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나가자니까.”
운동복 차림의 아내는 양손을 허리에 댄 채 남편에게 운동 가자고 채근한다. 사실 운동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에게 필요한 것이다. 남편은 작년 연말에 체지방 과다에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고 고지혈 증상도 있어서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남편은 매년 새해를 맞을 때마다 신년 계획이란 걸 세우는데, 그때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가는 항목이 ‘뱃살 빼기’였다. 그런데 뱃살을 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30분쯤 지난 후다.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TV를 보는 이 나른한 행복을 가쁜 호흡과 땀으로 끈적대는 피부와 근육통 같은 불쾌감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쉴래. 몸이 안 좋아.”“운동하면 좋아질 거야. 어서 나가자.”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아들 녀석도 거든다. “그러세요, 아빠. 아빤 운동이 필요해요. 뱃살 생각 좀 하세요.”
“알았어. 내일부터 할게. 정말 오늘은 머리도 아프고 감기 기운도 있나봐.”
“아무튼 작심삼일이라니까.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요?”
물론 부끄럽다. 남편은 작심삼일도 부끄럽고 D자형으로 튀어나온 뱃살도 부끄럽다. 그러나 번거로운 운동만 안 할 수 있다면, 이런 부끄러움쯤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편은 거미형 비만이다. 팔다리는 가는데 배만 볼록 나온 체형이라서 아내 말로는 더욱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이들까지 가세해서 핀잔이다. 핀잔도 핀잔이지만 거울에 비친 자기 배를 볼 때면 남편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어 우울해진다. 그러나 우울이 결심으로 발전하긴 어렵고, 결심이 매일의 실천으로 옮겨가긴 더 어렵다. 올해에는 꼭 뱃살을 빼리라 비장한 결심을 하는데 또 작심삼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중학교 다닐 때 체육 선생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다른 과목은 시험 칠 때 미리 문제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체육은 문제도 답도 다 알려준다. 가령 100m 달리기는 몇 초 이내로 뛰면 되고 턱걸이는 몇 개 이상 하면 된다는 식으로. 뱃살 빼기도 마찬가지다. 문제도 답도 다 알고 있다. 과식하지 않고 특히 저녁을 적게 먹고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 자주 몸을 움직이고 많이 걷걸어야 한다. 먼 거리도 걸어서 다니고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그러나 문제를 알고 답을 알아도 그것을 실천하기는 참으로 힘들다. 우선 남편은 술자리가 잦다. 일주일에 사흘은 술이다. 술 마신 날은 당연히 운동을 할 수 없다. 그러면 술 안 마신 날 운동을 해야 할 텐데, 그런 날은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당신 정말 안 갈 거야?”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나른한 행복감은 이미 깨진 지 오래. 이쯤 되면 게으른 남편도 하는 수 없이 일어서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정말 가기 싫은데….”
“아빠, 운동 열심히 하고 오세요.” “봐요. 애들이 더 좋아하잖아. 당신 건강은 가족에 대한 의무예요, 의무.”“운동 안 가도 되는 권리는 없나?”
남편과 아내는 집 부근 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 남자들도 쉬고 싶었는데 아내 등쌀에 못 이겨 나왔겠지. 남편은 운동 나온 남자들을 동병상련의 눈으로, 아내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아내는 모처럼 남편과 함께 운동을 나와서 그런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억지로 걷지 말고 ‘파워 워킹’을 해보란 말이에요.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걷기도 힘든데 ‘파워 워킹’이라니. 게다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잖아. 남편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내의 ‘파워 워킹’을 따라 해본다. 처음엔 귀찮았는데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도 씩씩해진다. 앞서서 걸어가다 가끔 뒤돌아보며 웃어주는 아내의 웃음도 싱그럽다. 이운동이 얼마나 뱃살 빼기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운동장에 나와야겠다. 가끔은.
