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힘들지, 나도 아파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기에, 남편은 아프다. 경제적 어려움, 출산과 양육, 질병, 아이들의 말썽 등으로도 아내가 괴롭기는 하겠지만, 시어머니로 인한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아내의 고통에 반응하는 남편의 감정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 그 상처가 깊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에서 발생한 고통은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표시된다. 분노가 폭발한다. 분노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당사자뿐만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남편과 자식에게 해결 안 될 분노를 퍼붓는다. 분노의 공격을 받은 남편은 무력하게 당하든지, 아니면 어떡해서든 되받아칠 수밖에 없다. 부부 모두에게 심한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남편이 잘못을 한 경우라면 시원하기라도 할 것이다. 남편도 잘못을 했으니 반성하고 후회할 수 있다. 결국 분노가 모두를 분노케 한다.
남편은 억울하다. 가해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공격을 퍼붓는다면, 심하게 이야기해서 ‘테러’이다. 시어머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시어머니와 한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인 남편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꼴이다. 물론 민간인이라고 다 좋고 착한 사람만은 아니다. 나쁜 짓도 하고 미운 짓도 해서 아내를 공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편이 주적 主敵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를 선택하거나 세뇌시킨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에 참아야 한다. 하소연할 곳 없는 아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그것이기에 참아야 한다. 참느라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기에 감내할 수 있다.
어머니, 죄송해요 너무 아프면 다 버리고 싶다. 어머니를 배신하고픈 유혹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배신하고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어머니를 버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만이 아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 경우도 적지 않다.
배신이 쉽지는 않다. 무릇 아들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사냥을 하지 못해 새끼에게 먹잇감을 물어다 주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스스로 혼자 살 수 없는 시기가 있다. 그 의존의 시기를 어머니가 지켜주었다.
믿음이 있다. 아마도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도닥여줄 것이다. 물론 아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배신을 당한다면 어떨까. 어머니는 아들의 배신에 몸서리치지만 결코 아들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다. 아내여, 당신도 그럴 수 있는가? 당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찾는 남편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도닥여줄 수 있겠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배신과 분노를 씻어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들들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은 잘못된 것이거나 손가락질받을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맹목적인 신뢰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곧잘 어머니를 배신한다는 사실이다. 이치적으로 절대 그럴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배신을 할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배신을 일삼는다. 이유가 있다. 어차피 가정이란 부모의 피를 물려주어 인류를 이어나가게 하는 생산적 공동체이고, 결혼이란 어머니를 떠나서 독립적인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니 결코 의도적인 배신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독립과 성숙의 단계이다.
성숙한 인간이기에, 또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제 가정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함을 안다. 그래도 배신의 마음은 한없이 미안하고, 때로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또 하나 알아주어야 할 것이 있다. 아내의 사랑이라면, 기꺼이 남편은 배신을 할 것이다. 목 놓아 울면서도 말이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 몇 가지 부탁이 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꼭 같지 않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남편의 어머니이기에 만났을 뿐이지, 친정어머니처럼 당신을 걱정해주거나 칭찬해주거나 잘되라고 야단칠 이유가 없는 사이이다.
아내가 시어머니보다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시기할 수 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중년의 아내들은 이해할 것이다. 조금 젊은 것들에게 느끼는 시기와 열등감 같은 것을. 게다가 사랑하는 아들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이 든 여자의 시기심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시어머니가 무엇을 바라는지 눈치 채길 바란다. 시어머니들은 그저 대접받기를 원한다. 젊은 여자에게 아들 빼앗긴 허탈함을 보상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날 시어머니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분은 아들이나 며느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저 더 오래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내가 참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기에, 남편은 아프다. 경제적 어려움, 출산과 양육, 질병, 아이들의 말썽 등으로도 아내가 괴롭기는 하겠지만, 시어머니로 인한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아내의 고통에 반응하는 남편의 감정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 그 상처가 깊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에서 발생한 고통은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표시된다. 분노가 폭발한다. 분노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당사자뿐만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남편과 자식에게 해결 안 될 분노를 퍼붓는다. 분노의 공격을 받은 남편은 무력하게 당하든지, 아니면 어떡해서든 되받아칠 수밖에 없다. 부부 모두에게 심한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남편이 잘못을 한 경우라면 시원하기라도 할 것이다. 남편도 잘못을 했으니 반성하고 후회할 수 있다. 결국 분노가 모두를 분노케 한다.
남편은 억울하다. 가해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공격을 퍼붓는다면, 심하게 이야기해서 ‘테러’이다. 시어머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시어머니와 한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인 남편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꼴이다. 물론 민간인이라고 다 좋고 착한 사람만은 아니다. 나쁜 짓도 하고 미운 짓도 해서 아내를 공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편이 주적 主敵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를 선택하거나 세뇌시킨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에 참아야 한다. 하소연할 곳 없는 아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그것이기에 참아야 한다. 참느라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기에 감내할 수 있다.
어머니, 죄송해요 너무 아프면 다 버리고 싶다. 어머니를 배신하고픈 유혹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배신하고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어머니를 버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만이 아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 경우도 적지 않다.
배신이 쉽지는 않다. 무릇 아들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사냥을 하지 못해 새끼에게 먹잇감을 물어다 주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스스로 혼자 살 수 없는 시기가 있다. 그 의존의 시기를 어머니가 지켜주었다.
믿음이 있다. 아마도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도닥여줄 것이다. 물론 아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배신을 당한다면 어떨까. 어머니는 아들의 배신에 몸서리치지만 결코 아들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다. 아내여, 당신도 그럴 수 있는가? 당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찾는 남편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도닥여줄 수 있겠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배신과 분노를 씻어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들들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은 잘못된 것이거나 손가락질받을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맹목적인 신뢰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곧잘 어머니를 배신한다는 사실이다. 이치적으로 절대 그럴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배신을 할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배신을 일삼는다. 이유가 있다. 어차피 가정이란 부모의 피를 물려주어 인류를 이어나가게 하는 생산적 공동체이고, 결혼이란 어머니를 떠나서 독립적인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니 결코 의도적인 배신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독립과 성숙의 단계이다.
성숙한 인간이기에, 또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제 가정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함을 안다. 그래도 배신의 마음은 한없이 미안하고, 때로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또 하나 알아주어야 할 것이 있다. 아내의 사랑이라면, 기꺼이 남편은 배신을 할 것이다. 목 놓아 울면서도 말이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 몇 가지 부탁이 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꼭 같지 않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남편의 어머니이기에 만났을 뿐이지, 친정어머니처럼 당신을 걱정해주거나 칭찬해주거나 잘되라고 야단칠 이유가 없는 사이이다.
아내가 시어머니보다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시기할 수 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중년의 아내들은 이해할 것이다. 조금 젊은 것들에게 느끼는 시기와 열등감 같은 것을. 게다가 사랑하는 아들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이 든 여자의 시기심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시어머니가 무엇을 바라는지 눈치 채길 바란다. 시어머니들은 그저 대접받기를 원한다. 젊은 여자에게 아들 빼앗긴 허탈함을 보상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날 시어머니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분은 아들이나 며느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저 더 오래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내가 참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