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호쾌하게 웃으며 주철환 씨는 말했다. “살면서 점잖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점잖다는 말의 어원은 ‘젊지 않다’잖아요. 차라리 철 좀 들라는 말이 반가워요. 철없이 살다가 귀여운 할아버지로 늙고 싶어요.”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MBC PD,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OBS 경인TV 사장. 주철환 씨의 이력이다. 화려한 이력은 겉보기일 뿐, 중요한 것은 그가 매번 남긴 참신한 족적이다. 국어 교사 주철환 씨는 <개그 콘서트> ‘봉숭아 학당’을 방불케 하는 수업을 했고, 주철환 PD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인기 프로그램으로 ‘국내 1호 스타 PD’가 되었으며, 주철환 교수는 버라이어티 토크쇼 같은 수업을 진행했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은 250여 명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웠다.
최근 여기에 다섯 번째 이력을 추가했다. 그는 이제 음반 <다 지나간다>를 낸 싱어송라이터다. 음반 발매 직후 콘서트도 열었다. 56세에 가수 데뷔라니, 난데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음반 발매가 그의 오랜 꿈이었음을 알고 있다. 1983년 MBC 사보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 제목은 ‘작사, 작곡, 노래한 음반을 낼 터’였다. 27년 만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그동안 틈틈이 음악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가 PD 시절 연출한 프로그램 <퀴즈 아카데미> <모여라 꿈동산>의 타이틀 곡을 직접 썼고, <대학가요제>를 가장 오랫동안 연출했으며 현재는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열다섯 살 때부터 일기장에 노래를 썼어요.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길잖아요. 지금까지 60곡 정도 모였어요. 이번 앨범에는 교사로 근무할 무렵인 1978년부터 1980년 사이에 지은 곡을 수록했어요. 포크, 발라드, 랩이 가미된 하우스풍. 장르가 다양해요.” 취미가 작곡이지만 그는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고, 악보도 적을 줄 모른다. 그만의 특별한 기보법이 있어 작곡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저는 시상과 악상이 함께 떠올라요. 일기장에는 가사(시상)만 적어두죠. 악상은 부르면서 외우고, 생각날 때 또 불러보며 기억해요.” 작곡법을 몰라도 작곡을 한다! 용기가 솟는다. 응용해보자.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다면 포토샵(이미지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못해도 디자인을 할 수 있고, 편집 기술이 없어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테니, 좋지 아니한가.
교사부터 싱어송라이터에 이르는 다섯 빛깔의 발자취는 모두 떨림과 설렘을 안겨주었다. 때론 “왜 주철환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나?”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이들도 있었다. 그의 대답은 한 가지다.
“난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친해지고 싶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방송사도 가고, 학교도 가고, 공연 무대에도 서는 거죠.”
슈팅 스타가 아닌, 조기 축구회 아저씨의 마음으로 “노래가 좋아서 부른 것이지, 직업 가수가 되려는 것은 아니에요. 그건 10대부터 목숨 걸고 노래한 조용필 씨 같은 분께 죄송하고 실례되는 일이지. 난 노래가 좋아 기웃거리다가 해 질 녘에 나와서 한 곡 부르는 거예요. 제2의 박지성 선수가 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축구가 좋아 열심히 공을 차는 조기 축구회 아저씨의 마음이랄까?”
