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비올라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비올라는 제 삶이고, 제 인생의 전부예요. 또 저의 언어이기도 해요.” 비록 그리운 가족, 친구와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 살지만 지금처럼 연주하며 살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연주자들은 나그네다. 작품을 비행기에 실어 보내면 되는 화가와 달리 음악가는 ‘콘서트 한 편’이란 작품을 짓기 위해 매번 몸이 이동해야 한다. 공연 일정이 촘촘한 한창 때의 연주가라면 머물 때보다 떠나는 날이 더 많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Richard Yongjae O’neill 씨가 뉴욕의 집에서 지내는 기간은 일 년에 고작 한두 달. “우스갯소리로 ‘나는 홈리스’라고 말하곤 해요.” 올 한 해에는 연주회와 음반 녹음 등으로 5개월은 친정 같은 한국에서, 6주 정도는 시애틀에서, 3개월은 UCLA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로스앤젤레스 기숙사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유럽에서 지냈다. 1년에 6~7개월쯤은 호텔에서 지내는 셈이다. 클래식 아티스트의 큰 영예라 할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의 아티스트로 발탁(1990년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에 이어 한국계 연주자로는 두 번째다)될 만큼 세계적으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 젊은 예술가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방랑 생활’이다.
아티스트는 집 없이 산다
“나그네 생활에 이제는 익숙해진 것 같아요. 가끔 잠 못 이룰 때마다 뉴욕 아파트에 있는 아주 좋은 침대가 그립긴 하지만요. 어디에 머물든 대략 일주일 만에 적응하게 돼요.” 그는 외로움이 심해지는 밤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곤 했다.(<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감>
(중앙북스) 중에서) 바흐가 그의 후원자이자 불면증으로 고통받던 어느 백작에게 지어주었다던, 밤을 위로하는 음악이다.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으니 젊은 독신남의 뉴욕 아파트는 그의 말마따나 ‘거진 텅텅 빈’ 집이다. 황량할 망정 내 집이 최고일 텐데 그는 집이나 호텔이나 다를 바 없다 한다. 서울에 있을 때도 맨해튼에 있을 때처럼 아침 일곱 시쯤 일어나서 운동으로 하루를 여는 일과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집인 호텔에서 스스로를 편안케 하기 위한 물건이나 장치가 있을 것이다. “호텔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방에 놓인 불필요한 물건을 모두 치워요. 호텔 홍보용 브로슈어나 메모지 같은 소품까지요. 최대한 깨끗하고 넓은 공간을 확보하려 해요. 일상의 환경이 감성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11월 5일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연주회 때문에 내한해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묵고 있던 그의 방을 본의 아니게 급습하게 되었는데 역시 단정했다. 벨트, 시계, 넥타이핀, 커프스 버튼 등을 각각의 케이스에 가지런히 담아뒀고 노트북 컴퓨터 외에는 방에 펼쳐둔 소지품이 없다. 자극적이거나 산만한 영상이 머리를 헤적거려서 TV도 잘 안 본다.
“특별히 집착하며 지니는 소지품은 없지만 한 가지 신경 쓰는 건 있어요. 가방이에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여행 가방만큼은 과감하게 투자해요. 우리 집에 있는 침대보다도 자주 보는 게 가방이잖아요. 최근에 큰맘 먹고 정말 맘에 드는 가방을 샀어요. 앞으로 제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갈 가방이죠.”
1 용재 오닐 씨가 해외 연주회를 다닐 때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가방이다. 그 어떤 것보다 오랜 시간 함께하는 물건인 만큼 마음에 쏙 드는 제품에 투자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티스트는 제 몸을 확실히 챙긴다
음반 북릿이나 잡지 화보에서 본 용재 오닐은 ‘옷발’이 잘 받는 늘씬한 청년이다. 실제로 그는 좀 가녀리다 싶을 정도로 몸매가 타이트하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밖에 나가면 눈 만난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달리는 조깅 마니아인 터에 몸이 군살 없이 단단하다. “일주일에 네 번은 조깅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아침 헬스클럽에서 가볍게 운동해요. 운동이 끝나면 사우나 가는 걸 좋아하고, 욕조에 따뜻한 물 받아 몸을 담그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해요. 어깨가 풀리면서 편안해져서 기분이 참 좋죠.”
