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 고유의 단시 ‘하이쿠’와 비교되는 압축 시로 유명하다.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등이 있으며,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연어 이야기> <짜장면> 등을 출간했다.
초여름, 만경강을 따라 날개를 편 전주평야에 들불이 번진다. 마을에 재앙이라도 닥친 것처럼 거대하게 하늘로 뿜어오르는 잿빛 연기. 그것은 보리를 베어내고 남은 그루터기를 태우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5월과 6월 사이, 논이 ‘스모그’에 휩싸이는 그 시간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생태적 순환 과정’을 상징한다.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어 있는 보릿대는 열이 가해지면 그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 바작바작, 톡톡, 바작바작, 톡톡 소리를 내며 합주하듯이 숨 가쁘게 타들어간다. 구수하면서도 매캐한 냄새가 공기를 잠식하고 논바닥이 시커멓게 그을린 후에야 소멸하는 불씨.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벼가 자란다. 모천을 떠난 치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와 산란을 하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과정. 그 죽음을 통해 거듭 세상에 태어난 맑고 투명한 알이 또다시 연어가 되는 바다의 속성. 슬프지만 찬란한 연어의 일생은 일 년을 절반씩 나누어 사는 보리와 벼의 운명을 닮아 있다.
시인 안도현 씨의 산책로를 따라가다 우연히 만난 ‘거대한 몽환’은 그가 15년 만에 부활시킨 <연어>의 후속작 <연어 이야기>의 줄거리를 담고 있는 듯했다. 전주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며 주말이면 완주 작업실에 가서 글을 쓰고, 아내와 함께 해외 문인들 행사에 다니며 평범하게 보낸 시간들. 1980년 원광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된 전주와의 인연은 ‘전업 백수(직업을 갖지 않고 글만 써온 시간을 작가는 그렇게 표현했다)’ 시절을 거쳐 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 꼬박 30년을 채우고 있다. 서울 사람들이 여름이면 노래를 부르는 ‘휴가’라는 말이 의아하고 낯선 이유도 그에겐 떠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슴팍에 울분과 화를 품고 살아야 하는 도시 생활자들은 어디론가 떠나야 할 숙명에 놓여 있지만 그에겐 완주에 꾸려둔 작업실도, 널찍한 평상을 들여놓은 교수실도 천혜의 휴양지나 다름없다(누워서 책도 읽고, 가끔 낮잠도 청하기 위해 그 무거운 걸 후배를 동원해서 4층 교수실까지 끌어 올렸다고).
물과 곡식이 풍부하고, 전통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점잖은 도시, 전주. 검게 흐르는 만경강과 그와 이웃한 평야 지대는 그 속에 놓인 인간을 한없이 평온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안도현은 그곳에서 새와 벗하며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배우고 독수리 타법으로 자음과 모음을 눌러쓰며 3년에 한 권씩 책을 냈다. 작가로 데뷔한 이래 총 9권의 시집과 2권의 연어 시리즈, 동료 작가들과 함께 엮은 산문집에 이름을 올리면서 어딜 가면 ‘혹시 시인 아니냐’는 질문도 받을 만큼 유명해졌다. 그러고 보니 <연어>로 대박을 터트리기 전에 그는 이미 석 줄 시로 유명한 시인이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_ ‘너에게 묻는다’ 전문
‘젊고 뜨거운 피’를 가진 자에게 바치는 노래
맑은 눈과 마음을 가진 자에게만 보이는 삶의 잔잔한 풍경들,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뜨거운 의미. 어느 날 문득 시인의 가슴속으로 헤엄쳐 들어온 연어 이야기 또한 내적 순수에서 비롯된 일이다. 1996년 3월 2일,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를 달고 첫선을 보인 <연어>는 15년에 걸쳐 8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다. “내심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그의 말처럼 ‘연어의 대박’은 의외였다.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연어라는 물고기에 대해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좋은 음식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다 보니 연어의 가치도 급상승했지만 당시 그는 ‘연어가 풍기는 묘한 뉘앙스’에 끌렸을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모천을 떠나 머나먼 알래스카까지 헤엄쳐 가는 물고기. 긴긴 여행을 마치고 나면 떠났던 길을 되짚어 모천으로 돌아오는 회귀성 어류. 그리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품고 있던 알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 생물체. 그 신비한 한살이에 ‘꽂혀’ 어류 도감부터 논문에 이르기까지 관련 자료를 샅샅이 탐독하던 시절, 그는 시인은 결코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연어는 ‘모천 회귀성 어류’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는 ‘문학적 소재’로 다가왔으므로.
