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기념일을 잊어버리는 남편과 그래서 속상한 아내의 에피소드를 소개할 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은 아마 그 반대일걸?” 순간 나는 결혼기념일이 4월 5일인지 6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걸 눈치 챈 남편은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박장대소했다. 참고로 나는 작년 4월 6일에 결혼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나의 예민함과 기억력은 이상하게도 기념일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솔직히 그 기억상실은 세상의 모든 기념일을 우습게 아는 나의 쿨한 인생관(?)과 호들갑을 싫어하는 진중함(?)에 기인한다. 하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 남편이 용기 내어 지적했듯 나의 ‘인간관계에서의 고질적 게으름’ 때문이다. 이 게으름 덕분에 나는 안부와 축하, 위로의 타이밍을 놓치고 아끼는 사람들을 서운하게 한다. 그렇게 표현하지 못한 마음은 해소되지 않은 채무처럼 가슴속에 콕콕 박혀 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보다 더 기념비적인 날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밤 기차를 타고 남자 친구가 있는 도시로 가던 밤이나, 부부는 연인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가슴 먹먹한 관계라는 깨달음을 얻고 눈물을 흘리던 오후, 내 발에 자기 발을 엮고서 아이처럼 기분 좋게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고 세상 끝에 있는 행복을 얻은 듯한 생경한 기분이 들던 밤 같은 그런 날들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모든 유치한 기념일들도 나름의 힘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것을 연애가 아니라 결혼 생활을 통해 이해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지난 연말, 12월 24일과 31일을 어물적 넘어갈 태세인 나에 비해 특별한 날을 각별히 여기는 남편이 수납장에서 트리와 오너먼트를 꺼냈다. 그것은 수년 전 남편과 함께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내가 남편의 집에 장식해준 오래된 트리였다. 퇴근하면 외투를 벗기 전에 트리에 점등부터 하는(나는 자꾸 까먹었다) 남편의 모습은 어딘가 뭉클한 구석이 있었다. 그 모습에 끌린 나는 오랜만에 인간관계의 고질적 게으름을 떨치고 크리스마스를 위한 작전에 돌입했고, 취미로 클래식 기타를 치는 남편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악기상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기타와 관련된 몇 가지 소품(남편이 예상치 못한!)과 짧게 쓴 카드를 준비했다(언제나 한 수 위인 남편은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직접 그린 카드와 긴 편지를 준비했다). 비록 크리스마스 레시피를 따른 로스트 치킨은 26일이 되어서야 식탁에 올랐지만 어쨌든 일련의 이 호들갑은 나에게 중요한 감정의 맥을 찾아주었다. 그건 오래된 약속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연애 시절 한창 힘든 시기를 겪던 지금의 남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네 인생의 증인이 되어줄게.” 정말이지 나는 켜켜이 쌓인 상실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의 고군분투와 진심에 대한 증인이 되고 싶었다. 끝간 데 없는 치열함이 기적처럼 사라지고 눈물겨운 평범함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키득거리며 결혼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증인이 되겠다던 약속은 결혼과 함께 희미해졌다. 온전한 결혼 생활을 위해 좋아하던 일과 주말 부부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남편이 있는 지방 도시로 온 나는 배우자의 보증 없이는 백화점 카드도 만들 수 없는 주부가 되었고, 지방 도시의 ‘사모님 라이프’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황폐하고 소모적이었다(적어도 나에게는). 이쯤 되니 나는 관계에 대한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위급 상황에 빠진 것으로 간주되는 내 인생을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호들갑스러운 크리스마스 준비가 나를 이 위협적인 편향으로부터 구제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나는 오랜만에 사랑하는 남편의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결혼의 성격 형성기라 할 수 있는 신혼기에 기념일의 묘미를 알게 된 건 다행이다. 사랑과 생활 사이의 흥미로운 줄타기가 연속되는 결혼 생활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맥을 놓치지 않으려면 기념일과 이벤트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현명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결혼 생활에서 기념일은 그 여자와 그 남자만의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사랑을 상기시킨다. 