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프랑스 아피나크Apinac에서 태어나 15세에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사인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자기 요리에 대한 열망이 싹트면서 생테티엔Saint Etienne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얻었지만 지나치게 진보적이었던 까닭에 결국 1996년 문을 닫았다. 1년 후 파리로 옮겨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을 열고 미슐랭 3 스타를 얻었다. 2001년부터 분자미식학 교수인 에베 디스와 공동 작업으로 분자조리법을 창안해 전 세계 미식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파리, 런던, 도쿄, 홍콩, 두바이 등 세계 유명 도시에 8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으로는 서울이 네 번째다. 그는 최근 미식 트렌드를 주도하는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의 대가로 불린다. 분자요리는 식재료의 질감과 조직을 과학적으로 분석,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맛으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 시작 전, 정작 그는 그 별칭을 싫어한다는 호텔 관계자의 말을 전해 들었다. 분자조리학은 새로운 맛을 끌어내는 수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지 자신의 요리를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여긴다는 것. ‘분자요리’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네 번째 도시로 서울을 택한 이유는? 내가 서울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서울이 나를 택했다. 롯데 호텔 측과 만나는 과정에서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런 따뜻한 인간관계에 이끌렸다. 사실 ‘서울’은 아직까지는 나를 포함한 많은 세계인에게 약간은 접근하기 어려운 도시, 보호주의적인 면이 강한 도시라고 생각했었다. 서울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한데 롯데 호텔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롯데 호텔뿐 아니라 서울과 한국 전체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셰프로서 한국 식재료나 전통 양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리사인 내게 한국의 식재료는 무척 매력적이다. 요리사로서 새로운 식재료와 양념을 하나하나 발견해나가는 과정은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가는 과정과 같다. 처음 보는 식재료와 양념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새로운 맛에 대한 모험, 새로운 도약의 길을 제시하는 지표다. 더욱 높은 퀄리티를 추구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피에르 가니에르 파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았다. 대체 별 셋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답을 하기에 앞서 <미슐랭 가이드>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래서 다른 모든 인간 활동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거나 불공평하거나 실수가 생길 수 있으므로 때로는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되었고, 전문가들이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요소들로 평가하므로 퀄리티는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어느 도시나 국가에서 ‘가볼 만한 레스토랑’을 제안하는 좋은 거울 역할을 하는 가이드이다. 요리사나 요리 전문가에게 명예를 부여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별 셋의 의미는 ‘조화’와 ‘일관성’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의 맛은 기본이고, 서비스나 인테리어 등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늘 일관돼야 한다
산양 치즈 파르페와 요구르트 에뮬시옹, 오렌지 제스트와 파프리카를 입힌 치즈 볼, 얇게 썬 셀러리와 건과 토스트. 디저트 메뉴 전 단계에 서브됐다.
당신은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가 미슐랭 스타 셰프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고의 셰프로 선정되었다. 당신을 스타 셰프로 키운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나를 세계 최고의 셰프라고 칭송하지만, 스스로 ‘내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서 끝이다. 물론 남들이 나의 장점, 가치, 성공 케이스 등을 인정해주는 것이고 심지어는 나도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그 뒤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세계 최고라고 자만하지 않는다.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내 직업을 잘 수행하면서 더욱 재능을 살리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타인에 비해 내게 유리한 점이 있다면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데, 내게는 그것이 요리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원동력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그로 인해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혼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의 인생 원칙과 좌우명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요리에 관한 재능을 발견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16세 혹은 17세 때(요리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다) 친구들과 연말 파티를 했다. 내가 음식을 준비해야 했는데, 냉장고에는 두세 가지 재료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나는 요리를 했고, 운 좋게도 성공이었다. 친구들이 맛있고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음식을 통해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만족감이 좋은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음식의 힘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몸소 느꼈다. 음식을 만들어 배불리 먹고 놀다가 지치면 또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하면서 음식이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계로 치면 엔진 같은 역할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음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나? 오래전부터 요리사로 일했기 때문에 나만의 생활 원칙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배어 있다. 운동은 적당히,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은 와인을 즐기는 정도.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가 삶의 철학이기 때문에 평소에 많이 걷고 헬스클럽에서 거의 매일 운동한다. 파리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한다.
‘식탁 위의 피카소’라고 불린다.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나의 마음 상태에서 온다. 마음 상태를 가꾸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매일 작업하고 매일 생각한다. 나의 삶 자체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요리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를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는 거다. 또 나는 현재 건강하고, 환경도 편안하고, 어느 정도 명예를 얻었기 때문에 평화롭게 일할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얻기 위해 내적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도 덧붙여 얘기하고 싶다.
1 메뉴는 100% 피에르 가니에르가 관장한다. 일 년에 두 번 이상 방문, 영상회의 등으로 수시로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 최근의 중국 멜라민 사건은 있을 수 없는 비극이다. 왜 지구 어느 편에서는 음식이 남고, 또 어느 편에서는 굶어 죽는 사태가 일어나는지, 분배의 불공정성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대하는 요리사로서 최대한 귀하게 다루려고 한다. 물 한 잔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뀐다거나 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지구가 처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직업에 임한다.
