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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영화 음악 작곡가 이동준 씨 작곡도 인생도 요리하듯 산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의 음악을 작곡한 사람. 작업을 하지 않는 날엔 지인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척척 내놓는 남자. 영화음악가 이동준 씨의 와인처럼 향긋하고 영화처럼 재미있는 쿠킹 스토리.

“영화에서 주연배우 이상의 캐릭터를 지닌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영화는 예고편보다 멜로디가 그 영화를 더 정확하게 설명하니까요. 작업하기는 까다롭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작업이죠.”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이라 보기에는 젊다 못해 어려 보이기까지 한 그와 다이닝 룸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두오모에서 구입했다는 포로 PORRO의 우드 테이블은 열 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다. 이 테이블 위에 컴퓨터와 음악 CD, DVD 영화 CD, 어제 마시다 둔 듯한 와인 병, 오늘 아침 마셨을 법한 테이크 아웃 커피 용기 몇 개가 놓여 있다. “이 테이블이 책상이자 식탁이에요. 작업도, 미팅도, 식사도 모두 이 테이블 하나로 해결합니다.”
그는 얼마 전 지금의 청담동 빌라로 이사했다. 1층은 거실과 부엌, 2층은 침실과 정원, 3층은 작업실이 있는 구조로, 1층에서부터 천장이 뚫려 있어 시원하고 깔끔한 구조다.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층별로 다른 기능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여배우가 5년 정도 살았던 집인데 잘 고쳐놓았더라고요. 특히 2층 정원과 3층 작업실이 마음에 드는데, 3층 작업실은 전에 살던 주인이 영화를 감상하던 곳으로 방음 시설이 완벽하게 되어 있어 작업실로 제격입니다.” 1층에서 사람을 만나고 식사를 하며 3층에서 작업을 하는 이동준 씨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아늑하고 효율적인 집, 나무와 꽃이 많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집으로 꾸미고 싶었단다.


1 스테이크에는 반드시 시칠리아 소금을 쓴다는 그의 다양한 양념들.
2, 3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따뜻하고 밝게 꾸민 집. 요즘은 정원 가꾸기에 푹 빠졌는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보면 생활에 활력이 생긴단다.




그가 음악과 인테리어 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분야가 바로 요리다. 한식 위주로 간단한 음식만 해 먹던 그가 요리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와인 때문이었다. “와인은 사람들과 대화하게 만드는 술이에요. 와인을 마시면서 스테이크나 파스타 등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를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죠. 서양 음식을 만들어보니 한식보다 훨씬 쉽고 편해요. 조리 시간도 짧고, 설거지도 간편하고요. 한식은 정성이 훨씬 많이 들어가죠. 음식에 문화가 담겼다는 말을 요리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서양 음식에는 합리적인 사고가, 한식에는 정성과 노력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초대해서 대접하면 제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들 하는데, 정명훈 씨처럼 음악가 중에는 음식 잘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건 아마도 요리와 음악에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일 거예요. 요리는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섞고 조리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져서 재미있잖아요. 음악 역시 많은 생각과 음악적 지식, 감성으로 음표를 배열하면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는데, 그 과정이 요리와 꼭 닮았어요.”


4 기능적이고 심플한 가구를 좋아하는 그의 거실에 놓인 플렉스폼의 레드 컬러 소파.

이동준 씨의 쿠킹 스토리
요리와 와인, 영화로 통하다


<은행나무 침대> 봉골레 파스타 & 조셉 페블리 몽라셰
“저는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 때 모시조개와 함께 백합을 넣어요. 조개 국물과 마늘을 넉넉히 넣어 만드는데,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가 아닌 변형된 스타일이죠. 영화 <은행나무 침대> 역시 한국적인 요소와 영화음악 기법이 혼재된 스타일이에요. 전통은 지키되 새로운 것을 첨가해 더욱 좋은 맛을 낸다는 점이 서로 닮았어요. 봉골레 파스타에는 맑고 깊은 여운이 감도는 화이트 와인, 2007년산 조셉 페블리 몽라셰가 제격이죠.”


<태극기 휘날리며> 안심 스테이크 & 그랑 에스테조
“서양식 코스 요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무게감 있는 식사가 스테이크죠. 스테이크에 얇게 저며 올리브 오일에 볶은 마늘을 많이 얹고 부르고뉴산 그랑 에스테조를 곁들이면 잘 어울립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우리나라 역사의 상처를 형제애로 풀어낸 스케일이 큰 영화죠. 에너지가 강한 영화에는 역시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식사와 와인이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설탕> 닭 가슴살 구이 & 샤토 트로타누아
“영화 <각설탕>은 동물과 사람 사이의 우정을 그린 서정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엔 마음이 따뜻해져요. 이 영화에는 너무 과하지 않은 심플한 음식이 어울릴 것 같아요. 집에서 기른 로즈메리로 향을 낸 닭 가슴살 구이 한쪽에 포므롤 지역의 테루아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샤토 트로타누아 한잔 곁들이면 제격입니다.”


<로스트 메모리즈> 버섯 마늘 볶음밥 & 사케 백룡 白龍
“음식 재료 중에 마늘과 버섯을 가장 좋아해요. 어느 날 버섯 볶음밥에 마늘을 넣었더니 맛이 꽤 좋더군요. 예전에는 소금 간을 했는데 얼마 전 일본 여행에서 볶음밥을 맛본 이후로는 일본 간장과 버터를 넣어 간을 해요. <로스트 메모리즈>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영화죠. 제가 개발한 버섯 마늘 볶음밥에 사케를 곁들여 먹으면 영화 <로스트 메모리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