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뭉실한 메주덩어리 같은 그의 작품은 자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표현한 것. 오묘한 빛깔의 작품이 알루미늄 벽과 조명 속에서 태곳적 신비처럼 빛난다.
<행복> 독자라면 아마도 이헌정 씨를 그릇 만드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질감, 둥그스름하고 비대칭적이며 때로 반죽을 눌러놓은 듯 자유로운 생김의 그의 그릇은 ‘일치프리아니’를 비롯한 유명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식기로 애용된다. <행복>은 물론이고 여러 잡지의 요리 화보에도 종종 등장한다. 도예가 이헌정은 그릇뿐만 아니라 과감한 설치미술 작품부터 추상적인 도예 조각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활동을 보여주는 미술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도예를 전공한 후 미국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돌아와 도예, 조각, 설치미술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때때로 건축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우리 눈에 익은 것으로는 청계천의 명물이 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도자 벽화를 꼽을 수 있겠다.
투박한 자연미가 드러나는 그릇을 만드는 사람답게 그의 거처는 경기도 양평의 시골에 있다. 휴대전화 수신이 되다 말다 하는 꼬불꼬불한 흙 길을 따라 들어가면, 울창한 숲 사이로 마치 태권브이의 비밀기지 같은 그의 아지트가 나타난다. 맑은 가을 하늘과 빼곡한 나무를 배경으로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사각 박스 건물 세 개가 그 미니멀한 위용을 드러낸다. 그가 이곳 양평으로 들어온 것은 5년 전.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이곳에 왔고 나무만 무성했던 자리에 두 채의 건물을 지었다. 하나는 작업실과 갤러리를 겸한 건물, 또 하나는 가족과 기거할 집. 작업 스케일이 커지고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올해 세 번째 건물을 완공했다 . 세 채의 건물은 각각 집과 작업실과 갤러리로 재편성되었다. 하지만 새 건물을 완성하기가 무섭게 벌써 포화상태에 이르러 또 작업 공간이 부족하단다. 참으로 왕성한 생산력이다.
그를 찾은 날은 마침 10월 5일까지 서미앤투스 갤러리에 전시했던 작품들이 회수되어 들어온 직후. 갤러리 공간인 ‘캠프A’는 크고 작은 작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번 전시는 ‘가구’를 주제로 하여 콘크리트로 만든 테이블, 도자로 만든 스툴 등을 선보였다고 하는데, 과연 이 덩치 크고 돌덩이처럼 무겁고 때로 깨지기 쉬운 작품들을 산골짜기에서 어찌 옮기고 날랐을까 싶다.
자연이라는 창조자에게 나는 노동을 빌려준다 예민하다기보다는 우직해 보이는 첫인상의 그는 스스로 노동을 많이 하는 작가라 말한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12년 동안 19번의 개인전을 치렀을 정도로 부지런한 성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반복되는 노동을 통해 몸으로 체화하고 깨우치는 감각을 믿기에 더욱 그렇다. 도예 작품을 만들기 위해 흙을 주무르고 물레를 돌리고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순간을 그는 경건하게 생각한다. 이는 그의 작품관과도 관련이 있다.
1 주방과 침실이 복층 구조로 만들어진 그의 집. 정면으로 보이는 아일랜드 주방과 책장은 모두 그가 만든 것.
2 그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책상 풍경. 어지러운 책상에서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저는 직관을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도 이유를 따지기보다는 직관에 따라 선택을 해요. 그러면 당시에는 그냥 선택한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그 의미와 필연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도예 작품을 만들 때에도 저는 직관에 따라 형태를 만듭니다. 흙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대전제 하에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주무르고 모양을 내지요.” 그는 내재된 것이 드러나도록 노동을 제공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 정작 창작자는 따로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 자연이 이미 흙을 창조했고, 그는 흙이 가진 본질이 드러날 수 있게 노동하는 것뿐. 부드러운 흙 반죽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둥글둥글한 그릇, 휘어진 타원을 그리는 사발, 손가락이 눌린 자국 그대로 완성된 접시 등 그의 도예 작품을 찬찬히 보면 그가 전하려는 흙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직관은 그가 신성시하는 반복되는 노동을 통해 발달하는 것이리라.
