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를 관람하듯 짜릿한 기분이었다. 한 전시회에서 도예가 신동원 씨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이 그랬다. 투시법과 원근법을 무시한 채 삐뚜름히 선 서랍장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도자기가 놓인 작품이었다. 예쁜 도자기는 당장이라도 뚝 떨어질 듯 위태로운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도자기로 만든 부조 작품으로, 벽에 안전하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서랍장 모서리와 도자기 밑부분에 바느질하듯 꿰맨 자국을 새겨 넣어 관람객을 한 번 더 안심시켰다. 여자라면 아마 아름다운 티포트나 찻잔을 볼 때 괜한 불안 심리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테이블에서 떨어져 깨지는 건 아닐까? 옮기다가 손에서 미끄러지는 건 아닐까? 예쁜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세트 상품처럼 따라오는 이런 기우 杞憂를, 신동원 작가는 한 번에 날려주었다.
어떤 작품에서는 밥그릇, 찻잔, 호리병이 탑을 이루듯 높이 쌓여 있다. “예로부터 아낙들이 돌을 쌓아가며 소원을 빌었잖아요. 지극히 바라는 마음을 차곡차곡 올려 하늘에 가까이 닿도록 했어요.” 정성을 다해 소망하고 소망하면 불가능도 가능케 된다는 제의적 의미를 담았다. 그래서 작품 제목이 ‘Wish’다.
표지 작품 ‘꿈꾸는 티포트’에 이르러서는 위태로움에 대한 걱정이나, 차곡차곡 쌓는 기다림을 넘어선 적극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티포트가 거꾸로 공중을 날고,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자유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제 작업은 항상 변하고 있어요. 한동안 연기가 피어나거나 폭발하듯 동적인 상태를 작업 소재로 삼았는데, 요즘엔 폭발 직전의 웅크린 상태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그의 작업실에서는 눈물을 떨어트리기 직전의 호리병 같은 습작이 눈에 많이 띈다.
1,2 A Moment, 2009 3 A Vase, 2009 4 A Cup, 2009
신동원 씨의 작품은 소재와 기법 면에서도 주목받았다. “조각이기도 하고 공예이기도 하며, 입체이면서 평면입니다. 어느 한 장르에 갇히지 않고 모든 요소를 보여주는 점이 놀랍습니다. 도자 예술의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조형을 추구하는 것도 돋보입니다.”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책임자인 에릭 창 씨의 말이다. 그의 평은 적중해서, 신동원 씨의 작품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다.
신동원 씨가 도자기로 정물화를 만들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빈 그릇이 떠올랐다. “정물화 속에서 혹은 식탁 위에서 그릇은 음식을 담는 보조적인 사물이에요. 하지만 저는 빈 그릇이 주인공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물을 완전무결한 흰색으로만 표현했다. “흰 벽에 건 흰 도자 작품이 좋았어요. 흰 도화지에 연필로 드로잉한 듯한, 신경 써서 봐야 보일 정도로 눈에 잘 안 띄는 작품에 집중했지요.” 그런데 연필로만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색연필을 쓰고 싶게 마련이다. 그래서 연하늘색 같은 파스텔 톤을 조심조심 쓰다가 얼마 전부터 대담한 블랙과 레드로 채색했다.
공들여 빚었어도 가마에서는 깨져버리는 일이 다반사라서, 작업실에 한번 들어가면 밤새도록 불과 씨름해야 한다. 아크릴, MDF 등 다른 소재를 이용하면 결과물은 비슷하면서도 작업이 훨씬 수월할 텐데 왜 도자기를 고집하는 것일까. “도자기는 ‘불의 조화’로 만들어진다고 하잖아요. 흙이 제 욕심을 버리고 불과 조화를 이루면, 텁텁하고 무른 성질이 사라지고 맑고 단단한 도자기가 됩니다. 그 느낌은 다른 소재로는 만들어낼 수 없어요. 도자기는 작업할 때의 제 마음가짐이 여실히 드러나기에 더욱 신뢰가 가고요.” 이번 표지 작품을 비롯한 그의 최근작이 궁금하다면 12월을 기다리자. 미국의 ‘아트 마이애미’(12월 2~6일)에서, 신세계백화점 본점(12월 8~27일)과 샌텀시티점(12월 29일~1월 7일)에서 열리는 그룹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도예가 신동원 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2004년 갤러리 도올에서의 개인전을 비롯, 지금까지 30여 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으며 대한민국공예대전, 제1, 2회 세계도자비엔날레 공모전을 비롯한 유수의 대회에서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