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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두 문화가 만나 행복이 된다 행복은 국경을 초월한다
사랑은 가족을 만들고 가족은 역사가 된다. 집은 곧 역사이다. 여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난 조금 특별한 인연이 있다. 정이 많은 스위스 남편과 애교 많은 한국인 아내, 국제적으로 자란 프랑스 남편과 솜씨 좋은 한국인 아내, 그들이 빚어내는 행복의 풍경 속에 들어가본다.

불가리 코리아 티에리 마티 사장과 탤런트 서혜린 씨 부부의 집. 밝은 햇살을 받고 있는 거실 소파는 이들의 로맨틱한 프러포즈가 이뤄진 장소다. 둘만의 로맨스가 담긴 그 소파는 주말 밤이면 친구와 지인들을 위한 공간이 된다.

티에리 마티♥서혜린 씨 부부
한국 남자 같은 스위스 남자와 진짜 한국 여자의 사랑 풍경
아내가 “여보, 닭살” 하면 척 알아듣고 애정 표현하는 남편은 불가리 코리아의 티에리 마티Thierry Marty 사장이다. 그리고 ‘닭살’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아내는 탤런트 서혜린 씨. 이들에게 ‘닭살’은 애정 듬뿍 담긴 행동을 일컫는 동사다. 스위스 태생인 티에리 마티 씨는 아직 한국말은 서투르지만 ‘닭살’만큼은 그 어떤 한국 남자보다도 빨리 알아듣는다. 그는 아내를 “베이비”, 아내 서혜린 씨는 “여보”라고 부른다.
2005년 3월, 한 브랜드의 파티에 참석하면서 첫인사를 나누게 된 두 사람. 서로가 첫 만남에서부터 좋은 인상을 받아 몇 번 만남을 가졌으나 잠깐의 공백기를 가지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결혼을 전제로 관계를 발전시켰다. 아내의 어떤 면이 좋아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느냐 물었더니 “모든 게 다 좋았다” 한다. 서혜린 씨는 정 많고 가슴 따뜻한 남편이 좋았다. 그리하여 2007년 8월 하와이 한 해변에서 가족과 증인이 되어줄 친구 몇 명만 초대해 조용한 혼인식을 올렸다. 겉보기에도 전혀 다른 이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함께 살면서 다른 어떤 커플보다도 닮아가는 재미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사람 정말 외국인 같지 않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하던 서혜린 씨가 웃으며 한마디 덧붙인다. “근데 10년 후에 다시 물어봐 주세요. 그때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1 안나 수이, 마크 제이콥스같이 발랄한 분위기의 패션 브랜드를 좋아하는 서혜린 씨의 파티 단장 마무리는 클러치 백을 고르는 것. 남편이 몸담고 있는 불가리의 클러치 백부터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비즈 달린 클러치 백 등이 있다.
2 올리브오일을 바른 돼지 안심구이는 티에리 마티 씨가 가장 잘하는 요리다. 노련한 손놀림으로 칼집을 내고 마늘을 꽂아 넣는데 1~2년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안심 구이가 오븐에서 익어가는 동안 부부는 몸단장을 한다.



3 금요일 저녁, 둘만의 공간에 손님이 찾아온다. 서혜린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적인 그릇과 르쿠르제 식기로 테이블 세팅을 했다.
4 이 집의 아침 풍경 중 하나다. 부부 욕실의 욕조에 앉은 남편의 머리에 아내는 헤어 왁스를 바르며 “우리 남편 멋져요”라고 말한다. 이런 장면은 아무리 깨소금 쏟아지는 신혼 부부라도 쉽사리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배려로 시작하는 일상 존경할 수 있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던 서혜린 씨는 이제 그런 인연을 만났다. 그 고마운 인연을 위해서 서혜린 씨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건강과 행복을 챙기는 것. 아침마다 남편의 머리를 매만져주고, 상황버섯 달인 물을 챙기고, 저녁마다 남편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며 매일 매일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뼈 속 깊이 각인된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때문에 항상 배려와 고마움에 대한 표현을 아끼지 않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다. 서혜린 씨는 당분간은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싶어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내년쯤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집에서 살림하는 것도 좋지만 꾸준히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남편은 아내의 열정을 북돋우며 때론 아버지처럼, 때론 친구처럼 의지가 되어 준다. 그러다가도 애교 많은 막내아들처럼 변하기도 한다. 남자는 결혼하면 아내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다 똑같은가 보다.