도자기는 또한 불의 본성을 드러내는 일. 편리한 가스 가마가 대중화된 요즘에도 그는 여전히 장작 가마를 좋아하는데, 바로 인간에게 통제되지 않는 불이 만드는 효과 때문이다. 40시간씩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들으며 장작불을 지핀 후 작품을 꺼내는 순간, 그는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목격하는 일을 즐긴다. 불의 온도에 따라 전혀 새로운 색이 나올 때도 있고, 때로 깨지거나 갈라지는 일도 있다. 그는 이를 실패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불의 본질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인정한다. 흙과 불의 자연 현상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 이는 작가로서의 그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다.
3 형형색색의 신발이 그의 작품 아래에서 하나의 오브제를 완성한다.
4 그가 잠자는 침실 풍경.
5 집과 작업실 건물 곳곳에서 그의 작품과 마주친다.
예술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여행 “도예가 자연 앞에 나를 겸손하게 낮추는 작업이라면, 설치미술은 물질과 내가 소통하는 과정입니다. 도예 작업과 달리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연출에 의해 이루어지죠.” 지난 전시에서 선보인 콘크리트 가구들도 정확한 계산에 따라 틀을 짜고 맞추어 완성한 것이고, 그 외 다른 여러 설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강하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작품, 거대한 나무를 뿌리째 거꾸로 박거나 거대한 헝겊 인형을 만들어 앉히고 꽃잎을 바닥에 흩뿌린 작품 역시 철저한 의도에 따라 설치된 것이다. 이 같은 설치미술은 그가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 중세시대 예술가들이 실물을 재현하는 데 존재 의미가 있었다면, 지금의 예술가들은 샤먼shaman으로서의 역할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계몽하고 영적으로 자극하는 역할 말이다.
수동적인 도예와 적극적인 설치미술, 그렇게 상반되는 작업을 함께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균형을 이룬다. ‘균형’은 그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 서로 반대되는 두 작업의 통해 예술가적인 감성과 태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시소처럼 수평의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한다.
“제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여행입니다. 저는 움직이는 습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도예, 조각, 설치미술, 최근에는 가구까지 다양한 분야를 시도해왔어요. 누군가는 사서 고생한다고도 하지만, 이렇게 분야를 옮기면서 시도하는 게 저는 좋아요. 한 우물을 못 파는 제 성격을 장점화시키는 것이기도 하고요. 부담도 있지요. 노하우가 전혀 없는 새로운 것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내 이름에 기대하는 퀄리티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초조함이 듭니다. 그것에 초연해지는 데에도 많은 수련이 필요하더군요.”
그는 자신의 작업을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를 여행하듯 이동해서일 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 자체를 여행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의 전시에는 항상 ‘몇 번째 여행’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그처럼 여행을 많이 떠날수록 예술가는 스스로에 갇히지 않고 객관화 된다고 생각한다.
그의 멀지 않은 다음 여행지는 ‘건축’이 될지도 모른다. 요즘 그는 경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이것을 배워서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보다 우선은 그의 신념대로 직관에 따라 건축이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다. 언젠가 건축적인 작업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서. “건축 공부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습니다. 무엇이든 목적으로 대해야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돈을 벌기 위해서, 필요한 지위를 얻기 위해서 수단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시련이 왔을 때 쉽게 포기하게 되죠. 하지만 목적으로 생각한 사람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니까 시련을 개의치 않게 됩니다. 그게 10년을 지났을 때는 더 큰 성취를 이룬다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소망으로만 가지고 있던 건축 공부를 시작하고 가구전을 선보인 일은 최근 들어 가장 기쁜 일이다. 반면 슬픈 일은, 전처럼 몸으로 노동하기보다는 입으로 일하는 때가 많다는 것. 그의 작업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작업 자체보다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마흔둘의 나이. 열심히 작품 활동에 매진한 지 10여 년이 지났으니, 아쉽지만 그럴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롭게 재정비되는 새 위치에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많기에, 그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6 새는 그가 즐겨 만드는 오브제다.
1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는 ‘캠프A’ 건물의 옥상. 흙을 깔아 옥상 정원을 만들고 고물상에서 귀하게 건진 옛날 전봇대를 한쪽에 설치해 놓았다.
2 그의 대형 작품은 먼저 작은 사이즈의 모형화 작업을 거친다.
3 올해 완공된 캠프A 건물의 전경. 모던한 콘크리트 박스가 의외로 자연 속에 잘 어우러진다.
4 6월 25일에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만들게 되었다는 병사 조각.