인기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도 음반을 낸 건 이유가 있었다. “끝없이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거든요. 음반은 소통의 한 방법이에요.” 주철환 씨는 언제 어디서든 소통의 길을 찾아왔다. PD로 일하는 동안에는 칼럼과 저서(<30초 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 등 10여 권)를 통해 글을 발표해왔고, OBS 경인TV 사장으로 재직할 때는 수시로 직원들에게 수필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주철환 씨의 첫 콘서트에는 지금껏 그가 소통해온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통째로 담겼다. 그의 오랜 지인들이 게스트로 등장해 그 시간을 말로, 노래로, 연주로 보여주었다. 그가 동북고등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당시 제자였던 배우 최민수 씨가 2년여의 공백을 깨고 무대에 나섰고, 그가 연예인 중 처음으로 주례를 서준 가수 김창렬 씨가 ‘후배 가수’가 된 것을 축하해주었으며, 그가 존경하는 배우 김혜자 씨, 그의 오랜 동갑내기 친구 배우 윤석화 씨, 그가 힘찬 응원을 보태줬던 방송인 박경림 씨, 그가 연출한 <퀴즈 아카데미> 1회 출연자였던 KBS 박영환 앵커 등도 무대에 올랐다. 사회를 맡은 이금희 아나운서는 “춤 연습 조금 더 하셔야겠어요”라며 장난기 어린 지적을 했고, 살면서 춤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주철환 씨는 흥에 겨워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콘서트 제목은 ‘노래는 불러야 노래’였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에요. 책은 읽어야 책, 읽지 않으면 화분 받침. 사랑은 표현해야 사랑. 다 마찬가지예요. 제 마음속에는 노래가 있어요. 근데 부르지 않으면 노래가 아니에요. 그래서 마음속의 노래를 불러요. 혼자 불러도 좋지만, 그 노래를 누가 듣고 공감한다면 노래가 생명을 얻는 거죠.”
변신은 했지만 변심은 안 했다 남들은 평생 한 우물만 파기에도 버거운데, 그는 직업을 다섯 번째 바꿨다. “저라는 사람의 ‘곁’(환경)이 바뀌었다 해서 ‘결’(본성)이 바뀐 건 아니에요. 제가 변신은 했지만 변심하지 않거든요.”
이렇듯 열정이 식을 줄 모르는 그를 두고 혹자는 “나이는 55년생, 얼굴은 65년생, 마음은 85년생”이라고 했다. “제가 동안이죠? 근데 얼굴이 꽃이라면 동심이 그 뿌리예요. 그런데 동심에는 양면성이 있어요. 하나는 순수함, 하나는 유치함. ‘나잇값 하라’는 말을 종종 들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나잇값이란 대체 뭘까 싶었어요.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어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포용성이야말로 진정한 나잇값이 아닐까. 그래서 말인데, 언젠가 ‘나이야 가라!’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연출해보고 싶어요.”
한데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기준이 있는가? “의심, 근심, 욕심이 늘어나면 늙었다는 증거예요. 그 반대는 무엇일까요? 호기심이지요. 호기심은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그렇다면 젊게 사는 비결을 알 수 있겠죠? 의심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근심하기보다는 관심을 보이면 돼요.”
하지만 몸은 늙어가기 마련 아닌가? “물론 육체의 노화는 피할 수 없죠. 난 석회질이 늘었고, 젊은이들은 아교질이 많아요. 내 몸엔 비록 석회질이 많지만 내 영혼에는 아교질이 넘쳐흐르도록 해야죠.” 그는 10년 더 오래 사는 법보다는 10년 더 젊게 사는 법에 관심을 가지라고 한다. 앞날을 걱정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겁게 누리는 법, 그것이 젊음의 묘약이다. 책
나를 노래하게 하는 사람, 어머니 ‘아교질이 풍부한’ 영혼 덕분에 주철환 씨는 동창보다도 동창의 자녀들과 더욱 허물없이 지낸다. MBC에서 PD로 활동할 때는 일곱 살 아역 배우부터 70대 어르신까지 통성명하고 늘 안부를 물었다. 친화력, 주철환 씨 스스로도 최고의 능력이자 매력이라고 평가하는 점이다.
“친화력을 기르려면 상대의 장점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꿈과 고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저도 늘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내 친화력은 본능적으로 싹텄을지도 몰라요. 생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철이 일찍 들었거든요. 남의 눈치를 많이 봐요. 저이가 나를 싫어한다, 좋아한다 하는 걸 금방 눈치채고요. 사이가 멀어지면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고.”
여섯 살 때 생모를 여의고, 고모가 그를 입양했다. 원래 그의 여동생을 키우려고 데리러 왔다가 여동생이 너무 울어대는 바람에 배웅 나온 그를 입양하기로 했다. 경남 마산에 살던 그는 어머니가 된 고모를 따라 서울로 왔다. 일찍 홀몸이 되어 시장에서 가게를 꾸리며 살던 어머니(고모). 생활이 넉넉지 않았으면서도 그를 끔찍이 아꼈다.