1 티에리 마티 씨는 처음 홍삼 달인 물을 주었을 때 홍삼의 효능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상황버섯 달인 물까지 마신다. 매일 생수처럼. 전기 약탕기는 그의 보물이다. 이 집의 냉장고엔‘백세주 담’도 7병이나 있다. 티에리 마티 씨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술이다.
2, 4 루이비통,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 브랜드에서 일해온 티에리 마티 씨는 젊어서부터 손목 시계를 사모았다. 그렇게 모은 것이 지금까지 무려 19개라고. 불가리, 까르띠에, IWC, 제니스 등 시계 명가의 제품들이다. 그에게 손목 시계는 ‘패션의 완성’이다.



3 금요일 저녁의 파티 풍경. 왼쪽부터 필립 신·박선화 씨 부부, 크리스티앙 바르드·이선혜 씨 부부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집, 파티가 시작되는 곳 아직 아이가 없는 이들에게 집은 사람이 모이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언제 누가 찾아와도 격에 맞는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신혼의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풋풋한 공기가 흐르는 집. 그 안에는 오직 둘뿐이어서 피할 수 없는 허전함이 있는데, 낮엔 햇볕 잘 들어 화분과 그림자가, 밤이면 두 사람의 사랑이,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대화가 촛불과 어우러져 빈 곳을 채워준다.

금요일 저녁이 되자 집 안에 차곡차곡 온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날 초대된 친구들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변호사 필립 신 씨와 그의 아내 박선화 씨, 건축가이자 사업가 크리스티앙 바르드 씨와 그의 아내 이선혜 씨였다. 이들이 모이자 한국어, 영어, 불어가 뒤섞이며 크리스티앙 바르드 씨 내외의 이사 소식을 시작으로 여러 화제들이 오갔다. 모두 티에리 마티 씨 부부의 결혼 생활 선배이다. 가끔은 서혜린 씨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티에리 마티 씨 부부는 친구들만큼 결혼 생활에 연륜이 쌓일 때쯤이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정착하고 싶다고 한다. 틈만 나면 여행 다니는 이들 부부가 물색해놓은 곳이 있는데, 바로 태국이다. 앞으로 몇 년간은 남편의 회사 때문에 한국에서 생활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하나가 아닌 둘이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주저함이나 두려움은 없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이룬 가정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항상 둘이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 부부. 여기에 하늘이 아이까지 내려주신다면 더 없는 행복이 될 것이라 한다.


5 싱가포르, 인도, 태국 등지를 여행하며 모은 소품으로 꾸민 거실.
6 남편이 퇴근하면 항상 이 자리에서 둘의 시간을 시작한다.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면 온가족은 불어로 소통한다. 작은 딸 밀리는 아빠 옆에 착 달라붙어 앉아 ‘쎄쎄쎄’를 한다. “아침 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프랑스 아빠의 기러기는 왜 이렇게 귀엽게 우는지…. 한국어가 서투른 아빠가 유일하게 아는 한국 노래는‘쎄쎄쎄’와 ‘곰 세 마리’이다.

장 세자르♥박미현 씨 부부
프랑스&한국 두 가족의 역사가 만든 행복 풍경
방배동 서래마을에 살고 있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상무관 장 세자르Jean Cesar 씨와 아내 박미현 씨 부부. 박미현 씨는 1995년 친구의 통역을 도와주다 장 세자르 씨를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 군복무를 대신해 1년 반 동안 파견나와 있었고, 박미현 씨는 로레알 코리아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이후 이들은 프랑스에서 다시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결혼 후 6년 동안은 프랑스에 살며 모든 일에 한 템포씩 여유를 두고 살았다. 그러다 4년 전 장 세자르 씨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농·수산·약품 담당 경제상무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가 여섯 살 리아와 세 살 밀리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빌라에는 4년 된 집치고는 꽤나 살림살이가 많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 안에 놓인 가구부터 소품 하나까지 어느 하나도 사연 없는 것이 없었다. 시할머니가 물려 주신 가구부터 소품, 식탁보 하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살림살이에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이들이 한국에 나올 당시 다시는 프랑스에 안 돌아갈 것이라 생각해 물려받은 모든 살림살이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가져왔던 것이다. 시아버지가 외교관이었던 덕에 더욱 많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국, 인도에서 살면서 모은 다양한 소품들이 고스란히 이들에게 대물림되었다.


