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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친구되기]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칠순 노부부가 대 이을 아들 하나 얻으려고 백일치성 드리니 태기가 들고 열 달이 지나, 앞산 장군봉에 용마가 울고 밤새 우레가 치던 날 드디어 두꺼비 형상의 사내아이를 낳았더라. 부부가 살펴본즉 아기의 겨드랑이에 용비늘이 있으니 이는 필시 천하를 호령할 영웅호걸이 될 팔자라. 고심하던 부부는 마침내 아기를 싼 강보 위에 다듬이 돌을 눌러놓아 명을 끊더니 저들도 곡기를 끊고 그 뒤를 따르더라.
천하장사라고 소문나면 자칫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니 금지옥엽이라 한들 눈물을 뿌리며 아이를 버려야 했던 가혹한 세상이었습니다. 마누라와 딸 예쁘다고 자랑했다간 세도가의 첩실로 빼앗기거나 색주가에 팔려 간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식 자랑, 마누라 자랑 하는 놈은 팔불출로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조상님들이 칭찬을 극도로 삼가야 했던 눈물겨운 사연입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칭찬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며 다들 으싸으싸 칭찬에 열을 올립니다. 하나 이 땅에선 여태 ‘칭찬하면 고래도 다친다’며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칭찬받아본 적 없으니 잘 할 턱도 없겠지요. 이러다간 칭찬 안 하고 못하는 것이 대물리게 생겼습니다.
저 역시 이 나이 먹도록 부모님으로부터 “거 참 잘했다” 소리 한 번 못 들었습니다. ‘칭찬받을 일이 없으니 그렇겠지’라고 넘겨짚는 분이 혹시 있다면, 죄송합니다만 B급. 즉 칭찬할 게 있어야 칭찬한다는 분입니다. 하물며 칭찬할 게 있어도 안 하는 분은 말할 것도 없이 C급입니다. 그렇다면 A급은? 맞습니다. 칭찬할 게 없어도 찾아내서 하는 분이지요. 아무나 A급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분들은 사소하고 드러나지 않는 장점도 용케 찾아내는 예리한 안목이 있습니다. 또 가슴에 탁 꽂히게 멋진 칭찬 카피를 만들어내는 ‘명석한 머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만 불짜리 칭찬 습관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집 아이가 초등학교를 석 달 만에 짤리면 아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닭장으로 뛰어 들어가 계란을 품고 있다면 아마 제 억장이 무너질 겁니다. 그런데 에디슨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확실히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믿고 아이를 인정해주고 칭찬했다지 않습니까? 그 아이가 나중에 1천2백 번 실험에 실패하고도 “나는 1천2백 가지의 안 되는 방법을 알아냈을 뿐”이라고 당당히 말하게 된 것은 엄마가 심어준 긍정의 에너지 덕분일 겁니다.
히딩크 코치는 칭찬이 ‘사람을 살리고 조직을 뛰게 만드는’ 엄청난 에너자이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람입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월드컵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해 라커룸에 앉아 있었답니다. 마침 히딩크가 들어와서 한마디하고 나갔습니다. “너는 정신력이 강해서 훌륭한 선수가 될 거야.” 박지성 선수는 ‘정신줄’을 놓을 만큼 황홀했다고 합니다. 산소 탱크라는 별명처럼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게 만든 그 한 마디, 그를 톱클래스의 프리미어 리거로 만든 한마디였습니다.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칭찬이라고 황홀하기까지 했을까? 그건 아마 주전 경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황에서, 게다가 부상으로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을 때 타이밍 맞춰 제대로 터진 칭찬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히딩크는 우연히 칭찬 한 방을 적시에 날려 엄청난 효과를 거둔 셈이겠군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평생 잊지 못할 칭찬을 타이밍 딱 맞춰 쏠 정도로 고수가 되려면 엄청난 연습량이 필요합니다. 칭찬이 아주 입에 붙어야 가능하단 얘깁니다. “

이런 얘길 하면 꼭 뻗대는 양반들이 있습니다 “칭찬 많이 하면 가치가 떨어져요. 그리고 칭찬받을 일도 아닌데 치켜세우면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아요. 어른이 체통 없이 애한테 아첨할 일 있나?” 그런 분들에게 조분조분 물어봅니다.
“아이를 칭찬해주는 것이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인 일인가요?” 그렇지야 않지. “칭찬해주면 아이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그야 물론 그렇지. “기분이 좋아지면 대체로 공부도 더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러면 성적도 좋아지고 부모도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칭찬 좀 많이 해주시지 그러세요.” 근데 그게 내 스타일 아니거든. 이런 분을 만나면 저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 명함에 ‘코치’라고 찍어 가지고 다닌 지 5년째. 글을 쓴 이규창 씨는 수많은 사람들과 특별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지혜를 얻고 용기를 회복했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한 일은 별로 없다지요. 그저 눈 맞추며 열심히 듣고, 떠오르는 질문 몇 가지 했을 뿐이랍니다. 재주가 무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랍니다. 지금도 기업인, 학부모, 학생들에게 부지런히 강의하고 행복하게 코칭합니다. 서울대 영문학과에서 배우고 <조선일보> IT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코치 이형준씨와 블로그(blog.naver.com/jace1123)를 운영하며 책 <신나는 아빠 신나는 편지>를 냈습니다.


나도연, 이규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