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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를 배우는 주부들]부산어머니가야금연주단 둥기당기 둥당기. 가야금 12현에 담은 여자의 빛나는 인생
나이 들수록 인생은 각운에 힘을 줘 읽어야 하는 것 같다. 가야금의 열두 가락에 빠져 연주 모임까지 만든 이 용감한 아홉 주부는 행복한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그 속에 시가 있고 그림이 있는 우리 가락에 빠져 그들이 찾은 건, 바로 자신감이다. 스스로를 가장 예쁜 여인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왼쪽부터 최운하, 주미영, 이행연, 박현숙, 문은애 씨.
총 아홉 명으로 구성된 부산어머니가야금연주단을 대표해 서울로 올라와주었다.


‘징~’ 가야금 소리 하나가 툭 꺾이듯이 내려와 ‘당~’ 하는 음과 만나서, 빨려들 듯이 오르내리는 짜르르한 음은 애간장을 녹이는구나.
이 맑고 담담하고 힘 있게 울려 나는 가락은 ‘부산가야금어머니연주단’의 것이다. 우리 전통 음악, 그 매듭으로 묶인 아홉 명의 주부 문은애・최운하・이행연・박현숙・주미영・이나경・박혜련・김귀려・염수경 씨가 이 아름다운 가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전문 연주자도 전공자도 아니고, 나이도 사는 형편도 제각각이지만 가야금에 대한 애정 하나로 뭉친 아마추어 연주 모임이다. 이 모임의 시작은 학원 동료, 옆집 아줌마, 딸 친구의 어머니, 같은 문화센터 수강생과 같이 실타래처럼 얽힌 인연이었다. 모두 구청의 문화센터 등에서 가야금 연주를 몇 년째 배워왔지만 가야금을 연주할 무대도, 배움의 폭을 넓힐 곳도 없어 목말라하던 주부들이었다. 2007년 9월, 뜻 맞는 여덟 명이 모여 ‘부산어머니가야금연주단’이라는 장한 이름을 걸고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11월 창단 기념 연주회도 열었고, 2008년 11월엔 두 번째 정기 연주회도 치렀다. 중간 중간 단원들이 들고 나긴 했지만 가야금의 열두 가락에 마음을 뺏긴 주부들이 그 이름을 탄탄히 지켜오고 있다.
“살아온 세월에 비해 속은 더 좁쌀만 해지고 작은 일에도 상처받는 내 마음을 바꾸고 싶었어요. 시작은 다니던 문화회관의 가야금 반이 인원 미달로 폐강 위기에 처해서 지원병으로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가야금을 뜯는 순간, 이 열두 줄 명주실과 친구 삼아 보자, 하는 생각이 들데요.” 부산어머니가야금연주단의 회장 문은애 씨가 펼쳐 보인 고백이다. 이 이야기는 세상살이의 헛헛함을 알아버린 평범한 주부의 고백에 다름 아니다. 어떤 주부도 이 고백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박현숙’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이것저것 시도했는데 뭘 해도 내게 집중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가야금은 깊이 다가왔어요. 가야금은 기도와도 같아요. 참선할 때처럼 내게만 집중하게 되죠. 가족, 아이, 남편이 아닌 ‘박현숙’에게만.” 10년 넘게 가야금을 탄 박현숙 씨의 또 다른 고백이다. 여자의 인생에서 갱년기라는 ‘빙점’과 인생 2막이라는 ‘발화점’이 만났을 때, 이들은 가야금 열두 가락에 그 한을 태워 보냈다.
가야금은 10년은 타야 입문했다고 하고, 20년이 되면 욕을 안 먹는다 하고, 30년쯤 지나면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어려운 악기다. 자식들 건사도 해야 하고 투정이 많아진 중년 남편 뒤치다꺼리도 해야 하는 평범한 주부가 이 악기를 제대로 타려면 대단한 공력이 필요하다. 거기엔 그들만의 비법이 있다. ‘아줌마의 배짱으로, 아줌마의 뚝심으로, 아줌마의 당당함으로!’ 그렇게 그들은 아줌마의 근성으로 음을 하나하나 배워 소리를 타는 희열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국악인 강봉천 단장과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 단원인 박정미・신은주 선생에게서 수업을 받고 있다. 개량 가야금인 25현 가야금과 전통 가야금인 12현 가야금 수업을 받는데, 아줌마 특유의 느슨함 때문에 선생님을 애태우게 하기도 한다. 또 장단 따로 가야금 따로 노래 따로 놀아 단장이 찬물 마셔가며 노한 표정을 감추기도 한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28시간을 가야금 연습에 바치는 아내를 보고 가야금을 다 없애야 한다며 큰 소리 치는 남편도 있고, 밤 시간에 수업하러 간다며 집을 나서는 엄마를 걱정하는 딸내미도 있다. 연습 장소가 마땅치 않아 바둑교실을 운영하는 회원의 강습소를 무단 점거하기도 하고, 다달이 회비 모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이 모든 것을 이기고 남을 만큼의 보상이 있다.
“가락을 공부하면서, 늘 새로운 곡에 도전하면서, 나날이 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간직하게 됐어요. 겉모습은 볼품없을지 모르지만 난 늘 부자고, 예쁜 여인이에요.” 문은애 회장의 말처럼 마음의 부자가 된 주부는 집안에 풍요한 마음을 베풀 줄 알게 됐고, 가족의 자랑이 됐다. 또 다른 보상도 있다. “가야금을 켜면 치매가 예방돼요. 10~15분짜리 곡을 외워야 하잖아요” “수지침 맞듯 손가락 끝을 자극해서 그런가, 아토피가 없어졌어요.” “노후 대책에도 좋을걸? 하하.”
마지막으로 이들이 가야금 연주곡 ‘춘설’을 들려준다. 주름살, 산다는 건 제 몸속에 길을 내는 것임을 알게 하는 그 주름살 가득한 손으로 가야금을 타는 그들의 뺨이 붉다. 예쁜 여인들이다.

(오른쪽) 살림하는 손, 후덕한 어머니의 손으로 열두 줄 명주실과 친구가 된 그들이 아름답다.

*부산어머니가야금연주단에서는 현재 2기 신입 단원을 모집하고 있다. 12현 가야금(병창 포함)과 25현 가야금을 중심으로 회원들이 함께 연습하고 수업을 듣는다. 문의 051-468-4833, www.psgayagum.com. 서울에서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면 ‘국악원 문화학교’를 추천한다. 2009년 3월 2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강좌를 진행하며 해금, 가야금, 무용, 장구, 사물놀이, 판소리 등의 강좌가 마련되어 있다. 수강료는 42만 원. 문의 02-580-3141, ktpaf.it6.co.kr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