떤 작가 한 명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치 갤러리의 정신은 관람객이 그 작품을 보면서 스스로 감동받고,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사치 갤러리에서 ‘1000년(One Thousand Years)’이란 작품을 선보였을 때 이야기를 해보겠다. 유리 방 안에 잘린 소 대가리가 있고 한쪽엔 전기 해충 구제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파리들이 소 대가리에 알을 낳고 날아다니다가 전기망에 걸려 죽었다. 알에서 부화한 파리들은 그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작품을 너무 재미있어 했고, 그 앞에서 열심히 뛰어놀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관람객들이 존재와 생명, 소멸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레 깨달았다.
낸 골딘 Nan Goldin의 전시 이야기를 해볼까? 책을 읽는 남자와 침대 위에서 옷을 벗은 채 생각에 잠긴 여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관람객들이 스스로도 옷을 벗고 그 작품 앞에 함께 섰다. 어느 누구도 그 광경을 외설로 느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일기장을 펼쳐보이듯 털어놓은 낸 골딘의 작품에 반응한 것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사치 갤러리가 나아가려는 방향은 고상하고 똑똑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미술이 아니라 동시대인이 반응하는 미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치 갤러리에서는 전시에 대한 긴긴 설명도, 작품을 읽는 방법에 대한 일방적인 지침도 안 붙이고 아주 최소한의 정보만 준다. 이건 사치 갤러리의 또 다른 철학, 곧 ‘아티스트가 생각하기’이기도 하다. 아티스트와 함께 미술관에 가본 적 있나? 작품 설명을 읽는 대신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둘러보며 마음대로 상상한다. 이쯤에서 다시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대라면 전시 첫날 갤러리 로비에 내려가서 관람객에게 물어본 후 답하고 싶다.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도 <코리안 아이> 전시를 보고 싶어할 텐데.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전시는 7월 3일~18일 런던 사치 갤러리를 시작으로, 9월 24일~10월 10일엔 싱가포르를 거쳐, G20(주요 20개국) 서울 정상회의 기간에 맞춰 11월 1일~30일엔 서울로 전시가 이어질 것이다. 이번 전시의 개막에 맞춰 한국 현대미술가 75명을 영문으로 소개하는 <코리안 아이: 한국 현대미술 Korean Eye: Contemporary Korean Art>도 출간할 계획이다. 내년엔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와 손잡고 한국어판 온라인 웹사이트도 열 계획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기간에 맞춰 사치 갤러리 전관에서 더 큰 규모의 <코리안 아이>전도 열 계획이다.
광고 전문가 찰스 사치가 만든 갤러리답게 마케팅 방법이 탁월하다. 그중 개인적으로 홈페이지를 이용한 마케팅이 맘에 든다. 나는 블로그온 섹션(www.saatchi-gallery.co.uk/blogon)에 자주 드나드는데, 매일 업데이트되는 소식 그리고 미술계 중요 인물들의 블로그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게 된다. 앞서 말했듯 사치 갤러리의 철학은 ‘오늘날의 미술’이다. 작가들이 미술 대학을 졸업한 후 자기 작업을 시작할 때 주로 혼자서 일하다 보니 세상과 단절되는 경험을 한다. 작가들이 관람객과, 컬렉터와, 큐레이터와, 비평가와 만나는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같은 블로그를 만들었다. 일 년에 1백 25만 명이 이 사이트에 방문한다.
지난해 BBC에서 방영한 리얼리티 쇼 <사치 스쿨(School of Saatchi)>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TV쇼에서 경합 방식으로 신진 아티스트를 뽑는다는 기막힌 발상은 어떻게 나온 건가? 아무리 잘 만든 TV 예술 프로그램이라 해도 시청자들은 두세 번 보면 떨어져나간다. 우린 이 또한 아티스트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심에 오른 6명의 후보가 프로그램을 끌고 갔다. 작가들은 세 달 동안 런던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완성하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그걸 수행하면서 낙오되는 과정을 TV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 것뿐이다. 계속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끌고 가다 보니 시청자들이 다음 편을 기다리게 됐다. 예술 프로그램이기 이전에 휴먼드라마로 보여졌다. 이 리얼리티 쇼가 아주 큰 성공을 얻었는데, 평소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하는 사치는 끝까지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사치 갤러리가 개관한 지 벌써 25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찰스 사치의 컬렉션에 대한 비판도 많이 들었을 텐데, 앞으로 어떤 변화를 계획하고 있나. 사람들이 우릴 보고 ‘슈퍼 컬렉터’라기보다 ‘슈퍼 딜러’라고 비판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바를 밀고 나가는 건 아무도 말릴 수 없다. 누군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줘야 그들의 작업이 발전하고 이로써 아트 마켓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품을 사서 되파는 것을 욕한다 해도 상관없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건 이 시대 살아 있는 아티스트들의 살아 있는 컬렉션을 만든다는 것이므로. 앞으로도 그 원칙은 지켜질 것이다.