기념일 챙기기의 긍정성을 깨달은 나는 요즘 결혼 후 처음 맞는 밸런타인데이를 위한 계획을 구상 중이다. 성공한다면 남편과 나는 우리 머리 위로 사랑이 또 한 겹 쌓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참, 우리의 기념비적인 날 중 다른 하나는 사랑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경험한 어느 봄날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보다 더 기념비적인 날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밤 기차를 타고 남자 친구가 있는 도시로 가던 밤이나, 부부는 연인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가슴 먹먹한 관계라는 깨달음을 얻고 눈물을 흘리던 오후, 내 발에 자기 발을 엮고서 아이처럼 기분 좋게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고 세상 끝에 있는 행복을 얻은 듯한 생경한 기분이 들던 밤 같은 그런 날들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모든 유치한 기념일들도 나름의 힘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것을 연애가 아니라 결혼 생활을 통해 이해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지난 연말, 12월 24일과 31일을 어물적 넘어갈 태세인 나에 비해 특별한 날을 각별히 여기는 남편이 수납장에서 트리와 오너먼트를 꺼냈다. 그것은 수년 전 남편과 함께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내가 남편의 집에 장식해준 오래된 트리였다. 퇴근하면 외투를 벗기 전에 트리에 점등부터 하는(나는 자꾸 까먹었다) 남편의 모습은 어딘가 뭉클한 구석이 있었다. 그 모습에 끌린 나는 오랜만에 인간관계의 고질적 게으름을 떨치고 크리스마스를 위한 작전에 돌입했고, 취미로 클래식 기타를 치는 남편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악기상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기타와 관련된 몇 가지 소품(남편이 예상치 못한!)과 짧게 쓴 카드를 준비했다(언제나 한 수 위인 남편은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직접 그린 카드와 긴 편지를 준비했다). 비록 크리스마스 레시피를 따른 로스트 치킨은 26일이 되어서야 식탁에 올랐지만 어쨌든 일련의 이 호들갑은 나에게 중요한 감정의 맥을 찾아주었다. 그건 오래된 약속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연애 시절 한창 힘든 시기를 겪던 지금의 남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네 인생의 증인이 되어줄게.” 정말이지 나는 켜켜이 쌓인 상실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의 고군분투와 진심에 대한 증인이 되고 싶었다. 끝간 데 없는 치열함이 기적처럼 사라지고 눈물겨운 평범함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키득거리며 결혼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증인이 되겠다던 약속은 결혼과 함께 희미해졌다. 온전한 결혼 생활을 위해 좋아하던 일과 주말 부부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남편이 있는 지방 도시로 온 나는 배우자의 보증 없이는 백화점 카드도 만들 수 없는 주부가 되었고, 지방 도시의 ‘사모님 라이프’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황폐하고 소모적이었다(적어도 나에게는). 이쯤 되니 나는 관계에 대한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위급 상황에 빠진 것으로 간주되는 내 인생을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호들갑스러운 크리스마스 준비가 나를 이 위협적인 편향으로부터 구제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나는 오랜만에 사랑하는 남편의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결혼의 성격 형성기라 할 수 있는 신혼기에 기념일의 묘미를 알게 된 건 다행이다. 사랑과 생활 사이의 흥미로운 줄타기가 연속되는 결혼 생활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맥을 놓치지 않으려면 기념일과 이벤트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현명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결혼 생활에서 기념일은 그 여자와 그 남자만의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사랑을 상기시킨다. 기념일 챙기기의 긍정성을 깨달은 나는 요즘 결혼 후 처음 맞는 밸런타인데이를 위한 계획을 구상 중이다. 성공한다면 남편과 나는 우리 머리 위로 사랑이 또 한 겹 쌓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참, 우리의 기념비적인 날 중 다른 하나는 사랑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경험한 어느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