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한민국대사관저에 세운 한옥 ‘영현재’에 신정승 대사 가족이 모였다. 왼쪽부터 아들 우근 씨, 신정승 대사, 아내 이명숙 여사, 딸 지은 씨.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 새로운 도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륙은 들썩거렸다.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대사관도 함께 분주해졌다. 우선 주중한국대사관과 대사관저를 재정비했다. 주중한국대사관 옛 청사를 허물고 이 터에 새로 대사관저를 지었다. 모임이나 만찬 등 공식 행사를 위한 건물, 대형 행사를 위한 건물, 게스트하우스로 쓸 수 있는 한옥, 그리고 대사 가족의 살림집인 사저 등 네 채로 구성했다. 완공되자마자 이곳에 새로운 가족이 둥지를 틀었다. 작년 5월 새로 부임한 신정승 주중한국대사 가족이다.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뿌연 베이징 하늘이 맑게 개었건만, 정작 멋진 하늘 볼 새도 없이 숨가쁘게 달려왔다는 신정승 대사. 파리에서 근무하는 맏딸 지은 씨가 휴가차 이곳에 온 참에 신 대사와 아내 이명숙 여사는 잠시 숨을 돌렸다. 마침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아들 우근 씨가 기업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중국에 와 있던 터여서 모처럼 네 식구가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최고의 문화 사절단, 늠름한 한옥 여백의 미는 중국에서도 빛났다. 이명숙 여사의 안내로 주중한국대사관저를 둘러본 첫인상이었다. 절제된 선과 색상은 물론 각 건물 사이에 마당을 둔 구조에서 여백의 미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한옥이 감동적이었다. 중국에서 만난 한옥은 유난히 늠름해 보였다. “한국에서 목재를 비롯해 모든 자재를 공수했고 대목장도 함께 모셔왔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그들의 옛 가옥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한옥에 높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위) 전통 가구와 현대 미술품이 조화를 이루는 내부.
1 전통 방식대로 지은 한옥이지만 중국 가구를 매치해 ‘한중 문화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귀빈들이 꼭 들르는 곳이자 게스트하우스로 쓰이기도 한다.
2 이명숙 여사와 신정승 대사. 이명숙 여사가 입은 정장은 중국 전통 의상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것.
3 공식 행사를 위한 건물 내부.
이 한옥의 이름은 영현재 迎賢齋. ‘어진 사람을 맞이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신정승 대사의 아버지가 직접 이름을 짓고 현판 글씨를 썼다. 영현재는 대사 부부 못지않게 문화 사절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름처럼 전 세계 어질고 귀한 손님들이 방문하는데, 열 마디 설명보다 한옥에 앉아 직접 느끼는 것이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더군요. 일단 들어서면 무더위를 잊을 만큼 시원하다는 점, 한지를 바른 문이 은은한 자연 조명 기능을 한다는 점, 마주 보는 문을 모두 위로 걷어 올리면 앞뒤가 확 트여 열린 공간이 된다는 점 등을 몸소 체험함으로써 한국 전통문화의 멋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중요한 건물이니만큼 이명숙 여사는 영현재를 안팎으로 단장하는 데 특별히 공들였다. 지은 지 1년 된 젊은 한옥인지라 새집 느낌을 완화하기 위해 골동품 시장에서 구한 오래된 돌확에 아기자기한 꽃을 심어 진열했다. 내부는 마른 꽃나무와 단아한 목가구로 수수하게 장식했다. 중국 속 한옥이니만큼 중국식 전통 의자를 놓아 이색적인 인테리어를 시도했다.
4 한옥 안방과 사랑방은 먹감나무 등을 활용해 한국식으로 꾸몄다.
5 리셉션 홀 곳곳에 이명숙 여사의 감각이 녹아 있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산호초를 장식한 도자기.
영현재에서 땀을 식히고 있던 찰나 저만치에서 바람 불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저 건물 한쪽에 설치한 황금색 거대한 종 鐘이 오후 1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폐헤드라이트로 만든 첨성대 작품(청계천 복구 1주년을 기념해 광통교에 전시되었다)으로도 유명한 한원석 작가의 거대한 ‘성덕대왕 신종’ 작품이다. 작은 폐스피커 2천여 개를 쌓아 만든 이 작품은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 5시에 종소리를 울린다.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대사 부부가 이곳의 트레이드마크로 고른 작품이다. 버려진 공산품에서 첨성대나 종처럼 한국 전통 문화재의 조형미를 찾아낸 상상력이 참신하다는 것이 작품 선정의 이유다. 관저 내부 곳곳에도 한국 작가의 작품이 근사하게 자리 잡고 있다.신정승 대사는 “예술품은 언어를 몰라도 느낄 수 있기에 다국적 모임이나 파티에서 든든한 분위기 메이커”라고 덧붙였다.
