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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둥이 가족] 김성의 씨의 사남매 교육법 생각이 자라도록 뒤에서 지켜본다
서울에서 아이 넷인 집이 드물어진 시대. 김성희 씨는 사남매를 둔 서울, 그리고 강남의 엄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네 아이를 키우면서도 성적 운운하지 않고 그저 따뜻하게 뒤에서 지 켜봐 주는 엄마.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형제 관계 속에서 스스로 철들며 성장한다.
첫째 딸 영우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학기 초 반에서 가족 구성원 조사가 있었다. “자녀가 한 명인 집?” “두 명인 집?” “세 명인 집?” 그리고 선생님은 조사를 끝내려 했다. “선생님, 저희 집은 네 명인데요.” 이후로 영우는 학교에서 사남매 집 아이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서울에서 아이 넷인 집이 이제는 그리 흔하지 않다. 김성희 씨는 대학생인 큰딸 영우(20세), 고등학생인 효석(18세), 초등학생인 선우(13세)와 현석(9세) 4형제를 두고 있다. 특별히 다산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니며, 아이들도 동생을 원했고 자연스럽게 하나씩 생긴 것이 어느새 넷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여느 다둥이 집처럼 부부가 모두 아이를 좋아했다. 김성희 씨는 어릴 때 집에 이웃 아이들이 놀러 와 있는 풍경이 익숙했다.

동네 어른들이 외출할 때면 김성희 씨 집에 아이를 맡길 정도였다. 김성희 씨는 남편과 대학 선후배 사이.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에 골인했는데, 보통 2년이 걸리는 MBA 과정을 1년 반 만에 마친 김시범씨가 갑자기 김성희 씨 집 초인종을 누르고 나타나는 것으로 프러포즈가 이루어졌다.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결혼을 했다는 김성희 씨는 그 후로 종종 남편에게 ‘선 자리에 나가 오렌지 주스 한 번 못 마셔보았다’며 넋두리를 한다.

그렇게 김성희 씨는 나이 스물다섯에 결혼하여 다음 해에 첫째가 생겼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막내를 낳은 것이 서른일곱. “형제들 사이에 터울이 있으니까 셋째부터는 손이 거의 안 갔어요. 막내가 제일 편했죠. 언니, 오빠들이 동생을 씻기고 재우고 많이 도와줬지요.” 넷이나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인데 아이들이 여러명이니 총액으로 보면 많이 들겠지만, 아이들끼리 책과 옷을 물려받아 사용하니 한 명당 비용은 적게 드는 셈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넷이나 되는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까? 그것도 교육열 높기로 이름 높은 서울 강남에서 말이다.

(왼쪽) 화목한 여섯 가족이 모이면 늘 왁자지껄하다. 막내 현석이는 몇 달 전까지 자기에게도 동생을 낳아달라고 졸랐다고.

성적표를 궁금해 않는 엄마 김성희 씨는 자녀 수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는 태도 또한 남다른 데가 있다. 영어 유치원이 필수 코스인 강남에서 아이들을 모두 보통 유치원에 보냈다. 대신 어릴 때부터 항상 책을 가까이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공부는 아이들 각자의 몫으로 맡겼다. 네 아이들을 자유롭게 방목하는 셈. “아이들이 스스로 원할 때 공부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학원 수업이 필요하다면 다니도록 해주지만, 전혀 간섭하지 않아요. 제가 어릴 때 영국, 일본에서 조금씩 살았었어요.

그래서인지 한국식 교육법이 잘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지식을 아는 것도, 모든 길을 부모가 결정하고 만들어주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균형 잡힌 인성을 갖는 것, 스스로가 선택하고 책임질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듣기 좋도록 하는 그저 ‘말’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김성희 씨는 아이의 성적표를 보지 않는다.

첫째 영우와 둘째 효석이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성적표에 부모님 도장 받아 오라는 으름장에 두려울 일이 전혀 없었다. 김성희 씨와 남편은 영우가 대학 진학할 때가 되어서야 한 번 성적을 보았을 뿐이다. 도무지 성적표를 궁금해하지 않으니, 어떤 때는 오히려 아이들이 나서서 성적표를 보여줄 지경. 1등 했다고 자랑하면 돌아오는 보상은 밥 맛있게 먹으라는 칭찬과 고기 반찬 정도다. 하지만 엄마의 믿음만으로도 아이들은 제 몫을 잘 해내고 있다. 덕분에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한 공부가 아닌 스스로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우는 한양외고를 나와 연세대학교에 진학했고, 효석이도 누나의 뒤를 따라 한양외고에 재학 중이다.

