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남편의 전략 수염 안 난 여자는 절대 모르는 남자의 의리론

세뇌. 한자로는 ‘洗腦’라고 쓰고, 영어로는 ‘brainwashing’이라고 한다. 하이타이로 옷을 빨듯 뇌를 씻어서 사상과 가치관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한다는 뜻이다. 이 어렵고 섬뜩한 단어를 지금의 중년 세대는 ‘가나다라’를 깨치기 전부터 배우고 익혔다. 한글 교육보다는 반공 교육이 우선이던 냉전 시대, 북한은 ‘수령님 만세’를 인민에게, 남한은 ‘국민교육헌장’을 국민에게 세뇌했다. 이래저래 세뇌라는 단어와 친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던 시대를 우리는 살아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들은 세뇌 교육 하나를 덤으로 받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설교 속에서, 방과 후 유협 집단의 규칙 안에서,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청소년기 전체를 지배한 핵심 과목이었다. 이름 하여 ‘의리학’.
약주를 드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놈아, 남자는 의리 빼면 시체야.” 30원짜리 낱개 담배를 나눠 피우며 친구들은 맹세했다. “우리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 주윤발은 <영웅본색>에서 홍콩 야경을 보며 탄식했다.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구나.” 소설 <삼국지>의 관우는 돈과 미인으로 자기편을 삼으려는 조조에게 말했다. “유비 형님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소. 님아, 혼자 노셈.” 세뇌당한 의리 키즈는 “남자라면 온리 의리!”를 부르짖으며 성장한다.
이 타이밍에서 인문학적 접근 방법으로 의리를 살짝 어루만져주자. 소쉬르 형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의리 등과 같은 관념 언어는 개념 정리를 깔끔하게 해줘야 질서가 잡히는 법이다. 아아, 문득 본 코너의 끝 간 데 모르는 우아함에 몸서리가 쳐지는구나. 각설하고, 우정과 의리는 어떻게 다른가? 우정은 여자들끼리 화장실 갈 때 손잡고 가는 연약한 것이고, 의리는 남자들끼리 피의 맹세를 통해 쌓아가는 단단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신영복 교수의 그 유명한 <존재론과 관계론>의 강의를 대입한다면, 우정은 ‘존재론’이고 의리는 ‘관계론’이다. 우정은 너와 내가, 둘의 존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서로를 인정하는 친교 행위다. 영자와 미자의 우정이 돈독하다는 건 영자와 미자가 더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건 둘의 문제다. 반면 의리는 사회적 관계망을 넓혀가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의리 있는 남자’라는 훈장을 단 철수는 그로 인해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의리 없는 놈’으로 찍힌 명수는 그 자체로 인간관계의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러니 남자들이 의리에 연연할 수밖에.
의리가 남자의 단어로 독점된 것도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와 무관하다. 여자를 ‘안사람’, 남자를 ‘바깥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 활동이 남자에게만 주어졌던 역사 속에서, 관계의 중요성은 당연히 남자의 몫이었다. 이를 두고 ‘수염 안 난 여자가 의리를 어찌 알랴’ 따위로 헛방귀를 뀌는 남자들이야말로 ‘의리학’에 제대로 세뇌당한 1급 피해자들이다.
또 하나 오늘날 삐딱하게 누운 의리를 올곧게 세우기 위해서는 의 義의 아버지, 맹자를 모셔와야 한다. 그 어원을 낳으시고 설파하신 분이 맹자이시니 이는 실로 당연하다. 맹자는 의를 일컬어 수오지심 羞惡之心이라 했다. 즉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恥)’이 의의 핵심이라 했다. 이렇게 하면 의리의 개념 정리는 깔끔해진다. ‘사람이 세상의 순리와 이치를 따르면서 부끄러움을 늘 경계하는 마음가짐과 태도.’
우아함도 지나치면 지겨운 법이니, 본 코너 본연의 촐랑 모드로 복귀하자.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반공 교육의 허상을 자각한다. 뿔 달린 빨갱이는 조작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의리 교육의 허구성도 깨닫는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의리는커녕 친구라는 게 원래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 술 한잔을 마셔도 직장 동료요, 가족 모임을 해도 이웃과 하는 판이니 의리를 맹세한 불알친구, 의리를 서약한 학교 친구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마흔 넘은 중년에게 친구와 의리는 잃어버린 전설이 돼버리는 것이다.
후유, 한숨 한번 쉬고 마무리하자. 남자들이 의리 운운하며 친구 빚 보증을 서줘야 한다고 말하거나, 처자식은 나 몰라라 하면서 헛바람 난 친구 뒤치다꺼리를 해준다면 그건 의리가 아니라 워리 worry다. 조금 전 개념 정리한 대로 빚 보증이 세상의 순리와 무슨 상관이랴? 그러나 가끔 자정 넘은 시간에 친구를 데리고 온 남편이 술상을 봐달라고 하거나,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돕기 위해 친구들과 십시일반하기로 했다며 의리를 들먹이면 그땐 묵묵히 등을 두드려주시라. 남편은 지금 친구를 상실한 독락 獨樂의 시대에 살면서 동락 同樂의 동무를 그리워하고, 사어 死語가 돼가는 의리를 향수하는 사슴의 만가 輓歌를 부르고 있는 중이다. 불쌍하잖아, 훌쩍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