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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 친척이라는 가족
한국인은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가족과 친척을 찾지만, 우울한 일이 생겨 상의할 때는 친구나 동료를 찾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이제 친척은 정서적・사교적 유대보다 의무적・의례적 유대를 나누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외자식이 일반화되어가는 요즈음, ‘핏줄 당기는’ 친척만큼 우리 아이가 기대고 비빌 언덕이 또 어디 있나 싶습니다. 개인이 고립화되는 시대, <행복>이 ‘친척이라는 가족’의 의미를 들여다봅니다. 이제 더 이상 ‘친한 척’이 아니라 ‘친한 친척’으로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이번 설날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21세기, 친척이 필요한 이유 사회가 발전하는 데는 속도가 있다. 모든 나라가 같은 속도로 발전하는 게 아니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나라와 느린 속도로 발전하는 나라가 있다. 그리고 이런 국가의 발전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빨리 발전하다 자기 속도에 못 이겨 미끄러지는 경우다. 말하자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너무 빨리 지나쳐 나아가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미끄러짐 현상’ 중 하나가 저출산과 노령화 현상이다.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우리보다 먼저 노령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그들보다 우리의 노령화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있고, 저출산 현상도 그들이 먼저였지만 현재는 우리가 더 빠른 저출산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데도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는 것이 ‘고립화 현상’이다. 고립화 현상은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이기에 체감할 수 없을 뿐, 실제로는 노령화와 저출산보다 더 중요한 사회 문제다.
현대인의 고립화 현상은 두 겹으로 인간을 에워싼 껍질, 말하자면 가족과 개인 두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가족의 고립화는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심리적 보호망인 친척과 물리적 보호망인 이웃이 없어짐을 뜻한다. 과거에 우리는 이 두 울타리에 둘러싸여 가족 문제나 개인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현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친척도 이웃도 없어진 것이다.
개인의 고립화도 그러하다. 과거에 우리 가족은 한울타리 안에서 칸막이 없이 살아왔다. 의식주 생활에서 그리고 개인이 겪는 고민과 번뇌에서 가족 구성원은 운명 공동체로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각자의 방에서 1인분의 고독을 즐기고 아이도 형제 없이 고립 속에서 자란다. 말하자면 현대 가족 구조 아래에서 성장하는 아이는 롤모델이 될 형제가 없는 것이다. 형제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양보하고 타협하고 사랑하는 사회생활의 기본 태도를 배울 기회가 없는 것이다.
고립화의 결과는 어떠한가. 선진국이라 일컫는 미국에서 그 결과의 한 자락을 볼 수 있다. 가끔 뉴스에서 보도되는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은 개인의 고립화 현상에서 오는 결과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다음은 우리나라 차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기 목숨도 같이 끊는 생명 경시 사상이 그 끔찍한 사건의 시발이 된다. 대중 속의 고독은 사막 속의 고독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이웃은 많으나 심리적인 이웃은 없어졌다.
노령화나 저출산 현상을 막기 위해 국가나 사회가 대비하는 것처럼 고립화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고립화 방지를 위한 노력의 하나가 이웃과 친척을 찾는 것이다. 이웃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동반자가 되고, 친척은 사회생활과 의례 생활 등에 필요한 심리적 의존처가 된다.
제사를 예로 들어보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형제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모일 기회가 많지만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이럴 때 제사는 형제들이 모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 멀어져가는 형제들이 모이고, 더 멀어져가는 친척들이 서로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바로 제사다.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나누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를 의식적으로라도 만드는 것, 그것이 개인의 고립화를 피하는 지름길이다.
또 제사는 무엇보다 교육 기능을 하는 좋은 기회다. 오늘날에도 가장 중요한 덕담인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나눌 수 있는 자리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생을 일군 조상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인생 가꾸기에 매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족이 함께 나누는 일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산업화가 더 빠르게 추진될 21세기에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도 친척을 찾는 손쉬운 일부터 시작하는 것, 바로 인간성 회복 그리고 살기 좋은 나라와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친척과의 만남은?
명절이나 관혼상제 때만 만난다 46.7% 수시로 만난다 30.7%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 만난다 7.3% 부모・형제 생일 때 만난다 7.1% 거의 만나지 않는다 3.9%

친척이 빚보증을 서달라고 한다면?
단호히 거절한다 58.3%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거절한다 17.2%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서준다 12.5%  기꺼이 서준다 6.2% 모름・무응답 5.8%

친척이라는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늘 함께 어울리는 사교적 관계 34.4% 집안일을 서로 도와주는 가사 협조 관계 32.3%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한 의례적 관계 28.7%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는 거래 관계 4.4%

친척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재산 분배, 채무, 경조사 비용 부담 등 돈 문제 32.7% 윗사람의 권위적 태도 10.3%
자존심이나 지기 싫어하는 마음 7.3% 부모를 모시는 문제 6.8% 갈등 경험이 없다 44.7%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중 가까운 상대는?
부계혈족 51.6% 모계혈족 45.0% 모름・무응답 3.4%

부계혈족이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관혼상제 등이 주로 부계 중심이므로 58.2% 가까운 곳에 살아서 21.9%
부모가 친가와 자주 교류하는 것을 봐서 17.3% 외가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1%

모계혈족이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부모가 외가와 자주 교류하는 것을 봐서 41.2% 가까운 곳에 살아서 31.7%
육아 등 가사에 외가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14.7% 친가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7.2%

최혜경・김현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