(오른쪽) 김성희 씨가 아래층의 아이들을 소집할 때 흔드는 종.

그러나 무엇보다 김성희 씨가 뿌듯하게 여기는 것은, 아이들이 건강하고 반듯한 심성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 “신기하게도 네 아이 모두 학교에서의 평가가 사회성이 좋고 도덕적 관념과 가치관이 바르다는 거예요. 저의 어떤 노력보다는 넷이나 되는 형제 관계가 저절로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형제가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의 입장도 존중해야 하고, 때로 양보하고 손해도 봐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죠. 엄마가 개입하기 전에 아이들 스스로의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요.” 외롭고 이기적인 도시 아이의 초상이 이 집에는 없다. 자신을 닮은 형제들과 떠들썩하게 살 비비고 살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 즐거움을 배운다. 각자는 서로의 다른 일부분이라는 것도.

(왼쪽) 음악에 대한 취미도 자연스레 같아져 첫째는 피아노, 셋째는 플루트, 넷째는 바이올린을 배웠다.
(오른쪽) 동생들은 함께 어울리면서 언니, 오빠의 습관이나 취미를 닮는다.


생각을 키우는 키워드는 대화 적극적이고 씩씩한 첫째 영우, 엉뚱한 질문 던지기가 취미인 둘째 효석, 차분한 셋째 선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어린 현자 같은 넷째 현석. 때로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것이 형제이기도 하건만, 각기 개성이 다른 이 집 사남매는 다툰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애가 좋은 편이다. 성장한 아이들이 제각각 자신의 방을 쓸 수 있도록 방이 여섯 개인 복층 빌라로 이사를 왔지만, 정작 아이들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해 곧 고3이 되는 둘째 효석이만 혼자 방을 쓰고, 영우와 선우는 같은 방을 쓴다. 남는 방 하나는 아이들 공통의 공부방이 되었다. 집을 찾은 손님에게 서로 사춘기가 언제였다느니 증언하며 가족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구김살 없이 쾌활하다.

형제가 많아서 좋은 점을 묻자 “식구가 여섯이면 보드 게임하기 딱 좋아요.” 영우의 대답에 이어, “외동인 친구들 보면 되게 외로울 것 같아요. 나중에 형제가 아니면 누가 내 빚보증을 서주겠어요?” 열여덟 효석이의 현실적인 걱정에 다들 큰 웃음이 터진다. 넷 중 누구 하나만 수련회를 떠나고 없어도 엄마는 허전하다. 늘 함께
어울리고 대화하는 일이 많아서 아기 때부터도 다들 말이 빨랐고, 큰 아이들이 쓰는 어휘를 불쑥불쑥 내뱉기도 했다. 형제도 많고 부모와도 수평적인 관계로 지내는 덕에 토론은 일상적인 일이다. 특히 밥상 앞에서도 토론을 주도하는 것은 아빠다. “아빠는 저희가 어떤 문제에 대해 물으면 대답을 해주시는 게 아니라 항상 그 반대 입장에서 의문을 제기하세요. 워낙 기발한 질문들을 하고 논리 정연해서 아빠를 이기기가 쉽지 않죠. 얼마 전에는 갑자기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엄마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으셨다니까요.” 캐릭터 관련 사업을 하면서 한양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아빠는 늘 젊은 감각을 지녀 아이들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 아버지와 토론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둘째 효석이의 꿈은 어느새 변호사가 되었다.

크고 작은 집안일을 결정할 때도 김성희 씨는 부모의 생각만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아이들의 의견을 꼭 반영한다. 막내 현석이가 태어났을 때도 가족회의를 통해 기존 차를 9인승 차로 바꾸기도 했다. 1층과 2층 사이 계단참에 놓인 종은 엄마가 아이들을 소집할 때 울리는 종이다. 아이들 중 누군가 힘들어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다른 형제들을 불러놓고 함께 도움 줄 방법을 찾는다. 매년 연초에는 온 가족이 모여 새해 목표를 세우고 서로를 독려한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지만 그 애정을 이유로 강요하지 않는 것,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 믿어주는 것, 존중해주는 것, 지켜보는 것. 첫째, 둘째, 셋째, 넷째를 키우면서 지금껏 깨달은 엄마 김성희 씨의 지혜다.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