(왼쪽) 판화가 이철수 씨가 선사한 그림.
“양양 남대천에 내수면연구소라는 곳이 있어요. 국내 최대의 연어 서식지죠. 견학차 독자들과 함께 그곳에 간 적이 있어요. 책 속에선 연어의 일생이 장엄하고 아름답게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막상 그곳에선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산란기를 맞은 연어를 그물로 가두고 암컷의 배를 갈라 알을 짜내요. 같은 방법으로 수컷의 우윳빛 정액도 받아내죠. 그러고는 휘휘 섞으면 수정이 되는 거예요.” 이 장면을 목격한 독자들은 ‘왜 거짓말을 했냐’며 농담처럼 따지기도 했다. 놀란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이라는 생을 살다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상상 속 연어와 달리 현실 속 연어의 최후는 비참했다. 하지만 시인의 생각이 머문 곳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물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자유를 얻은 연어들의 세계였다. “너는 하류의 ‘물고기 연구소’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었어.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학교는 인공수정된 연어들의 사육장이었고, 거기에서 자란 연어들의 몸집이 큰 이유는 사람들이 준 영양가 높은 먹이만 먹고 자랐기 때문이었어. 그에 비해 자연수정된 연어들은 몸집이 작지만 동작이 날쌔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연어 이야기> 85쪽) 그는 인공적으로 부화한 연어들과 자유 세계를 경험한 연어들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확신했다. 15년 만에 부활한 <연어 이야기>를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 대목이다. ‘그물에 갇혀 있지 말자. 자유를 향해 도전하며 살자.’ 이건 세월과 오래 싸워 순수를 잃어버린 어른을 위한 노래가 아니다. 연어의 삶에 자아를 대입할 수 있는 ‘젊고 뜨거운 피’를 가진 자에게 바치는 노래다.
그가 지난 5년 동안 강단에서 가르친 제자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처음 학생들을 가르칠 땐 고민도 많았다. 결석하는 학생이 많은 것도 걱정됐고, 시험 때가 되면 알파벳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일도 무의미했다. 그가 유일하게 권한 ‘학습법’은 필사 筆寫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라면 더 좋겠지만 아니어도 무방. 무조건 시 200편을 필사하는 것. 좋은 법첩(모범이 될 만한 선인의 필적을 돌이나 나무 따위에 새긴 것을 옆에 두고 그것을 따라 쓰는 것)이 서예의 기본이듯, 좋은 시를 마음에 새기며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눌러쓰다 보면 자연스레 공부가 된다(학생 신분이 아닌 지금에야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과제’인가를 깨닫는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그것조차 힘겨워한다. “난 말이야, 넘지 못할 벽은 없다고 생각해. 아니 오히려 뛰어오르라고, 도전하라고 벽은 높이 솟아 있는 게 아닐까? 벽 앞에서 절망하고 되돌아서는 이들을 위해 한번 덤벼들어보라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고 벽은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벽은 높고, 두껍고, 강하고, 오만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 이 세상 어떤 벽도 하늘 위까지 막혀 있진 않아. 그러니까 넘을 수 없는 벽이란 없는 거야. 많은 연어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연어 이야기> 23쪽) 수컷 연어가 암컷 연어에게 건넨 이 말은 마치 그가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같다.
