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進退를 아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연스레 서울에서 전라북도 화순으로 내려왔다는 소설가 정찬주 씨. 사람 오는 것 불편해하지 않고 가는 것 또한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그는 뒷동산 차밭에서 차 한 줌 따다 덖은 차를 흙빛 잔에 담는다. 자연을 스승 삼아 살아가는 소설가의 삶과 글 이야기가 시골집 소박한 방 안에 그득하다.
여름 나무가 들어찬 산, 그 속에 바다처럼 숨은 호수를 따라 정찬주 씨의 시골집에 도착했다. 사찰 뒤 작은 암자를 연상시키는, 죽림으로 가려진 마당 가운데 기와집 두 채가 사이좋게 앉아 있다.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루겠다’라는 뜻을 지닌 집 ‘이불재耳佛齋’에서 그는 콩 심고 고추 기르고 차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때가 되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무지렁이 농부처럼, 솔바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8년 전 30여년의 서울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이 동네로 오게 되었어요.”
여고 교사를 시작으로 불교 잡지 편집장을 지내고 샘터사에서 15년을 근무하며 성실히 20여 년을 보냈으니 이 정도면 사회적 의무는 충분히 한 것 같았다. 아이들은 다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고 때마침 성철 스님에 대한 그의 소설 <산은 산 물은 물>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덕분에 인도 여행 이후 그의 생각대로 서울 생활과 시골 생활이 봄에서 여름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흐르듯 별다른 충돌 없이 흐를 수 있었다. 혹자는 용단을, 어떤 이는 결단을 내렸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다. 계곡물이 강으로 흐르듯 자연스레 인생이 흐른 결과였다고 그는 생각한다. “처음에는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글쓰기와 주객이 바뀌는 것 같아 지금은 한 50평, 차밭까지 하면 2백 평 정도 농사를 지어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농사를 짓거나 툇마루에 앉아 독서를 합니다. 바람이 차고 응달인 내 산방 주변의 꽃들은 유난히 계절을 많이 타요. 글을 쓰는 동안 아내와 함께 만든 마당과 연못의 꽃을 무심히 응시하곤 합니다. 글이 막히거나 풀리지 않으면 연못가를 돌거나 꽃나무 그늘 아래서 혼자 농성을 하기도 하지요.”
1 그의 집은 전남 화순 산자락의 쌍봉사와 이웃하고 있다. 집 뒤편으로는 야생 차밭이, 앞쪽에는 대나무 숲이 에워싸고 있다.
2 두 채의 기와집이 있는데, 정찬주 씨 부부가 머무는 본채와 손님들을 위한 작은 사랑채가 마주한다. 사랑채 처마 밑에는 법정 스님이 친필로 써준 현판이 붙어 있다.
“시작하기보다 어려운 것이 일을 끝내는 것이고, 태어나기보다 어려운 것이 죽는 일이리라. 마찬가지로 누구나 앉고 싶어 하는 자리에 나아가기보다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물러서는 것이 더 어려운 알아 아니던가.” (<인연>의 서문 중에서)
마을 사람들은 작은 집을 짓고 직접 마당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는 부부의 일상을 보며 멀리 화순까지 찾아와 새 둥지를 튼 그들의 진정성을 이해해주었다. 태생부터 자연과 함께 자란 무지렁이 농부들이 마당에 옮겨 심으라며 느티나무 고목을 내주기도 하고 이따금씩 농사의 지혜도 일러준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자연 모두가 그의 스승이다.
올해는 고추를 50모종 심었다. 맵고 쌉싸래한 맛을 좋아하는 아내 때문에 고추밭엔 줄을 매어주고 유난한 정성을 들였다. 반면 그가 별반 좋아하지 않는 가지는 구색이나 맞추려고 5모종만 심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 장맛비와 함께 큰 바람이 일어 고추와 가지가 모두 쓰러졌다. 그런데 가지는 이내 다시 스스로 자라났지만 과보호했던 고추는 여러 번 사람이 손이 닿은 뒤에야 겨우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3 글 쓰고 책 읽는 집필실.
“자연은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고추와 가지가 자라는 것을 보며 사람이든 자연이든 과잉 보호하면 자생력을 잃는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밤에는 툇마루에 누워 별을 봅니다. 우리가 아는 건 고작 태양 주위의 행성 몇 개죠. 시골에 와서 보니 밤하늘에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이름 붙여주지 않은 크고 작고 희미하고 밝은 수백 수천 개의 별로 밤하늘이 가득해요. 인간 사회가 썩지 않고 아름답게 지속되는 건 우리가 아는 유명 인사 몇 사람이 아니라 이름 없는 별처럼 풀처럼 자기 자리에서 반짝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처럼 이름 없이 반짝이며 세상의 뿌리를 이루는 삶들을 글로 쓰고 싶습니다.”
“발밑을 보니 기둥 옆에 한겨울인데도 푸른 풀잎이 돋고 있다. 선방의 열기가 뻗치어 싹을 틔운 것 같다. 그러나 풀잎은 나그네의 그런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풀잎은 지금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풀잎이 화두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살고 있습니까?”(<선방 가는 길> 중에서)
4 길게 뻗은 집필실 벽면은 다양한 서적이 채우고 미술을 전공한 딸이 아버지의 글쓰기를 응원하며 집필실 곳곳에 그림을 놓아주었다.
