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산티아고로 가며 001’, 2008
배병우, ‘산티아고로 가며 029’, 2008
무역 사업에서 은퇴하고 ‘호모 노매드’로 살고 있는 김필규 씨,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 씨, CF 감독이자 산티아고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 이지송 씨,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 번째 완주한 도보 여행가 김효선 씨가 천 년 넘은 산티아고 길에서 뭉쳤다. 김필규, 김효선 씨가 글로 남긴 기록과 배병우, 이지송 씨가 사진으로 남긴 기록을 통해 4인 4색 산티아고 여행을 떠나본다.
김필규 씨의 산티아고 “우주가 내게 윙크했다” 젊은 시절,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 원자재 수입 사업을 하는 30년 동안 미국을 1백 번 넘게 드나들었지만 그동안 나이아가라 폭포 한번 못 가봤다. 그래서 출장으로 점철된 현역 사업가에서 은퇴하고 나서 망설임 없이 길을 정했다. 여생을 ‘호모 노매드(유목하는 인간)’로 살기로.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나그네로 세상을 유랑했다. 찬란한 유적지, 기가 막힌 풍경을 보러 다녔지만 늘 목이 말랐다. ‘호모 노매드’이기보다는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식의 여행이었기 때문일까? 채우기를 멈추고 비우고 싶었다. ‘더 많이’ 보기보다 ‘더 깊고 넓게’ 보고 싶었다. 걷자, 걸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온전히 내 두 다리로 걷는, 진정한 유목민으로서 여행을 하리라 별렀다. 첫 여정으로 오래전 꿈꿔온 산티아고 순례길을 정했다.
왼쪽부터 배병우, 이지송, 김효선, 김필규 씨
천 년 된 이 길은 얼마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을 것이며,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많은 여행객들의 사연은 또 얼마나 절절할 것인가. 그중 일부만 반추해본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푸엔테 라 레이나 , 무어인의 슬픈 역사를 돌조각으로 새긴 교회가 있던 도시 로그로뇨, 이곳에서 맛본 아름다운 와인 리오하, 아스토르가에서 뜻밖에 만난 가우디의 매력적인 건축물, 13세기에 살았던 어느 기사의 성채가 고고한 빛을 발하던 풍경…. 그뿐이랴. 기다란 수녀복을 입고도 하루 30~40km씩 걷던 수녀, 95세의 프랑스 할아버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뚝이며 순례길을 완주한 네덜란드 남자, 맹인 안내견과 함께 걷던 앞 못 보는 이탈리아 청년, 딸과 아내와 처제를 데리고 84일 만에 순례길을 왕복한 한국의 트럭 기사 아저씨….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든 걸음걸음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품은 간절한 염원 때문이리라.
하지만 길은 평탄치 않았다. 발은 흉측하게 부르텄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고통을 잊게 한 것은 매일 밤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수억 개 별들의 합창이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별을 향해 영혼의 존재를 묻는 날 발견하곤 했다. 먼 데서 오는 빛…. 그 빛과 눈을 맞췄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소년 같은 감상이냐 싶겠지만, 내겐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항상 별을 그리워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거지’ 하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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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병우, ‘산티아고로 가며 022’, 2008.
2 배병우, ‘산티아고로 가며 017’, 2008. 한참 걷다 보면 문득 세월의 흔적을 안고 선 유적지를,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을 마주한다.
천신만고 끝에 최종 목적지인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도착했다. 동료 순례자들과 눈물겨운 포옹을 나누고 광장을 꽉 메운 다른 관광객들의 축복을 받았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첫말은 생뚱맞게도 “나도 걸었다”였다. 그렇다, 나도 걸었다!
얼마나 걷고 싶었던 길이었던가. 안도감, 희열, 감사함으로 범벅된 감정이 가슴에 차올랐다. 한 달 넘게 때론 까마득한 낭떠러지 길에서,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지평선에 서서, 하늘을 가리는 옥수수와 해바라기 밭에서, 광활한 밀밭에서, 모기와 파리 떼에 쫓기던 오솔길에서, 소똥 냄새로 후각이 마비되어 음식 맛을 잃어버린 식당에서, 파란 하늘에 느닷없이 몰려온 흰 구름이 이룬 한 폭의 그림으로 피로를 씻어낸 산등성이에서, 수억 개의 별들이 총총히 빛나던 하늘에 갑자기 피어오른 뽀얀 안개로 ‘수은 바다’ 장관이 연출되던 산 정상에서…. 감사하게도 그 모든 빛나는 순간을 조우한 것이다. 두 다리로 정직하게 걸어냈기 때문이었을까. 미약하고 평범한 한 인간에게 우주는 윙크를 보내주었다.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3 배병우, ‘산티아고로 가며 027’, 2008.
