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서는 동양학자 조용헌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집이 품고 있는 각양각색의 기운을 풀어보는 백가기행을 연재합니다.
집이란 무엇인가?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말이 그렇지 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자연 自然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긴장이 이완된다. 따라서 집 안에 자연을 들여놓는 일이 관건이다. 그것이 정원 庭園이다. 나무와 숲이 있는 정원. 이 정원에 대한 희구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 강해진다.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내구원 家內救援을 받고 싶다. 집을 떠난 가출 家出 상태의 구원이 아니라, 집 안에서 구원을 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나는 나무와 숲이 우거진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원의 계보를 추적하면 전남 담양의 소쇄원 瀟灑園이 조선시대의 정원을 대표한다. 손을 댔으면서도 손을 안 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정원이 소쇄원이다. 인공으로 연못을 파고 멀리서 커다란 괴석 怪石을 끌어와 평지에 정원을 조성한 중국이나, 정교하게 나무와 바위를 다듬고 인공으로 물줄기를 끌어온 일본의 정원과는 다르다. 소쇄원의 특징은 한마디로 자연미다. 이 자연미의 계보를 이은 정원이 바로 나주 금천면에 있는 죽설헌이다. 조선시대에 소쇄원이 있었다면 지금은 죽설헌이있다. 죽설헌은 과거의 정원이 아니다. 동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같이 밥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정담을 나누는 집이자 정원이다.
1 죽설헌을 손수 가꾼 박태후 씨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전화라도 걸어 지금 방문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예의를 지켜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안내판을 세워두었다.
2 오후 산책을 마치고 정원에서 담소를 즐기는 박태후·김춘란 씨 부부
3, 4, 7, 8 죽설헌의 살림채 내부 풍경. 시원스럽게 낸 창을 통해 정원의 다양한 풍광이 실내로 전해진다. 살림채의 마루는 폐교에서 거둔 것을 다시 손질해 사용한 것이다.
나주 금천면은 배나무 과수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구릉지대이다. 과수원 길을 따라서 1km 정도 꼬불꼬불한 언덕을 돌다 보면 저수지가 나오고, 그 저수지 옆에 숲이 우거진 자그마한 동산이 보이는데 바로 죽설헌이다. 대지 1만 3000㎡에 약 1백50종의 나무, 과실수, 화초가 대나무 숲을 끼고 우거져 있다. 비자, 산벚, 왕버들, 동백, 단풍, 호두, 감, 복숭아, 배나무, 노랑꽃창포, 매화, 국화, 탱자나무, 꽝꽝나무, 금목서, 은목서 등이 우거져 있다.
죽설헌의 길은 태극 太極 모양이다. 전체적으로는 둥그런 원을 형성하면서 그 내부를 가로질러 가는 길은 S자 형태를 취하고 있으니 태극 모양이라고 보아야 한다. 죽설헌 입구는 40년 자란 탱자나무 울타리와 꽝꽝나무 울타리 사이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방문객은 이 길을 통과하면서 속세의 먼지를 털어낸다. 여기선그 어떤 서늘함과 유현 幽玄한 기운이 품어 나온다. 이 유현함을 경험해야 긴장이 풀린다.
5 40년 자란 탱자나무와 꽝꽝나무가 울타리를 만든 죽설헌 초입길.
6 죽설헌의 늦가을 표정.
유현함의 그늘을 제공하는 좌탱자 우꽝꽝을 통과해 좌측으로 꺾으면 살림채인 단층 벽돌집이 나온다. 서민이 대출받아 지은 단출한 집이다. 거실에 들어서면 마룻바닥이 질박하다. 폐교된 교실의 마룻바닥을 가져다가 사포로 다듬은 것이다. 마루 끝에는 검은색 벽난로가 실내 공기를 훈훈하게 데워주고 있다. 거실 옆방은 한쪽 벽면이 온통 투명한 유리다. 유리 밖으로는 시퍼런 몸통을 지닌 왕대가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이 달력 그림처럼 보인다.
선비는 대나무를 보아야만 속기 俗氣를 턴다고 했던가! 대나무는 사철 잎사귀가 푸르고,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댓잎에서 흔들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기도 하다. 그리고 대숲에 들어가면 서늘한 느낌이 있다. 이 서늘한 느낌이 삶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인 과열을 내려주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죽림칠현 竹林七賢의 고사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집은 나주와 광주 일대의 강호제현들이 수시로 모여서 시서화 詩書畵를 논하고, 문사철 文史哲을 이야기하며 노는 아카데미이자 살롱이기도 하다.
이렇게 서로 모여 놀아야만 중년에 직면하는 늙음과 병과 죽음의 근심을 다소나마 털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생과 걱정만 하다 죽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숲의 반대쪽으로는 노란 창포 밭이 널려 있다. 약 1650㎡가량 되는 노란 창포 밭은 5월이 한창이다. 5월의 밤에 이 창포 밭 앞에 서 있으면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반쯤은 알게 된다. 달밤에 비치는 달빛과 노란 창포의 궁합은 가히 환상적이다.