시골집에서 계절을 따라 사는 행복 건축에 막 관심이 생길 무렵 그가 살고 있는 이 집과 작업실을 지었다. 얼마나 호기심이 충만했겠는가. 각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세세하게 구상하고 모형까지 정교하게 만든 후에 건축사무실에 의뢰를 했다. 건축사무실을 통해 완공하기는 했지만 그가 디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건물은 나무, 콘크리트, 쇠를 이용해 최대한 단순하게, 그리고 철골 기둥 같은 건물의 골조가 드러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건물 안의 가구들, 책장, 주방 가구 는 대부분 그가 만든 것들. 디자인만 해서 인부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땀 흘려 손으로 만들었단 소리다. 필요한 기계가 작업실에 다 있고 날마다 온갖 재료로 별의별 희한한 작품을 만드는 게 일상인데, 가구쯤이 뭐 그리 대수였겠는가.
구석구석 자신의 손길이 닿아 있는 이곳에서 그는 현재 두 사람의 스태프와 함께 지내고 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면 아침 8시부터 잠자기 전까지 작업을 한다. 그때 그때 전시 준비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따라 그릇도 만들고 타일이나 조각도 만들고, 때로 거대한 오브제도 만든다. 작업하고 점심 먹고 작업하고 저녁 먹고 작업하고 잠 잔다. 시골이라 달리 한눈팔 일도 없다. 작업 외의 일이라면 김장용 배추를 키우고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고 장작을 패고 겨울이면 눈을 치우는 정도다. 그는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골이 좋다. “도시에 수직 수평의 질서가 존재한다면, 시골에는 유기적으로 얽히는 자연의 질서가 있어요. 이곳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계절마다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일들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에게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트렌드가 아니라 진정한 웰빙을 위해서는 오히려 이런 생활의 절차들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5 집으로 쓰고 있는 건물의 현관. 각기 다른 크기의 색색 타일은 그의 작품이다.
6 캠프A 천창으로 환한 햇살이 쏟아져 그의 작품들을 비추고 있다.
서울 나갈 일이 없으면 이곳에서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조용히 작업에 집중한다. 밤에 술 마시러 다닐 때를 빼고는 서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안 좋아해요. 백화점에 갔다가는 패닉 상태가 될 정도죠.” 또한 그는 어딘가에 속해 있는 것을 못 견디는 편이다. 미술 하는 사람이면 그 누구나 속해 있다는 대한민국미술협회에도 그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가 살아오면서 조직에 속해 있었던 것은 홍익대 도예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가 전부. 하지만 당시에도 사무실에 나가면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출근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연구소를 그만둔 후 홀로 작가 활동을 하면서 몸의 건강도 정신 건강도 되찾았다고.
패거리 문화를 싫어하는 그의 성격상 미술계 사람보다는 오히려 다른 분야의 친구들이 많은 편이다. 장사하는 사람도 그의 친구요, 음악하는 사람도 그의 친구다.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색깔이 분명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빨간색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빨간색인 사람. 어떤 분야든 진정한 프로페셔널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 허풍스러운 예술가보다 프로페셔널한 보통 사람들이 훨씬 존경스럽다. 예술 작업을 교수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예술을 한다지만 정작 자기 삶은 세속적이기만 한, 그런 어설픈 예술가보다 말이다.
1,2 자연의 불이 저절로 만들어낸 오묘한 색은 이헌정 도자기의 큰 매력이다.
3 써미앤투스 갤러리에서 가구를 테마로 전시했던 그의 작품들. 도자기로 만든 스툴, 콘크리트로 만든 소파 등을 선보였다.
4 써미앤투스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작품. ‘물’ ‘바다’는 그가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다.
몸으로 깨우친 자의 방향감각 그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뛰어난 항해자였던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나침반, 크로노미터 등 유럽인들이 항해에 사용하던 복잡한 도구도 없이 바다에서 정확한 길을 찾았다. 그들은 파도의 물결을 읽었다. 파도가 섬에 부딪히면 그 일부는 섬을 비껴가고 나머지는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를 측정하는 그들만의 도구가 있었지만, 때로 그저 촉감만으로 이 물결을 읽었다. 뱃머리에 쭈그리고 앉아 배의 움직임을 문자 그대로 ‘느끼면서’ 수천 킬로미터의 망망대해를 지나 새로운 고향을 찾아갔다고 한다.
도예가 이헌정 또한 그 같은 항해를 꿈꾸는 듯하다. 노동의 반복을 통해 몸으로 깨우치게 된 감각, 그 감각에 의지하여 망망대해 같은 인식의 바다에서 방향을 찾아가는 항해. 그 항해를 위해 그는 오늘도 양평에서 흙을 주무르고 가마를 손보고 불을 지핀다. 긴 여행의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한 항해를 계속하여, 그의 직관이 인도하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