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개 아닌 사람 있수? 모두 개 맞죠?”“예.”복날 흔한 보신탕 집의 풍경이다. 보신탕 집 주인의 한마디에 손님들은 졸지에 개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복날이면 으레 개고기 먹는 날로 알았다. 삼계탕과 함께 삼복에 먹는 대표 보신 음식, 개장국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복날은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속의 절기다. 하지로부터 셋째 경일 庚日(하늘을 10간으로 나눠 하루하루의 이름을 붙인 7번째로 된 날)을 초복 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 中伏, 입추 후 첫째 경일을 말복 末伏이라 하며, 이를 삼복 三伏 혹은 삼경일 三庚日이라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이처럼 20일 만에 삼복이 들면 매복 每伏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복은 입추 뒤에 오기 때문에 만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면 달을 건너 들었다 하여 월복 越伏이라 한다. 삼복은 음력의 개념이 아닌 양력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소서(양력 7월 8일경)와 처서(양력 8월 23일경) 사이에 들게 된다. 올해는 초복이 7월 19일이고, 중복이 7월 29일이며, 8월 8일이 말복이다.
복날은 눌려 엎드려 있는 날 복 伏 자는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가을철의 금 金 기운이 대지로 내려오다가 아직 여름철의 더운(火) 기운이 강렬하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한다(屈伏)’는 의미다. 즉 더운 여름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하여 굴복시켰다는 뜻이다. 천간 天干(10간) 중 경일을 복날로 삼은 까닭은 경 庚은 속성상 약하고, 오행으로 볼 때 금이며,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금은 사계절 중 가을이기 때문에 금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경일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라는 뜻이다. 삼복은 중국 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일 년 중 무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시기여서 삼복더위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복달임, 복놀음, 개놀음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가 삼복이다. 하지 때가 되면 어지간히 논매기도 끝나고, 김매기도 마무리되어 몸도 마음도 지친다.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30℃를 웃도는 삼복에는 피로가 빨리 오고 식욕도 감퇴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위를 이기고 몸을 보양할 식품이 필요하다. 그 음식이 바로 ‘개고기’다.
그런데 하필이면 하고많은 고기 중 개고기를 먹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행으로 볼 때 개는 서쪽에 해당한다. 서쪽은 오행 중에서 금에 속한다. 반면 여름은 불(火)에 해당하고 더위의 절정인 복날에는 화기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금’의 기운이 쇠퇴한다.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화금극 火克金이 되기 때문에, 쇠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금’의 기운이 왕성한 개를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더위로 허해진 심신의 균형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여겼다.
1800년대 간송거사 유만공 柳晩恭은 복날의 풍경을 이렇게 읊었다.
“참외 쟁반에다가 맑은 얼음을 수정같이 쪼개놓으니,
냉연한 한 기운이 삼복을 제어한다.
푸줏간에는 염소와 양 잡는 것을 보지 못하겠고,
집집마다 죄 없는, 뛰는 개만 삶아 먹는다.”
또한 백중(음력 칠월 보름)에 동네 사람이 모여 정자나무 아래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개장국을 끓여 나눠 먹던 습속도 뜨거운 여름날 화기로 쇠퇴한 금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한 일종의 잔치였다. 무더운 여름날 쪼그려 앉아호미질을 하다 보면 베잠방이는 소금기에 바짝 절고 하늘은 지글지글 타다 못해 온몸을 옥죈다. 서민들은 복날에도 고기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손이 어지간히 끝나는 백중에 ‘호미씻이’라 하여 개를 잡고 갖가지 음식을 장만해 친목과 화합을 다지며 농사짓느라 찌든 심신을 말끔히 씻어낸 것이다. 이를 충청북도에서는 ‘복달임’이라 하고, 함경도에서는 ‘복놀음’이라 부르며, 개 잡는 것을 ‘개놀음’이라 불렀다. 성호 星湖 이익 李翼은 <성호사설>에 “함경도에서는 기후가 차므로 개를 길러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어린 개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은 서울의 귀족들이 귀히 여겼다”고 했다.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으로 해 입은 것이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까닭은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것 복날 개고기를 먹는 또 다른 이유는 액과 부정을 막기 위해서다. 지봉 芝峰 이수광 李光은 <지봉유설>에서 “복날의 복 伏이란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나 남은 양기에 압박되어 상승하지 못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즉,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에서 복날(伏日)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 때는 복날 온갖 귀신들이 횡행하므로 온종일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삼가하도록 했다.
