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 마련한 전시장 풍경이다. 여인의 두상은 모두 강경연 씨 작품, 나머지는 모두 이재준 씨 작품이다. 다리가 셋뿐인 강아지 형상은 옆에 앉아 있는 비글 ‘로또’가 모델이다. 로또는 뒷산에 올라갔다가 올무에 걸려 다리 하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중앙의 검은색 고양이 형상 또한 올무에 걸린 모습이다. 이재준 씨는 작업을 통해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갖지 않는 인간, 자연을 협박하는 인간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며칠 작업을 못하면 불현듯 흙내가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서둘러 작업장으로 돌아오기도 하지요.” 흙과 먹을 경험해본 사람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말이 있다고 도예가 이재준 씨가 이야기한다. “먹처럼 흙에도 독특한 향기가 있어요. 조형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흙을 치대고 반죽을 합니다. 점성을 높이기 위해 며칠간 숙성을 시키는데, 이때 일종의 발효가 일어나면서 흙에 향기가 생겨나지요.” 흙 작업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라며 이재준 씨의 아내이자 동료 도예가인 강경연 씨가 ‘묵향보다 향긋한’ 흙냄새에 대해 말을 더한다.
도예가들은 흙을 만지는 과정을 ‘흙과 대화’한다고 표현한다. 사람이 일방적으로 흙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흙과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해야 비로소 도예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경연 씨는 흙은 억지로 다룰 수 있는 재료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마음이 앞서 일방적으로 흙을 대하면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만다고.
상대를 향한 배려심이 좋은 인간관계를 이끌어내듯, 점도와 습도 등 흙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흙이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여유와, 변화하는 흙 상태에 따라 작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가마 작업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미술 작업과 다르게 도예는 결과물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불씨가 사그라지고 가마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 성공과 실패를 장담할 수 없다. 캔버스 위에서 붉은 물감은 붉은색을 표현하지만 붉은빛 유약은 가마를 거치면서 때로는 푸른색으로 때로는 분홍색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오죽하면 ‘불의 심판’이라 하겠는가! 같은 가마에서도 그날의 바람, 기압, 습도 등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고 위치에 따라서도 결과물이 달라진다. 이는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할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예측할 수 없기에 때로는 더 매력적이라고 이재준 씨는 이야기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인내심, 기다릴 줄 아는 여유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겸손…. 하나의 도예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도예가가 지녀야 하는 마음가짐은 바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두고 가다듬어야 하는 삶의 자세와 다름 아니다.
(왼쪽) 강경연 씨는 여성의 형상으로 현대 여성의 유토피아에 대한 꿈꾸기를 표현한다. 그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삶도 변화하고 성숙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작품 속에 자신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작업은 형체만 있는 껍데기라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교환한 작품, 여행길에 사 온 소품 등 다양한 도예 소품을 전시해놓았다.
흙을 이해하며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성의 수련이라는 강경연 씨. 그는 도예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삶에도 변화가 왔다고 한다. 일면 소심했던 성격은 작업을 하는 데에서 꼼꼼함과 치밀함으로 바뀌었고 대인관계에서 융통성이 생겼다. 흙 상태에 따라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 흙과의 대화에서 얻은 배움이리라.
강경연 씨와 이재준 씨는 현재 조형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 여성의 삶과 이상을 주제로 하는 강경연 씨, 자연을 존중하지 않는 현대인의 오만함을 고발하는 이재준 씨.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대형 조형 작업을 주로 하지만 도예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 器’에 대한 그들의 애정도 각별해 보였다. “그릇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추상 작업이라는 걸 아세요?” 이재준 씨는 그 원초적인 예술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대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원시인들의 그림 그리기는 사람이나 동물 등 자연을 모사하는 데서 출발했어요. 그러나 그릇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그 무엇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이것이 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도예는 일상 속의 예술이에요. 아름다운 작은 컵 하나가 우리의 삶 속에서 생활 태도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어요.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도 어떤 정신과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보이지 않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바로 이것이 도예의 매력이자 공예품의 매력이라고 강경연 씨는 말한다.
1 1층 전시장에서 2층 살림집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도 강경연・이재준 씨 부부의 작품을 전시해놓았다.
2 건조가 마무리된 조형물에 강경연 씨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회화적인 채색 작업이 더해지곤 한다.
3 작업실 책상에 놓인 드로잉 노트. 위쪽의 접시는 강경연 씨가 지난해 그릇 전시회에서 선보였던 작품이다.
4 도예가 아버지를 둔 이재준 씨에게 도예 작가의 길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도예를 배울 수 있는 곳
강경연 씨는 흙의 장점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재료라는 점을 꼽는다. 흙은 엄격하고 어려운 재료이기도 하지만 초보자는 초보자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표현을 가능케 하는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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