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우리 가족은 동네 일본 식당에 가서 스시를 먹어요. 아이들이 조용한 식당 분위기를 좋아해요. 젓가락도 잘 사용하죠. 학교에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젓가락 사용법을 배운 거죠.” 런던 북서쪽 아이리시 커뮤니티 킬번에 살고 있는 미술가 대런 아몬드는 토요일 오전 11시를 좋아한다. 정적이 흐르는 스시 레스토랑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몸짓하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아내와 대런은 말없이 눈웃음을 주고받는다. 영국 <보그>의 패션 에디터인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함께 오붓하게 둘러앉아 식사를 즐기는 시간. 옅은 미소가 감도는 주말의 아침 풍경은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고요를 닮아 있다. 조각, 사진, 영상물, 설치 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간을 기록하는 미술가 대런 아몬드 Darren Almond. 조각가로 출발했으나 영상물과 사진 작업으로 더 유명한 그는 2005년 할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영상물
“몇 년 전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입원해 문병을 갔어요. 쇠약한 모습으로 누워 계시던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몹시 그리워했죠. 두 분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인 허니문을 떠올리면서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길거리에서 춤을 추셨대요. 그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으셨던 거예요. 전 할머니를 모시고 그곳에 갔죠. 그리고 아주 오래 전 그날처럼 길거리에서 춤을 추게 해드렸어요.” 그는 이 작품으로 ‘가족사를 바탕으로 기억과 장소에 대한 탁월한 감성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할머니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할아버지는 영국의 광산 도시 위건에서 한평생 광부로 일하다 돌아가셨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늘 그르렁대는 소리가 났던 가엾은 할아버지. 대런은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피를 토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광부들의 삶을 왜곡 보도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광산 노동자들.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일은 할아버지가 살다 간 시간을 추모하는 일이기도 했다.
(위)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만난 대런 아몬드.

Darren Almond, Marathon Monk, 2010, edition of 3, single-channel HD video with sound, Duration: 35mins Courtesy the artist and PKM Trinity Gallery.
할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함
그 일을 계기로 대런은 인도네시아 자바 섬 근처의 화산 지대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며 유황을 캐내는 광부들의 일상을 담은 35분짜리 영상물

Darren Almond, Bearing, 2007, edition of 3, single-channel HD video with sound, Duration: 35mins, Courtesy the artist and PKM Trinity Gallery.
인도네시아 자바 근처의 극산성 화산 지대에서 유황을 캐내는 광부의 모습.
달빛으로 찍은 풍경화
낮에 본 풍경을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가 달이 떴을 때 다시 그 자리로 가서 장시간 노출로 사진을 찍는 기법. 대런 아몬드가 199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는 ‘Fullmoon’ 연작은 가히 ‘달빛으로 찍은 풍경화’에 가깝다. 19세기 유럽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과도 흡사한 이 연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바뀌는 자연현상을 한 장의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실제로 어떤 사진에서는 하얗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별을 관찰할 수 있는데, 15분 이상 긴 노출을 통해 ‘찰나’가 아닌 ‘무렵’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특별한 작업 방식으로 탄생한 사진은 은빛이 감도는 독특한 색감을 지니고 인기척 없는 고요한 정서마저 느끼게 한다. 대런은 “밤의 어둠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독감을 만들어내며 어떤 공허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기억이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발점이 되곤 하지요”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윌리엄 터너나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 같은 유명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던 장소를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지구의 지형적 변화와 역사를 기록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고립과 하찮음까지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사진이 아닌 한 편의 시가 된다.

(왼쪽) Darren Almond, Arctic Plate. 7, 2003, edition of 5, C-print face mounted onto glass, 79x79cm, Courtesy the artist and PKM Trinity Gallery. 영하 43℃에 달하는 극한의 추위를 견디며 내면의 고독함을 담아냈다.
(오른쪽) Darren Almond, Fullmoon@Wall, 2007, edition of 5, C-print mounted onto aluminium, 128x128cm, Courtesy the artist and PKM Trinity Gallery.
북극이 나를 끌어당긴다
그는
1천 일 동안 달리며 궁극의 자아를 깨닫는 승려들
이번 국내 전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소개하는 대런 아몬드의 최신작
대런 아몬드의 국내 첫 개인전은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3월 18일부터 4월 16일까지 열린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사진과 영상물 30여 점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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