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듣던 음악 방송. 박인희・이문세・송승환의 목소리에 실려 들었던 시의 8할은 사랑의 시였다. 그중 많은 시가 김남조 선생의 시였다. 나직이 읊으며 앞으로 펼쳐질 시간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인생과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았을까마는, 인생의 크나큰 비밀은 혼자 안 듯이 조숙한 척했다. 김남조 선생의 시는 한결같이 ‘사랑’과 기도의 시였다고 기억된다. 정좌하고 읽으면 깨달음을 얻을 듯한 시. 여든의 김남조 선생이 60년 동안 쓴 시 중에서 1백 편의 시를 뽑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는 옥양목 표지에, 인지가 찍혀 있고, 옛날처럼 식자공이 활자를 뽑아서 만든 책이다. “…누구 가랑잎 아닌 사람이 없고/ 누구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는”의 ‘목숨’이라는 시,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손 빈 가슴으로 왔다 가는 사람이지”로 시작하는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사랑한 일만 빼곤/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라는 ‘참회’. 읽을 때마다 안에서 무언가 울컥 쏟아진다. 나는 아직도 그때처럼 인생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 “내 마음을 열/ 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주마/ 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 원하거든 열거라/ 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 가진 후 빈 그릇에/ 허공 부스러기쯤을 담아두려거든/ 그렇게 하여라// 이 세상에선/ 누군가 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하는/ 이런 일, 허망이라 한다/ 허망은 삶의 예삿일이며/ 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 나는 너를/ 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 너를/ 사랑한다.”(‘허망에 관하여’) 늦은 밤 깨어 있는 동안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랑이란 게 실은 허망을 먹이는 어미다. 이 얼마나 가슴치게 만드는 진실인지. 인간이 하는 일이란 아무리 지극하여도 결국 허망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길고 늘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라고/ 오늘도 제 기도는 이 말의 되풀이나이다/ 하오니 용서 못하시어도/ 필연 그렇게 해주소서 주여.” 왜 인간이 하는 일은 허물투성이인지, 무릎 꿇고 간구할 때 평안을 얻는 것인지. 언제나처럼 책을 덮고 무릎을 꿇는다.
시인 김남조가 언제나 선생님이라면, 시인 나희덕은 언제나 언니다.대학 졸업 무렵, 1월 1일자 신문에서 본 ‘뿌리에게’ 이후 그의 20년 독자가 되었다. <야생사과>는 어느덧 여섯 번째 시집이다. 그는 낡은 자신을 벗어두고 떠나간 듯하다. “밤 강물이여/ 여기, 나를 내려놓는다// 비로소 그를 미워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곳//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아무도 나를 깨우러 오지 않고// 이틀쯤 굶어도 배고프지 않고/ 마음의 공복만으로도 배가 부른 곳”(‘밤 강물이여’ 중) 시집을 보는 내내 소파에서 밤을 보낸 기억이 떠올랐다. 낯선 호텔 침대에 차마 살을 섞지 못한 채 소파에서 지샌 밤. 그녀는 언니답다. 외로움과 고통도 그녀를 통해 보면 견딜 만하다. 고통스러우나 무엇인가 털려나간 듯하고, 고독하나 적당히 여유롭고, 인생의 쓴맛을 보았으니 뒤끝은 달콤하고. 그녀의 시는 지나치지 않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방 속에/ 나는 덜 익은 꿀처럼 담겨 있다/ 문이 열리면 후루룩 흘러내릴 것처럼// 이 방 옆에/ 또 다른 방들이 붙어 있다는 게 마음 놓인다/ 켜켜이 쌓인 六角의 방들을/ 고통이 들락거리며 매만지고 간다.”(‘육각의 방’중) ‘옥수수밭이 있던 자리’나 ‘우리는 낙엽처럼’에서처럼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채로, ‘낯선 편지’나 ‘그의 사진’에서처럼 두고 갈 것은 두고, ‘심장 속의 두 방’ ‘누가 내 이름은’에서처럼 그녀는 자신조차도 두고 떠난다. 과거가 미래를 침범하지 않게 버리고 가는 발걸음. 그런 길을 나도 떠나봤으면 좋겠다.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것은 이제 끝이라고, 그녀처럼 마침표를 찍어봤으면. 그녀는 세상의 모든 울림을 받기 위해 기다리겠노라고 말한다.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벽에서 스며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한 저녁이었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를 따 주었다// 새가 쪼아먹은 자리마다/ 개미들이 오글거리며 단물을 빨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입 베어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수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야생사과’ 중)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 과거는 과거일 뿐 오늘은 다시 시작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올 것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야생사과를 베어 물 때처럼. 실컷 울고 난 뒤의 개운한 목소리를 들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