낯선 문화를 품어 안는 ‘외교 밥상’ 신정승 대사가 중국과 맺은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주중한국대사관에서 공사로 근무했고, 1990년대 초반 한국 외교부에서 중국 담당 과장을 맡으며 한중 수교의 실무를 총괄했다. 더 깊은 인연은 대학교 때 시작되었다. 1971년 헨리 키신저(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 대통령 보좌관을 역임하고 이어 국무총리에 취임)가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수교의 물꼬를 튼 역사적인 일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이던 신정승 대사는 눈이 번쩍 뜨였다. 중국이 곧 떠오르리라 확신했다. 그때부터 남들이 관심 두지 않던 중국어를 공부했다.
(위) 이명숙 여사는 부임지를 옮길 때마다 현지의 골동품 시장에 간다. 일본에서 돼지 껍질에 디자인한 브로치와 중국에서 앤티크 옥으로 만든 브로치.
1 공식 행사를 여는 건물은 단순한 디자인으로 기능성을 살렸다.
2 진지하게 바둑을 두고 있는 듯싶지만 사실 부자는 알까기 시합 중이다. 아버지의 압도적인 승리로 게임이 끝났다.
오랜 인연 끝에 올림픽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였던 중국에 대사로 부임했다. 여기엔 아내의 내조도 큰 몫을 했다. 이명숙 여사는 탁월한 만찬 전문가다. 만찬은 외교의 화룡점정 아닌가. 밥상을 마주할 때면 곧추세웠던 어깨가 풀리며 허심탄회한 소통이 이뤄진다. 그가 차리는 ‘외교 밥상’에 대해 들어봤다. 키워드는 배려다. “해외 귀빈들에게 ‘친절한’ 한국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들의 문화 배경을 고려해 우리 음식을 조금 변형하는 것이죠. 토종 한국 음식을 경험하는 것도 좋겠지만, 처음 맛본 한국 음식이 너무 낯설다면 만찬 자리가 편하지 않잖아요.” 삼계탕을 응용해 먹기 수월하게 차려낸 메인요리, 수삼이나 대추 등을 활용한 전채 요리 등은 극찬받았다.
그렇다고 성대한 상차림이 성공적인 만찬의 비법은 아니다. 앉으면 누구라도 가족이 되는 밥상, 이것이 비장의 무기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는 무장 해제되지 않았던가. 그의 친절한 밥상은 ‘마중물’인 셈이다. ‘한국 음식의 참맛’이란 깊은 샘물을 길어올리기 위해 내려보내는 한 바가지의 물. 나아가 문화 교류나 외교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3 바쁜 일정 때문에 휴가도 반납한 신정승 대사. 그러고 보니 몇 년째 가족 여행 한 번 못 갔다. 대신 해 저물 녘, 앞마당에서 달밤의 추억을 만들었다.
중국의 힘, ‘만만디’와 ‘관시’ 신정승 대사가 그간 중국에서 배운 점은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은 행동이 빠릅니다. 일단 신속하게 추진한 뒤 잘못된 부분을 생각해보고 수정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일의 앞뒤를 곰곰이 따져보고 심사숙고한 뒤 행동합니다. ‘만만디’(중국인의 행동이 굼뜨거나 일의 진척이 느림을 이르는 말)의 정체가 사실 이것이죠.” 물론 각각 일장일단이 있다. 그래서 서로 배워야 한다. 가령 중국은 한국식 추진력으로 성공한 새마을 운동에 관심이 많다. 섣부른 말을 경계하는 중국인의 자세는 우리가 배울 만한 미덕이다.
이참에 ‘관시 關係’에 대해서도 물었다. 중국에서는 관시가 있어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고, 관시가 없으면 작은 일도 성사되지 못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인가? “한국에서는 관시의 의미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시는 ‘백’과 전혀 다릅니다. 동향 사람이라고,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혹은 밤새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고 생기는 연줄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관시란 오랜 시간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서로 배려하고 유익한 교류를 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신뢰를 말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관시가 맺어지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할 수 있다. 이익을 바라는 사심 때문이 아니다. ‘이 사람을 신뢰하고 있으며,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한중 교류도 신뢰를 기초로 해야 합니다. 문화가 밑바탕을 이루어야 하고요.” 신정승 대사는 우리 음식과 다양한 문화를 중국에 소개하는 큰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한중 청소년 교류에 희망을 걸고 있다. 중국 학생들이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청소년들의 교류가 오랜 시간 누적되면 이야말로 진정한 ‘관시’가 아닐까.
그리고 지은, 우근 씨는 다음 세대의 문화 사절단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부모와 떨어져 살기도 했고 타향살이도 해보며 두루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이들. 그 덕분에 어머니가 해주는 바지락 된장국과 간장 게장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늘 그리워하며 산다. 코즈모폴리턴이 대다수일 다음 세대에 이들이 전하는 우리 문화가 신선한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
4 입구에 설치한 한원석 씨의 ‘성덕대왕 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