4 이지송 씨의 카메라에 포착된 김필규 씨. 여행자를 만날 때마다 그 나라 노래를 외워서 불렀다. 그에게 여행자들은 존경의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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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병우, ‘산티아고로 가며 004’, 2008.
2 이지송 씨가 담은 산티아고 풍경. 길의 어디에서도 줄을 걸면 빨래가 마르는 마당이 되고 돗자리를 펴면 소박한 식탁이 되었다.
김효순 씨의 산티아고 “중년의 여자에게 인생의 황금기를 안내한 길” 산티아고 길은 참으로 유혹적이다. 늘 유럽 순례객들로 붐빈다. 나도 벌써 세 번이나 완주했다. 2006년 봄 프랑스 길(노르테 길 포함), 지난해 봄 플라타 길, 그리고 지난해 가을 다시 간 프랑세스 길까지! 지금도 이른 새벽 산 정상에서 떠오른 태양이 만월을 밀어내던 장관이 생생하다. 나를 중심으로 두고 ‘좌청룡, 우백호’ 구도를 연출했다. 내가 날마다 온몸으로 걷듯, 대자연도 매일 큰 몸짓으로 이 세계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처음 이 길을 걸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오지랖 넓게도 여기저기에 말을 붙여가며 35개국 친구들을 만났다. 국제회의장이 아닌 스페인의 시골길에서 말이다. 전 세계의 나그네들과 어울리며 걷는 즐거움은 보행의 고통을 잊게 했다. 아, 잊을 수 없는 나의 카미노(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 여기서는 순례길을 총칭한다) 친구들! 집에서 책이나 보다가 어쩌다 찾아오는 가족을 그리며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겠다며 생애 마지막 긴 여행을 하던 사라예보의 철학자 할머니 두 분이 떠오른다. 카미노는 바로 유쾌한 사교장이자 배움의 장이었다.
사교에 노래가 빠질 수 없다. 한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의 샤워실. 칸칸이 늘어선 샤워 부스 안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즐기던 벌거벗은 남녀 순례자들의 콘서트를 어찌 잊을까! 독일 아저씨가 부른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부터 시작해 ‘푸니쿨리 푸니쿨라’로, 독일 가곡으로, 팝송으로, 우리는 한목소리로 카미노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3 이지송 씨가 카메라에 담은 허허로운 종점. 순례길의 종점은 끝이 아닌, 삶의 쉼표였다.
그런 그리움이 다시 가방을 꾸리게 했다. 세 번째로 간 순례길. 우리 일행은 여러모로 카미노의 스타였다. 카미노 신문 <엘 카미노>에 실렸고 레온 지방 방송국에서 우리를 카메라 영상에 담아가기도 했다. 특히 김필규 회장님의 재치와 유머는 나그네들이 눈물을 빼며 웃게 만든 ‘핵폭탄’급이다. 점잖게 시작하는 서론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데 한창 몰입하다 보면 반전의 유머가 터진다. 미국 토크쇼의 황제 자니 카슨도 울고 갈 솜씨! 노래 또한 볼만했다.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든 각국의 대표 가곡과 팝송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카미노는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보다 더 큰 희망과 기쁨으로 보답한다. 새로운 사랑, 신선한 열정이 샘솟는다. 그래서일까, 위대한 사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니체는 말했다. 난 이 걷기 운동을 ‘동네 한 바퀴’를 뛰어넘어 자기 계발을 위한 문화적 휴먼테크 프로그램으로 소개하고 싶다. 그래서 ‘도보 여행가’가 되기로 했다. 내게 걷기는 여행 수단이기도 하지만 여행의 목표이기도 하다. 나는 걷기 위해 여행한다. 장거리 도보 여행은 명상의 기회이고, 유쾌한 사교의 한마당이다. 특히 낯선 세상을 걸으며 여행하는 것은 새로운 생각과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발견하는 좋은 기회이며,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자신의 깊은 마음을 여행하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난 자녀와 일에서 벗어난 중년의 나이다. 오랫동안 워킹맘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힘쓰고 살았지만, 이제 가족을 위한 내 손길은 줄어들었다. 이제 나를 위해 산다. 나의 새로운 인생은 지금 길 위에서 한창 활짝 피어나고 있고, 지금 난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다. 올해도 난 다시 배낭을 꾸릴 작정이다.
4, 5 김필규 씨가 바라본 산티아고 풍경, 천 년의 역사를 새긴 비석 앞에 멈춰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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