1 친정 엄마는 사위를 ‘장 서방’이라 부른다. 그런 장 서방네 안방 화장대에는 장 서방 부모님 사진, 장 서방 내외 사진, 그리고 박미현 씨의 증조할아버지의 어렸을 적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2 이 집의 식단은 주로 서양식이다. 박미현 씨가 불어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 잡지들의 레시피를 보며 요리까지 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이 점심때면 거의 한국 식당을 가기에, 저녁만큼은 남편 입맛에 맛는 음식을 하게 된다고 한다.


시댁의 문화로 딸을 키우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가 되자 엄마는 간식 준비로 분주하다. 요리를 좋아하는 박미현 씨는 아이들과 주방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낸다. 케이크를 만들 땐 아이들이 옆에서 반죽도 도와주고, 소스도 가져다주고, 밥을 지을 때면 쌀도 씻는다. 주방은 아이들에게 ‘엄마와 같이하는’ 공간이다. 비록 좁은 주방일지라도 중앙에 아이들만의 테이블을 놓아 아이들이 그 안에서 엄마와 함께 요리하며 놀 수 있게 했다. 요즘엔 리아에게 손바느질도 가르쳐주며 같이 가방도 만든다. 그림 그리기 같은 것은 아주 기본적인 놀이다.
큰딸 리아는 올해부터 한국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도 많지 않고,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리아에게 물으니 “프랑스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또래 한국 아이들은 리아의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바쁘다는 것이 박미현 씨의 결론이다. “유치원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영어, 미술, 피아노)학원엘 가더군요. 프랑스 학교는 집에서 애들한테 공부시키지 말라고 해요.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지루해하고 집중하지 못한다고요. 물론 한국 엄마들과 프랑스 엄마들의 인식 차이도 있을 거예요. 프랑스 엄마들은 내 자식이 일류 대학에 가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죠. 그건 부모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이라며.”


1, 2 이 집에 놓인 가구들은 하나하나가 집안의 역사다. 거실에는 시할머니가 물려주신 장도 있고 시부모님이 중국과 인도에 살며 썼던 고가구도 있다. 박미현 씨가 프랑스 앤티크 마켓에서 구입한 녹색 그릇장 옆에는 시아버지가 첫째 리아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해준 그림이 걸려 있다. 벤치는 시아버지가 앤티크 마켓에서 예쁘다며 사준 가구의 받침에 쿠션을 넣고 천을 씌워 만들었다. 소품들도 대부분 시부모님이 물려주셨다.


3 요리하기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아이들은 주방에서 엄마 도와주기를 즐긴다. 식탁은 시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었고 의자는 시할머니의 솜씨다. 프랑스 사람들이 올 때면 시어머니, 시할머니께서 물려주신 식탁보를, 한국 사람들이 올 때면 모던한 새것을 사용한다. 프랑스 손님들은 구멍이 뚫려 있어도 색이 바랬어도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어 좋다고 한다.
4 박미현 씨가 리아만 할 때 엄마가 선물해준 피아노. 피아노 의자 가죽이 닳아 공단 천을 씌워 사용하고 있다. 피아노 위에는 가족의 역사, 가족사진들을 올려 놓았다.


세계 어디라도 가족이 함께라면 행복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온 식구들이 시댁에 모여 한 달을 보낸다. 장 세자르 씨의 가족은 그야말로 국제적인데 누나는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마드리드에 살고, 여동생은 멕시코 남자와 결혼해 멕시코에 살고 있다. 아이들만 모여도 일곱 명. 함께 있을 때는 불어와 영어로 소통한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이들이 어울리는 데에는 국적과 문화는 중요하지 않았다.
장 세자르 씨는 자신의 성장 과정이 그러했듯 가족들과 여러 도시를 다니며 살고 싶어한다. 아내의 나라 한국일지라도 영원히 정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아이들이 남아프리카에 가든 미국에 가든 잘 적응하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부부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국의 ‘기러기 아빠’ 같은 현실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가구도 가족 같아 대물림한 살림살이를 어렵사리 한국까지 가져온 이들에게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긴 집 안 풍경은 낯설 수밖에 없다. 집이란 가족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들을 보면 집이란 가족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고, 그 안에 놓인 가구들은 가족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란 생각이 든다. 바로 여기서 가족의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