(위) 페르난도 보테로, ‘Man with a Dog’, 2001
운동복 차림의 아내는 양손을 허리에 댄 채 남편에게 운동 가자고 채근한다. 사실 운동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에게 필요한 것이다. 남편은 작년 연말에 체지방 과다에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고 고지혈 증상도 있어서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남편은 매년 새해를 맞을 때마다 신년 계획이란 걸 세우는데, 그때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가는 항목이 ‘뱃살 빼기’였다. 그런데 뱃살을 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30분쯤 지난 후다.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TV를 보는 이 나른한 행복을 가쁜 호흡과 땀으로 끈적대는 피부와 근육통 같은 불쾌감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쉴래. 몸이 안 좋아.”“운동하면 좋아질 거야. 어서 나가자.”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아들 녀석도 거든다. “그러세요, 아빠. 아빤 운동이 필요해요. 뱃살 생각 좀 하세요.”
“알았어. 내일부터 할게. 정말 오늘은 머리도 아프고 감기 기운도 있나봐.”
“아무튼 작심삼일이라니까.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요?”
물론 부끄럽다. 남편은 작심삼일도 부끄럽고 D자형으로 튀어나온 뱃살도 부끄럽다. 그러나 번거로운 운동만 안 할 수 있다면, 이런 부끄러움쯤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편은 거미형 비만이다. 팔다리는 가는데 배만 볼록 나온 체형이라서 아내 말로는 더욱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이들까지 가세해서 핀잔이다. 핀잔도 핀잔이지만 거울에 비친 자기 배를 볼 때면 남편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어 우울해진다. 그러나 우울이 결심으로 발전하긴 어렵고, 결심이 매일의 실천으로 옮겨가긴 더 어렵다. 올해에는 꼭 뱃살을 빼리라 비장한 결심을 하는데 또 작심삼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중학교 다닐 때 체육 선생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다른 과목은 시험 칠 때 미리 문제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체육은 문제도 답도 다 알려준다. 가령 100m 달리기는 몇 초 이내로 뛰면 되고 턱걸이는 몇 개 이상 하면 된다는 식으로. 뱃살 빼기도 마찬가지다. 문제도 답도 다 알고 있다. 과식하지 않고 특히 저녁을 적게 먹고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 자주 몸을 움직이고 많이 걷걸어야 한다. 먼 거리도 걸어서 다니고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그러나 문제를 알고 답을 알아도 그것을 실천하기는 참으로 힘들다. 우선 남편은 술자리가 잦다. 일주일에 사흘은 술이다. 술 마신 날은 당연히 운동을 할 수 없다. 그러면 술 안 마신 날 운동을 해야 할 텐데, 그런 날은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당신 정말 안 갈 거야?”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나른한 행복감은 이미 깨진 지 오래. 이쯤 되면 게으른 남편도 하는 수 없이 일어서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정말 가기 싫은데….”
“아빠, 운동 열심히 하고 오세요.” “봐요. 애들이 더 좋아하잖아. 당신 건강은 가족에 대한 의무예요, 의무.”“운동 안 가도 되는 권리는 없나?”
남편과 아내는 집 부근 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 남자들도 쉬고 싶었는데 아내 등쌀에 못 이겨 나왔겠지. 남편은 운동 나온 남자들을 동병상련의 눈으로, 아내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아내는 모처럼 남편과 함께 운동을 나와서 그런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억지로 걷지 말고 ‘파워 워킹’을 해보란 말이에요.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걷기도 힘든데 ‘파워 워킹’이라니. 게다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잖아. 남편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내의 ‘파워 워킹’을 따라 해본다. 처음엔 귀찮았는데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도 씩씩해진다. 앞서서 걸어가다 가끔 뒤돌아보며 웃어주는 아내의 웃음도 싱그럽다. 이운동이 얼마나 뱃살 빼기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운동장에 나와야겠다. 가끔은.
(위) 페르난도 보테로, ‘Man with a Dog’,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