사치 갤러리는 어떤 곳?
세계적인 컬렉터 찰스 사치 Charles Saatchi(67세)가 1985년에 문을 연 갤러리다. 찰스 사치는 광고 회사 ‘사치&사치’로 부를 쌓은 뒤 컬렉터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젊은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가 됐다. 당시 영국 정부의 국가 이미지 쇄신 노력(영국의 전통적인 이미지가 새로운 시대의 교역, 외교에 장애가 되자 전략적으로 젊은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과 맞물려 사치가 수집한 신진 작가의 작품이 큰 관심을 끌었다. 사치는 런던의 미술 대학 졸업전을 순례하며 청년 작가의 작품을 구입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와 동료들이 기획한 <프리즈 Freeze>다. 1992년 <사치의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Young British Artist of Saatchi> 전을 열면서 ‘yBa’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고, yBa는 현대미술의 신화가 됐다. yBa에는 최근까지 ‘세계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중 1위에 오른 데미안 허스트 외에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마크 퀸 Marc Quinn 등이 속해 있다. 2001년경 사치는 yBa 작가들의 소장품을 대부분 팔고, 다른 젊은 작가를 찾아 대학 졸업전을 순회했다. 2005년부터는 중국과 인도 미술품을 수집하고 있다.
사치 갤러리의 컬렉션을 두고 ‘도박적 모험이다, 개인적 재산의 증식이다’라는 비판도 많지만 이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기존 컬렉터나 딜러가 유명 작가에만 주목하는 데 비해 사치는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 불공정하게 저평가된 중견 작가의 작품을 구입해 그들을 후원한 것이 그 첫 이유다. 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컬렉션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수집한다는 것. 그런 이유로 사치 갤러리는 현대미술의 물줄기를 뉴욕에서 런던에서 돌려놓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www.saatchi-gallery.co.uk




2 홍영인, ‘A lady I met in Ubon Ratchathani, Summer 2006’, Embroidery and acrylic on scenic fabric, 112×150cm, 2008.
3 박은영, ‘Big present’, Acrylic on canvas, 220×200cm, 2008.



4 전준호, ‘The White House’, Video Installation, Digital Animation, 2005~6.


 5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 Sleeping Beauty’, c-print, 230×180Cm, 2009.


6 배준성, ‘The Costume of Painter-Phantom of Museum D, W.House harp ds’, oil and lenticular on canvas, 181.8 ×227.3, 2009.

7 신미경, ‘translation-vase’, soap·paint, 17.5×17.5×31cm, 2009.
8 권오상, ‘Harpers Bazaar’, C-print, mixed media, 180×105×55cm, 2008.



9 김현수, ‘Breik’, Human Hair·Oil Color·Water Paint·Epoxy·Steel, 92×150×155cm, 2008.