1 40대 초반에 20년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죽설헌을 만들어 자연 속으로 들어온 박태후 씨는 문인화 화가이기도 하다.
2 박태후·김춘란 씨 부부.
3 죽설헌을 거닐다 보면 드문드문 우리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옹기 같은 소품과 마주치게 된다.
이처럼 멋진 정원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주인은 박태후(54세)?김춘란(54세) 부부이다. 남편 박태후 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수업료가 공짜인 원예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교 재학 시절인 70년대 초반부터 자갈 섞인 황토 밭이었던 이곳에 나무를 심고 화초를 가꾸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했고, 결혼하여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좋은 나무를 구하러 전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살구, 복숭아, 포도, 배, 호두, 사과, 보리수, 감나무와 같은 유실수를 많이 심었다. 그래서 이 집에는 과일이 철마다 지천이다. 그 세월이 40년이 되어간다. 가난했던 서민 부부가 근검절약하여 가꾸어 놓은 정원이자, 과수원이자, 생활 공간이다. 삼위일체이다. 서민의 체취가 배어 있는 정원이라는 이야기다.
“죽설헌의 특징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이 만든 토종정원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원은 대부분 네모반듯한 일본식이나 서구식이다. 죽설헌은 네모반듯하지 않다. 가위로 전지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버려 둔 느낌도 약간 있다. 그래서 인공미나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작은 숲 속에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도록 가꾸었다. 과일나무가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유실수는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미학 美學과 실학 實學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대략 보름 간격으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유실수를 심었다. 5월 초에는 딸기와 양앵두가 나오기 시작한다. 5월 중순에는 보리수, 6월 초순에는 매실, 버찌가 나온다. 6월 말에는 무엇이 익는가. 자두, 살구, 복숭아다. 7월 초에는 포도, 8월 말에는 무화과, 9월 초에는 배, 10월에는 밤과 홍시가 나온다. 겨울에는 벽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고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이처럼 넓은 집은 관리하기에 힘들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정도의 분량만 과일나무를 심었다. 친지들에게 과일을 선물하면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홀수 날에는 아침에 운동을 하고, 짝수 날에는 아침에 한두 시간씩만 일을 한다. 너무 많이 하면 노동에 치인다. 나머지 시간은 그림도 그리고 지인들과 음식도 해서 같이 먹고 논다. 즐기는 차원에서만 노동한다.”
4 커다란 창 앞으로 책상을 배치해 작업을 하면서도 정원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5 죽설헌 산책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기왓장이 장관을 이룬다. 기왓장을 모아 산책로 울타리를 세우는 작업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죽설헌 가족의 한 달 공식 생활비는 공무원 연금으로 나오는 1백30만 원이 전부다. 공무원으로 20년을 근무하면 연금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이 연금이 나오기 시작하는 20년을 채우고 그다음 해에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연금이 나오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섰다. 그때가 1996년.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출퇴근 생활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자기 삶을 온전히 즐겨보고 싶은 오래된 갈망이 이런 무모한 결단을 내리게 했다. 물론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지만,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 전에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한번 해보고 싶은 염원을 어떻게 꺾을 수 있겠는가!
시골 생활은 4인 가족이 1백만 원이면 생활비로 충분하다. 어지간한 먹을거리는 자급자족으로 해결한다. 전기 요금, 전화 요금, 각종 공과금만 들어간다. 체면 유지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집에서 재배한 배, 감, 호두 등을 선물할 때마다 마음이 즐겁다. 문제는 딸 둘의 학교 문제였다. 딸 둘 모두 3km 떨어져 있는 초?중학교를 걸어 다녔다. 걸어 다니면서 주변의 시골 풍광을 보는 일도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공부였다고 한다. 대학은 광주까지 버스로 40분 거리다. 딸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본인들 용돈을 충당했다. 도시와 시골은 돈에 대한 환율이 다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걱정을 하고 사는 것이다. 죽설헌의 아늑한 풍광과 소박한 삶을 목격한 방문객들의 소감은 이렇다. “나는 그동안 뭐 하고 살았단 말인가!”
청운靑雲 조용헌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청운 조용헌 선생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실전에 강한 강호동양학으로 유명한 그는 수식어를 찾아보기 힘든 직설법으로 얘기한다. 현재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의 편백나무 숲 속에 있는 휴휴산방休休山房에 머물면서 동아시아의 도가道家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저서로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등이 있다.
- [조용헌의 백가기행] 전남 나주 죽설헌 보통 사람의 토종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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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금천면에 자리한 죽설헌竹雪軒은 자연미 넘치는 토종 정원이다.20년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길러온 나무들과 함께 손수 흙을 갈고 묘목을 심어 가꾸어온 평범한 사람의 정원이 바로 죽설헌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