제사상에도 당당히 올라간 개고기 개고기는 영양학적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근육과 가장 흡사한 양질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는 찬물로 씻으면 기름이 엉겨 붙지만 개고기는 그대로 씻겨 나간다.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에 의하면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액순환을 돕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여 체력을 보강하고 증진하는 효능이 있다. 또 개고기는 예로부터 몸이 허약해서 생긴 결핵이나 호흡기 질환에 좋다고 한다. 공중을 나는 새는 결핵에 걸려도, 개는 결코 결핵에 걸리지 않는다고 전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피부 미용에도 좋고 젖이 잘 돌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었을까. 우리나라의 신석기 유적에서 개의 뼈가 널리 출토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개 잡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개고기를 식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구워서 먹는 습속이 유행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중종 때 희락당 希樂堂 김안로 金安老(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아들이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와 결혼한 후 권력을 쥐고 공포 정치를 했다.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올랐다가 문정왕후 폐위를 도모한 죄로 유배되고 이어 사사되었다)가 개고기를 좋아해 아첨꾼들이 뇌물로 개고기를 바치고 벼슬을 얻었다고 한다.
개고기는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라갔다. 1795년 음력 6월 18일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상엔 개고기 찜(狗蒸)이 오르기도 했다. 1847년 프랑스 선교사 달렌은 그가 쓴 <조선교회사> 첫머리에 “조선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다”라고 극찬했다.
개고기는 비단 식용뿐만 아니라 당당히 제상에 올리기도 했다. 제사에 개고기를 쓴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서 진나라를 지나 한나라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예기> 의 ‘곡례 편’에 따르면 종묘 제사에 개고기 국을 올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논어>에도 반드시 개고기를 쓴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렸다. 조선시대는 산천 제사에 소, 돼지, 양, 닭과 함께 개를 제물로 썼다. 개는 비단 산천의 제사뿐만 아니라 가정의 제사에도 썼다. 우암 尤唵 송시열 宋時烈 선생도 제사에 개를 써도 무방하다고까지 했다.
개장국이 보신탕이 된 까닭 8・15 광복 후 북한의 공산주의 통치를 피해 월남한 함경도 사람들이 서울에 개장국 집을 개업하면서부터 보신탕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태운 차가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 정서에 익숙하지 않던 영부인은 길거리에 걸린 개장국이라 쓴 간판을 보고 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개장국이 뭐예요?”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영부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난처해진 이대통령, 순간 기지를 발휘해 “도그 오브 뷰로 치프 Dog of Bureau Chief”라며 개장국을 거꾸로 ‘국장 개’로, 그것도 영어로 말했다. 졸지에 개장국이 ‘국장님의 개’로 승진한 순간이다. 그 후 시내의 개장국 간판이 전부 보신탕으로 바뀌었다 한다.
이름이 개장국에서 보신탕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 맛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의 개장국은 또 한 번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바로 88 서울올림픽 때다. 해외 언론에서 우리를 개고기를 먹는 ‘야만의 나라’라고 ‘복날 개 패듯’ 떠드는 바람에 우리는 찍소리 한번 못하고 쥐 죽은 듯이 다시 작명을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난 것이 세상에 세상에 보도 듣도 못한 ‘사철탕’ ‘영양탕’이다. 이제 ‘사철탕’ ‘영양탕’ 하면 으레 개고기, 멍멍탕을 떠올린다. 심지어는 ‘보’ 자 밑에 신발을 그리고 ‘탕’ 자를 쓴 간판도 보인다. 개장국에 대한 수난은 마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 지울 길 없다.
