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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아버지가 전하는 제언 1등을 꿈꾸는 2등 비스트에게 보내는 갈채
문화와 매너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온 손일락 교수가 지난 호에 이어 ‘요즘 애들’에게, ‘요즘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두 번째 ‘삶의 매너론’이다. 멤버 대부분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후 데뷔한 아이돌 그룹 비스트(손일락 교수는 비스트 멤버 손동운 군의 아버지이다)의 일화를 통해 삶의 고비마다 닥쳐오는 시련과 실패를 이겨내는 힘을 생각한다. 실패 공포증에 쌓인 요즘 아이들,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할, 스스로의 삶에 대한 매너론.

아들아! 넌 혹시 아빠 전공이 무언지 아니? 모른다고? 아마도 모르겠지. 대부분의 자식들은 성장 과정의 특징인지 아니면 무심한 탓인지 부모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지.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듣고 자책할 필요는 없단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치받이 사랑이 아니라 내리사랑이기 때문이지.
아빠의 전공은 바로 마케팅, 구체적으로는 포지셔닝 전략이란다. 포지셔닝 전략은 너희들의 장래 음악 활동을 위해서나 인생을 위해서나 중요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무쪼록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도록 하려무나.
아들아! 너희 그룹 이름인 B2ST는 ‘Boys 2(to) Search 4(for) Top’, 곧 ‘정상을 꿈꾸는 소년들’의 약자라지? 세계적인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안무가인 AJ가 너희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마치 야수(beast) 같다며 감탄한 데에서 힌트를 얻어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더구나. 그 과정이야 어떻든 아빠는 B2ST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든다. 그것은 너희들이 최고(best)나 정상(top)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소년들임을 인정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사실 매우 특별한 그룹이다. 멤버 대부분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현승은 빅뱅을 뽑는 오디션 최종 라운드에서 아깝게 탈락한 것으로 안다. 두준이는 2PM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열혈남아’에서 마지막으로 고배를 마셨지? 준형이는 씽 Xing 멤버, 요섭이는 엠보트 M-boat 연습생 출신으로 알고 있고. 아빠는 이런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을 시련과 실패를 견뎌내고 마침내 데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그룹
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지. 너희들은 순수한 열정만으로 음악을 생각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을 수가 없구나.
MTV에서 10부작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영한 B2ST의 데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니 ‘2등과 꼴찌의 아픔과 슬픔’이 절절이 느껴지더구나. 그런데 안타깝고도 무참한 일은 너희 그룹은 데뷔도 하기 전에 안티카페부터 생겨났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입에 담기 어려운 야유를 늘어놓으며 무조건 비아냥대는 친구들이 적지 않더구나. 심지어 B2ST에 관한 기사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악성 댓글을 다는 못된 친구들도 있고. 짝퉁 빅뱅이니 따라쟁이니 해가며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빠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너희 멤버 중 누군가가 자신의 싸이월드에 야무진 각오를 담아 올린 글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막 출발하는 신인들을 이처럼 비딱한 시선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돌팔매질을 해야만 속이 후련한 걸까? 한번 실패하고 탈락하면 너희들 표현으로 무조건 죽은 듯이 ‘짜져’ 지내야 하는 걸까? 안 되면 될 때까지 노력하고,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면 안 되는 걸까? 왜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친구들에게 격려를 보내주지 않는 걸까? 왜 사람들은 지하 연습실에서 남몰래 눈물 흘리는 2등이나 꼴찌에게 손수건을 건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지 않는 걸까? 왜 생채기를 싸매주고 기꺼이 ‘호~’ 해주지 않는 걸까?
여기서 아빠는 2등을 응원하고 인정하는 전략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넘버 2 스트래터지 No.2 Strategy’는 마케팅의 천재이자 포지셔닝 전략의 창시자인 알 리스 Al Ries와 잭 트라우트 Jack Trout가 제시한 이론이란다. 넘버 2 스트래터지의 기본 발상은 소비자는 늘 1등만 기억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첫 번째 애인, 첫 키스에 대해선 기억하지만, 두 번째 이후부터는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전 세계에서 렌터카 부문 1위 업체는 허츠 Hertz이고 2위 업체는 에이비스 Avis다. 그런데 에이비스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비자들이 외면했다. 이 과정에서 에이비스의 그 유명한 ‘넘버 2 스트래터지’가 등장하지. 즉 에이비스는 과감하게 2위임을 인정하는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 여러분! 우리는 2등입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광고를 접하며 소비자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참, 세상에는 2등도 있었지!’ ‘거참 안됐네!’ 이후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고, 에이비스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이 전략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에이비스는 자신감에 도취된 나머지 ‘오버’를 하고 말지. “소비자 여러분! 조금만 더 도와주세요. 우리가 곧 1등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그러자 소비자들은 바로 등을 돌리고 만다. ‘에이비스, 너 참 많이 컸구나!’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이후 에이비스의 실적은 곤두박질치고 결국은 다른 회사에 흡수 합병되고 말았단다.
아들아! 아빠 전공인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B2ST는 2등(꼴찌), 즉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떨거지’임을 인정하고, 그를 통해 ‘우리는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한다’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1등보다는 2등을 더 동정하고 지지하는 경향이 있지. 게다가 이 세상에는 1등보다 2등과 꼴찌가 훨씬 더 많지 않니? 학교에서는 1등을 못 하면 시달림당하고, 집에서는 앞집 애는 무슨 과목이 100점이고, 뒷집 애는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며 아이들을 닦달하기 일쑤지만 말이다. 태어나 1등을 경험하지 못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좌절과 실패를 맛본 아이들’인 B2ST에 대해 동지 의식이나 연대감을 느끼고 격려를 보내줄 거라 기대한다면 아빠의 지나친 희망일까? 물론 B2ST가 동정을 바란다거나 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1등은 2등이나 꼴찌가 있음으로 해서 빛나고, 2등이나 꼴찌는 1등이 있음으로 해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너희 그룹 이름처럼 늘 정상을 꿈꾸며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너희들의 실패와 좌절은 정상을 향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혹 정상을 밟거든 오늘의 초심을 잃지 말고 늘 온유하며, 예의 바르고, 겸손해야 한다. 만에 하나 교만해진다면 그 즉시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할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너희들이 꿈꾸는 음악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생명력이 있는 것이며, 들어줄 청중이 있어야 비로소 빛나는 것임을 모르진 않겠지?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