‘진정한 좋은 음식’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내 철학에 따라 대답한다면, 모든 음식은 먹는 이에게 즐거움을 제공해야 한다. 즐거움이란 바로, 맛을 봤을 때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당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기억 속 엄마의 요리를 예로 들어 질문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맛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엄마의 힘이자 엄마의 요술이다. 내 경우에는 엄마가 요리를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쉽게도 엄마의 요리를 맛본 기억이 없다. 어렸을 때 할머니의 시골집에서 남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아침마다 할머니께서 비스코티에 버터와 초콜릿을 듬뿍 발라 침대로 갖다주셨다. 동생과 함께 침대에서 먹었던 그 맛이 가장 맛있었던 기억이다. 부스러기가 침대에 떨어져 할머니에게 혼나기도 했지만(웃음). 엄마가 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엄마가 만든 요리의 힘은 너무도 크다. 매일이 힘들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괜찮다. 아이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재료의 냄새를 맡게 하고, 재료를 사 와서 손질도 하고, 아이 앞에서 음식을 해주는 것이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경험이 된다.
2 금박을 입혀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메인 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올리비에 가뉴르가 설계했다.
가족 관계는? 집에서도 요리를 하나? 지금이 세 번째 결혼 생활이다. 나의 아들 두 명과 아내 실비의 아이 세 명까지 합쳐 자녀가 모두 다섯이다. 내 인생에 여자가 많아서 세 번 결혼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하다 보니 세 번째가 됐다.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지만 가족이 원하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요리를 한다. 요리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요리가 직업이므로 수입을 얻기 위해 요리를 하지만, 손님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요리를 한다.
당신에게도 어려운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극복하나? 인간관계로.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정직하지 못하든지 속이 좁다든지 하면 실망도 하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선하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관계를 넓혀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타인과의 만남이 쌓여 인생을 아름답게 해준다고 믿는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잘 누리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결국 개인적인 즐거움이 요리의 퀄리티를 높이고, 삶의 퀄리티를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3 프랑스 정원의 담쟁이 넝쿨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알베르 카뮈 별실.
식당을 벗어난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나 친구(‘친구’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붙이는 게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는 거란다)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운동하고, 책 읽고, 가끔씩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 취미는 별로 없는 편이다. 일에 대해 생각하고 구상하는 게 가장 즐겁다.
피에르 가니에르 아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이 될 것이다. 그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좋은 레스토랑의 경험 자체가 좋은 옷이나 구두를 구입했을 때의 만족도와 같다. 이곳을 찾는 고객은 투자에 상응하는 즐거움을 얻고자 할 것이고 한번 경험해보면 맛과 서비스, 인테리어, 아름다움 등에서 투자 가치를 느낄 것이다. 나는 오너로서 손님들에게 인생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다. 일생에 한 번 이곳에서 식사했다 해도 특별하고 기발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면 좋겠다. 나 역시 이런 레스토랑에서 매일 식사할 수는 없다. 가끔이지만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이나 뮤지컬, 콘서트를 보러 가는 느낌이랄까? 집에서 DVD로 보는 것이 아닌 현장 생중계 말이다. <미슐랭 가이드>의 콘셉트가 ‘그 도시에서 가볼 만한 레스토랑’이고, 별 셋은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그 도시를 여행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니 이와 일맥상통한다.
우리 잡지 이름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주 예쁘고 좋은 이름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무척 행복하다. 좋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 누구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음악까지 흐르지 않는가. 행복은 내일이나 미래에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재’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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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Gagnairea Seoul 롯데 호텔 서울에 ‘피에르 가니에르 아 서울’이 오픈했다. 2년 2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70억 원을 들여 완성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38석의 메인 홀과 모파상, 스탕달, 빅토르 위고, 알베르 카뮈 등 서로 다른 콘셉트로 디자인한 네 개의 별실로 구성된 이곳은 베르사유 궁전의 비밀 정원을 모티프로 미로처럼 디자인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올리비에 가뉴르가 설계를 맡았고, 모든 소품과 식기류는 피에르 가니에르가 직접 선택해 파리와 밀라노에서 공수했다. 유리 공예 장인이 만든 샹들리에는 개당 가격이 최고 5천만 원에 이른다. 지난 9월 25일 저녁, 기자 시식회를 통해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를 만났다. 식전 샴페인과 함께 다섯 종류의 앙증맞은 푀유테Feuillete(여러 겹의 껍질로 된 과자)로 시작되었다. 열두 가지의 코스 요리는 하나하나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독특한 재료들이 잘 어우러져 맛과 질감이 놀라우리만치 조화를 이루었다. 다섯 가지의 기상천외한 디저트를 만나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1백30여 종의 와인을 포함한 총 2백70여 종의 와인 컬렉션도 눈에 띈다. 긴 코스를 여유 있게 즐기려면 3시간 30분에서 4시간은 족히 필요하니 반드시 긴 수다를 함께할 수 있는 이와 동행할 것. 코스 메뉴 런치 12만 원/20만 원, 디너 22만 원/30만 원(세금 및 봉사료 별도). 단품 메뉴도 있다.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하며, 토요일 점심과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무. 문의 02-317-7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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