보신탕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먹어온 시절 음식이요, 보릿고개에 허기를 달래주고 양기를 북돋워주던 토속 음식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야말로 보통의 음식이다. 그런데 외국 언론의 뭇매 때문에 내놓고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혐오 식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1997년 1월 2일, <뉴욕 타임스>가 “개가 애완용 혹은 식용이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우리를 비판하자,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이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뉴욕 타임스> 편집자에게 보내는 항의 서한을 통해 한국인의 고유 생활 양식과 전통을 무시한 편향된 시각의 보도라고 반박하면서 “모든 문화는 각자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누구도 그 가치의 우열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프랑스 사람들이 말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뉴욕 타임스> 측이 모르고 있는 점은 모든 아시아 국가들 역시 고유의 음식 취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문화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게 예의다. 서양의 개는 애완견이다. 하지만 우리는 애완견을 ‘견 犬’이라 하고, 식용 개를 ‘구 狗’라 하여 애초부터 구분했다. 그런데도 서양인들이 자기중심적 사고로 타국의 문화를 폄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한때는 ‘생선을 날로 먹는 야만인’이라고 일본인을 비하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회를 먹지 않는가.
한마디로 한 나라의 고유 문화에 대한 배격은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이며, 문화 간섭이다. 서로 간에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할 때 자국의 문화도 빛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문화를 합리적인 잣대로만 따져서는 안 된다.
개고기, 우리만 먹는 것일까 개고기를 우리나라 사람만 먹는 건 아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롯해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폴리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중국 광둥 성의 개고기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향육이라 하여 개의 부위에 따라 여러 가지 요리를 개발했다. 특히 폴리네시아인은 살기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 그들에게 개는 신과 나누어 먹어야 할 만큼 좋은 음식이었다. 임신 중의 아내가 개고기를 먹고 싶어 하면 남편은 이를 마련해주어야 했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는 유럽 사람들이 개를 먹지 않는 것은 개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가 비효율적인 고기 공급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유럽인들은 다른 동물성 식품 공급원이 많기 때문에 굳이 육식 공급 차원에서 비효율적인 개고기를 먹을 필요성이 없었다. 반면 우리나 폴리네시아, 중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발달한 건 다른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이 부족한 때문이라 했다.
고유의 문화적 토양에서 먹어온 고유 음식을 눈치 보느라 우리 스스로 혐오 식품으로 매도하고 한술 더 떠 개고기 문화를 뒷골목으로 내몰고 괄시만 했다. 언제 한번 그레그 전 미 대사처럼 “보신탕, 그것은 한국의 고유 음식이오”하고 떳떳하게 제대로 주장 한번 펴봤는가. 물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도 외국 언론에 의해 우리의 개고기 문화가 두들겨 맞긴 했지만, 그래도 88 서울올림픽 때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더 이상 개고기를 먹고 안 먹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로 치부해버리는 그들의 의식,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복날은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속의 절기다. 하지로부터 셋째 경일 庚日(하늘을 10간으로 나눠 하루하루의 이름을 붙인 7번째로 된 날)을 초복 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 中伏, 입추 후 첫째 경일을 말복 末伏이라 하며, 이를 삼복 三伏 혹은 삼경일 三庚日이라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이처럼 20일 만에 삼복이 들면 매복 每伏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복은 입추 뒤에 오기 때문에 만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면 달을 건너 들었다 하여 월복 越伏이라 한다. 삼복은 음력의 개념이 아닌 양력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소서(양력 7월 8일경)와 처서(양력 8월 23일경) 사이에 들게 된다. 올해는 초복이 7월 19일이고, 중복이 7월 29일이며, 8월 8일이 말복이다.
복날은 눌려 엎드려 있는 날 복 伏 자는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가을철의 금 金 기운이 대지로 내려오다가 아직 여름철의 더운(火) 기운이 강렬하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한다(屈伏)’는 의미다. 즉 더운 여름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하여 굴복시켰다는 뜻이다. 천간 天干(10간) 중 경일을 복날로 삼은 까닭은 경 庚은 속성상 약하고, 오행으로 볼 때 금이며,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금은 사계절 중 가을이기 때문에 금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경일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라는 뜻이다. 삼복은 중국 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일 년 중 무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시기여서 삼복더위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복달임, 복놀음, 개놀음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가 삼복이다. 하지 때가 되면 어지간히 논매기도 끝나고, 김매기도 마무리되어 몸도 마음도 지친다.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30℃를 웃도는 삼복에는 피로가 빨리 오고 식욕도 감퇴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위를 이기고 몸을 보양할 식품이 필요하다. 그 음식이 바로 ‘개고기’다.
