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10년, 아부 10년, 재롱 10년’요즘 사위들, 고생이 많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옛 시집살이에 빗대어, 처가 눈치 보는 사위들이 불쌍해서 지어낸 얘기일 게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닭 잡아주던 시절’은 그저 눈물 나는 추억일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결혼 후에는 형제보다 동서와 만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아이 양육의 도움을 받는 것도 어머니보다는 장모님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실제로 2004년도 여성부 발표에 의하면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 처가 식구로부터의 지원이 26.3%로 부모형제로부터의 지원(13.0%)보다 2배 이상 높다. 더불어 고민 상담도 본가 식구(6.7%)보다 처가 식구(34.7%)와 하는 경우가 월등히 높았다.
여러 가지 지원과 감정적 교류가 잦은 만큼 장모 및 처가 식구들과 더 진한 사랑을 주고받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그런 관계가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부부 상담을 한 어느 남성은 사사건건 참견하는 장모 때문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처가가 부유한 덕에 집 장만이며 자녀 교육, 심지어 여름휴가까지 도움 받았다. 처음엔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존심이 너무 상했단다. 쉽게 말해 ‘사위! 자네가 내 딸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였다. 하지만 그는 학벌도 괜찮고 직장도 번듯했다. 아내와는 대학 때 만나 3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 했다. 결혼 전에 이미 작은 평수지만 아파트까지 마련해놓은, 독립심 강한 젊은이였다. 그런 그에게 원치도 않는 것을 반강제로 해주고는 ‘못난 놈’ 취급을 하니, 아내와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단다.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남성의 전화’ 통계에 따르면 상담 건수의 70%가 부부 갈등이고, 이중 10%는 장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왼쪽) 파야, ‘ Mother fashion & fiction’, 2007‘
하지만 장모 인생을 들여다보면 사실 요즘 장모들 또한 불쌍한 세대다.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전통 사회의 틀이 그대로 남아 있던 1960~70년대에 20대였던 그들. 엄한 시어머니 탓에 기 한번 못 펴고 산 분들이다. 30~40대 중년이었을 1980~90년대에 그들은 남편의 애정이나 관심을 받아본 적이 드물다. 나라 전체가 먹고살기 힘들어 가부장적인 문화가 사회를 지배했다. 남편과 아버지는 돈만 벌어다 주면 모든 것이 오케이였다. 이렇게 요즘 장모들은 태생적으로 시대적인 박탈과 압박을 견뎌낸 분들이다.
이런 힘든 세월이 그녀들을 바꿨다. 사랑, 명예, 돈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살아보니 남녀의 사랑이 별게 아님을 알았다. 명예? 여자도 공부만 잘하면 좋은 회사 취직하고, 장관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돈은? 돈이 없어 당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강한 그녀들은 돈만 있으면 사랑도, 명예도, 더구나 사위도 바꿀 수 있다는 금전만능의 사고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시대 어머니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2000년대 현재, 기 한 번 못 편 채 젊음을 바치고, 대접 한 번 제대로 못 받은 채 중년을 보낸 그들에게 보상이 필요하다. 사랑, 돈, 명예에 대해 나름의 가치와 해법을 아는 그들에게 보상의 첨병은 바로 딸이었다. 딸자식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어줄 금지옥엽이고, 사위는 어찌 보면 그 보상의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부속품 역할을 해주는 존재였다. 그러니 사위에게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내 딸이 잘되어서 내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 욕심에 사위는 곤혹스럽다. 딸은 난감하다. 심한 경우 이혼까지 생각한다.
진정한 독립이 행복을 부른다 장모에게로의 권력 이동으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은 없을까? 있다. 결혼과 자식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다. 딸과 사위, 자식의 입장에서는 독립이 필요하다. 결혼이란 독립을 의미한다. 자신들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고 진정한 성인의 태도가 아니다. 딸 입장에서는 남편의 기를 살리는 것이 부부라는 독립체의 기를 살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편 입장에서는 뼈가 부서지더라도 자신의 가족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수컷스러운’ 책임감이 필요하다.
장모에게도 독립이 필요하다. 실은 딸에게, 사위에게 권력을 휘두르려는 것은 감정적 의존심 때문이다. 못다 한 꿈에 대한 대리 만족을 포기해야 한다.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인생 발달 단계에서 노년은 자기 삶에 만족하고 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허와 절망만 남는다고 했다. 여생을 즐기고 기뻐해야지 딸자식에게 집착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라는 뜻이다.
씁쓸하지만, 또 다른 해결책도 있기는 하다. 어차피 장모의 권력은 모계사회로의 회귀 과정 중 발생한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쩌겠나, 한동안은 권력자 눈치 보고 살아야지…. 하지만 희망은 있다. 역사는 순환 반복한다. 궁극적으로는 평등사회가 와야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부계사회가 도래할 게 틀림없다. 그때를 기약하며…. 
