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전시장 한쪽 벽에 전시한 다기 세트. 철 따라 변하는 창밖의 자연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오른쪽) 재단이 개발한 생활식기와 재단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상설 전시관. 조상권 이사장은 이 도자기에 두 번째 인생을 걸었다.

1 조상권 이사장이 만든 와인 쿨러. 오는 10월 전시에 선보일 작품이다.

2 서재 코너에 놓인 옛 사진. 막내동생 조태권 회장 돌 때 찍은 형제 사진이다.
3 2층 침실은 어머니가 쓰시던 앤티크 가구로 심플하게 꾸몄다.
순수했던 유학생에게 씌워진 빨간 모자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해방이 되던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 두 동생(막내동생이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이다)과 함께 부산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부산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을 보내고 중학교 1학년이 되자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장남만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며 중학교 2학년인 어린 그를 사촌과 먼 친척과 함께 밀항선에 태워 다시 일본으로 보내고 맙니다.
“난 참 유별난 데가 있었어요. 일본을 참 싫어했어요. 나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어서 일본 사람들의 가식적인 것, 형식적인 것, 틀에 박혀 사는 것이 나와 맞지 않았어요. 일본에 살면서도 항상 이방인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았지요.”
그가 어려서부터 정작 가고 싶었던 곳, 꿈꾸던 곳은 일본이 아닌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친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허락해주시지 않아 얼마나 실의에 찬 청춘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공부를 꽤 잘하는 장남이었기에 아버지는 기왕이면 당신의 사업을 이어나가길 바라셨지만 사업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다고 생각한 그는 오히려 반발해 그림을 그리러 가거나 조각하러 다니며 환쟁이 되려고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한데 어떤 운명 때문이었는지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허정 씨(4・19 직후 임시대통령을 지낸)의 설득으로 열혈청춘의 그는 꿈에 그리던 정치, 문화, 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가게 됩니다. 그림을 무척 좋아하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일류 화가가 될 재능은 없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4 판성형으로 형태를 만들고 추상적인 채색으로 완성한 계영배.

5 조상권 이사장의 전망 좋은 침실. 서양 앤티크 소파와 어머니가 쓰시던 동양 앤티크 가구가 색다른 조화를 이룬다.
6 오래된 사진들 속에서 그의 과거를 읽는다. 부부의 약혼식・ 결혼식 사진과 자녀의 사진들.

1 현관 코너에 세워놓는 우산 꽂이. 뚜껑을 덮으면 멋스러운 오브제가 된다.

2 조상권 이사장 뒤로 보이는 것은 전통 장작 가마인 ‘등요’. 오래된 기와로 멋스럽게 지붕을 이었다. 이곳에서는 1년에 2회 가마에 장작불을 피워 오름불 행사를 치른다.
3 밑그림도 없이 붓을 들어 와인 쿨러에 채색을 하는 조상권 이사장. 청화, 철사, 진사를 이용한다.

그런 그가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신고식을 하나 치른답니다. 청와대에서 국빈급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식기를 디자인해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선생이 새삼스레 신고식이라니요? 운명의 지나친 장난으로 건축에서 꿈을 이루지 못했기에 이제 도자기로 꿈을 실현하려고 한답니다. 그 꿈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인 셈입니다. 오는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선생이 직접 디자인하고 성형하고 그린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저 이제부터 도자기 합니다’ 하며 도자가로서 제대로 신고할 예정입니다. 향이 폭포처럼 내려오는 형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침향로를 비롯해 의자, 촛대, 와인 쿨러, 우산 꽂이, 계영배 등 주로 식탁과 연관된 작품을 선보입니다. 요즘 작업실에서는 전시 준비가 한창입니다.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문화가 이곳에서 창조될 수 있도록 기틀을 잡아주고 죽는 게 내 소망이에요. 나는 그것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그리고 고려 초기의 귀족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그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문화의 미 美의 가치가 바로 그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빨리 포착해야 하고, 그래야 우리의 근본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귀족 문화라는 게 민중에 반대되는, 특수한 계층이 누리는 특별한 문화가 아니라 고려시대의 귀족이 그랬던 것처럼 차분하고 깊이 있고 지속성 있는, 그리고 짜임새 있는 문화여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에요.”
4 왼쪽의 사각형 부조는 호랑이, 봉황, 용 등이 등장하는 옛날 민화를 보고 그대로 그려 구운 것. 오른쪽은 판성형으로 모던하게 형태를 만든 후 초벌구이해서 나온 티 잔과 티 포트 그리고 계영배.

놀랍게도 선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 문화 유적 답사를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부여, 경주에 다녀옵니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백제 정림사지입니다. 저녁노을 질 때 역광에서 탑을 약간 옆으로 보면 실루엣이 매끈하게 보이는데, 그때 보면 영락없는 일본 탑 모습 그대로랍니다. 일본에서 우리 것을 그대로 카피했다는 게 의심의 여지 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지요. 우리가 가진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남의 것만 좋다고 좇고 있던 제가 슬며시 부끄러워집니다.
1 파리국립미술대학 건축과 전시에서 최고점 18점을 받은 바로 그 도면. 아래쪽에 18이라는 손글씨가 선명하다.

2 사진과 책, 그림 등 조상권 이사장의 흔적으로 가득 찬 서재.

3 어떤 부인이 조 이사장에게 말했단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셨는데 얼굴에서 그런 느낌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인자하게 웃음 띤 얼굴은 정말 그랬다.
4 산 밑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본채에 은은하게 어둠이 깔렸다. 1층은 서재와 거실, 주방이 있고 2층에는 침실과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테라스가 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헤어져 57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가며 떠돌이 생활을 해왔습니다. 해외에 오래 살면 애국하는 마음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내 나라, 내 역사, 내 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남달리 강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국에 돌아온 지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 그 후 나는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번쯤 나갔다 오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상대가 이해했을까 하고 반문해봅니다” _ <어머니 그리고 엄마> 중
억울하게 평생을 떠돌이처럼 살았다는 선생이 무엇 때문에 이다지도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자고 목소리를 높일까요?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나라인데 무엇 때문에 후대를 위해 나침반 역할을 하려고 할까요? 어렵고 곤경에 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천만다행하게도 그는 천성이 낙천적입니다. 자신은 행운아이고,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전시장 앞마당에는 기다랗게 테이블이 차려지고 연구소를 찾은 몇몇 손님과 선생이 둘러앉아 즐겁게 저녁 식사를 시작합니다. 레드 와인의 알코올 기운이 살짝 오를 때쯤 손님 한 분이 우아한 목소리로 가곡을 선물합니다. 다음은 자연스레 집주인 순서로 이어집니다. 점심에는 러시아 수프로 감동을 준 낭만파 신사가 이번에는 지그시 눈을 감고 멋들어지게 ‘베사메무초’를 불러 화답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 저녁입니다.
광주요도자문화원 주소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진가리 279-4 문의 031-632-8041
* 조상권 이사장의 개인전은 10월 14~20일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전시 문의 02-3210-0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