그런데 하필이면 하고많은 고기 중 개고기를 먹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행으로 볼 때 개는 서쪽에 해당한다. 서쪽은 오행 중에서 금에 속한다. 반면 여름은 불(火)에 해당하고 더위의 절정인 복날에는 화기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금’의 기운이 쇠퇴한다.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화금극 火克金이 되기 때문에, 쇠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금’의 기운이 왕성한 개를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더위로 허해진 심신의 균형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여겼다.
1800년대 간송거사 유만공 柳晩恭은 복날의 풍경을 이렇게 읊었다.
“참외 쟁반에다가 맑은 얼음을 수정같이 쪼개놓으니,
냉연한 한 기운이 삼복을 제어한다.
푸줏간에는 염소와 양 잡는 것을 보지 못하겠고,
집집마다 죄 없는, 뛰는 개만 삶아 먹는다.”
또한 백중(음력 칠월 보름)에 동네 사람이 모여 정자나무 아래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개장국을 끓여 나눠 먹던 습속도 뜨거운 여름날 화기로 쇠퇴한 금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한 일종의 잔치였다. 무더운 여름날 쪼그려 앉아호미질을 하다 보면 베잠방이는 소금기에 바짝 절고 하늘은 지글지글 타다 못해 온몸을 옥죈다. 서민들은 복날에도 고기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손이 어지간히 끝나는 백중에 ‘호미씻이’라 하여 개를 잡고 갖가지 음식을 장만해 친목과 화합을 다지며 농사짓느라 찌든 심신을 말끔히 씻어낸 것이다. 이를 충청북도에서는 ‘복달임’이라 하고, 함경도에서는 ‘복놀음’이라 부르며, 개 잡는 것을 ‘개놀음’이라 불렀다. 성호 星湖 이익 李翼은 <성호사설>에 “함경도에서는 기후가 차므로 개를 길러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어린 개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은 서울의 귀족들이 귀히 여겼다”고 했다.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으로 해 입은 것이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까닭은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것 복날 개고기를 먹는 또 다른 이유는 액과 부정을 막기 위해서다. 지봉 芝峰 이수광 李光은 <지봉유설>에서 “복날의 복 伏이란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나 남은 양기에 압박되어 상승하지 못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즉,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에서 복날(伏日)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 때는 복날 온갖 귀신들이 횡행하므로 온종일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삼가하도록 했다.
제사상에도 당당히 올라간 개고기 개고기는 영양학적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근육과 가장 흡사한 양질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는 찬물로 씻으면 기름이 엉겨 붙지만 개고기는 그대로 씻겨 나간다.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에 의하면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액순환을 돕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여 체력을 보강하고 증진하는 효능이 있다. 또 개고기는 예로부터 몸이 허약해서 생긴 결핵이나 호흡기 질환에 좋다고 한다. 공중을 나는 새는 결핵에 걸려도, 개는 결코 결핵에 걸리지 않는다고 전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피부 미용에도 좋고 젖이 잘 돌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었을까. 우리나라의 신석기 유적에서 개의 뼈가 널리 출토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개 잡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개고기를 식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구워서 먹는 습속이 유행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중종 때 희락당 希樂堂 김안로 金安老(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아들이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와 결혼한 후 권력을 쥐고 공포 정치를 했다.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올랐다가 문정왕후 폐위를 도모한 죄로 유배되고 이어 사사되었다)가 개고기를 좋아해 아첨꾼들이 뇌물로 개고기를 바치고 벼슬을 얻었다고 한다.
개고기는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라갔다. 1795년 음력 6월 18일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상엔 개고기 찜(狗蒸)이 오르기도 했다. 1847년 프랑스 선교사 달렌은 그가 쓴 <조선교회사> 첫머리에 “조선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다”라고 극찬했다.
개고기는 비단 식용뿐만 아니라 당당히 제상에 올리기도 했다. 제사에 개고기를 쓴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서 진나라를 지나 한나라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예기> 의 ‘곡례 편’에 따르면 종묘 제사에 개고기 국을 올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논어>에도 반드시 개고기를 쓴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렸다. 조선시대는 산천 제사에 소, 돼지, 양, 닭과 함께 개를 제물로 썼다. 개는 비단 산천의 제사뿐만 아니라 가정의 제사에도 썼다. 우암 尤唵 송시열 宋時烈 선생도 제사에 개를 써도 무방하다고까지 했다.
