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이 실직했습니까? 그래서 불안합니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남편의 직업이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고난을 어떻게 뚫고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제 해결 방법보다 돈에 더 집착하기 때문에 남편의 실직 앞에서 마냥 불안하고 암담하기만 한 겁니다. 게다가 남편들은 직장을 그만두면 자괴감을 느끼게 되고,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서두르다가 얄팍한 유혹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더 큰돈을 잃을 수도 있어요.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 실패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만약 이 실패가 한참 후에 일어났다면 더 크게 어긋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실패는 더 큰 실패에 대해 미리 경고음으로 주의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잘못되거나 손실이 아니라 공부거리입니다.‘수업료’라고 생각하세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늘 길은 두 갈래로 나 있습니다.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게 인생입니다.
또 두 손이 있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고 두 다리가 멀쩡해서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이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인생이 행복하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거예요. 하루 세끼 먹는 것에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하루 세 끼 말고 뭔가 특별한 걸 요구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편이 괴로움에 처한 때일수록 아내는 남편 덕을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 덕을 보겠다는 마음을 좀 접어두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야겠다.’ 이런 아내 옆에서라면 남편은 실직의 슬픔을 딛고 새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겠지요. “수고했어요. 오랜 세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제는 좀 쉬세요.” 아내가 위로하면 남편은 감동합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쫓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소일하다가 새 일거리를 찾아야 실수가 없습니다.
또 이렇게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빠가 아이들을 다 불러놓고 “아빠가 이번에 실직을 했다. 집안에 손해가 있다. 앞으로 수입이 줄어드니까 절약해서 살자” 하고 사정을 알리고 의논하는 게 좋습니다. 그럴 때 오히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웁니다.
만약 어려움이 있을 때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끙끙 앓으면 나중에 자식과 원수가 됩니다. 부모 마음에는 ‘나는 얼마나 고생하면서 너희를 공부시켰는데’ 하는 생각이 들 것이고, 아이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부모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애정을 갖고 진지하게 나누면 서로 힘이 됩니다. 혼자 무거운 짐을 지는 게 좋은 건 아닙니다.
제게 상담을 하는 사람 중에는 당장 죽을 것 같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루도 못 살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껏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비가 넘어가면 아무것도 아니고 고비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어려움이 오더라도 싫은 마음을 갖지 말고 끝까지 해내면 인생에서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더 좋은 삶으로 가게 되는구나,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나?’하고 말이지요.
이 기사는 법문 스님의 즉문즉설 법회 내용을 발췌, 구성한 것입니다. 즉문즉설 법회는 회중이 질문하면 스님이 답을 하는 불교 전통에 따른 강연 방식으로, 특히 법륜 스님은 ‘독재자 같은 남편과 이혼해야 할까요?’ ‘과년한 딸이 결혼을 안 해요’처럼 생활 속의 어려움에 대해 즉문즉설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 즉문즉설은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답답하면 물어라> <행복하기 행복 전하기> 등의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 실패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만약 이 실패가 한참 후에 일어났다면 더 크게 어긋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실패는 더 큰 실패에 대해 미리 경고음으로 주의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잘못되거나 손실이 아니라 공부거리입니다.‘수업료’라고 생각하세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늘 길은 두 갈래로 나 있습니다.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게 인생입니다.
또 두 손이 있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고 두 다리가 멀쩡해서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이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인생이 행복하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거예요. 하루 세끼 먹는 것에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하루 세 끼 말고 뭔가 특별한 걸 요구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편이 괴로움에 처한 때일수록 아내는 남편 덕을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 덕을 보겠다는 마음을 좀 접어두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야겠다.’ 이런 아내 옆에서라면 남편은 실직의 슬픔을 딛고 새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겠지요. “수고했어요. 오랜 세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제는 좀 쉬세요.” 아내가 위로하면 남편은 감동합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쫓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소일하다가 새 일거리를 찾아야 실수가 없습니다.
또 이렇게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빠가 아이들을 다 불러놓고 “아빠가 이번에 실직을 했다. 집안에 손해가 있다. 앞으로 수입이 줄어드니까 절약해서 살자” 하고 사정을 알리고 의논하는 게 좋습니다. 그럴 때 오히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웁니다.
만약 어려움이 있을 때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끙끙 앓으면 나중에 자식과 원수가 됩니다. 부모 마음에는 ‘나는 얼마나 고생하면서 너희를 공부시켰는데’ 하는 생각이 들 것이고, 아이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부모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애정을 갖고 진지하게 나누면 서로 힘이 됩니다. 혼자 무거운 짐을 지는 게 좋은 건 아닙니다.
제게 상담을 하는 사람 중에는 당장 죽을 것 같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루도 못 살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껏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비가 넘어가면 아무것도 아니고 고비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어려움이 오더라도 싫은 마음을 갖지 말고 끝까지 해내면 인생에서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더 좋은 삶으로 가게 되는구나,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나?’하고 말이지요.
이 기사는 법문 스님의 즉문즉설 법회 내용을 발췌, 구성한 것입니다. 즉문즉설 법회는 회중이 질문하면 스님이 답을 하는 불교 전통에 따른 강연 방식으로, 특히 법륜 스님은 ‘독재자 같은 남편과 이혼해야 할까요?’ ‘과년한 딸이 결혼을 안 해요’처럼 생활 속의 어려움에 대해 즉문즉설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 즉문즉설은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답답하면 물어라> <행복하기 행복 전하기> 등의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