햇살이 눈부신 날이면 그가 종종 추억하는 일화가 있다. “어머니 가게의 단골이었던 한 아주머니가 저를 그렇게 예뻐했어요. 하루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저를 그분 집으로 데려갔어요. 마당에 돌사자가 있는 부잣집이었어요.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웬 노란색의 길쭉한 물건을 주시는 거예요. 바나나였어요. 입에서 사르르 녹는데, 정말 믿을 수 없는 맛이었어요.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껍질을 보여드리며 자랑했어요.” 알고 보니 자녀가 없었던 그 아주머니는 그를 입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죽어도 엄마와 살겠다고 했고, 그 한마디에 어머니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고, 꼬마는 귀한 바나나를 두 개나 먹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분이 바로 어머니예요. 작년 5월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슬프다기보단 어쩐지 안심이 되었어요. 97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셨거든요. 지난 콘서트도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어요. 어머니를 위해서 앞으로도 할 일이 남았어요. 하나는 어머니를 추억하는 거예요. 언젠가 소설이나 회고록을 통해 어머니를 되살릴 거예요. 다른 하나는 내가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거예요.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흐르게 하라잖아요.”
(위) 그러고 보면 주철환 씨는 늘 동안이었다. 30대, 40대, 50대에도 그에게는 호기심이라는 날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환한 얼굴 Vs. 화난 얼굴 주철환 씨만 꿈이 있는 건 아니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꿈이 있다. 다만 실현하지 못할 뿐. “‘생각하는 대로 되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이미 늙었어’ 하면 늙은 사람이에요.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는데, 꿈을 이룬다고 가족이 희생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꿈을 이루고 싶다면 자기 시간을 가지세요, 악착같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이치는 그의 책에도 적혀 있다. “‘환한 얼굴’을 소리 나는 대로 적어보라고 하면 어떤 친구는 ‘화난 얼굴’로 적는다. 환한 얼굴은 세상을 활기차게 하지만 화난 얼굴은 세상을 우울하게 한다.”
하지만 우린 늘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해도 두려움이 너무 크다. 대체 두려움의 정체는 뭘까? “잘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에요. 내겐 꼭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잘되면 좋은 거예요. 그렇지만 잘 안 된다 해서 내 인생이 망하는 일은 없어요. 그런 뜻에서 내가 ‘성공’보다 더 아끼는 말이 바로 ‘성장’이에요. 성공의 강박은 즐거움을 축소시켜요. 노래도 즐겁자고 하는 것이니, 조용필이 될 생각이 없고요.”
주철환 씨 역시 사는 데 힘이 든다고 느낀 적이 있다.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해요. 누군가 돈 드는 일인데도 열심히 하고 있자, 어떤 이가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돈이 들어야 돈이 된다’고. 맞아요, 돈이 들어야 돈이 되고, 힘이 들어야 힘이 되지요.”
‘힘이 들어야 힘이 된다’ ‘변신은 하지만 변심은 안 한다’ ‘늙었다는 증거는 의심, 근심, 욕심’, 인터뷰 내내 그에게선 쉴 새 없이 어록이 될 만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말이 나왔다. 언어 유희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덕분에 쉽게 반복하게 되죠. 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깊게 꽂혀요. 길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기억하기도 쉽고. 근데 이런 말들은 뜬금없이 생각나는 게 아니에요. 많은 경험, 배움, 깨달음을 종합해 에센스를 추출한 거예요. 그 에센스에 언어 유희 기술을 좀 부린 거고요.” 언어 유희에 능한 것은 그의 장점인(그리고 또 하나의 어록인!) ‘부자유친’ 때문이다. 주철환 씨는 ‘부드럽고, 자상하고, 유연하고, 친절하기’ 때문에 달콤하고 흡수가 잘되는 에센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교단에서, 방송에서, 그리고 무대에서.
(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한 주철환 씨의 첫 앨범 <다 지나간다>. 포크, 발라드, 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