개장국이 보신탕이 된 까닭 8・15 광복 후 북한의 공산주의 통치를 피해 월남한 함경도 사람들이 서울에 개장국 집을 개업하면서부터 보신탕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태운 차가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 정서에 익숙하지 않던 영부인은 길거리에 걸린 개장국이라 쓴 간판을 보고 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개장국이 뭐예요?”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영부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난처해진 이대통령, 순간 기지를 발휘해 “도그 오브 뷰로 치프 Dog of Bureau Chief”라며 개장국을 거꾸로 ‘국장 개’로, 그것도 영어로 말했다. 졸지에 개장국이 ‘국장님의 개’로 승진한 순간이다. 그 후 시내의 개장국 간판이 전부 보신탕으로 바뀌었다 한다.
이름이 개장국에서 보신탕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 맛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의 개장국은 또 한 번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바로 88 서울올림픽 때다. 해외 언론에서 우리를 개고기를 먹는 ‘야만의 나라’라고 ‘복날 개 패듯’ 떠드는 바람에 우리는 찍소리 한번 못하고 쥐 죽은 듯이 다시 작명을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난 것이 세상에 세상에 보도 듣도 못한 ‘사철탕’ ‘영양탕’이다. 이제 ‘사철탕’ ‘영양탕’ 하면 으레 개고기, 멍멍탕을 떠올린다. 심지어는 ‘보’ 자 밑에 신발을 그리고 ‘탕’ 자를 쓴 간판도 보인다. 개장국에 대한 수난은 마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 지울 길 없다.
보신탕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먹어온 시절 음식이요, 보릿고개에 허기를 달래주고 양기를 북돋워주던 토속 음식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야말로 보통의 음식이다. 그런데 외국 언론의 뭇매 때문에 내놓고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혐오 식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1997년 1월 2일, <뉴욕 타임스>가 “개가 애완용 혹은 식용이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우리를 비판하자,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이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뉴욕 타임스> 편집자에게 보내는 항의 서한을 통해 한국인의 고유 생활 양식과 전통을 무시한 편향된 시각의 보도라고 반박하면서 “모든 문화는 각자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누구도 그 가치의 우열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프랑스 사람들이 말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뉴욕 타임스> 측이 모르고 있는 점은 모든 아시아 국가들 역시 고유의 음식 취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문화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게 예의다. 서양의 개는 애완견이다. 하지만 우리는 애완견을 ‘견 犬’이라 하고, 식용 개를 ‘구 狗’라 하여 애초부터 구분했다. 그런데도 서양인들이 자기중심적 사고로 타국의 문화를 폄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한때는 ‘생선을 날로 먹는 야만인’이라고 일본인을 비하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회를 먹지 않는가.
한마디로 한 나라의 고유 문화에 대한 배격은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이며, 문화 간섭이다. 서로 간에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할 때 자국의 문화도 빛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문화를 합리적인 잣대로만 따져서는 안 된다.
개고기, 우리만 먹는 것일까 개고기를 우리나라 사람만 먹는 건 아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롯해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폴리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중국 광둥 성의 개고기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향육이라 하여 개의 부위에 따라 여러 가지 요리를 개발했다. 특히 폴리네시아인은 살기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 그들에게 개는 신과 나누어 먹어야 할 만큼 좋은 음식이었다. 임신 중의 아내가 개고기를 먹고 싶어 하면 남편은 이를 마련해주어야 했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는 유럽 사람들이 개를 먹지 않는 것은 개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가 비효율적인 고기 공급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유럽인들은 다른 동물성 식품 공급원이 많기 때문에 굳이 육식 공급 차원에서 비효율적인 개고기를 먹을 필요성이 없었다. 반면 우리나 폴리네시아, 중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발달한 건 다른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이 부족한 때문이라 했다.
고유의 문화적 토양에서 먹어온 고유 음식을 눈치 보느라 우리 스스로 혐오 식품으로 매도하고 한술 더 떠 개고기 문화를 뒷골목으로 내몰고 괄시만 했다. 언제 한번 그레그 전 미 대사처럼 “보신탕, 그것은 한국의 고유 음식이오”하고 떳떳하게 제대로 주장 한번 펴봤는가. 물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도 외국 언론에 의해 우리의 개고기 문화가 두들겨 맞긴 했지만, 그래도 88 서울올림픽 때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더 이상 개고기를 먹고 안 먹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로 치부해버리는 그들의 의식,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