언제부터인지 결혼 후에는 형제보다 동서와 만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아이 양육의 도움을 받는 것도 어머니보다는 장모님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실제로 2004년도 여성부 발표에 의하면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 처가 식구로부터의 지원이 26.3%로 부모형제로부터의 지원(13.0%)보다 2배 이상 높다. 더불어 고민 상담도 본가 식구(6.7%)보다 처가 식구(34.7%)와 하는 경우가 월등히 높았다.
여러 가지 지원과 감정적 교류가 잦은 만큼 장모 및 처가 식구들과 더 진한 사랑을 주고받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그런 관계가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부부 상담을 한 어느 남성은 사사건건 참견하는 장모 때문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처가가 부유한 덕에 집 장만이며 자녀 교육, 심지어 여름휴가까지 도움 받았다. 처음엔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존심이 너무 상했단다. 쉽게 말해 ‘사위! 자네가 내 딸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였다. 하지만 그는 학벌도 괜찮고 직장도 번듯했다. 아내와는 대학 때 만나 3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 했다. 결혼 전에 이미 작은 평수지만 아파트까지 마련해놓은, 독립심 강한 젊은이였다. 그런 그에게 원치도 않는 것을 반강제로 해주고는 ‘못난 놈’ 취급을 하니, 아내와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단다.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남성의 전화’ 통계에 따르면 상담 건수의 70%가 부부 갈등이고, 이중 10%는 장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왼쪽) 파야, ‘ Mother fashion & fiction’, 2007‘
하지만 장모 인생을 들여다보면 사실 요즘 장모들 또한 불쌍한 세대다.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전통 사회의 틀이 그대로 남아 있던 1960~70년대에 20대였던 그들. 엄한 시어머니 탓에 기 한번 못 펴고 산 분들이다. 30~40대 중년이었을 1980~90년대에 그들은 남편의 애정이나 관심을 받아본 적이 드물다. 나라 전체가 먹고살기 힘들어 가부장적인 문화가 사회를 지배했다. 남편과 아버지는 돈만 벌어다 주면 모든 것이 오케이였다. 이렇게 요즘 장모들은 태생적으로 시대적인 박탈과 압박을 견뎌낸 분들이다.
이런 힘든 세월이 그녀들을 바꿨다. 사랑, 명예, 돈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살아보니 남녀의 사랑이 별게 아님을 알았다. 명예? 여자도 공부만 잘하면 좋은 회사 취직하고, 장관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돈은? 돈이 없어 당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강한 그녀들은 돈만 있으면 사랑도, 명예도, 더구나 사위도 바꿀 수 있다는 금전만능의 사고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시대 어머니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2000년대 현재, 기 한 번 못 편 채 젊음을 바치고, 대접 한 번 제대로 못 받은 채 중년을 보낸 그들에게 보상이 필요하다. 사랑, 돈, 명예에 대해 나름의 가치와 해법을 아는 그들에게 보상의 첨병은 바로 딸이었다. 딸자식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어줄 금지옥엽이고, 사위는 어찌 보면 그 보상의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부속품 역할을 해주는 존재였다. 그러니 사위에게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내 딸이 잘되어서 내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 욕심에 사위는 곤혹스럽다. 딸은 난감하다. 심한 경우 이혼까지 생각한다.
진정한 독립이 행복을 부른다 장모에게로의 권력 이동으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은 없을까? 있다. 결혼과 자식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다. 딸과 사위, 자식의 입장에서는 독립이 필요하다. 결혼이란 독립을 의미한다. 자신들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고 진정한 성인의 태도가 아니다. 딸 입장에서는 남편의 기를 살리는 것이 부부라는 독립체의 기를 살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편 입장에서는 뼈가 부서지더라도 자신의 가족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수컷스러운’ 책임감이 필요하다.
장모에게도 독립이 필요하다. 실은 딸에게, 사위에게 권력을 휘두르려는 것은 감정적 의존심 때문이다. 못다 한 꿈에 대한 대리 만족을 포기해야 한다.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인생 발달 단계에서 노년은 자기 삶에 만족하고 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허와 절망만 남는다고 했다. 여생을 즐기고 기뻐해야지 딸자식에게 집착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라는 뜻이다.
씁쓸하지만, 또 다른 해결책도 있기는 하다. 어차피 장모의 권력은 모계사회로의 회귀 과정 중 발생한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쩌겠나, 한동안은 권력자 눈치 보고 살아야지…. 하지만 희망은 있다. 역사는 순환 반복한다. 궁극적으로는 평등사회가 와야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부계사회가 도래할 게 틀림없다. 그때를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