(오른쪽) 촬영이 끝날 무렵, 안도현 씨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까 그 보리밭에서 ‘볼일’ 보는 자세로 앉아 한 컷 찍으면 어떨까요?” 결과는 보시는 대로다.
‘두려움을 동그랗게 빚어 만든 말랑말랑한 구슬’이라는 절묘한 표현처럼 혹독한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연어 알 같다. 그 연약한 막을 뚫고 나와 거친 바다를 헤엄치고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키우는 것. 그것은 곧 동경이고, 자유다. 그 치열한 인생 수업을 받는 동안 연어와 인간은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하며 관계를 맺는다. 시인은 이러한 순환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꽃과 나비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이렇게 작아 보여도 내 몸 속에는 엄청나게 큰 실타래가 들어 있어. 내 몸에 감긴 실을 풀다 보면 꽃이 있는 곳까지 가게 돼. 실을 풀면서 꽃과 꽃의 거리를 재고 꿀을 빠는 거야.” “꽃이 진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리는 풀어놓았던 실을 감기 시작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이어진 실을 제각기 감는 거지.” “내가 풀어놓았던 실을 감아야만 나중에 알을 낳을 수 있게 되거든. 내가 낳은 알은 내 몸속에 서리서리 감아둔 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실로 고치를 만들지.” 연어에서 나비로, 나비에서 다시 인간에게로 대입되는 이 아름다운 문장들.
진실을 향한 그리움의 언어
그는 이번 작품을 쓰는 데 3년 이상 공을 들였다. 초반부가 풀리지 않아 쓰고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몇 번의 방학을 지나쳤다. 그러는 사이 출판사의 압력도 만만찮았지만 서두르진 않았다. 그래서 비평가들의 입을 통해 작품이 너무 쉽다고, 대중의 눈만 좇는다고 힐난받을 때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는 어렵게 쓴다. 스트레스 엄청 받고, 매일매일 슬럼프에 빠진 기분으로 쓴다. 스스로에게 자문도 한다. 내 글이 너무 쉽고 편하기만 한 걸까? 그래서 부러 어려운 시도 써보고 불편한 상상도 해본다. “시를 쓰면서 불편해져라, 불편해져라 외운 적도 있어요. 그렇게 쓴 시를 스스로 읽어보지만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불편하지 않은데 독자들이 어떻게 불편하겠어요.”
(왼쪽) 책도 읽고 차도 마실 수 있는 평상을 교수실에 옮겨두었다.
그는 시인이란 누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욕망이나 심사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학 하는 사람들이 세상일에 무관심하고 내 속에 있는 것만 끄집어내는 데 주목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시인은 거대한 서사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정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승부를 건다. 동시대 시인들의 시를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읽고(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연어와 나비 같은 자연물에 무한한 애정을 쏟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 안에 시대의 흐름이 있고, 삶의 진정성이 있으며, 아름다움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문학 평론가 손경목 씨가 안도현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 헌사한 말을 빌리면 “감동 없는 문학이 넘쳐나는 때일수록 진정성의 울림을 지닌 시를 읽는 일은 즐겁다. 그런 시는 불현듯 우리의 무딘 일상을 충격하면서 일상 속에 잠재워진 진실 앞에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이렇게 보면 시는 일상성과의 싸움이며, 좋은 시는 이런 싸움의 맥락에서 감동적으로 읽힌다. 그 감동은 그의 시들이 진실을 잠재우는 일상성과 싸움의 흔적을 두드러지게 간직하고 있는 한편, 그 싸움에서 찢기고 팬 상처를 진실을 향한 그리움의 언어로 차분히 감싸 안는 데서 온다.” 안도현이라는 시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른쪽) <연어 이야기>(문학동네) 15년 만에 부활한 <연어>의 후속작 <연어 이야기>. 죽음으로 자유를 얻고, 벽을 뛰어넘으며 사랑의 바다에 스며든 한 은빛 연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