이름 없는 별, 풀 그리고 바람과 마주하며 근 10년을 보내는 동안 자연스레 그도 변화했다. 유명한 소설가, 법관 혹은 미술가가 되고 싶었던 정찬주 씨는 예순에 이르러 별, 풀, 무지렁이 농부를 닮고 싶다는 새로운 장래희망을 꿈꾼다. 꿈이 작아진 게 아니라 이제야 진실한 꿈을 찾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살다 보니 사람들이 내 문체가 더욱 자연스럽고 유순해졌다고 말합니다. 문즉인文卽人, 즉 글이 사람이라는 말이 꼭 맞아요. 처음에는 정보 부족과 불편을 이유로 시골살이를 만류하던 문인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새벽에 일어나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 농사를 짓기 때문에 집중력이 아주 높아졌어요. 서울에서보다 글 쓰는 양이 훨씬 많아져서 지금은 1년에 두 권씩 책을 쓰고 있어요.”
법정 스님은 그의 저서에서 작가 정찬주 씨에게 “흙을 만지며 사는 작가의 글에서 건강하고 진솔함이 느껴진다”고 인사를 건넸다. 자갈 위로 흐르는 맑은 시내처럼 문체가 한층 단단하고 또한 청명해졌다. 덕분에 서울에 있을 때보다 독자도 많아졌다. 한번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독자가 찾아온 적도 있었다.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해준 작가에게 빈손으로 찾아온 것을 몹시도 미안해하는 노신사 앞에서 정작 사무치게 미안한 건 소설가 자신이었다. 글을 생명과 바꿔 읽는 이가 있었는데 왜 더 정성스럽게 쓰지 못했을까. 반딧불 반짝이는 골짜기처럼 맑은 글을 내어 뭇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을 스승으로 둔 제자의 가슴에 일렁였다.
얼마 전에는 일타 큰스님의 이야기를 엮은 새 소설 <인연>이 출간되어 전국 각지의 독자들이 끊임없이 화순의 산자락을 찾아오고 있다. “일타 스님은 진정한 자비가 무언지를 삶을 통해 보여주고 가신 분입니다. 불가에서는 이 세상, 자연과 우주, 인간의 무정물까지, 그것들과 한몸이 되어야 자비가 나온다고 합니다. 나를 내세우는 자비는 결국 이해타산을 위한 것이죠. 일타 스님은 태백산 깊은 곳 도솔암에서 6년간 장좌불을 하고 철저하게 수행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었어요. 소설 속에는 작가적 상상과 일타 스님의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비심이 어떻게 태어났고 자비심으로 승화된 삶을 어떻게 중생들에게 돌려주었는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태백산 깊은 곳 도솔암에서 6년간 장좌불을 하고 자연과 하나 된 일타 스님의 이야기와 화순 산자락의 작은 시골집에서 자연과 마주하며 깨우친 작가의 상상이 소설 속에 공존하고 있다.
1 소박한 돌담, 불규칙한 기왓장, 정원의 연못까지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부부가 직접 이불재의 풍경을 만들어간다.
2 집 뒤편 차밭으로 올라갈 때면 밀짚모자와 장화가 필요하다. 키 높은 야생화와 뱀 등의 동물이 공존하는 ‘야생 차밭’이기 때문이다.
“초당에 별다른 책 없고 / 꽃 피고 흐르는 물뿐이라네 / 귤나무 숲에 비 개니 더욱 아름답고 / 바위 샘물 길어 찻병을 씻는다네.”(다산 정약용의 글, <정찬주의 다인기행>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롭지 않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시골살이를 가능하게 하는 배터리는 바로 외로움입니다. 외롭기 때문에 자연에 귀 기울이게 되고 그게 다시 에너지가 되어 글을 쓰게 만듭니다. 겨울, 눈보라가 휘몰아쳐 툇마루까지 눈이 쌓이면 그 모습이 보석 같아요. 눈이 그치고 거짓말처럼 달이 차오르는 풍광은 서울 종로 거리의 보석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대들이 오월의 솔바람 소리의 값을 모를까 그것이 두렵노라.’ 내가 좋아하는 옛 시의 구절처럼 자연 속에서 외롭지 않았다면 솔바람의 가치를 다 알 수 없었을 테지요.”
방만을 즐기는 시골살이가 아니라 더욱 치열하고 온전하게 생을 살고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숲을 찾아 들어온 사람. “파도가 심하면 달이 나타나기 어렵고 방이 그윽하면 등불이 더욱 빛나도다”라는 그의 새 소설 표지 위 글귀가 마음을 두드린다. 자연을 스승 삼아 자연으로 스스로를 유배시킨 소설가의 시골집 방에 늦여름 솔향이 그윽하다.
3 마당의 풀 한 포기도 자연의 섭리를 알려주는 좋은 스승이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쌍안경으로 새싹을 들여다보곤 한다.
4 돌계단 위 본채의 마루는 작가가 독자들을 맞는 공간이다.
5 시골 생활과 창작의 에너지는 외로움이다. 홀로 앉아 차 두 잔을 따르고 자연에 귀 기울이며 신심을 다듬고 글을 이어나간다.
소설가 정찬주 씨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20년 넘게 교사와 출판 편집자로 혹은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았다. 베스트셀러 <산은 산 물은 물>을 발표한 후 늘 마음에 그리던 남도의 산중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하늘의 도> <다불> <만행> <대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와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다인기행> 등이 있다. 또한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도 집필했으며 최근에는 일타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인연>을 발표했다. |