운동 말고는 ‘뭐든 잘 먹는 것’이 건강 관리 비법이다. “특히 웨스틴 조선 호텔의 레스토랑 ‘베키아 에 누보’는 나의 구세주예요. 일반적인 버거는 기름지고 부담스러운데 이곳의 버거는 신선하고 담백해요. 비트 샐러드, 양배추, 콩 샐러드, 클럽 샌드위치는 제 단골 메뉴고요.” 한국 음식도 좋아하는, 이 무던한 입맛 뒤에는 미국 워싱턴 주의 외진 시골 마을 세큄에서 그와 그의 한국인 어머니를 위해 김치를 담가 먹였다는 푸른 눈의 외할머니가 있다. 덕분에 그는 지구 상에 있는 음식은 모두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해외 공연 때도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다.
2 용재 오닐 씨가 쓰고 있는 비올라는 1699년 이탈리아 장인 조반니 토노니가 제작한 악기. 몇 년 전 선물받은 에르메스 스카프로 악기를 싸가지고 다닌다.
아티스트는 예술을 탐미하며 논다
2006년에 낸 2집 음반 <눈물>, 작년에 발매한 3집 음반 <슈베르트-겨울 여행>에 담긴 그의 연주는 유난히 겨울에 그리워지는 음악이다. ‘처절한 슬픔’이나 ‘마냥 화사한 기쁨’이 드러나기보다는, 기억의 뒤통수를 무심히 건드리는 연주. 그래서 그의 비올라 연주를 들으면 잔잔하게 아릿하고 은근히 두근두근하다. 듣는 이에게 좀 더 폭넓은 감상의 기회를 주는 상상력 풍부한 연주의 밑거름은 용재 오닐이 ‘노는 시간’에서 나온다.
호텔에서 쉴 때는 노트북으로 영화 DVD를 많이 본다는 그. 진지한 영화 마니아인 그가 좋아하는 영화를 한 편만 꼽기란 불가능하다. “무척 다양해요. 우선 우디 앨런의 열렬한 팬이에요. 특히 <한나와 그 자매들> <범죄와 비행> <맨하탄 살인 사건> 같은 그의 중반기 때 영화는 심오하고도 아주 재미있는 완벽한 작품들이죠. 페델리코 펠리니 감독의 초기 작품들도 좋아하고, <카사블랑카> 같은 고전도, 누아르 필름도 사랑해요. 의외로 <제임스 본드> 같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도 즐겨 봐요. 마치 사탕 같죠. 박찬욱 감독의 영화도 아주 좋아하고요.”
미술 작품 역시 용재 오닐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 영국의 테이트 뮤지엄을 제일 좋아하고, 뉴욕에 있는 미술관은 안 가본 곳이 없으며, 현대 아티스트 중에서는 비디오 아티스트인 빌 비올라의 팬이다. 한국에 올 때면 삼청동 갤러리 골목을 누비며 전시 감상하기를 좋아한다.
3 한 인터뷰에서 ‘훌륭한 비올라 연주자가 되기 위한 요건은 긴 팔과 큰 손’이라 했는데, 정말 그는 긴 팔과 크다기보다는 기다란 손을 갖고 있었다.
아티스트는 호텔에서도 연습 벌레다
“왜 클래식 음악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러던 차에 드라마 <대장금>을 보다가 해답을 얻었어요. 장금이 어렸을 때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물으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하온 건데…’라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는 장면이었죠. 그 순간 큰 소리로 웃었어요. 저에게 클래식 음악이란 입에서 저절로 느껴지는 홍시 맛과 같은 것이에요.”
비올라를 향한 순정은 객지 생활도 잊게 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그를 지독한 연습 벌레로 만들었다. 청소년 무렵엔 레슨 받으러 가는 길에 여든의 외할머니가 모는 자동차에 앉아 장장 왕복 네 시간 동안 악보를 들여다보며 마음으로 연주했고, 이제는 호텔에서 밤낮없이 약음기(현악기에 붙여 소리를 약하게 하는 장치)를 달고 연습한다. 어쩌다 문틈으로 그의 연주를 들을 투숙객들이 부러울 뿐이다. “안주할 곳 없이 바쁘게 연주회를 열고 음반을 녹음하는 지금이 아주 행복합니다. 이제 서른 살이 되는데요, 언젠가는 재즈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에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그에게는 비올라 음색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목소리’ 같다. 비올라를 켤 때면 어머니 음성이 떠오를진대 손에서 비올라를 놓기란 영영 불가능할 것 같다. “주위 환경에 따라 활의 움직임이 변합니다. 분명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비올라가 어제는 웃음을 터뜨리고, 오늘은 미소를 보냅니다. 나를 바라보는 연인 같지 않나요?” 비올라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용재 오닐에게 비올라는 세상 어딜 가도 함께하는 연인이자 바로 그 자신이다.
4 생각이 복잡할 때일수록 그는 달린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4집 솔로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