사치가 주목한 한국 현대미술의 블루칩 10
1 지용호
폐타이어를 소재로 하지만 순수 조각 방식으로 작업한다(철이나 스티로폼으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실제 근육처럼 폐타이어를 잘라 붙이는 소조 기법). 용 대가리에 돼지 코, 목이 긴 늑대처럼 비정상적인 형태나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으로 변형된 뮤턴트 mutant가 그의 작품을 대변한다. 현대 사회의 횡포 속에 노출된 인간의 불안, 인간으로 인해 힘을 잃어가는 자연을 상징한다.
2 홍영인 우체국, 경찰서 등의 공공기관에 ‘한시적’ 설치미술로 그 공간의 의미를 변화시키던 작가가 최근 새로운 ‘조각’ 작업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 이미지를 자신의 개념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기념비적 조각이라 할 수 있는 불상, 이순신 동상 등을 그리고 거기에 현대판 옷을 입혀 전혀 다른 맥락의 인물을 창조한다.
3 박은영 박은영 작가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 ‘호그빗 Hoggbit(거세된 수퇘지를 일컫는 hog와 집토끼 rabbit에서 따온 이름)’.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 속에 정체성을 잃고 배회하는 인간, 즉 경계인을 말한다. 신유목 시대의 인간상을 호그빗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4 전준호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하는데, 현실의 이면을 들추어 감정의 폭을 넓히고자 함이다. 2달러, 10달러, 100달러 지폐의 뒷면에 그려진 그림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인상적인데, 작가가 이미지 속을 돌아다니며 그림 속 인물과 대화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한다. 우리와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은유한 작품이다.
5 배찬효 영국 유학 생활을 거치며 배찬효 작가는 자신이 이방인이고, 그 이방인을 향한 문화의 장벽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서 엄마가 되기 위한 시도를 하듯 그는 영국인으로 치장, 변장한다. ‘영국 귀부인 닮기’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들과 동화되려는 욕망을 표현한다. 여기서 ‘영국’은 한 국가의 이름이라기보다 세상, 타자를 포괄하는 게 아닐까.
6 배준성 앵그르, 베르메르 등 서양 미술 거장의 명화에 한국 여인의 누드를 결합한 시리즈로 유명한 화가. 그림 위에 전혀 다른 이미지가 찍힌 비닐을 덧씌우기도 하고, 렌티큘러 lenticular 기법(이미지 2~3개를 한 화면에 그려 넣어 보는 각도에 따라,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 보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감상자는 비닐을 슬쩍 들춰보고 싶은 욕망, 그림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은밀한 것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7신미경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발견하면 실리콘으로 형태를 뜬 후 그 속에 녹인 비누를 부어 굳힌다. 그 다음 속을 파내고 겉문양을 상감하거나 염료로 무늬를 그려 넣는다. 그 다음 유약을 바르는 것처럼 액체 비누로 코팅하면 작업이 마무리된다. 고전적이면서 키치적인 그의 비누 조각품들. 무엇보다 그 조각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건 녹거나 마모되어 스스로 소멸하는 태생적 슬픔 때문일 것이다.
8 권오상 가장 가벼운 조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권오상 작가.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차용한 ‘플랫’ 연작, 초고가의 슈퍼 카를 조각한 ‘The Sculpture’ 연작 등 소비 문화의 단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비판도, 동조도, 뒤집기도 아닙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할 뿐이죠.”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없는 그의 설명.
9 김현수 극사실주의 인체 조각을 주로 하는 작가. 점토 소성 과정을 거친 그의 조각들은 피부에 돋은 소름이나 머리카락까지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그 외양이 신화적 존재를 닮았지만 그렇다고 순수하게 비현실적인 존재라 할 수도 없다. 작가의 욕망이 깃든 일종의 자기 분신이기 때문. 작품 속 소년이 뿔을 꺾고 있듯이 작가도 자기 마음의 ‘뿔’을 잘라내고 영원히 소년으로 남고 싶은 건 아닐까.
10 김동유 역사 속 인물, 인기 배우, 정치인 등을 조합해 만든 ‘더블 이미지’로 유명한 작가. 풀어 말하자면 케네디의 얼굴을 수백 개 이상 그려 넣는데 결국 그 ‘픽셀’(작은 케네디 얼굴)을 한데 모으면 메릴린 먼로의 얼굴이 되는 식이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박정희와 김일성처럼 유기적인 관계 또는 이질적인 관계를 짝짓기한다. 규칙과 불규칙, 완성과 미완성이 역사를 만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데 판단은 감상자의 몫이다.

10 김동유, ‘Marilyn Monroe vs John F. Kennedy’, oil on canvas, 227.3×181.8cm, 2010.

최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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